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099 - 2099. 광명승천도
성지곤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성지곤이 있는 하양시로 이동할 수 있는 공간 이동 주문서를 갖고 있으니까.
답을 얻고 계획이 생겼으니 이제 행동할 차례다. 나는 백란에게 감사를 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멈칫했다. 기껏 그녀와 만났다. 이참에 다른 궁금한 걸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다.
“백란. 낙월신녀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어?”
“낙월신녀는 자네의 스승이 아닌가. 그걸 내게 묻는 겐가? 혹시 다른 의도라도 있나?”
백란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타인에게 스승에 대해 묻는 거니까.
하지만 오죽 답답했으면 내가 그럴까.
낙월신녀 위유는 강한 것에 비해 명성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낙월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남궁세가가 위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수준이다. 남궁세가도 위유가 얼마나 강한지 파악하지 못했다.
낙월산 근처 마을들? 변변찮은 문파도 없는 일반인들이 모인 마을들뿐이다. 그들이 위유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을 리 없었다.
“넌 일급금위잖아.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때로는 멀리 있을 때 더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
“흠. 관점의 차이인가….”
물론 나도 위유를 따로 조사해 봤다. 이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위유는 원작인 ‘광명승천도’를 비롯한 다른 작품에서 나오지 않는 인물이다. 즉, 서비스 종료했기에 확인할 수 없었던 ‘무왕 온라인’ 속 캐릭터일 확률이 높았다. 따라서 현실에서 위유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창작물들이 섞이면서 우연히 탄생한 캐릭터일지도 모르고.
확실한 건 백란이 희귀전에도 위유가 존재했었다는 거다. 미래의 지식까지 갖고 있는 그녀라면 내가 모르는 위유의 정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낙월산과 관련된 정보는 통제되고 있는 걸 알아주게.”
“정보 통제?”
“황제 폐하의 명으로 통제되고 있는 정보가 있네. 대표적으로 명계에 관한 것이지. 정보 통제는 금의위의 일이기도 하다네. 대부분 이급금위가 맡아서 처리하지.”
“정보를 통제하는 이유는?”
“황제 폐하께서 아시겠지.”
백란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황제를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녀에 관해 자세한 건 모르네만, 확실한 건 그녀가 강호로 나왔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지. 이 세상에 정보를 완벽히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네. 알 사람은 전부 알고 있고, 기록될 건 기록되고 있지. 이 세상 어딘가에 낙월신녀의 행적을 기록한 물건이 있을지도 모르네.”
“……그게 어디에 있는데?”
“그야 나도 모르지.”
실질적으로 내가 얻은 건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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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이이익.
공간 이동 주문서를 찢고 하양시(河陽市)로 이동했다.
하양시는 제도와는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애매한 곳에 있다. 장단점이 확실하다. 중앙 권력의 영향이 제법 미치지만, 반대로 중앙의 황궁으로 향하는 대들보가 될 수 있는 곳이다.
듣기로는 은퇴한 고관대작들이 이 도시에서 살고 있다 한다. 은퇴했음에도 권력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자들이.
나는 하양시에 있는 성지곤의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은 으리으리했다. 그럴 만도 했다. 정3품이면 고관대작의 반열에 드니까.
‘장군이 고관대작이 아닐 리 없지.’
하양시에서 가장 많은 권력을 가졌다고는 못해도 열 손가락. 아니,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권력을 가졌을 거다.
나는 뒷짐을 쥔 채 저택의 대문으로 팔자걸음으로 향했다.
“이리 오너라!”
문지기들이 깜짝 놀라서 내 앞으로 달려온다.
“서, 성 대협! 오셨습니까!”
“당장 장군님께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이미 내 얼굴을 알고 있던 문지기들이 바로 대응을 시작했다. 나는 긴장한 문지기의 안내를 받으며 대문을 넘었다.
규모는 적어도 제법 화려한 정원이 있었다. 정원을 중심으로 본채와 별채들이 보인다. 성지곤의 저택은 어지간한 무림 문파보다 컸다.
슬쩍 주위를 둘러본다.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들이 보인다. 놀라운 점은 하인들이 대부분 늙었다는 거다.
“…처음 보는 하인들이군.”
“장군께서 노인들을 거둬들여 일을 시키고 있습니다. 늙어서 일을 하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내리는 자비지요.”
병사의 목소리에는 충성심과 뿌듯함이 담겨 있었다.
빨래를 들고 지나가는 노파가 나를 보자마자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는 말없이 노파를 지나쳤다.
“…저 노파는 처음 보는군. 저번에 왔을 때 다른 노파가 빨래 일을 담당했던 것 같은데….”
“강주 노파 말입니까? 강주 노파는 2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복애 노파는 그 뒤에 들어오셨지요.”
“아, 그런가.”
“정말이지 성지곤 장군님의 자비심은 부처님 이상입니다. 부처가 장군님의 미담을 듣는다면 감동하여 눈물을 줄줄 흘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노인들을 거두는 분은 장군님이 유일할 겁니다.”
“……그래.”
부처라도 진실을 알면 기겁하다 못 해 구역질을 하지 않을까.
이 저택에서 일하는 노파들은 모두 성지곤의 애인들일 테니까.
나는 저택 입구에서 마중 나온 성지곤과 만났다.
“하하! 오랜만이야, 유진아.”
