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095 - 2095. 광명승천도
당분간 낙월산에 머무르기로 했다. 위유에게 배울 것도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검술에 관해서 그녀만큼 완벽한 존재는 없었다.
함께 지내다 보니 그녀를 관찰하게 된다.
위유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새벽에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가 낙월산 높은 곳에 있는 바위에 앉아 명상을 2시간 정도 한다.
운기조식이 아니다. 그녀는 운기조식을 하지 않는다. 평소에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것만으로 운기가 되는 것이다. 위유의 말로는 조화의 경지에 이르면 자연스레 이루게 된다고 한다.
이후에는 집으로 돌아와서 아침밥을 챙겨 먹는다. 삼시세끼 라면만 챙겨 먹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쌀밥과 나물로 간단히 챙겨 먹었다.
점심이 될 때까지 위여신검(慰餘神劍)을 들고 검술을 수련한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그녀는 딱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검술을 잊지 않기 위해 반복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애초에 그녀 정도 되는 절대 고수가 검을 몇 번 휘두른다고 수련이 될 리 없었다.
점심은 현대식이었다. 동영상을 보고 현대 요리를 시도해 보는 것.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내가 만든 칼국수는 어떻지?”
“별롭니다.”
“그래도 젓가락을 드는 걸 보니 아예 못 먹을 정도는 아닌가 보구나.”
위유는 까다로운 내 입맛을 알고 있었다. 요리 과정 자체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문제는 요리 재료의 신선도인 것 같았다.
“그간 요리를 많이 하지 않으셨습니까? 요리 실력은 잘 늘지 않으시나 보네요.”
“너희를 만나기 전까지 해온 요리는 단조로웠다. 나물을 캐고 산에서 사냥한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전부였지. 이런 요리를 직접 해 먹는 건 내 기준으로는 최근이다. 그리고 미령의 말에 따르면 요리에 영 재능이 없다더구나. 아무래도 나는 무심코 절약을 해버리고 마는 것 같다.”
“요리에 절약이요?”
“재료. 그리고 시간 등을 나도 모르게 절약해 버리는 거다. 몇백 년 동안 살아오면서 몸에 익은 습관이지. 산에서 낭비하는 건 최대한 피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것 치곤 어제저녁에만 맥주를 5캔이나 까먹었잖습니까.”
“네가 있으니 먹은 거다만? 원래는 하루에 1캔만 마신다.”
어제 일을 떠올린다. 위유는 안주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시청하며 맥주 5캔을 마셨다. 약간 취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그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위유의 오후는 자유 시간이었다. 그녀는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미령의 소설 혹은 만화를 독서했다. 드라마의 영향인지 한국어는 이미 현지인 수준이었다.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본 나는 헛웃음을 흘렀다. ‘마왕으로 전생했으나 세계 멸망에는 흥미 없습니다!’ 라는 라이트 노벨을 읽고 있었다.
“라이트 노벨을 좋아하십니까?”
“딱히 내 취향은 아니구나.”
“근데 왜 잃고 계십니까?”
“읽을 게 없다.”
자동 진행을 하고 30년이 지났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했다. 30년. 이 집에 있는 콘텐츠들을 전부 소비하고도 남을 시간이 아닌가. 위유가 어제 본 드라마도 재탕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현실에서 책을 가져와 창고에 대충 쌓아뒀다. 책의 양만 따지면 거의 작은 도서관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한동안 책이 없어서 심심하지 않겠지.’
위유는 해가 지기 시작하면 몸을 씻고 저녁을 먹었다. 그 후에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잠자리에 든다. 대충 오후 10시쯤에 잠드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아침 일찍 일어나 일과를 시작한다.
특별할 것 없는 단조로운 일상이다.
‘그나마 내가 현대 물건들을 가져와서 덜 단조로운 거다.’
나를 만나기 전, 현대 물건이 없었을 때는 단조로움을 넘어 시시한 일상이었을 거다. 위유의 말로는 심심할 때마다 검을 휘둘렀다고 한다. 그게 그녀의 경지에 큰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미령이 폐관 수련에 들어간 지 20년. 위유는 최근 20년 동안 사람과 대화를 한 적이 거의 없다.’
현실의 히키코모리를 떠올렸다. 아니, 차라리 히키코모리가 더 낫다. 히키코모리는 인터넷을 할 수 있지 않나. 위유는 외부와 차단되어 있었다.
‘내가 그녀와 만나기 전까지도. 아마 수백 년을 혼자 살아왔겠지.’
그게 절대적인 힘을 가진 절대자의 삶?
감옥의 죄수와 비교해도 딱히 다를 것 없는 삶인 것 같은데.
아마 나라면 재미없는 삶을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갔을 것이다. 여자도 없이 혼자서 수백년을 어떻게 살아.
“스승님은 지금의 삶이 마음에 드십니까?”
“응? 아. 내 걱정을 하는 거냐? 쓸데 없는 걱정이다. 나는 이게 편하다.”
“…그렇습니까.”
이후에도 위유와 함께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산에서 남녀 단 둘이 생활하는 상황. 무인도에 남녀가 단 둘이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무 일 없었다.
애초에 나를 남자로 보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나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제자로서 안마를 해준다는 핑계로 성감 고조를 사용해 접촉했다. 반응이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완벽히 제어했다.
