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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062화 (1,842/2,000)

< 2062화 > 2062. 아카데미의 구원자

가장 먼저 홍일점인 여자가 깨어났다. 눈물이 흘러 얼굴이 엉망이 된 여자였다. 미모는 평범보다 약간 나은 정도다.

여자는 비몽사몽한 눈으로 주위를 훑어보고는 바로 표정을 굳혔다.

“…너희는 누구지?”

어설픈 한국어로 질문했다. 내가 한국인이란 걸 알아차려서라기보다는 여긴 한국이었다.

“질문은 내가 한다.”

친절하게 중국어로 말해줬다. 찰나의 순간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1초도 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여자의 눈을 집중해서 보고 있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도로.

“이곳에 온 목적은 뭐지?”

“…….”

“대답 안 해?”

“…….”

그림자 사슬에 묶여 있는 여자의 어깨를 잡았다.

파지직. 뇌전이 여자의 몸 안을 질주했다. 여자가 이를 악물었다. 전기에 지져지는 고통은 참기 힘들 텐데 나름 정신력을 갖춘 여자였다. 그게 아니면 고문을 받는 훈련을 했다거나.

‘이거 그냥 엘레나에게 부탁해서 정신을 헤집는 쪽이 더 편하겠네.’

하지만 역시 거짓말 탐지기를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시간은 많아. 입을 열 때까지 고문하면 되겠지.’

진실의 권능 활용법을 생각할 때였다. 마나가 대량으로 빠져나가더니 알림창이 떳다.

『진실의 권능으로 대상의 이름을 알아냈습니다.』

『대상의 이름은 펭 리아오입니다.』

『카르마: 선(善) 3을 사용해 펭 리아오의 진실된 인생을 볼 수 있습니다.』

카르마 선을 사용한다? 그것도 3개나?

카르마 선을 올리기 위해 고생했던 기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카르마 선을 사용하는 건 예상 밖의 일이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정확히 어떤 능력인지 알 필요가 있어.’

지금 한 번 시험 삼아 써보는 게 나았다.

‘근데 펭 리아오가 이름인가?’

이름을 알아내는 건 카르마가 필요 없었다. 대신 대량의 마나가 소모됐다. 대략 3할의 마나가 사라진 것이다. 마나야 시간이 다시 채울 수 있다지만 단번에 3할이 빠지는 건 부담스럽다. 전투 상황에서는 치명적이다.

‘그러니 능력에 관해선 미리 알아둬야지. 카르마를 사용한다.’

『카르마: 선(善)을 3 사용합니다.』

펭 리아오의 인생이 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직접적으로 펭 리아오의 인생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이건 TV 영상으로 그녀의 인생을 보는 것에 가깝다. 35년의 인생을 1초도 되지 않아 훑어봤다. 간접 경험이라 하기에도 뭣했다. 그냥 아무 의미 없이 펭 리아오의 인생을 본 것에 가깝다.

“제 아비에게 죽을 뻔한 년. 제 선생의 등에 칼을 꽂은 년. 제 친구의 머리에 총알을 박은 넣은 년.”

펭 리아오가 경악한다. 구속된 상태에서 다리를 움직였다. 내게서 벗어나려는 것처럼.

“뭐, 뭘 한 거야? 어떻게… 어떻게 나를 알고 있는 거야?!”

“펭 리아오. 내 질문에 대답해라. 너희 귀락곡은 본격적으로 한국을 노리기 시작했나?”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물었다. 확인이 필요하니까.

“…….”

대답이 없다. 손을 들었다. 손가락 사이 사이로 스턴건처럼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펭 리아오는 이를 악물고 시선을 몇 번 돌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곡이 한국에 어떤 계획을 그리고 있는지 나도 몰라. 나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니까.”

『대상의 말은 진실입니다.』

대량의 마나가 빠져나간다. 전체의 2할. 이름을 알아냈을 때보다 소모된 마나는 적었으나,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남발할 수 없다.’

지금 당장은 남발할 수 있었다. 내 옆에는 엘레나와 유리아가 있으니까. 믿음직한 그녀들이 있으니 무리해도 된다. 반대로 그녀들이 없을 때는 무리하기 힘들었다.

“간단한 거짓말을 해봐라. 예를 들면 나를 남자라고 한다거나?”

