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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061화 (1,841/2,000)

< 2061화 > 2061. 아카데미의 구원자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라고 생각했을 때 이미 끝에 도달해 있었다.

넓은 공간. 여기저기 부서진 대리서 바닥. 그 끝에는 창과 검에 꿰뚫려 있는 존재.

『악마 사냥꾼(S)이 악마의 존재를 감지했습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악마에 대한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악마 사냥꾼(S)이 악마를 간파합니다.』

『악마의 정보를 알 수 없습니다.』

온몸에 힘이 넘쳐난다.

악마 사냥꾼(S)이 눈앞에 있는 악마를 쳐 죽이기를 원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새까만 몸에는 여기저기 균열이 가 있다. 입가는 섬뜩한 웃음을 짓듯 찢어져 있었다. 검과 창에 꿰뚫린 부위에서는 피가 흘러나온다. 다만 그 두 눈 만큼은 인간의 것과 닮아 있었다.

악마 사냥꾼(S)은 이 악마의 정체를 몰랐다. 눈앞의 악마가 아주 오래된 고대의 악마이기 때문이다.

“아주 비참한 꼴이군.”

“크크. 이래 보여도 나는 평온하다고? 아파 보여도 고통은 없다. 너무 오래돼서 고통도 고통이 아니게 된 거지.”

“여유로운 척하는 거냐? 난 지금부터 널 죽일 거다.”

“날 이곳에 처박은 악마들은 날 죽이지 못했다. 그때는 내가 강했거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는 약해졌지. 고작 인간 따위에게 죽을 정도로 말이야. 크흐흐.”

미간을 찌푸렸다. 이놈이 태연자약하게 웃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이놈이 내게 목숨을 구걸하는 꼴이 보고 싶었다.

“어차피 죽을 거, 목숨 구걸이라도 해서 날 재밌게 해봐라. 혹시 모르잖아. 변덕이 생겨서 널 살려줄지도.”

“악마 사냥꾼이 악마를 살려줘? 하하. 재밌는 농담이군.”

“살아남아서 복수하고 싶지 않나?”

“날 유혹하는 거냐? 누가 악마인지 모르겠군. 복수는 괜찮다. 그도 그럴 게 내 눈앞에 악마를 죽이는 전문가가 있지 않나?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넌 멈추지 않고 그놈들을 죽이겠지. 천칭은 이미 네게 기울고 있으니.”

마음에 안 든다.

졌음에도 마치 이겼다는 듯한 그 태도가.

우연이라고 해도 내가 악마들을 쳐 죽여 이놈의 복수를 대행한다는 것도.

그렇다고 이놈을 안 죽일 수도 없고, 악마들을 안 죽일 수도 없었다.

“뭐 하는 거냐, 악마들의 천적이여. 나를 죽여라. 네 눈앞에 악마가 있지 않느냐. 아, 내 이름이 궁금한 거냐? 나는 아파락스. 진실의 악마다. 진실을 보고 진실을 알려주며 진실을 꿰뚫는다. 자, 어서 나를 죽여라. 악마의 천적이여. 아니면 이렇게 불러주기를 원하나? 세게 바깥에서 온 자여.”

“…….”

이놈은 역시 나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는 게 맞나?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이상했다.

유리아와 엘레나의 역량은 결코 내 아래가 아니다. 특히 유리아는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 이상 이런 류의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그녀에겐 절대 정신이 있으니까. 엘레나는 의외로 정신적으로 빠르게 무너지는 경향이 있어서 통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극복해 낼 것이다.

“그녀들은 어디에 있지?”

“너와 같이 외부에서 온 자들 말인가? 그들은 기록이 너무 부족해서 입장과 동시에 다른 공간으로 보냈다. 아마 오래 붙잡아 두지는 못할 테지.”

기록.

진실의 악마는 무작정 내 기억을 훑어보고 진실을 판단하는 능력이 아니다.

