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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02화 (1,882/2,000)

Chapter 2102 - 2102. 광명승천도

박달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찡그렸다. 산적들의 왕이라 할 수 있는 산왕이 뭔가 일을 꾸미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나와 관련 없는 일임을 깨닫고 미간을 폈다. 나는 산왕과 아무 연관이 없었다. 산왕이 무슨 일을 꾸미든 알 바 아니라는 것이다.

“산왕이 일부러 혼란을 일으키려는 모양새네.”

성지곤이 말했다. 나와는 달리 이 일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성지곤은 장군이라 난리 치는 산적들에 민감했다.

“대협의 말씀대로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산왕은 산적들을 이용해 혼란을 일으키려 합니다. 제국의 절대지존이신 황제 폐하께서는….”

“나서지 않을 거야. 고작 이런 일에 나설 리가 없잖아. 박달, 웬만해선 황제 폐하를 언급하지 마.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조언 감사합니다. 제가 잠깐 제 신분을 망각했군요….”

“뭐, 황제 폐하가 나서진 않더라도 도시를 지키는 입장에 있는 이들은 산적들의 준동이 귀찮을 수밖에 없어. 무림이 잠깐 떠들썩해지겠네.”

성지곤의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국에는 수백, 수천 개의 도시가 있다. 이 도시들 전부가 관군이 관리하지 않고 유명 문파가 관리한다. 그들의 시선이 준동하는 산적들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눈치 빠른 자들은 산왕이 무언가 일을 벌이려고 한다는 것도 알 것이다.

“유진아. 넌 어때? 넌 무림에서 활동 중이잖아.”

“산적 놈들의 지랄에 관심 없어.”

한 번 머리를 굴려봤다. 정확하게는 원작 작품들의 내용을 떠올렸다. 산적들이 나대는 에피소드가 몇 개 떠올랐으나, 스케일이 이렇게 크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딱히 관심은 없었다.

“그보다 빨리 사마세가로 떠났으면 좋겠는데.”

“알았어. 네 여자가 걸린 일이니 나도 최대한 협력해야지. 그래도 마지막으로. 박달. 산왕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어? 그의 목적이 뭐라고 생각해?”

“…현재 사왕련의 련주자리는 비어있습니다. 산왕은 거칠면서도 야망이 큰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왕의 정확한 계획은 모르겠으나… 이번 기회를 노려 련주 자리에 오르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꽤 가능성이 큰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나와 성지곤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우리는 일단 도시로 돌아간 뒤, 사마세가로 떠났다.

•••

보름을 달려서 사마세가가 있는 정우시(井雨市)에 도착했다.

정우시는 제도와 약간 떨어져 있는 도시였다. 그래도 흔히 말하는 제도권에 속하는 도시로 상당히 컸다. 도시에 들어온 성지곤은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너무 일찍 온 것 같아. 전서를 보냈는데, 그 전서보다 먼저 도착한 거지.”

“전서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 뭐라 하면 사과하면 되지. 우리가 사마세가와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것도 그렇네.”

성지곤과 함께 사마세가로 향했다. 사마세가의 위치는 도시 끝에 위치해 있었다.

“이 도시는 사마세가가 다스리지 않나? 왜 도시 끝에 있는 거지? 보통 도시 중심에 있잖아.”

“글쎄? 뭔가 술법적인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성지곤의 말이 옳았다. 사마세가와 가까워질수록 위화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뭔지 모를 무언가가 계속해서 신경을 건드린다고 해야 할까. 여기에 계속 있고 싶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새 길에는 나와 성지곤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사람을 물리는 술법 종류인 것 같아. 사마세가는 손님을 환영할 생각이 없나 봐.”

“폐쇄적이긴 하네. 기왕이면 협조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대문까지 도착했다. 으리으리한 집 앞에는 응당 있어야 할 문지기가 없었다. 있는 거라곤 사마가라는 현판과 붉은색의 문양이 그려진 대문뿐이다.

내가 힘으로 대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내 손이 닿기도 전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저절로 열렸다.

“…자동문이었나. 예상 밖이네.”

“문이 열렸다는 건 우리를 환영한다는 뜻이겠지? 나쁜 징조는 아니야.”

앞으로 걸어간다. 이렇게 쉽게 일이 풀리는 걸 보면 어째 꺼림직함이 느껴진다. 함정을 향해 걸어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 세계에서는 까딱하면 뒤통수를 맞으니까. 뒤통수 맞지 않게 조심해야지.’

얼마 안 가 깔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자를 발견했다.

“두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천마 성유진 님, 하양시의 소무장군 성지곤 님.”

“…우리를 알고 있군. 성지곤의 말로는 전서가 도착하지 않았을 거라 하던데.”

“네. 최근에 가문에 도착한 전서는 없습니다.”

“우리가 올 거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었지?”

“가주님은 한때 황실 제사장이셨습니다. 황실 제사장의 필수 조건 중 하나는 천기를 읽는 것입니다.”

천기를 읽어서 우리의 방문을 알았다? 미심쩍었다. 천기를 읽는 건 미령도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다른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다고 하던가. 그리고 설령 천기를 읽는다 하더라도 미래와 관련된 일은 두루뭉술하여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사마세가의 가주인 사마령이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술법사일 수도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나와 성지곤의 방문을 예측했을 수도 있다.

‘일단 어느 정도 능력은 있다는 거겠지. 좋은 징조로군.’

