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1화 > 2071. 몰락한 제국
[유희를 종료합니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늘 그래왔듯이 포인트를 확인했다.
[성유진
레벨: 92
근력: 130 체력: 130 민첩: 130 지능: 120 정력: 130 마나: 130]
[사용 가능 포인트: 17,028]
포인트를 본 나는 애매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았으니까.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 초기화권을 사서 사용했으니 생각보다 많다고 해야 하나.’
초기화권은 2,000 포인트. [아카데미의 구원자]에서 2번을 구매했고, 오리지널까지 구매했으니 총 5,000 포인트를 전투 한 번에 사용한 것이다.
‘전투 한 번에 5,000 포인트라니. 가성비가 안 좋잖아.’
5,000 포인트면 지능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5개나 올릴 수 있다. 다른 능력치도 3개나 올릴 수 있다. 재사용 대기 시간 초기화용으로 쓰기엔 상당히 아까웠다.
그뿐만이 아니라 포인트는 다른 곳에 사용할 곳이 많았다.
‘다시 생각해도 전투 한 번에 5,000 포인트는 너무 아까워.’
5,000 포인트.
엘릭서가 15,000 포인트고, 절대 최면 스티커가 3,000 포인트다. 초기화권 2번을 사용할 바에는 절대 최면 스티커를 구매해서 사용하는 편이 더 이득이었을지도 모른다. 최면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1,000 포인트짜리 젊음의 샘물도 있지.’
[젊음의 샘물
마시면 5년 젊어진다.
가격: 1,000 포인트
※주의
8살 이하의 아이에게는 효과가 없다.]
사용하기엔 따라선 어마어마한 무기가 될 수 있는 물건이다. 물론 당장 내게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리고 젊음과 관련된 물건은 하나 더 있었다.
[젊음의 약
젊음의 약을 마시면 원하는 나이대의 몸으로 돌아갑니다. 단 정신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가격: 10,000 포인트
※주의
일회용입니다. 신중하게 사용하십시오.
신체 능력도 그 시절로 돌아갑니다. 단, 유희 생활 어플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젊음의 샘물과 젊음의 약.
누구나가 탐낼 것 같은 것들. 솔직히 두 개의 차이는 잘 모르겠다. 사용해 본 적이 없으니까.
‘젊음의 샘물은 정신까지 5년 전으로 돌아가는 건가? 그건 좀 에반데.’
사용해 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다. 젊음의 샘물은 주의사항도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직접 실험해 보란 듯이.
‘나야 절대정신이 괜찮을 것 같긴 해. 아니, 그 전에 5년 전이면 유희 생활 어플을 각성하기 전이잖아.’
한하린에게 젊음의 샘물을 먹이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고등학생 한하린을 따먹고 싶었지만… 알 수 없는 걸 먹일 수는 없었다.
‘나중에 적당히 마음에 안 드는 놈을 골라서 실험해 봐야겠어.’
이참에 랜덤 뽑기 상점을 한 차례 둘러봤다. 랜덤 뽑기에 한 번 이상 나오거나, 퀘스트 보상 등을 통해 얻은 것들을 이 상점을 통해 다시 구매할 수 있었다. 판매하는 물건 중 90% 이상이 가치도 낮고 별 도움도 안 되는 잡품들이었다.
그래도 쓸만한 건 있었다. 정보 말살, 기억 조작 성냥, 절대 최면 스티커, 0.3 스케일 스티커 등등.
‘막상 뭔가를 구매하려니 아까워서 못 쓰겠네.’
포인트는 무한히 얻을 수 있다. 허나 그러기 위해선 유희 세계를 무한히 돌아다녀야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포인트를 얻는 것에는 나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함부로 쓸 수는 없다.
나는 고민하다가 한 스킬을 선택했다.
[10,000포인트를 사용해 유성검 Lv.6의 레벨을 상승시키겠습니까?]
원래는 도약 스킬을 올릴 생각이었는데, 도약 스킬을 올려봤자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유성검 Lv. 7
마나와 활력을 소모해 유성검을 만들어 지상으로 낙하시킵니다.
소모된 마나와 활력에 따라 유성검의 내구성, 크기, 개수가 정해집니다.
