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3화 > 2063. 아카데미의 구원자
끼아아아아아아악!
귀곡성이 울렸다.
귀모의 시체에서 희멀건 뭔가가 튀어나와 사람의 형상을 취한다.
귀모는 내게 죽기까지 접신 상태였다. 정신을 있어도 정신이 있는 게 아니었다. 엘레나의 말대로 이미 정신 상태가 맛이 가버렸으니까. 그 덕분에 예지를 할 수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 예지도 따지고 보면 귀모 자신의 뜻이 아니라 귀신의 뜻이었다.
오랫동안 귀모에 접신해 조종해 왔던 그 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망할 것들이 감히!!
분노에 찬 포효와 함께 귀신이 음기를 터트렸다. 차가운 음기는 주변의 생명력을 무차별적으로 빼앗기 시작했다. 나와 유리아, 엘레나는 음기를 피해 뒤로 물러났다. 닿기만 해도 죽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저 음기에 닿아서 좋을 건 없으니까.
땅바닥을 쳐다본다. 음기에 닿은 잡초가 순식간에 시들더니 바스러졌다.
다시 본 귀신은 꽤 그로테스크한 외형으로 변해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인간 형체로 보였는데 몸이 커지더니 수십 개의 눈알이 돋아나고 뭔지 모를 보라색 액체를 뚝뚝 흘린다. 창백하고 마른 팔이 30개다. 다리로 보였던 것도 팔이었다. 머리통이 그 사이에 있었다.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건가? 저건 이미 인간의 외형을 벗어나 있어서 판단하기 힘들었다.
‘이미 귀신의 범주를 벗어난 놈이잖아.’
악마 사냥꾼은 반응이 없었다. 악마나 마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는 건 악마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역겨운 외모의 괴물. 그런데도 악마 사냥꾼은 반응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좀 짜증 났다. 은근슬쩍 도와주면 안 되나?
‘뭐, 조건이 한정되었기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거지만.’
촤르르르르륵.
먼저 유리아의 그림자 사슬이 귀신을 구속하기 위해 움직였다. 바닥과 허공에서 나타난 수십 개의 사슬들.
귀신은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수십 개의 팔로 사슬을 잡아 떨쳐낸다.
나는 화련비도의 칼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파지지직. 붉은 뇌전이 일어나 칼날을 타고 흐른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붉은 번개의 참격을 날리는 것에 맞춰 엘레나의 지팡이가 바닥을 찧었다. 푸른 나비 몇 마리가 귀신의 주위를 돌았다.
붉은 참격이 귀신을 향해 날아가며 분열했다. 하나가 두 개로, 두 개가 네 개로. 엘레나의 능력이었다. 분열된 참격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귀신에게 쇄도했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나는 계속해서 칼을 휘둘러 참격을 날렸다. 참격이 날아갈 때마다 분열해서 재밌었다. 3번 정도 휘두르니 눈앞에는 참격 수십 개가 귀신을 베어내고 있었다.
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귀신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나타난 것에 비해 허무한 최후였다.
『카르마: 선(善)이 1 상승합니다.』
‘카르마가 하나 밖에 안 올라? 겉보기와 달리 별거 없는 놈이었군.’
귀신이 사라지고 음산한 기운이 사라진다.
“정리하고 가자.”
“귀락곡은 어떻게 할 거지?”
나는 귀모를 통해 알아낸 귀락곡의 정보를 떠올리며 말했다.
“귀락곡은 규모가 큰 만큼 중국 전역에 흩어져 있어. 중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도 갖고 있지.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순 없어. 귀모를 죽인 것에 만족하자.”
엘레나가 귀모를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납치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귀락곡이 뭉쳐서 행동했었다면 엘레나도 상당히 고생했었겠지.
우리는 귀모의 시체를 캘리포니아 어딘가에 갖다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그녀들에게 공유했다.
나 혼자서 계획을 짜는 것보다 그녀들의 도움을 받아서 계획을 짜는 게 더 효과적일 테니까.
“저희가 역소환되기 전에 귀락곡의 세력을 약화시켜야 합니다. 적어도 주인님을 방해할 수 없도록.”
“뿌리까지 뽑아내는 게 최선이다만… 어마어마한 인구수답게 규모가 너무 크다. 귀락곡주와 다른 사대문주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것도 있군. 일단 놈들의 세력에 적당히 찾아가 환술로 약간의 암시를 남겨 놓을까. 잘하면 내전을 유도할 수 있겠군.”
“방송국과 미디어 사이트를 이용해 귀락곡의 악행을 알리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중국에도 히어로 협회가 있으니까요. 귀락곡의 권력 구조는 피라미드 식이고 방대할 정도로 크죠. 사령탑으로 보이는 자들을 몇몇 암살하면 귀락곡에 혼란이 생길 겁니다.”
나는 그녀들의 의견을 들었다. 모두 실현 가능한 것들이다.
‘핵폭탄 하나면 궤멸적인 피해를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핵으로 쓸어버리고 싶다.’
내 의견을 그녀들에게 말했다.
엘레나는 미친놈 보듯 나를 쳐다봤다.
“중국에 핵폭탄을 사용하겠다고? 이 나라의 속담으로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만, 주인님께서는 아카데미 생활을 원하시지 않나요? 평화를 위해서라도 핵폭탄은 자제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더 많으니까요.”