수백 년을 수양해 온 절대자답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부처 수준의 목석이라 해야 할까.
‘안 되겠다. 럭키 스케베 부적을 쓰자.’
우연히 야한 일이 일어나면 위유에게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럭키 스케베 부적의 효과는 확실했으나 한정적이었다. 위유가 옷을 갈아입을 때 마주친다거나, 위유가 씻고 있을 때 마주친다거나, 위유가 화장실에 갔을 때 마주친다거나. 위유는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내게 나신을 내보여도 그러려니 한다. 나를 남자로 보기 전에 제자로 보는 것 같았다.
럭키 스케베는 대부분 내 실수로 특정한 상황에 마주치는 경우였다. 뭐,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위유가 다른 실수를 할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예를 들면 길을 걷다가 넘어진다? 그녀 정도의 실력자가 넘어질 일이 없었다. 비가 와서 흠뻑 젖는다? 검을 휘둘러 비구름을 날려버릴 수 있는 게 그녀다.
쏴아아아.
나는 지금 화장실에서 그녀와 마주하고 있었다. 10분 전에 맥주를 3캔이나 마신 그녀는 양변기에 앉아 기세 좋게 맥주였던 액체를 내보냈다. 그녀의 사타구니 쪽을 쳐다본다. 털이 무성해서 보지가 안 보였다. 들리는 건 폭포수와 비슷한 소리뿐. 그 소리도 점점 기세를 잃는다.
‘이거 예전에도 이런 적 있지 않나?’
위유는 화장실로 잘못 들어온 나를 멀뚱히 쳐다봤다. 당황하지 않고 화를 내지도 않는다.
“…아. 문을 잠그는 걸 또 잊었구나. 미안하게 됐다.”
“아뇨.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과는 제가 해야겠죠.”
“그래. 이만 나가보거라.”
“아, 예. 알겠습니… 응? 피 냄새? 어디 다치셨습니까?”
위유의 눈동자가 커진다. 그녀의 하얀 뺨에 붉은 홍조가 들었다. 그녀가 당황한 모습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무례하구나.”
퍽!
“악!”
그녀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내 머리를 가격했다. 나는 서둘러 화장실을 떠났다. 이후에 약간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럭키 스케베 부적은 통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내가 선택한 건 미약이었다.
위유의 육체가 이미 초인이란 건 알고 있다. 어지간한 약과 독은 통하지도 않을 것이다.
‘평범한 미약이 아니지.’
유희 생활 어플제 미약이다. 그 성능은 무엇보다 확실하다 할 수 있다.
[미약
미약 200ml가 들어있습니다.
대상을 발정케 합니다.
대상에게 먹이거나, 성기에 바르는 것으로 효과가 나타납니다.
효과는 2시간 동안 유지됩니다. 1회 권장 사용량은 10ml입니다.
가격: 400 포인트
※주의
10ml 이상 섭취 시 정신적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약은 대상에 따라 개인차가 있습니다.]
그 주서현도 3분 보지로 만들어 버린 미약. 400 포인트밖에 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개인 차이가 있다고 하니 200ml 전부를 사용하기로 했다. 미약은 저녁 식사인 미역국에 넣었다.
위유는 별 의심 없이 미역국을 떠먹었다. 3분의 1쯤 먹었을까. 그녀가 인상을 팍 쓰며 날 노려봤다.
“…음식에 이상한 걸 넣었구나.”
“몸이 뜨겁지 않습니까? 제가 편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시끄럽다. 네가 내게 음욕을 품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선을 넘었구나.”
위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뺨에 분홍빛이 돌고 호흡이 살짝 거칠어졌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쾅!
그녀의 주먹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꿀밤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아팠다. 정신 차리고 반격하려는 순간이었다.
베였다.
피도 나지 않고 몸도 멀쩡했지만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일어났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한나절을 기절해 있던 것이었다.
‘대체 뭐에 당한 거지? 주먹에 기절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경지 차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근데 설마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당할 줄은 몰랐다.
“일어났느냐?”
방 밖으로 나갔다. 위유가 식탁에 앉아 태연히 식사 중이었다. 평소와 같다. 미약의 영향은 없어 보였다.
‘설마 기절한 나를 가지고 욕구불만을 해소했나?!’
물론 아니란 걸 내가 잘 알고 있었다. 내 옷을 벗긴 흔적이 없다. 그녀는 기절한 나를 침대에 갖다 놓았을 뿐이다.
“그, 어제 일은….”
“별 생각 없이 한 거겠지. 너는 짐승과 같은 느낌이 있으니 말이다. 허나 그냥 용서할 수는 없구나.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겠지. 오늘부터 일주일간 특별 훈련이다.”
“…….”
훈련이란 이름의 지옥문이 열렸다.
훈련은 위유와의 1대1 대련.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었다. 한 방 먹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나는 그녀 앞에서 어린아이가 된 듯한 기분을 맛봤다.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처맞은 것은 덤이다.
“이, 이러다 진짜 죽겠습니다….”
“엄살 부리지 마라. 네게 회복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다.”
“……,”
아무래도 옛날에 수련받을 때 야금야금 사용했던 완전 회복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