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03 - 2103. 광명승천도
도명산(道明山)의 전설?
당연히 들어본 적 없었다.
이 세계는 더럽게 넓다. 그리고 신비한 것들이 많다. 영물, 영약, 요괴, 무공, 술법 등등. 말 그대로 이 세계는 판타지다. 전설이 몇백 개, 몇천 개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설이라 불리는 대부분 이야기는 가짜일 것이다. 요사한 것들이 많은 만큼 미신도 판을 치니까.
“처음 듣는군요. 어떤 전설입니까?”
“서북쪽 어느 지역의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입니다. 천년에 한 번 빛나는 산이 나타나, 산 위에 있는 모든 것에 축복을 내리니.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한 자에겐 하늘과 별의 축복이 내려지니 원하는 것을 얻을지어다. 라는 전설입니다.”
“꽤 거창하군요. 그런 대단한 전설이라면 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겁니까?”
“천년이란 세월은 초인에게도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옳은 말이었다. 천년은 경지에 오른 초인에게도 까마득한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고수는 천년이란 시간을 버티지 못하니까.
참고로 오기(五氣)의 수명이 250년, 삼정(三頂)은 400년, 조화(造化)는 700년이다. 수명을 늘려주는 영약이나 술법을 익혔더라도 천년을 버티기는 힘들었다.
“하물며 이 전설이 진실임을 아는 자들이 정보가 알려지도록 가만히 있겠습니까?”
인간의 탐욕을 생각하면 당연히 정보를 독점하려 들 것이다.
“전설을 아는 자들이 정보를 통제했다는 뜻이군요. 그 전설이 사실이긴 합니까?”
“사실입니다. 저희 사마가문의 서고에 도명산의 전설이 기록된 문헌이 존재하며, 곧 도명산이 나타날 천기까지 읽었습니다.”
천기를 읽었다? 그럼 뭐 나타나겠지.
나는 시큰둥했다. 원하는 것을 얻는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전설이 사실이리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런 전설은 과장되기 마련이다. 설령 전설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전설의 주인공이 내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전설을 안 믿으시는군요.”
“믿습니다. 전설 그대로의 내용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를 제외하고도 이 전설을 알고 준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으로 사왕련의 산왕이 있지요. 그는 휘하의 녹림 세력으로 세상의 시선을 끌 계획입니다.”
“……그사이에 산왕은 도명산에 오르고?”
“그 외에도 도명산을 기다리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기록은 저희 가문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저를 제외하고도 천기를 읽는 자들이 있을 테죠.”
“결론은 뭡니까?”
“첫 번째 조건입니다. 저와 함께 도명산에 가주시지요. 어떤 위험이 있는지 온전히 알아낼 수 없으니,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도명산 정상에 동시에 오를 수 있는 인원은 다섯이니… 우리 모두 도명산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가 있다면 두 번째 조건이 있겠군요.”
“첫 번째 조건은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으니 이해해 주십시오. 두 번째 조건은 당신이 구하려는 그분의 경험입니다.”
“경험?”
“삼정경의 술법사가 조화경으로 오르기 위해 시도한 경험. 비록 실패했을지언정 그 경험을 들을 수 있다면, 조화경을 목표로하고 있는 제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건 내가 아니라 미령과 상의해야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미령도 은원을 모르지는 않다. 자신을 살려준 것에 도움을 줬으니 경험담 정도는 흔쾌히 알려줄 테지.
첫 번째 조건도 사실 부담스럽지 않았다. 산왕? 필연적으로 싸우게 될 것 같긴 하지만 질 것 같지 않았다. 무급보수도 아니다. 도명산의 전설대로라면 나 또한 원하는 것을 얻을 테니까. 내가 뭘 원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 대단한 전설이면 황실이 나설 수 있지 않습니까?”
“황제 폐하는 도명산에 관해 알고 있으나, 나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천년에 한 번 나타나는 산이라 하여도 그 한계는 명확한바. 황제 폐하의 소원을 들어주지는 못할 테죠.”
나는 옆을 힐끗거렸다. 성지곤은 우리의 대화에 전혀 흥미 없다는 듯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성지곤. 넌 어쩔래? 넌 여기까지 같이 와준 것만으로 할 일을 다 했어.”
“응? 아직 일이 안 끝났잖아. 끝까지 도와줄게. 도명산이란 곳이 뭔지 궁금하기도 하니까.”
성지곤이 있으면 편하다. 나는 마음을 놓았다.
삼정의 무인, 삼정의 술법사, 오기 10단의 무인.
어지간한 문파 따윈 그냥 쓸어버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일은 원활히 풀릴 것이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절 도와주십시오.”
사마령은 내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세가는 약속을 어기지 않습니다.”
• • •
도명산이 나타날 때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으므로 사마세가에 며칠 동안 머물렀다.
처음엔 꽤 신기했다. 가문. 그것도 술법사들만 모여 있는 가문이었으니까. 무가(武家)와는 색다른 맛이 존재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진법 속에 갇혀서 3시간 동안 헤매기 전까지는.
지나가던 사마세가의 가솔 덕분에 진법에서 빠져나온 뒤로 우리는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사마세가의 가솔과 만나도 이야기할 것이 딱히 없었다. 사마세가는 지루한 곳이었다. 결국 우리는 방에 틀어박힌 척하다가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해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인피면구를 썼다.