펭 리아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남자입니다…?”

『대상의 말은 거짓입니다.』

누가 봐도 확실한 거짓말임에도 2할의 마나가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7할의 마나가 사라져 3할만 남았다. 절반 이상의 마나가 짧은 시간에 사라지니 아무리 나라도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고통을 참아냈다. 쪽팔리게 비틀거릴 수는 없으니까.

진실의 권능의 능력은 확인했다. 그중에서 진실 간파는 마나 포션이 있으니 여유가 있을 때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카르마 선을 사용하면 대상의 인생을 전부 알 수 있다. 이것도 때에 따라선 유용한 능력이겠지.’

써야 할 때가 오면 망설이지 않고 써야 할 것이다.

나는 이후에도 펭 리아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알고 있는 질문을 던지고 알고 있는 답변을 받았다. 펭 리아오는 깔끔하게 죽여줬다. 이미 알아낼 것도 없었다. 반면 두 남자는 아니었다. 고작 이런 일에 카르마 선을 소모할 이유가 없었다.

엘레나에게 맡긴다.

안 그래도 이 던전 탓에 정신이 취약해져 있던 그들은 3분도 지나지 않아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쏟아내고는 자살했다.

“귀모라는 존재가 문제다. 정말로 예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도 널 방해할 거다.”

“한정적이라고는 하나 성공적으로 예지를 했습니다. 앞으로 주인님을 더 방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엘레나와 유리아가 귀모를 경계했다.

귀락곡의 사대문주 중 한 명인 귀모. 권력만 따졌을 때는 귀락곡 2인자에 가깝다. 예지 능력은 그만큼 뛰어나고 좋은 능력이니까.

‘근데 원작에서의 귀모의 능력은 이 정도로 뛰어나지 않았어. 그리고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암살당할 텐데?’

그 암살범이 누군지는 나도 모른다. 원작에서 안 나왔으니까. 사람들이 짐작하기로는 같은 사대문주 중 한 명이라는 말이 있다.

‘나로 인해 미래가 바뀌었을 수도 있어.’

뭐가 원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고 친 게 워낙 많았으니까. 따지고 보면 일본 쪽의 일도 저렇게 커질 일이 아니었다.

나는 심사숙고한 끝에 엘레나에게 부탁했다.

“네 능력으로 귀모를 데려올 수 있겠어?”

“한 번 죽는다면 가능하겠지.”

“한 번 죽어주라.”

“하.”

엘레나는 쓰게 웃으며 이쪽을 쳐다본다. 거부의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원하는 듯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네 부탁도 들어주겠다고 말하려는 순간에 유리아가 끼어들었다.

“주인님. 속물적인 엘레나에게 부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귀모를 납치해 오겠습니다.”

“한계 돌파를 쓰는 건 곤란해.”

“한계 돌파를 쓰지 않더라도 자신 있습니다. 준비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사흘의 시간만 주신다면 귀모를 납치해 오겠습니다.”

“내가 도와준다면 시간을 더 줄일 수 있겠지. 이참에 귀락곡에 폭탄을 던져 터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적어도 2개월은 복구에 매달릴 테니까.”

엘레나가 허둥거리며 끼어들었다.

“잠깐만 기다려라. 내가 언제 하지 않는다고 했지? 잠깐 고민 좀 해봤을 뿐이다. 멋대로 사람을 속물적인 여자로 만들지 마라!”

“엘레나는 속물적인 여자가 맞지 않나요? 매사에 모든 일에 이득을 따지시니…. 제가 잘못 판단한 건 같지는 않습니다만.”

“네가 잘못 판단했다. 따져야 할 때 따졌을 뿐이다. 이번에는 유진의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줘야지. 귀모라고 했나? 10분 내로 데려오지.”

엘레나는 자신만만한 걸음으로 던전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잠깐 주위를 둘러봤다. 여긴 일반적인 던전이 아니었다. 던전의 주인이 죽었는데도 던전이 사라지지 않는 게 그 증거였다.

‘고대 악마를 봉하기 위해 만든 공간. 악마의 마력에 장기간 노출되면서 공간이 뒤틀려 버렸지. 원작에서도 여긴 흑마법을 수련하거나 악마를 소환하기 딱 좋은 공간이라고 말하지.’

