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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10화 (1,890/2,000)

Chapter 2110 - 2110. 광명승천도

귀혼흑수의 배신으로 반오를 죽일 기회가 날아갔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귀혼흑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이 미친년이!! 지금 대체 무슨 짓이냐?! 반오를 먼저 죽이기로 하지 않았나!”

“케케케케! 너희를 상대하는 건 나로서도 퍽이나 부담스러울 듯하여 말이지. 어부지리가 눈앞에 있으니 당연히 취해야 하지 않겠느냐? 케케케!”

성지곤은?

강시들에게 포위당하여 싸우고 있다. 당장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다. 성지곤의 눈썹이 찌그러졌다. 성지곤 또한 귀혼흑수의 배신에 분노하고 있었다.

‘이 씨발 할망구 새끼는 그냥 죽일 수 없다! 팔다리를 잘라서 성지곤의 오나홀로 만들어 버리겠다! 죽을 때까지 성지곤에게 범해지도록!!’

성지곤은 귀혼흑수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이해할 것이다.

“뜻대로 안 되니 화가 난 모양이군. 진정 저 추악한 년을 믿었느냐?”

반오가 비아냥거렸다.

당연히 안 믿었다. 반오를 죽인 다음에는 귀혼흑수를 제압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설마 반오를 죽이기도 전에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씨발. 저 멍청한 년 때문에 계획이 다 망했군.”

“본좌가 네게 손을 내밀어 주마. 저 손 검은 년부터 죽이지 않겠느냐?”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그렇다.”

“좆까. 꼬라지를 보니 바로 뒤통수를 치려는 거겠지.”

“흐흐. 아주 멍청하지는 않구나.”

반오가 지면을 박차고 소처럼 돌진해 온다. 놈이 걸친 뼈갑옷은 최소 수 천근. 저 돌진은 빌딩 한 채가 달려오는 것과 같았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9]

찰나를 사용해 정면으로 부딪치는 걸 피했다. 허나 돌진의 여파가 내 몸을 덮쳤다. 몸이 뒤로 밀려나는 것까지 견딜 수 없었다.

반오가 방향을 바꿔 다시 내게 돌진한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8]

찰나를 사용해 돌격을 피한다. 반오가 찰나를 쓴 내 움직임을 본다고 해서, 완벽히 반응한다고 묻는다면 아니다. 찰나를 쓴 그 순간만큼은 몸이 빨라지는 건 사실이니까. 마구잡이로 돌진하는 상태로는 내 움직임을 못 막는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7]

나는 놈의 돌격을 옆으로 피하면서 칼을 휘둘렀다.

깡!

강기로 강화된 화련비도는 놈의 갑옷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내성도 내성이지만 뼈갑옷이 너무 두껍고 단단하다.

‘노릴 부분은 있다. 눈. 두 눈은 뼈로 보호하지 못해!’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찰나로 돌격을 피하고 반격의 칼날을 밀어 넣어도 의미가 없다. 내가 눈을 노린다는 걸 반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너의 지친 숨소리가 들리는구나. 어디까지 버틸 수 있겠느냐?”

놈의 말에 조소가 섞여 있었다.

“네 목을 따기 전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군.”

한 번의 기회는 있다.

다만 고민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리는 검은 불이 좋을까. 아니면 가장 익숙한 번개가 나을까. 천마로서는 검은 불이 좋긴 하지만, 굳이 뇌천류를 쓰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강시 몇 마리가 이쪽으로 날아왔다. 사마령이 술법으로 강시들을 상대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에 달하는 것 같았다. 강시의 수는 아직 100마리 이상 남아 있었다.

반오는 날아온 강시를 무시하고 내게 돌격했다. 나 또한 자빠진 강시를 신경쓸 여력은 없었다.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반오에게 집중한다.

그게 실수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강시가 폭발했다. 나는 찰나를 사용해 바로 몸을 피했다. 그럼에도 폭발을 완벽히 피할 수 없었다.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했음에도 내부가 진탕되는 걸 느꼈다.

폭발에 완전히 휘말린 반오는 어떨가? 뼈갑옷이 일부 부서지긴 했어도 멀쩡히 걸어 나왔다.