‘하긴 기억만으로 진실을 판단하기에는 너무 주관적이니까. 사람의 기억이 왜곡될 수 있고, 사람이 직접 본 그것이 진실이라는 법도 없지.’

아포락스의 권능은 조금 더 고차원적인 능력임을 알았다.

그런데 직감적으로 이놈이 뭔가를 모르고 있었다.

내가 외부에서 왔다? 맞다. 근데 정확히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면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않고 잘난 척했겠지.

여기까지 오면서 봤던 걸 떠올렸다.

전부 [아카데미 구원자] 세계에 있었던 일들이다. 그 외의 다른 세계에 있었던 일은 나타나지 않았다. 1회차의 장면도 마찬가지다. 유리아와 엘레나는 기록이 부족해서 다른 공간으로 갔다?

답이 나왔다.

“진실의 악마라더니. 그 이름값을 조금도 못 하는군.”

“…허? 쓸데없는 도발이면 그만두어라. 나는 네가 훨씬 많은 진실을 알고 있으니.”

“그럼 신에 대해 알고 있나?”

“알고말고. 그들은 이미 이 세계에서 손을 뗐다. 조금 더 자신에게 걸맞는 세상으로 이동했지. 이 세계에 남은 건 그들의 흔적에 불과하다. 이 세계에 남아 있는 신들은 있으나 모두 정상인 상태는 아니지.”

“아홉 개의 눈을 가진 신은?”

“마신과 동격인 바깥의 신을 말하는 거냐? 그들은 기본적으로 이 세상에 관심 없다. 마신을 제외하고 말이다.”

“역시 진실의 악마다. 많은 것을 알고 있군. 그러니 이 세계의 진실도 알겠지.”

“이 세계의 진실? 뭘 말하는 거냐? 이 세계가 신의 자비로 만들어졌다는 것? 이 세계가 일곱 번 멸망의 위기를 극복했다는 것? 잘난 듯이 말했으니 날 너무 실망 시키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이 세계는 창작물이다.”

“통속의 뇌 세계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신의 자비로 만들어졌기에 창작물이다? 그딴 말장난 같은 말로 나를….”

진실의 악마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진실의 악마의 권능 중 하나는 거짓과 진실을 간파하는 것. 지금 내가 내뱉은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차분하던 오파락스의 몸이 휘청였다. 인간을 닮은 눈동자에서 혼란이 느껴진다.

“이 세계는 창작물 속이다? 신이 만든 창작물?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냐?”

“인간이 만들었지. 정확하게는 회사라 할 수 있겠군. 원작은 게임이니까 시나리오 라이터가 있고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래머, 자본가 등등… 모두가 힘을 합쳐 만든 재미를 위한 세상이지.”

“…….”

덜컹. 철컹.

아포락스가 몸을 움직인다. 허나 검과 창이 그의 몸을 꿰뚫고 있기에 불가능했다.

“…이 세계가 네가 말하는 게임이라면. 넌 어떻게 게임 속으로 들어온 거지?”

“내 능력이 창작물 속으로 들어가는 거니까. 소설, 영화, 드라마, 만화, 게임. 뭐든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지. 내가 들고 있는 이 칼, 화련비도는 원래 현실의 것이었다. ‘신의 아틀란티스’라는 다른 창작물 속 신에게 부탁해 강화해 지금 이렇게 됐지.”

“말도 안 된다. 그런 능력이 있을 리가… 없다!”

진실의 악마가 진실을 부정하려는 건가? 웃기는 꼴이었다. 나는 그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진실을 하나 더 가르쳐줄까? 나는 2회차다. 1회차 때 SSS급으로 불리며 이 세상에서 놀았지. 마지막에 메킨 놈이 뒤통수만 치지 않았어도 이 세상은 내 것이 됐을 거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이해되는군. 네 말대로라면 분명…. 하지만. 하지만…!”

“진실의 악마여. 네가 알고 있는 것들은 모두 거짓이다. 어때? 마지막에 알게 된 세계의 진실은 아름답고 만족스럽나?”