?속성부여
마나 속성에 따라 유성검에 속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궤도제어
유성검의 방향을 일부 제어할 수 있습니다.
?유성천검
유성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꼴리는 대로 유성검의 레벨을 올렸다. 남은 건 7천 포인트. 모을까 하다가 능력치에 투자했다.
[성유진
레벨: 92
근력: 130 체력: 130 민첩: 130 지능: 125 정력: 130 마나: 130]
[사용 가능 포인트: 2,028]
2,000 포인트는 혹시 모르니 남겨두기로 했다.
‘유성검이나 써보러 갈까.’
***
개인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최근에 던전에서 오른팔을 잃고 은퇴를 결심한 A급 헌터에게 구매한 훈련 시설이다. 가격은 315억. 시설에 있는 모든 것들은 최신식이다. 능력을 난폭하게 사용해도 벽이나 천장이 무너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훈련장 중심에 있는 허수아비를 노려봤다. A급 전투 훈련용 허수아비. 가격은 대략 20억. 내구성이 뛰어나서 A급 헌터의 공격을 제법 버틸 수 있다. 좋은 물건이긴 한데 가격은 창렬이다. 20억은 A급 헌터라도 살짝 부담되는 가격.
‘원래라면 A급 헌터들도 던전에서 훈련할 테지.’
훈련은 낮은 등급의 던전에서 훈련하는 게 기본이다. 허나 기껏 최신식 훈련 시설을 구매했는데 사용은 해봐야지 않겠나.
‘던전에 가기도 귀찮고. 던전에서는 남들 시선까지 신경 써야 하잖아. 괜한 소문이라도 퍼지면 나만 손해고.’
폐쇄형 던전에 가면 안 되냐고? 당연히 된다. 그러나 당장 입장할 수 있는 폐쇄형 던전을 찾는 것도 일이다.
나는 훈련용 허수아비를 바라보며 유성검을 사용했다.
6m가 넘는 천장에서 유성검이 생성되어 허수아비에게 낙하한다.
쾅!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발생했다. 충격파는 C급 헌터도 버틸 수준으로 약했다. 유성검은 허수아비와 부딪치는 순간 폭발했으나, 허수아비는 멀쩡하게 서 있었다.
‘노말로는 흠집 하나 못 내네?’
유성검의 수를 10개로 늘렸다. 유성검 10개가 동시에 떨어진다. 충격파는 당연히 커졌으나 허수아비는 멀쩡했다.
‘이 정도로는 A급 헌터에게 큰 피해를 못 주겠군.’
집중력을 높인다. 유성검의 크기와 위력을 높인다. 마나 소모가 당연히 많아졌다.
콰아아아아앙!
아까보다 더 커다란 충격파가 일어났다.
허수아비는 멀쩡했다. 다만 몸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한계에 달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허수아비의 마석을 갈아 끼우고 다시 훈련을 이어갔다.
마나 회복 물약을 마시면서 몇 시간 동안 훈련을 이어간 결과 유성검의 특징을 알 수 있었다.
‘정리해볼가. 우선 기존에 알고 있던 건 유성검은 높은 곳에서 떨어질수록 위력이 커져. 실외. 그것도 하늘 높은 곳에서 낙하해야 최대한의 위력이 나와. 문제는 낙하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유성처럼 빠르게 떨어지기는 한데… A급 헌터쯤 되면 보고 피할 수 있어.’
대놓고 전투에서 사용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았다. 다른 뾰족한 방법도 안 떠오른다.
‘경험을 쌓아 숙련도를 높이는 게 답일 수도 있어. 이제부터라도 자주 사용해 봐야지.’
유성검의 새로운 특성인 유성천검은 유성검을 손에 쥐고 휘두를 수 있게 되는 거였다. 유성검의 강도는 일반적인 양산용 검 수준이다. 직접 유성검을 휘두를 때는 속성부여나 궤도제어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형태와 크기에도 제한이 있어. 일단 검의 형태에서 벗어날 수 없고, 크기도 단검 이하의 크기로 만들 수 없어. 반대로 커지는 건 제한이 없는 느낌이야. 마나만 충분하다면… 건물 크기의 유성검을 떨어뜨릴 수 있겠지.’