하긴. 아카데미에는 아직 못 따먹은 여자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이 계획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핵폭탄이 없다는 것이다.
***
계획은 정해지고 실행되었다.
엘레나가 환술을 이용해 귀락곡 내의 반역과 내전을 유도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 정부와 히어로 협회의 공적이 되었다. 목에 걸린 현상금이 늘어나 무려 3,000만 달러였다. 엘레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원래 세계로 돌아갈 테니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깽판 치는 것이다.
유리아는 귀락곡의 중간 관리자를 암살했다. 중간 관리자 1명 죽는 건 아무 의미 없지만, 그게 100명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마비되는 것이다.
나는 귀락곡의 전산을 해킹해 자료를 삭제했다. 현대 사회에서 컴퓨터 전산을 이용하지 않는 조직은 없었다. 귀락곡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조직원을 효과적으로 다루려면 전산이 필요하다. 조직의 전산망이 망가지고 자료가 소멸했다? 재앙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모두 공간 이동 주문서랑 정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특히 공간 이동 주문서의 역할이 컸다. 1회차 때도 느낀 거지만 이 세계의 정부나 히어로들은 공간 이동 주문서에 대응하지 못했다.
귀락곡에 대한 공격은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순간부터 멈췄다.
꼬리가 너무 길면 잡힌다. 그리고 쥐도 궁지에 몰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지금 당장은 귀락곡이 수습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움젹여서 날 방해하는 일은 없겠지.’
***
엘레나와 유리아가 역소환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미뤄뒀던 일을 오늘 밤에 진행하기로 했다.
“유, 유진아. 이걸 할 거야? 정말로?”
성하리가 작은 가방을 들고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근엄하고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 해. 다른 애들은 해주기로 했는데 엄마만 안 할 거야? 정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성하리는 내 눈치를 봤다. 여기서 하기 싫다고 말한다? 나는 성하리에게 크게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 기색을 읽은 건지 성하리가 한숨을 내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유리아가 걸어 나왔다. 아래로 늘어진 강아지 귀 머리띠를 착용하고 하얀색의 마이크로 비키니를 입었다. 면적이 작긴 해도 중요 부위는 모두 가린 비키니였다. 엉덩이 부위에는 개 꼬리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애널 플러그가 항문에 박혀 있겠지. 여기서 포인트는 목에 착용한 목줄이었다.
“어떠 신가요?”
“브라보!”
박수를 짝짝 치며 감탄했다. 유리아가 살짝씩 몸을 움직여 포즈를 취했다. 음란했다.
곧이어 다음 선수가 입장했다.
엘레나였다. 고양이 머리띠와 검은색 마이크로 비키니, 검은색 고양이 꼬리를 착용한 그녀는 뺨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음에도 애써 당당한 척 걸었다. 마찬가지로 그 목에는 목줄이 있었다. 역시 군살 하나 보이지 않는 흠 잡을 곳 없는 몸매다.
“이번만이다. 딱 이번만 네 요구에 응해주는 것뿐이다. 내 세계에선 네가 아무리 부탁해도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거다.”
“알아. 알고 있으니까 고양이 포즈라도 취해 봐.”
“정말 알고 있는 거냐….”
엘레나가 망설였다. 그 망설임을 줄여주기 위해 유리아에게 손짓했다.
유리아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에 엎드렸다.
“멍멍.”
개처럼 짖고, 개처럼 땅을 기면서 내게 다가왔다. 흥분한 듯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유리아는 내 다리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더니, 상체를 위로 올라온다. 마치 개가 소파 위로 올라오는 것처럼.
왼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가 입밖으로 혀를 내밀었다.
“헥헥….”
미끈한 선홍색의 혀를 타고 투명한 타액 한 방울이 아래로 떨어졌다. 유리아가 헐떡일 때마다 마이크로 비키니에 감싸인 풍만한 가슴도 출렁거렸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유리아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그럴수록 유리아의 눈동자도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큭. 널 위해 뭐든 하는 미친년인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개 취급을 받고도 좋아할 줄이야.”
“헥헥.”
유리아는 엘레나의 말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내게 달라붙어 애교를 피웠다.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몸을 쓰다듬어 주면서 엘레나를 바라봤다.
“이런 건 다 처음이 어려운 법이야. 눈 딱 감고 한 번 하고 나면 별거 아니었다고 생각할걸?”
“내가 귀족이란 걸 잊은 거냐? 내 체면은?”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아예 생각이 없었다면 머리띠를 하지도 않았고, 엉덩이에 꼬리를 꽂지 않았겠지. 슬쩍 본 그녀의 젖가슴 중심은 비키니임에도 불구하고 툭 튀어나와 있었다. 이 상황에 흥분하고 있다는 것.
“이 세계엔 발데르트 가문이 없어. 지금의 넌 그냥 엘레나야. 내 여자인 엘레나. 알았으면 고양이처럼 울어봐. 마음에 들면 귀여워해 줄게.”
“…….”
엘레나는 쓰다듬 받고 있는 유리아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바닥에 무릎 꿇었다. 그리고는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붉은 얼굴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냐, 냥!”
피식 웃으며 엘레나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고양이는 파들파들 떨면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