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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01화 (1,881/2,000)

Chapter 2101 - 2101. 광명승천도

성지곤이 박달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돌맹진이라는 사자성어가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멧돼지와 같은 모습은 절대 아니었다.

그의 다리에는 보법의 규칙성이 있었다. 손에 쥔 검에선 강기가 번뜩였다. 육체에선 힘이 넘쳐흐른다. 그의 육체가 유독 단단하고 무거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성지곤은 토성을 가졌으니까.’

토성(土姓). 흙의 기운. 토기(土氣)는 다른 속성들보다 유독 신체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신체가 무거워지고 단단해지는 것이다.

일반인이 무공이나 술법을 익히지 않더라도 토기가 어느 정도 있다면 무병장수한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운 중 하나가 토기다. 물론 일반인이 기운을 타고나는 건 재능과 운. 둘 모두를 타고나야 가능한 일이지만.

콰아아아아아!

성지곤이 휘두르며 발생한 파공성이 울려 퍼진다. 가볍게 한 차례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땅이 뒤집히고 두꺼운 나무가 가벼운 꽃처럼 이리저리 흩날렸다.

‘기운이 좋아. 좋은 걸 많이 먹어서 그런가.’

나에 비해 뒤처질 뿐이지, 성지곤은 다른 누구보다 뛰어났다.

오기의 경지에 이르려면 보통 120년 이상은 수련해야 한다. 허나 성지곤은 100년이 되기도 전에 오기의 경지에 올랐다. 그 후로 온갖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성지곤이 그간 받은 지원만 따지고 보면 나보다 더 좋을 것이다.

콰아아아아아!

성지곤이 계속해서 검을 휘두른다. 박달은 쩔쩔매며 공격을 피하기 바빴다. 같은 오기의 경지라 해도 실력 차이가 눈에 보일 정도로 확연했다.

‘이거 내가 도울 필요도 없을 것 같네.’

성지곤의 검은 강한 힘이 담긴 것에 비해 그 속도가 느렸다. 일부러 그런 것이다. 이유는 당연히 박달이 피할 수 있도록. 성지곤의 목적은 박달을 죽이는 게 아니라 제압이니까. 박달의 힘을 빼앗으려는 수작이다.

‘아무리 체력이 좋더라도 같은 경지의 상대는 상처 없이 제압하는 건 힘들지.’

박달이 1의 힘으로 공격을 피하고 있다면 성지곤은 3의 힘으로 공격하고 있다. 성지곤의 체력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나를 믿고 있기에 그러는 거겠지.’

삼정의 경지에 오른 내가 나선다면 제압은 금방 끝날 것이다. 허나 나는 바로 나서지 않았다. 성지곤의 의도를 알기 때문이다.

‘이 과정 자체가 여자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행위니까.’

여자를 꼬실 때 결과만 생각해선 안 된다. 마음에 드는 여자일수록 과정을 꼼꼼히 더 신경 써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큰 문제가 안 생기니까.

‘내가 성지곤에게 알려준 방식이지.’

박달은 성지곤의 공격을 계속해서 피했다. 피할 수 있게 공격하니 당연했다.

“하하, 박달. 네가 내 품에 안기는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이런 미친! 이 늙은 몸이 그리도 탐나는 거냐?!”

“너는 늙은 게 아니다! 성숙해진 것이다! 원래 맛 좋은 과실은 숙성되어야 맛있는 것이다!”

“날 농락하기 위해 뱉는 말이 아니구나…! 너는, 너는 진정 미친놈이로구나!!”

박달이 기겁했다.

나는 성지곤의 성벽을 알고 있으면서도 놀랐다. 주름 자글자글한 저 모습을 성숙이라 할 수 있나? 과일과 비교하자면 숙성되다 못해 썩은 게 아닌가. 할 말은 많았지만 입을 다물었다.

박달의 기세가 바뀌었다. 공격을 피하면서도 내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공격이 거세지다 보니 그럴 때가 아니라 판단한 것이다.

박달이 지팡이를 던졌다. 지팡이에서 나무줄기가 튀어나와 성지곤의 몸을 붙잡으려 한다. 일종의 법기다. 성지곤은 지팡이를 향해 검을 몇 차례 휘둘렀다. 부서진 나무줄기와 함께 지팡이가 떨어진다.

지팡이가 만든 작은 틈. 박달은 그 틈을 노려 성지곤에게 달려들었다. 상당히 위험한 결단이었다. 아마 성지곤이 자신을 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기에 가능한 공격일 것이다.

그녀의 양손이 괴물의 것으로 변했다. 손톱이 길쭉하게 튀어나왔고 피부는 검보라색으로 변했다. 그녀의 손톱이 현란하게 허공을 가른다.

‘조법을 익혔군. 전체적인 움직임은 짐승의 것을 닮았군.’

짐승의 움직임을 따라 한 공격? 우습게 보일 수도 있었다. 허나 무공이란 짐승이나 곤충의 움직임을 따라 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있는 만큼 무시할 이유는 없다.

‘저런 종류의 무공은 본능을 중요하게 여기지. 제 육감 같은 거 말이야.’

성지곤은 박달의 공격을 막으며 당황하고 있었다. 나는 박달의 주위 나무가 조금씩 꿈틀거리는 걸 발견했다.

‘목기(木氣)를 이용하려 하고 있군. 술법은 아니고… 기공의 일종인가.’

뛰어난 기공술은 술법과 비슷한 짓을 할 수 있었다. 좀 더 복잡하게 활용하려면 술법이 필요하겠지만.

