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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054화 (1,834/2,000)

< 2054화 > 2054. 아카데미의 구원자

성유진이 개인적인 일을 볼 때, 유리아와 엘레나는 아라시 아카데미의 교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교복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성유진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이 옷을 입으니 정말로 학생이 된 기분이군. 조금 불편하긴 해도 나쁘진 않아.”

엘레나가 거울을 보며 말했다. 미인인 그녀에겐 교복 차림도 잘 어울렸다.

그녀 옆의 유리아는 머리카락과 복장을 정리했다. 유리아의 손은 교복의 주름 하나 허락하지 않았다.

“엘레나는 아카데미에 다닌 적 없으십니까? 엘레나의 제국은 상당히 발전했을 테니 교육 기관이 있을 텐데요.”

“물론 아카데미는 존재한다. 평민 중 재능 있는 자들은 귀족의 후원을 받고 입학하지. 나도 적극적으로 아카데미와 입학생에게 후원하는 편이다. 인재를 데려올 기회니까.”

“귀족은 아카데미에 다니지 않는 모양이군요.”

“자작 이하의 하급 귀족의 자제들은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인맥을 쌓는 데도 제법 도움이 되니 말이다.”

“엘레나는 아니겠군요.”

“고명한 학자를 가문에 초대하면 되는 일인데 굳이 아카데미에 입학할 이유가 없지. 인맥이야 파티를 열면 귀족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든다. 비즈니스를 핑계로 구슬리면 적당히 이용해 먹을 수 있지. 너는 어떻지? 아카데미를 다녀봤나?”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습니다. 다른 세계의 이야기지만요.”

“호오. 여기 아카데미와 비슷하나?”

“전혀 다릅니다. 지키고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습니다.”

“아카데미는 즐겁나?”

유리아는 멈칫했다. 그녀는 메이드 아카데미를 떠올렸다. 제법 오랫동안 고민하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즐겁긴 했습니다.”

“의외의 대답이군.”

“물론 주인님을 모시는 쪽이 더 즐거운 일이긴 합니다만.”

“그건 예상했던 대로의 대답이고.”

마지막으로 복장을 점검한 그녀들은 방 밖으로 나갔다. 원래는 성유진이 돌아올 때까지 방에서 대기하려고 했으나, 엘레나의 요청으로 문화제를 구경하기로 했다.

엘레나로선 휴가 온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모든 일을 내려놓고 이 세계의 문화나 음식을 즐기고 싶었다. 항상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던 발데르트 가문이 이 세계에는 없기에 가볍게 행동할 수 있었다.

“어디 가는 거야?”

복도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성하리가 물었다.

엘레나는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나?”

“아무리 봐도 너희는 수상해서 따로 조사해 봤어.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아? 아무것도 없더라.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닌 것처럼. 그러니 내가 직접 감시하는 거야. 너희가 이상한 짓을 하지 않도록. 이상한 짓을 한다면 바로 제압할 수 있도록.”

“피곤한 일을 사서 하는군. 우리와 유진의 관계는 직접 보지 않았나.”

“윽.”

성하리의 뺨이 붉어졌다. 눈앞의 두 여자와 성유진이 알몸이 되어 뒤섞였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건 정말이지 음란한 그 자체였던 광경이었다. 보고 있는 쪽이 더 부끄러운 광경.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난 너희를 내 며느리로 인정한 적 없어.”

“아직도 유진과 엄마 놀이를 할 생각인가. 얼굴에 철면피를 깔았군.”

“…엄마 놀이? 너 말이야. 어제부터 말투가 좀 그러네? 참아주는 데도 한계가 있으니까.”

“유진에게 감사해라. 유진이 아니었다면 넌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이나 질질 짜고 있었을 테니.”

성하리의 입가에 사나운 미소가 그려졌다. 동시에 그녀의 기세가 올라간다. 엘레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팔짱을 끼며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이 턱을 올렸다.

유리아는 그녀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두 분 다 그만 하세요. 여기서 날뛰면 주인님께 폐가 됩니다. 엘레나, 저희는 이방인입니다. 어머님, 저희는 소란을 일으켜 주인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서로 화해하라곤 하지 않겠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참아주십시오. 어머님이 우리를 감시하더라도 저희는 상관없습니다.”

성하리가 한숨과 함께 기세를 흩트렸다. 엘레나는 흥미 없다는 듯 고개를 획 돌렸다.

“저기. 유리아라고 했던가? 그 어머님이란 호칭은 좀 그래.”

“이건 존중의 의미입니다만.”

“나도 알아. 알긴 아는데… 아무리 그래도 어머님이라 불리는 건 좀 그래. 어색하기도 하고 내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이잖아.”

“뭔가 착각하고 계시는군요. 이 호칭은 당신을 향한 존중이 아닙니다. 주인님을 향한 존중이지요.”

“…뭐?”

“풉.”

웃음을 터트린 건 엘레나였다. 그녀는 유리아의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유리아의 중심은 성유진이다. 성하리를 어머님이라 부르면서도 진정으로 시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건 성유진이 성하리를 정말로 자신의 모친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성유진의 엄마 놀이. 유리아는 거기에 적당히 맞춰 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 성유진의 진짜 모친을 만나면 전력으로 아양 떨겠지. …음. 이에 대한 정보는 없군. 성유진의 모친은 곧 내 시어머니이기도 하니 아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환술을 쓰는 건 최악이고… 선물 공세가 답인가.’

성하리의 도끼눈 감시 아래에 엘레나와 유리아는 기숙사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나가자마자 남자들이 귀찮게 굴었다. 그녀들의 외모가 너무 눈에 띈 것이다. 남자친구가 있냐는 노골적인 질문에서부터 같이 사진을 찍자는 요청까지 성가시지 않은 게 없었다.

