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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06화 (1,886/2,000)

Chapter 2106 - 2106. 광명승천도

“니들 따위가 우리를 죽이겠다고?”

“이 공간에 있는 자들은 모두 금제를 받지. 당연히 선배들도 예외는 아니겠지. 무슨 금제를 받았소? 참고로 나는 발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금제요.”

놈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설령 진실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발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금제는 귀여운 수준이다. 눈이 멀거나, 내공을 밖으로 빼낼 수 없는 것에 비한다면.

“나와 비슷한 금제로군.”

“거짓말하지 마시오. 정말로 그랬다면 보자마자 우리를 쳐 죽였겠지. 상당히 강한 금제를 당했으니 이렇게 우리와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겠소?”

“……너희는 누구냐. 이름을 밝혀라.”

“청인검문(淸人劍門)의 문주인 기승이요.”

기승이 검을 뽑았다. 그를 따라 문파원들이 일제히 검을 뽑는다.

나 또한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붉은색의 칼날의 화련비도다.

전투가 일어나기 직전, 사마령의 소매가 펄럭거린다. 내 손을 놓은 그녀의 양손이 허공에서 춤을 추듯 움직인다. 술식이 아름답게 그려졌다.

“어림도 없소.”

기승이 품에서 바늘을 날렸다. 손을 들어 바늘을 잡으려고 했으나, 날파리가 움직이듯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바늘은 허공에서 빛나는 술식을 파괴했다. 그 술식을 새로이 엮어 끈으로 만들어 사마령의 몸을 칭칭 감는다.

“비공침(飛功針)이라는 법기요. 일회용이지만 술법사들의 술법을 파쇄하고 역으로 그 힘을 이용해 술법사를 구속할 수 있소. 원래는 삼정의 술법사에겐 잘 통하지 않는데… 아예 대응하지 못하는 걸 보아 눈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군?”

“…죄송합니다. 제가 미숙하여 하찮은 수단에 당했군요.”

사마령의 손가락이 꼼지락 거린다.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 같긴 한데 지금 당장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기승은 승리를 장담한 것처럼 히죽 웃는다.

“미색이 뛰어나시구려. 이런 상황만 아니었어도 구름 위의 시간을 보냈을 텐데…. 허나 이번에는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 깔끔하게 보내드리리다.”

나는 기승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마침, 내 소개를 안 했군. 나는 성유진이다.”

“성유진?”

내 이름을 뇌까리던 그가 곧 두 눈을 치떴다.

“소천마 성유진! 마교의 거마가 아닌가!”

“알았으면 당장 무릎 꿇어라. 천마신교는 네놈들 따윈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다.”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머리가 맛이 갔소? 여긴 도명산이오. 우리가 이곳에서 선배들을 죽이면, 천마신교가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갈 것 같소? 아쉽긴 하구려. 천마신교의 후계자인 소천마가 내 손에 죽었다는 걸 알릴 수 없으니 말이오!”

놈들이 달려든다.

나는 사마령을 지키듯 그 앞에 섰고, 성지곤이 뒤를 맡았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술법사인 사마령은 무공을 모른다. 눈도 안 보이고 몸이 묶인 상태다. 적당히 휘두른 검에 목이 달아날 수 있었다. 다행히 놈들이 노골적으로 사마령을 노리진 않지만… 그것도 지금뿐이다.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었다.

카아앙!

기승의 검을 막는다. 기승의 검에선 강기가 넙실거렸다.

“기를 발산하지 못하는 금제요? 하하하하하! 손발을 끊어 놓는 금제나 다를 바 없지 않소! 그 빨간 칼만 없었으면 당신은 이미 죽었소!”

기승은 말을 지껄이면서도 연신 검을 휘두른다. 나는 화련비도로 침착하게 막아냈다. 그의 말대로 화련비도가 아니었다면 얼마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평범한 검은 강기를 버티지 못하고 잘렸을 테니까. 화련비도니까 상처 하나 없이 강기가 실린 검을 막아낼 수 있는 거다.