안내자는 길을 걷다 말고 조금씩 멈칫거렸다. 그럴 때마다 나아가는 방향이 조금씩 바뀌었다. 나는 답답함을 느끼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뭐 하는 거지?”

“아, 가문의 본채 근처에는 수십 가지의 진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함부로 걸으면 길을 잃기 마련이지요. 원래는 이런 진법이 없었습니다만… 최근 가주께서 무언가를 실험하는 듯 하는 지라…. 안전을 위해 부득이하게 진법을 설치했습니다.”

진법을 뚫고 본채에 도착하기까지 20분이나 걸렸다.

본채도 이상했다. 건물 자체가 이리저리 왜곡되어 휘어져 있었다. 건물에 기운이 섞여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 엉켜 있군.”

“역시 삼정에 오르신 절대 고수시군요. 바로 맞히셨습니다. 본채는 온갖 기운과 술식들이 엉켜 있습니다. 사마가의 역대 가주들이 모두 이곳에서 수련과 연구를 한 영향이지요. 이 본채가 정확히 어떤 힘을 가졌는지는 저희도 모두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의도하지 않고 우연히 만들어진 것인지라…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가문 외의 다른 술법사들이 본채에 오면 항상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하더군요. 그 반응을 보는 것도 제법 재미있었는데 최근에는….”

남자는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나와 성지곤은 피곤한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라 본채 안으로 들어갔다. 끝까지 안내해 줄 줄 알았던 그는 어느 순간 걸음을 멈췄다.

“제게 허락된 건 여기까지입니다. 안으로 쭉 들어가시면 됩니다.”

“여기까지 안내하느라 수고했다.”

그를 치하해 주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방안에 들어와 한 여자를 마주했다.

차분한 여자였다. 머리카락 한 올에서부터 옷의 주름 한 점까지 모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백옥같은 피부, 초승달처럼 유려한 눈썹, 굳게 다물린 붉은 입술에선 기품이 느껴졌다.

몸매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있었기에. 제대로 보이는 건 그녀의 얼굴뿐이다.

“사마세가의 가주님이 맞습니까?”

“네. 제가 사마세가의 가주, 사마령입니다. 두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올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천기를 읽었습니다. 그 이전에 여러분의 정보는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천마신교의 소천마, 구월선자의 제자…. 범상치 않은 신분들이니 모를 수가 없었지요.”

“사마세가의 정보력이 참 대단하시군요.“

”자세히는 설명해 드릴 순 없습니다만, 사마세가의 눈과 귀는 대륙 곳곳에 존재합니다.”

“…그럼 혹시 저희가 가주님을 찾아온 목적도 알고 계십니까?”

“모릅니다. 제가 천기를 통해 읽은 건 두 분께서 저를 찾아와 도와주신다는 것뿐입니다. 천기는 그 이상의 내용을 제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도와준다?

이건 돌려 말하는 건가? 자기를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를 돕지 않을 것이라고.

딱히 화나거나 짜증나진 않는다.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지 않는다는 건 예측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녀를 빤히 봤다. 느껴지는 기운은 나보다 강했다. 즉, 사마령의 경지는 삼정 중단 이상이다.

사마령은 우리에게 자리에 앉도록 권유했다. 그녀는 이어 술법을 부려 차를 대접했다. 나는 차를 마신 뒤에 말했다.

“내 여자가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삼정을 넘어 조화의 경지에 오르려다가 실패했습니다. 제 스승님의 말로는 심상 세계에 갇혔다고 하더군요. 기운을 제어하지 못해 계속 흘리고 있는지라 앞으로 1년이 한계라 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녀를 구할 수 있습니까?”

“……다행히 제가 알고 있는 증상이군요. 사마세가의 많은 가주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원했습니다. 그중에 7할 이상은 실패했지요. 그중에는 당신이 말한 여성분과 똑같은 증상을 보이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녀를 구할 방법을 아십니까?!”

“압니다. 아마 그분께서는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심상으로 정신을 이동시켰을 겁니다. 허나, 심상은 실패의 영향으로 변질된 상태였겠지요. 심상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변질된 심상은 이미 자신의 것이라 할 수 없으니까요. 대협께서 그분의 심상으로 들어가, 그분을 데려 나오시면 됩니다. 후에 심상의 정리는 그분께서 하시겠지요.”

“어떻게 해야 타인의 심상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술법이 있습니까?”

“술법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술법을 만능으로 여깁니다. 술법으로 모든 일이 가능하리라 착각하는 거지요. 허나 술법은 만능이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 타인의 심상으로 들어가는 술법 따윈 없습니다.”

“…….”

나는 입을 다물고 사마령의 말을 경청했다. 사마령의 말이 끝나지 않았음을 직감한 것이다.

“그러나 술법이 아닌 다른 힘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사마세가에는 선술을 부릴 수 있는 보물이 존재합니다. 선술(仙術)이라면 타인의 심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미 증명된 사실이지요.”

방법이 있었다. 나는 긴장이 살짝 풀리는 걸 느끼며 그녀에게 물었다.

“……술법과 선술은 다른 겁니까?”

“선술이 더 고차원적인 힘입니다. 술법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선술로 할 수 있지요.”

“제가 뭘 해야 합니까? 오래 걸리지 않는 일이면 좋겠군요.”

사마령은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혹시 도명산(道明山)의 전설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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