불쾌감을 느낀 엘레나는 환술을 사용해 남자들을 쫓아냈다. 남자들에겐 자신도 모르는 트라우마가 생기겠지만, 엘레나가 고려할 바는 아니었다.

“이대로는 귀찮군. 환술을 쓰겠다. 상관없겠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엘레나의 시선이 성하리에게 향했다.

“어, 나도?”

“네 외모도 생각해라. 남자들이 우리에게만 말을 건 건 아니지 않나.”

“……나도 부탁할게.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아니지?”

엘레나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환술이 발동되고 주목되던 시선들이 사라졌다. 이제 다른 사람들은 그녀들을 평범한 여성들로 보일 것이다.

엘레나는 유리아의 팔을 잡고 경쾌하게 걸어갔다. 문화제의 축제 분위기가 그녀를 들뜨게 했다. 성하리는 그녀들의 뒤를 따라갔다.

발걸음이 멈춘 것은 한 노점 가게 앞이었다.

“이건 뭐지?”

“솜사탕이네요. 처음 보시나요?”

“솜사탕을 모른다고?”

유리아와 성하리는 각각 다른 의미로 놀랐다.

“솜사탕? 솜처럼 생기긴 했군. 한번 먹어봐야겠다.”

“…왜 절 보시죠?”

“내가 이 세계의 돈이 없어서 말이다. 빌려줬으면 좋겠군.”

“유감스럽게도 엔화는 제게도 없습니다.”

엘레나의 시선이 성하리에게 향했다.

“빌려다오.”

“밑도 끝도 없이?!”

“얼마하지 않는 금액이 아닌가. 쩨쩨하게 굴지 마라.”

“빌리는 입장 주제에 너무 당당하잖아. …네가 불쌍해서 빌려주는 거야. 설마 솜사탕도 먹어 본 적 없을 줄이야.”

“무슨 생각하는 건지 몰라도 날 동정하다니…. 자존심 상하지만 돈을 빌려줬으니 용서하마.”

엘레나는 솜사탕 3개를 구입해 유리아와 성하리에게 나눠줬다.

“전 괜찮습니다.”

“이미 구입했잖아. 귀족이라더니 얼마나 제멋대로인 거야?”

“축제이지 않나. 너희도 먹어라.”

“혼자 먹기 부끄러우신가 보군요.”

“……솜사탕은 굉장히 오랜만이네.”

그녀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솜사탕을 뜯어 먹었다. 엘레나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달군. 입에 넣자마자 녹는 건 마음에 든다만… 너무 달다.”

“싸구려 설탕을 쓰는 것 같습니다. 저라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솜사탕을….”

“옛날에는 많이 좋아했었던 같은데… 내 입맛이 변한 걸까.”

저마다 내뱉은 감상에는 혹평뿐이었다. 엘레나는 쓰레기통에 솜사탕을 버렸고, 유리아는 마법으로 솜사탕을 녹여 처리했다. 성하리만이 꾸역꾸역 솜사탕을 먹었다.

“그런데 엘레나. 돈은 어떻게 갚으실 생각이십니까? 범죄는 아니겠지요?”

“나를 뭐로 보고. 계획은 전부 짜뒀다. 우선 내가 가지고 있는 금화로 시드 머니를 만들어 주식에 투자할 거다.”

“금화만 팔아도 돈은 충분할 텐데요.”

“주식이란 걸 해보고 싶다. 내 세계에는 주식이란 게 없으니 말이다.”

대화를 듣고 있던 성하리가 인상을 팍 쓰며 끼어들었다.

“주식? 하지 마.”

“왜지?”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전재산의 절반이 날아갈 수도 있어. 바닥 밑에 지하실 있다더니… 아니, 정말 바닥인 줄 알았는데….”

“…….”

그녀들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예술관이었다.

아라시 아카데미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곳. 엘레나는 예술관 입구에서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미소 지었다.

“줘도 안 가지는 쓰레기들이 전시되어있군. 현대 미술? 문명 수준은 더 높아졌는데 예술은 퇴화한 것 같군. 유리아. 어떻게 생각하지?”

“사람에겐 저마다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있는 것도 누군가에겐 예술이겠죠.”

“그래서 네 눈에는 여기 있는 것들이 예술이다?”

“아뇨. 쓰레기들입니다.”

성하리는 둘의 눈치를 살폈다.

‘솔직히 이 정도면 괜찮은 작품들 아니야?’

그녀의 눈에는 나름 괜찮은 작품들로 보였다. 몇 개는 구매해 집에 장식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갤러리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귀신의 집이었다. 셋 다 귀신에게 놀라기는커녕 지루함만 느꼈다. 숨어 있는 사람들의 기척이 전부 느껴졌고, 귀신 분장은 어딘가 어설픈 느낌이었다.

“몬스터 서커스 보러 가지 않을래? 아라시 아카데미는 몬스터를 길들여서 서커스 하기로 유명하거든.”

드물게도 성하리가 의견을 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감시 대상들과 친해진 것이다.

“몬스터 서커스? 재밌는 짓을 하는군.”

“확실히 흥미가 가긴 하는군요.”

몬스터 서커스는 그녀들을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몬스터를 길들이고 훈련시킨다. 말은 쉬워도 실제로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니까.

1시간 정도의 몬스터 서커스를 본 그녀들은 만족스러워했다. 이후 맛있기로 소문난 요리연구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므라이스는 나쁘지 않군요.”

“뭐? 이 정도면 엄청 맛있는 수준이잖아. 특히 요리연구부의 오므라이스는 엄청 유명하다고?”

“성하리의 말이 옳다. 이 오므라이스라는 요리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이후에도 그녀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닌 뒤에 마법 불꽃놀이를 감상하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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