“쓰레기 같은 검술이군.”

웃으며 공격을 이어가던 기승의 안색이 싹 바뀌었다. 대부분의 무인이 그러하듯 익힌 무공을 욕하는 건 부모를 욕하는 것 이상의 모독이었다.

“보면 알겠다. 유명한 검술 중 몇 개를 흉내 내어 짜기운 검술이지. 있어 보이는 걸 섞었으나, 도리어 품질이 낮아져 잡탕 죽이 된 꼴이다. …아니지. 비싼 요리들을 먹었으나 정작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내뱉은 토사물 같은 검술이 더 정확하겠군.”

“네이놈!! 검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마두 놈이 감히 청인검을 모독하는가! 네놈은 결코 쉽게 죽이지 않겠노라!!”

기승이 분노하여 고함친다. 그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왼손으로 모여들어 검의 형상을 취한다. 강기로 이루어진 검.

‘이건 위험하군. 나야 어떻게든 막는다 쳐도… 뒤에 있는 사마령에게 여파가 갈 수밖에 없다.’

원래는 기혈이 뒤틀리는 걸 감수하고 육체 내에서 내공을 폭발시켜 사용하려 했으나, 그럴 여유가 없을 것 같다.

[천심(天心)을 발동합니다. 1분 동안 지속됩니다.]

금기가 사라진다.

바로 마기를 끌어 올렸다. 시커먼 마기가 터져 나오자 적들이 당황하며 내게 달려든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쿵!

마기가 파동친다. 적들이 압력에 짓눌려 주춤거렸다. 그 와중에도 기승은 두 눈을 부릅뜨며 강기검을 완성시켰다. 기승이 각각 손에 쥔 검을 내게 휘두른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회천(回天).

회전력을 담은 새까만 강기를 두른 화련비도를 옆으로 눕혀 기승의 검을 막아냈다. 그 충격은 흡수되어 회전력이 되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내 청인검이 검 하나 뚫지 못하다니…!”

“경지 차이가 좆으로 보이냐? 강기라고 해서 다 같은 강기가 아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회천마풍(回天魔風).

화련비도를 휘두른다. 검은 바람이 일어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쓴다. 적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기승의 경우 사지가 절단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

상황은 한순간에 종결되었다. 기승의 전의가 꺾인 걸 확인하며 화련비도를 갈무리했다.

“…불합리하오. 경지 차이가 조금 난다고 해서 일격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야 한다니…. 너무 불합리하오.”

“경지 차이만 있는 게 아니다. 무공 차이도 존재하지. 네놈의 검술 따위가 천마신공에 비빌 수 있을 거라 믿었나?”

“…천마신공. 그렇소. 무림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무공 중 하나. 이토록 허무하게 지는 것도 어쩔 수 없구려.”

나는 혹시나 싶어 주위를 둘러봤다. 성지곤과 사마령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다만 성지곤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는 걸 보니 위험한 순간은 있었던 모양이다.

1분이 지나 천심의 효과가 풀린다. 나는 다시 내공이 육체에 갇히리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새로운 금제가 나를 덮쳤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강제로 바닥에 쓰러진다. 반사신경을 발휘해 양손으로 상반신을 지탱했기에 피로 흥건한 바닥에 얼굴이 닿는 건 막을 수 있었다. 곁에 있던 성지곤이 당황하며 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하. 금제로군. 새로운 금제가 덮쳐왔나? 꼴을 보아하니 하반신이 마비된 것 모양이구려.”

기승이 비죽 웃는다. 나는 대꾸할 수 없었다. 그럴 정신이 없었다.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씨발!!!!’

하반신에 감각이 없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꼬추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거다.

“씨발!!!!”

꼬추에 감각이 없다.

나는 고자가 되었다.

고자라니.

내가 고자라니.