성지곤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나무를 향해 기운을 터트리고 있다. 그들의 격렬한 전투가 이어질수록 주변은 점점 개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어느 순간, 전투에 고취되어 잔뜩 흥분한 박달이 괴성을 질렀다. 그녀의 힘과 기세가 강해진 게 느껴졌다. 이건 성지곤도 까딱 방심하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

‘왜 저래?’

짐승을 닮은 무공의 부작용? 아니면 반요의 본능?

어느 쪽이든 지금 박달의 시선은 좁아졌다. 오직 성지곤만을 눈에 담으며 맹공을 펼치고 있다. 주변에 대한 경계가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노리고 있던 시간이 왔다.

‘움직여야겠네.’

상처 하나 없이 완벽하게 제압한다. 박달은 성지곤의 여자가 되어야 하니까.

스으으윽.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박달의 뒤로 다가갔다. 성지곤은 더 확실히 이 기회를 잡고 싶었는지, 자기 왼쪽 어깨를 내주었다. 박달의 손톱이 성지곤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치명상은 아니지만, 피는 터졌다. 피 냄새를 맡은 박달이 더욱 흥분했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박달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뇌전.’

파지지지직!

“끄기기기기기긱!”

내 손에서 일어난 번개가 박달의 몸을 타고 내달린다. 그 육체에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신경 써서 뇌기를 투입했다. 그녀의 기가 스멀스멀 일어나 내 기운에 저항한다.

‘안 되지.’

그녀는 오기 초단. 나는 삼정 초단. 기운 싸움에서 나를 이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물며 박달은 뇌기에 약한 목기다.

박달의 저항은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박달은 기절하여 쓰러졌다. 성지곤이 박달의 몸을 받았다.

“고마워. 슬슬 힘들던 참이었거든. 죽진 않았겠지? 내상이 생기거나.”

“기절만 시키도록 힘썼다. 아마 한 식경도 안 돼서 깨어날걸?”

“그래? 데려가는 건 힘들 것 같고… 여기서 하는게 좋을 것 같네.”

성지곤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박달의 오두막은 개판이 된 주변에 비해 깨끗했다.

성지곤은 박달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서 성지곤이 무엇을 하려는 걸까.

…모를 수가 없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오두막에 들어가지 않았다.

“안 들어가?”

“친구의 좋은 시간을 방해할 수 없지.”

“좀 걸릴 텐데?”

나는 인벤토리에서 의자를 꺼내며 성지곤에게 손이나 흔들어줬다. 성지곤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오두막에 들어간 성지곤이 바로 늙은 여체를 탐했는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나와 성지곤은 여자 취향 말고는 제법 비슷했다. 여자를 꼬시거나, 강간하는 방법 같은 거 말이다. 물론 나는 늙은 여자를 꼬시는 방법은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여자를 대하는 대략적인 방식은 비슷했다.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바로 섹스하지 않고 여자를 제압한 상태로 여자가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기절한 여자를 따먹는 건 별 재미 없었다. 이미 완벽히 제압했으니 면간을 할 이유도 없었다.

사건은 내 예상대로 이어갔다.

한 식경 뒤, 박달이 깨어났다. 나는 오두막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기척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박달의 기운이 약해진 것으로 보아 점혈을 이용해 제압한 것이다. 기절한 사람을 점혈로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니까.

“으으윽! 이게 무슨 짓이냐?! 당장 이 점혈을 풀어라! 아니, 그냥 나를 죽여라!”

박달은 기개가 있었다.

인간은 경지에 오를수록 삶을 집착한다. 그동안 해 온 것들이 많으니까. 선협세계라서 더 그렇다. 박달처럼 당당히 죽음을 외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보통은 추하게 목숨을 구걸한다.

“죽이기는. 오래오래 살아야지. 쓰읍, 하. 이 냄새야. 이 노인 특유의 냄새가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니까. 이건 네가 살아온 삶의 냄새야.”

“미, 미친놈! 내 옷을 벗기지 마라! 대체 이 늙어 빠진 몸이 뭐가 좋다는 거냐?!”

“많은 여자가 내게 안기기 전까지 그렇게 말하지. 나는 그럴 때마다 안타깝게 느껴. 인생을 버텨온 몸을 그저 추하게만 느끼니 말이야. 박달, 넌 아름다워. 그 증거로 네 짬지를 핥아줄게.”

“흐어어어어어어억!”

나는 인벤토리에서 헤드폰을 꺼내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감각을 죽였다. 오두막에서 일어나는 일을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성지곤과 박달이 오두막 밖으로 나오기까지 3시간이 걸렸다. 성지곤의 얼굴에 흡족함이 가득했다. 반대로 박달의 얼굴은 멍했다. 기력이 없어 보였다.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어떻게 됐어?”

“박달이 내 하인이 되기로 했어. 원래는 애인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저, 저는 성 대협의 종으로서 만족합니다! 반요인 제겐 그 정도 지위가 알맞습니다!”

욕심이 없다? 아니다. 현명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장군인 성지곤의 옆에 늙은 반요가 있으면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주로 반요가 처형당하겠지.

늙은 반요가 어떻게되든 내 알 바인가. 나는 박달에게서 관심을 껐다.

“일은 해결했으니 돌아가면 되지?”

“음. 그게… 박달에게 들은 정보가 이상하거든.”

“무슨 정보?”

성지곤이 박달을 쳐다봤다. 직접 말하라는 뜻이다. 노파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녹림에 속한 모든 산적에게 지원품과 함께 산왕의 지령이 내려왔습니다. 상납금을 3배로 늘리는 대신 사람과 무공, 영약 등을 지원해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즉, 녹림의 주인인 산왕은 의도적으로 산적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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