본래 유성검은 낙하하여 폭발하며 충격파를 준다. 하지만 유성천검의 능력 덕분인지 폭발을 제어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런 것도 가능하지.’
딱.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유성검 5개가 나타나 허수아비에게 쇄도했다. 본래라면 폭발해야 했을 유성검은 허수아비의 몸을 찌르고 있었다.
“펑.”
허수아비에 꽂힌 5개의 유성검이 일제히 폭발한다. 허나 그 폭발력은 생각보다 약했다. 그리고 허수아비는 멀쩡했다.
‘검기를 두르면 꽤 위력이 강해지겠지. 문제는 손에 쥐지도 않은 검에 검기나 검강을 씌울 방법이 없다는 거지.’
검기를 날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차라리 순수 검강으로 검의 형태를 만드는 쪽이 더 쉬울 것이다.
‘블루투스 검기? 그게 가능하긴 해? 그거 블루투스 샤워기 수준 아니야?’
그래도 답이 없는 건 아니다. 유성검의 레벨이 높아지면 블루투스 검기도 가능해질 수 있다. 어쩌면.
나는 저녁때까지 유성검 훈련에 집중했다.
솔직히 말해서 유성검보다 뇌천류나 검술에 집중하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성검에는 나름의 간지가 있었다.
‘간지는 못 참지.’
이후에 훈련이 끝난 뒤에는 근처에 있는 한하린의 개인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한하린이 던전에 가지 않는 날이니 훈련장에 있을 것이다.
예측했던 대로 한하린은 훈련장에서 맹렬히 훈련 중이었다. 그녀의 주위로 작은 구슬과 물방울들이 허공에 떠 있다. 완벽한 무중력 상태. 저기 떠 있는 물방울은 한하린의 땀이니라.
한하린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검은색의 구체가 나타났다. 허공에 떠 있는 것들이 단숨에 구체로 빨려 들어가 압축된다. 저건 작은 블랙홀이다.
나는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지금 한하린의 능력 활용도는 B급 수준을 넘겼다. A급. 그것도 평균 이상이다.
그녀에게 재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벌써 이렇게 성장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번에 봤을 땐 승리를 100% 장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언제 왔어?”
팔짱을 낀 한하린이 물었다. 그녀의 앞에 압축되어 찌그러진 구슬이 바닥에 떨어졌다.
“방금.”
“어떻게 들어온 거야?”
“비밀번호가 집 비밀번호랑 똑같던데.”
“…….”
한하린이 미간이 좁혔다. 나는 안 그런 척 그녀의 몸을 위아래로 살펴봤다. 볼품없는 검은색 트레이닝복이었다. 그래도 커다란 가슴과 엉덩이 굴곡은 가려지지 않았지만.
“남의 훈련을 훔쳐보는 건 비매너야. 너도 그 정도는 알고 있잖아.”
“우리 사이에 뭘. 그보다 누나. 오랜만에 대련 한 번 어때?”
한하린은 잠깐 날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마침 내가 어느 정도 강해졌는지 궁금한 참이었으니까.”
“우선 가볍게.”
파지지직!
왼손에 푸른 뇌전을 일으키고 한하린을 향해 던졌다. 한하린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뇌전은 날아가다 지상으로 떨어졌다. 한하린의 중력조작이다.
‘유성검.’
허공에 10개의 유성검이 동시에 나타나 한하린을 향해 날아간다. 그녀에게 닿는 유성검은 단 한 자루도 없었다. 모두 그녀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가 바닥에 처박힌다.
내 실수는 아니다. 이 거리에서 가만히 있는 한하린을 못 맞출 리 없다.
‘한하린의 양옆으로 유성검이 끌려갔다. 중력인가.’
쾅!
유성검이 폭발한다. 중력 배리어는 폭발까지 아무렇지 않게 막아냈다. 식은땀을 흘렸다.
‘이거 원거리로는 답이 없어.’
유성검과 뇌전은 중력에 의해 닿지 못한다. 아무리 날려도 지상으로 처박힐 뿐이다.
빠르게 판단을 끝낸 나는 유성검 한 자루를 오른손에 쥐고 한하린을 향해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