이게 무슨 일이지? 세상이 갑자기 미쳤나? 손을 움직여 사타구니를 만졌다. 커다란 자지가 잡힌다. 허나 자지는 무반응이다. 감각조차 없다.

입을 벌렸다. 이 끔찍한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쿨럭!”

비명 대신 나오는 건 피였다.

기혈이 뒤틀린다. 내공이 날뛰기 시작한다. 육체는 막대하면서도 패도 적이고 거센 내공을 버티지 못했다. 피부 찢어지고 근육이 뒤틀리며 뼈가 부서진다. 입과 눈, 코, 귀. 칠공에서 피가 새어 나온다.

주화입마(走火入魔).

그것도 아주 극심한 종류의 주화입마다.

보통 이런 주화입마는 정신이 극단적으로 흔들렸을 때 일어난다. 절대 정신을 가지고 있는 내겐 주화입마는 머나먼 이야기다. 그래야 했다.

‘그딴 게…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니, 씨발 내 꼬추가!!!!!!!!!!!

입에서 피를 뿜었다. 날뛰는 기운은 마침내 내 심장까지 파괴했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정신을 차린 나는 꼬추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꼬추에 감각이 느껴졌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어지럽던 정신이 순식간에 맑아졌다.

‘…내가 너무 당황해서 패닉에 빠졌었군. 절대 정신. 이 쓰레기 같은 거… 방금 제대로 작동 안 했지?’

새로운 금제가 나타났다. 이번엔 기혈이 일부 변했다. 평소대로 무공을 사용하면 100% 내상을 입을 것이다.

‘하반신 마비에 비하면 별거 아닌 금제로군.’

잠깐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고자라는 걸 알고 주화입마로 인해 죽을 때까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10초 만에 심장이 터져 죽는다고? 주화입마를 막으려 했다면 막을 수 있었어. 난 일부러 주화입마를 막지 않은 거야.’

절대 정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이유…. 사실 생각해 보면 별거 없었다. 나는 미치고 싶었다. 절대 정신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가령 일부러 환술에 걸린다거나 할 때처럼.

‘고자가 될 바엔 차라리 미치는 게 더 나아.’

완전 회복이 있었기에 망정이었다.

“부축해 줘서 고맙다.”

당황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성지곤에게 말했다.

두 발로 당당히 일어섰다. 바지에 닿는 꼬추의 감각에 집중하면서 기승을 내려다본다.

“댁은 대체 뭐 하는 놈이오? 분명 피를 토하고 죽었는데… 지금은 멀쩡하시구려.”

“얌전히 죽고 싶으면 알고 있는 정보나 말해라. 우리에게 뛰어난 술법사가 있다는 걸 유의하고.”

“……좋소. 비참하게 고통받으며 살고 싶지 않으니 말하겠소. 뭐가 궁금하시오?”

“우선은….”

도명산의 전설을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봤다. 객잔에서 늙은이가 아이들에게 말하는 걸 우연히 듣고 조사해 봤다고 한다. 혹시 모르니까.

“…산왕이 작업치는 걸 보고 도명산의 전설이 사실임을 확신했소.”

“도명산에 관해 더 알고 있는 건?”

“딱히 없소. 아, 그 늙은이의 말로는 도명산을 세 명의 신선이 시작이었다고 말하더군. 그 셋이 정말로 신선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명산이 단순 우연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란 뜻이지. 도명산의 정상에는 3명이 오를 수 있다고 하니… 어쩐지 신뢰감이 드는 의견이 아니오?”

“그 신선들이 누군데?”

“나도 모르오….”

“근처에 다른 성가신 놈들이 있나?”

“없소. 우리가 이곳에서 가장 먼저 만난 건 당신들이오. 경쟁자를 없앨 기회라고 생각하였건만… 잘못 판단한 거지. 더 궁금한 게 있소? 내 인생이 궁금한 게 아니면 지금 죽여주시오. 이야기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지 않소?”

그 말대로 시간이 아까웠기에 기승의 머리를 발로 차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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