“준비됐어, 곤?”
“아아, 물론이지, 진.”
우리는 목표물을 향해 당당히 걸어갔다. 마을에서 가장 큰 집. 이 마을을 다스리는 촌장의 집이었다. 말이 촌장이지 관직으로 따지면 종 6품에 해당하는 관인이다.
참고로 목표물을 정한 건 내가 아니라 성지곤이다.
“집이 꽤 크네. 뭐하는 놈이야?”
“중앙 진출을 노리고 있는 머저리? 최근에 주제넘게 움직이는 것 같더라고.”
성지곤의 말에 의하면 정적이었다. 정확하게는 정적의 사냥개. 성지곤을 물어 죽일 정도로 대단한 힘을 가진 놈은 아니지만, 발목을 잡고 늘어질 힘이 있었다.
“이참에 없애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딸이 미인이래.”
“있는 집 자식은 대부분 미인이더라.”
“딸은 네가 먹어. 난 놈의 모친을 먹을게.”
“…어, 그래.”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가끔 성지곤의 말을 듣고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었다. 지금이 그랬다. 뭐, 실제로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담을 넘었다. 호위무사들을 소리 없이 죽이고는 안쪽으로 침투한다. 목표물을 생포하고 즐긴다. 머저리는 일부러 죽이지 않고 그 앞에서 딸과 모친을 범했다.
철퍽, 철퍽.
나와 성지곤 앞에는 각각 딸과 모친이 엎드려 있었다. 나는 탄력넘치는 엉덩이 사이에 자지를 찔러넣고, 성지곤은 탄력 따윈 없는 변색된 엉덩이에 찔러넣었다.
여자들은 무기력하게 바닥에 엎드려 간간이 신음만을 흘렸다.
“읍, 으으읍읍!”
재갈을 문 머저리가 눈에 핏줄을 세우며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우리는 당연히 무시했다. 놈은 떠나기 전에 죽일 예정이었다.
“가주 말이야. 목표로 삼고 있지?”
성지곤이 말했다.
가주.
사마령을 말하는 것이다. 듣는 귀가 있다 보니 대놓고 이름을 말할 수 없었다.
“당연하지. 그런 새끈한 여자는 좀처럼 볼 수 없으니까. 평범한 미녀도 아니고 능력도 있는 여자잖아.”
“염문이 하나도 없는 것도 마음에 들 테고 말이야?”
“크크. 넌 날 너무 잘 알아.”
“하지만 그만큼 쉽지 않은 여자야.”
맞다. 사마령은 연애에 전혀 관심 없는 여자였다. 게다가 능력도 있었다.
성지곤이 말을 이었다.
“무력으로 자빠뜨릴 수도 없어. 그리고 봤잖아. 나이에 비해 굉장히 젊은걸.”
이 세계의 고수는 외모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경지가 높다고 반로환동을 마구잡이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노화는 경지에 오를수록 느려진다. 다시 말해 젊은 나이에 경지에 오를수록 노화가 느려지고 젊음이 유지되는 것이다. 즉, 젊은 모습을 유지하는 고수는 대부분 천재라는 뜻이었다.
물론 천재가 아닌데도 젊음을 유지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따로 특수한 단약을 복용하거나, 술법 혹은 마공 등으로 젊음을 유지하는 경우다.
늙은 고수들의 경우 대부분 젊음을 탐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에 수련을 해서 경지를 올리는 게 더 급하니까. 그리고 겉모습이 늙었다고 해서 그들의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외모에 관심 없는 자들도 상당히 많았고.
아무튼 사마령의 육체가 젊다는 건 그만큼 천재라는 뜻이다. 섣불리 그녀를 덮치려 했다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도 고민 중이야.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미약은 어때? 이것저것 모아둔 게 있어.”
성지곤이 말했다. 허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통할걸. 그 정도 실력을 가진 여자가 미약 따위에 당할 리 없어.”
미약 따위에 당한다면 오히려 실망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게?”
“다른 건 몰라도 강간은 피해야지.”
이번 도명산 일이 끝난 뒤에 사마령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미령을 구해야 했다. 그러니 적당히 관계는 유지해야 한다.
“친분을 차근차근 쌓는 방식? 가주의 냉랭한 분위기를 보니 그것도 어려울 것 같던데.”
사마령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여자이긴 했다.
“백마 탄 왕자님 작전도 있지.”
그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주는 방식이다. 이건 상당히 잘 먹히는 방식이다. 다만 사마령이 강하다 보니 위기에 빠지는 일이 좀처럼 없을 거라는 점이다.
‘뭐, 도명산에서 기회가 오겠지. 기회가 없으면… 만들면 되고.’
성지곤은 내 편이니 도와줄 것이다.
나와 성지곤은 새벽까지 허리를 움직여 여자들을 범했다.
• • •
사마세가를 떠날 때가 됐다. 사마령은 가문 뒤에 있는 별채로 우리를 불렀다. 별채의 바닥과 벽을 바라본다. 술식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술법진을 살펴봤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이대(轉移臺). 전이 술법이 준비된 공간이군.”
“네. 전이대를 이용한 적 있는 모양이군요. 저희는 전이술로 도명산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할 겁니다. 그 이후부터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산에 오를 것입니다. 우리 목적은 누구보다 빠르게 도명산 정상에 오르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