“씨발!!!”

진실의 악마로부터 마력이 파동이 흘러나와 사방을 휩쓸었다. 나는 칼을 앞으로 내밀며 마력에 저항했다.

“그 같잖은 개소리가 진실이란 걸 알겠다! 네 기록을 보면 그 말이 진실이란 걸 알 수 있으니까! 그런데 왜 그걸 지금 입 밖에 낸 거냐? 나를 놀리기 위해? 내 정신을 흔들기 위해? 그딴 이유로 이 세계를 격하시킨 거냐!! 네가 그 진실을 입밖으로 내지만 않았어도… 그 진실은 존재하지 않았을 터다! 너는 이 세계를 거짓으로 규정했다!”

“거짓? 나는 그런 말을 한마디도 안 했다. 이 세계는 진짜다. 창작물 속 세계라고 해도 진짜다. 다른 평범한 놈들이 NPC처럼 느껴지긴 해도 몇몇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내 여자다.”

“……그렇군. 너로 인해 이 세계는 허구가 아닌 진짜가 되는 건가. 너는 신인가?”

“아닌데. 내가 신이면 이러고 있겠냐고. 진즉에 거슬리는 것들부터 다 조졌지. 뭐, 진짜로 답이 없을 때는 절대 황권이라도 사용했겠지만…. 그걸 쓰면 너무 허무할 것 같거든.”

“…….”

진실의 악마는 입을 다물고 두 눈을 감았다.

놈이 절망했다. 내가 원하는 그것이었다. 나는 낄낄 웃으며 진실의 악마의 목을 벴다.

『성공적으로 악마를 사냥했습니다. 악마 사냥꾼(S)의 효과가 강화됩니다.』

『악마 사냥꾼(S)의 랭크가 SS로 상승합니다.』

『악마 사냥꾼(SS)이 고대 악마에 대한 정보를 얻습니다.』

『악마 사냥꾼(SS)이 죽인 악마의 권능 일부를 흡수합니다.』

『진실의 권능

랭크: S+

진실을 간파한다.

진실을 알아낸다.』

악마 사냥꾼의 랭크가 상승했고 권능도 얻었다.

진실의 권능은 일종의 거짓말 탐지기로 보면 될 것이다.

우우웅.

주변 공간이 일그러진다. 아포락스의 시체가 사라지고 엘레나와 유리아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갇혀 있는 건 썩 좋은 기분이 아니군.”

“주인님이 해결하시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나타난 건 그녀들뿐만이 아니었다.

귀락곡에서 온 3명도 나타나 제각각 바닥에 쓰러지거나 주저앉아 있었다. 진실의 악마에게 먹혀 죽을 거라고 생각했던 놈들은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했다. 저들이 죽기 전에 진실의 악마가 먼저 죽어버린 것이다.

“유리아. 제압해.”

“네. 주인님.”

촤르르르륵.

그림자 사슬이 나타나 그들을 구속했다. 구속당한 놈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디서 꼬리 잡힌 건지 모르겠군.”

엘레나가 중얼거렸다. 우리는 공간 이동 주문서를 이용해 이동했다. 그게 편하니까. 그리고 혹시 모를 미행을 떨쳐낼 수 있으니까.

“당장은 죽어가고 있더라도 평범한 인간들은 아니다. 이런 인간들이 우연히 찾아왔을 리는 없을 테지. 정신부터 주물러 볼까.”

엘레나가 지팡이를 들었다. 대상의 정신을 주물러 정보를 얻어내는 건 그녀의 특기였다.

나는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다.

“내가 이번에 새로운 힘을 얻었거든. 실험하게 해주라.”

진실의 권능을 쓰기 위해서는 상대방들을 깨워야 했다. 나는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뺨에 손바닥을 날렸다.

짝! 짜악! 짝!

찰진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나는 그들이 깨어날 때까지 연달아 손바닥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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