이곳에 들어있는 변질된 공간을 이용해 군단장급 악마를 소환할 생각이었다. 그 이전에 미끼를 던져서 원하는 군단장에게 신호를 보내야겠지만.

밖으로 나왔다. 엘레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물의 최상급 정령인 테라가 다가와 마나 큐브를 돌려줬다.

“왔어? 이제 저거 안 해도 돼?”

“어. 나중에 필요하면 또 부를 테니 지금은 돌아가라.”

“야호!”

테라가 역소환됐다. 오래된 신전은 다시 호수 아래로 가라앉더니 사라졌다. 나와 유리아는 내일 먹을 점심을 주제로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엘레나를 기다렸다.

엘레나는 15분 만에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허리가 굽은 노파가 들려 있었다. 엘레나가 귀찮다는 듯이 귀모를 바닥에 던졌다.

“귀모다. 예지 능력이 있다기에 조금 긴장했다만… 의외로 별거 없더군. 시시할 정도였다.”

귀모는 바닥에 무릎 꿇은 채로 상체만 일으켜 나를 바라봤다.

“……그래. 운명의 중심이 여기에 있었구나.”

“미래를 예지할 수 있다더니, 자기 앞날을 예지 못 했나?”

“미래를 예지한 그 순간부터 완벽한 미래를 없지….”

“한 번 미래를 예지해 봐라. 흥미로운 에지면 내가 살려줄지도 모르잖아.”

귀모는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올려 밤하늘을 바라봤다. 다시 고개를 내린 귀모가 낄낄 웃는다. 음산한 기운이 퍼져나간다. 그녀의 주위로 귀신이 모여든다.

나는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붉은 뇌광의 일섬이 기어 나오던 귀신들을 베어 죽였다.

“이따위 것으로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있으리라 봤나? 본신의 무력은 정말이지 형편없군.”

“낄낄.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구나. 깜깜하다. 밤하늘보다 깜깜해.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이게 정녕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나를 죽인다고 해서 크게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아주 보잘것 없는 존재이니.”

“죽이든 안 죽이든 변하는 게 없다? 죽이면 적어도 날 귀찮게 하지 않겠지. 그 전에 정보부터 빼내자.”

엘레나에게 눈짓했다. 아까 그랬던 것처럼 귀모의 정신을 농락하고 정보를 꺼내기를 원했다. 엘레나는 피로한 기색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 오기 전에 가볍게 환술을 사용해 봤다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뭐?”

엘레나가 손을 들었다.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빙글빙글 돌렸다.

“저건 이미 맛이 갔다. 원인은 접신이다. 셀 수 없는 귀신들이 저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고 농락했다. 예지 능력은 그 부산물에 가깝다. 저 여자는 영매다. 지금은 완전히 미쳐버려 자기 이름도 모른다.”

“낄낄. 우주가 가호하니 무엇이 두려울까. 선업. 선업만이 모든 것으로 통할 테지. 아, 신이여. 우리에게 자비를 내리소서!”

귀모가 미친년처럼 웃었다. 나는 눈살을 확 찌푸리며 진실의 권능을 사용했다. 아마 앞으로 귀락곡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귀락곡의 최고간부라 할 수 있는 귀모의 정보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카르마: 선(善) 3을 사용해 대상의 진실된 인생을 확인합니다.』

귀모의 인생이 보였다.

귀신을 보는 아이는 어느 질 나쁜 도사에게 납치당해 영매가 되었다. 그 후로도 그녀는 이용당하는 삶을 살았다. 동료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그리고 귀락곡에게.

귀모로 불리며 강력한 권력을 손에 넣었음에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 당시에는 이미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으니까. 강력한 귀신에게 접신 당한 채로 인형처럼 이용당했다.

‘엿같은 삶을 살았군. 하지만 귀모는 귀모. 귀락곡의 비밀과 정보를 얻었다.’

서걱!

귀모를 베어 죽였다.

“귀모의 시체는 미국에 갖다 놓자.”

“미국이라. 이간질인가?”

“원래 중국과 미국은 사이가 안 좋으니까. 통할 수도 있어. 안 통하면 말고.”

끼아아아아아아악!

귀곡성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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