성지곤이 쾌활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겉모습은 쾌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지만… 뭐라고 할까. 묘하게 노인들이 좋아할 만한 인상이라고 할까.
“오랜만이다. 넌 여전히 변한 게 없구나.”
“네가 할 말은 아니잖아.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자. 차를 준비해 뒀어.”
접견실로 들어가 성지곤과 마주 보고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리고 하녀가 들어온다. 쟁반에 차를 들고 온 노파였다. 노파는 다소 느긋하게 차를 끓인다. 일련의 행동이 자연스럽다. 또 어딘가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있다. 평범한 출신의 하녀는 아닌 듯했다.
노파를 보는 성지곤의 눈길이 은근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다. 지금 성지곤은 욕정을 느끼고 있었다.
‘대체 어디를 보고 성욕을 느끼는 거냐?’
혹시 내가 이상한 건가?
다시 노파를 살펴봤다. 옷은 정갈하게 입고 있었다. 노출되는 부위도 손을 제외하면 없었다. 성욕을 느낄만한 구석이 없었다. 성지곤의 시선을 따라갔다.
‘……얼굴이라고? 저 주름이 자글자글한?’
나는 성지곤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노파는 차를 끓이고 밖으로 나갔다. 찻잔을 바라본다. 이 은은한 향기는 녹차와 비슷한데 정작 찻물은 파란색에 가까웠다.
“이건 무슨 차야?”
“아. 북쪽 설산에서만 자란다는 칠동차(七凍茶)야. 일곱 번 얼고 녹기를 반복한 차라더라. 나도 선물 받은 거야.”
“처음 들어보는 차로군.”
이 세계는 더럽게 넓었다. 난생처음 보는 차가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차를 입에 가져가 한 모금 마셨다!
“……?!”
분명 차는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뜨거운데 정작 내 몸은 차를 얼음물처럼 차갑게 느꼈다.
‘…음기?’
차에 담겨 있는 음기가 내 몸을 순식간에 차갑게 만든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차를 끓였음에도 음기가 사라지지 않고 차에 남아있으니까.
“이건 영약이군.”
“맞아. 쉽게 구할 수 없는 영약 종류 중 하나라 하더라. 수련에 사용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영약은 아니지만.”
“이런 귀한 걸 차를 마시는 데 쓴다고? 대체 얼마나 돈이 많은 거냐.”
“칠동차는 선물 받은 거야.”
“대체 누가 이런 귀한걸.”
“무순. 내 애인 중 한 명. 이젠 이 세상에 없지만….”
성지곤은 아련한 눈빛으로 창밖의 하늘을 쳐다봤다. 무순? 처음 듣는 이름이다. 허나 성지곤의 애인이면 알만했다. 분명 권력이나 재산을 잔뜩 쌓은 노파겠지.
나는 조용히 성지곤의 강함을 가늠했다.
오기 10단. 삼정의 경지를 코앞에 두고 있다.
나야 천강성 시스템이 있으니 빠르게 강해졌지만, 성지곤은 어떻게 이리 빨리 강해질 수 있었을까? 그건 단순히 재능만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답은 성지곤의 환경에 있었다.
성지곤의 스승인 구월선자 능소려. 죽은 황태자의 스승이었을 만큼 뛰어난 인물이다. 다른 건 몰라도 가르치는 재능은 확실할 것이다. 그 황태자의 스승이었으니. 어쩌면 가르치는 것에 한해서는 위유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군대의 지원. 현재 이 대륙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은 무림맹도, 천마신교도 아닌 군대다. 성지곤은 그런 군대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지곤의 애인들.
성지곤의 애인들은 늙다 못해 오늘, 내일 하는 노파들이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 재산과 권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이 칠동차를 선물 받은 것처럼 온갖 영약과 기물들을 선물 받았을 거다.
마치 젊은 여자가 늙은 남자에게 스폰을 받듯이.
성지곤은 늙은 여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니, 늙은 여자들이 성지곤을 챙겨주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나는 칠동차를 마시면서 원하는 바를 말했다.
“사마세가? 들어본 적은 있어. 내가 직접 찾아가면 사마세가의 가주가 만나줄 것 같긴 해.”
“소개장을 써주는 걸로는 안 되는 거냐?”
“사마세가는 꽤 폐쇄적인 가문이니까. 내 소개장 정도는 어림도 없을걸?”
“구월선자는? 구월선자가 직접 소개장을 써주면 사마세가도 무시하지 못할 텐데.”
“지금 이곳에 없어. 명계와 관련된 일을 처리한다고 서쪽으로 떠났어. 돌아오려면 2년은 있어야 할 거야.”
운이 안 좋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성지곤과 같이 움직이면 된다는 뜻이 아닌가. 당장 어려울 건 없었다.
“같이 사마세가로 가자. 난 어떻게 해서든 가주랑 만나봐야겠어. 지금 출발하면 보름 내로 사마세가에 도착할 거야.”
“나야 당연히 널 도와주고 싶지. 근데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당장 출발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
“해야 할 일?”
“산적 토벌이야. 최근에 산적들이 늘어났는지 여기저기서 피해를 봤다는 신고가 들어왔거든. 도시의 통수권자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어.”
하긴 성지곤에게도 입장이란 게 있을 거다. 정3품이면 가벼운 자리는 아니니까.
“내가 도와줄게. 이 일만 빠르게 해결하면 사마세가로 갈 수 있는 거지?”
“고마워. 네가 도와준다니 든든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