‘…아니. 멀쩡하지는 않군.’

반오도 절뚝거린다. 움직임에서 피로가 느껴진다.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땅바닥에 칼을 박고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다시 한번 전의를 일으킨다.

돌연 반오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붉은 안광이 내가 아닌 귀혼흑수에게 향한다.

“네놈은 언제든지 죽일 수 있으니, 저 늙은이년부터 죽이겠다.”

반오의 뼈갑옷이 부풀어 오르더니 거대한 소의 형태를 취한다. 거대한 뼈의 소는 압도적인 질량을 무기 삼아 귀혼흑수에게 내달렸다.

“케케케케케! 나오너라!”

귀혼흑수는 공간함에서 아끼고 아껴둔 강시들을 꺼냈다. 범상치 않은 강시들은 우리들을 몰아붙였다. 이 전장에서 승리자는 누가 보더라도 귀혼흑수다. 그 본인조차도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반오가 공격 대상을 바꾼 것도 귀혼흑수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강시 몇 마리가 내게 달려든다.

천마신검(天魔神劍) 격섬(擊閃).

참격을 날려 강시 몇 마리를 베었다. 평범한 강시 따위는 반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황은… 안 좋군. 전장을 커버하고 있던 사마령도 지쳐가고, 성지곤은 거의 폭주하다시피 날뛰고 있어. 내게 남은 건 한방뿐이고.’

반오는 생생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움직이지 못하는 강시의 뼈를 흡수하고 있었다.

‘천강성의 빛을 쓸까?’

관뒀다.

천강성의 빛을 쓴 뒤에는 정말 엄청나게 피로해진다. 천강성의 빛을 쓴다고 상황을 역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케케케케케케! 나의 최대역작인 금강강시다!”

귀혼흑수의 득의만만한 웃음소리가 울린다. 그 앞을 보니 강시 한 마리가 반오의 돌진을 정면에서 막아내고 있었다. 나도 해내기 힘든 일을 강시 하나가 해냈다. 금강강시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귀혼흑수도 보통이 아니군.’

우웅.

갑자기 공간이 일렁인다. 귀혼흑수나 반오의 짓인가? 그들을 보니 당황하고 있었다.

“대협들! 이쪽으로 오시지요! 다음 공간으로 강제로 이동될 것입니다! 우린 함께 있어야 합니다!”

사마령이 외쳤다.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바로 사마령에게 달려가려 했다.

“저 여자! 저 여자는 숨겨놓은 수가 있다! 내가 모를 줄 아느냐?! 저 여자만큼은 반드시 죽여라!”

귀혼흑수가 사마령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늙어빠진 할망구가 젊고 예쁜 사마령을 질투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강시들이 사마령을 노리며 내달렸다. 사마령이 이를 악물며 오른팔을 휘둘렀다. 그에 호응하듯 땅바닥이 뒤집히며 강시들을 뒤덮는다. 허나 온몸이 붉은 강시는 뒤집힌 땅을 뚫고 사마령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이미 지친 사마령은 붉은 강시를 막을 수단이 없었다. 사마령이 품속의 공간함을 꽉 움켜쥐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0]

찰나의 스택을 모조리 사용해 붉은 강시의 앞을 가로막았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주먹으로 붉은 강시의 머리를 후려친다. 강시의 머리가 터진다. 강시의 머리에는 뇌가 없었다. 뼈도 없었다. 그저 피로 가득했다.

강시의 터진 머리가 시간을 되돌려지듯 돌아온다.

“케케케. 이게 진정한 혈강시다. 그깟 공격에 당하겠느냐? 혈강시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성가신 강시였다. 여기서 힘을 아끼다간 더 좆될 것 같았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흑염마룡(黑炎魔龍).

화르르륵. 검은 화염이 혈강시의 몸에 옮겨붙었다. 혈강시를 이루고 있는 피들이 서서히 증발하기 시작한다.

혈강시는 몸이 불타는 와중에도 개의치 않고 공격해왔다. 나는 칼을 들고 그에 맞섰다.

유려한 칼솜씨를 뽐내며 혈강시를 반으로 갈랐을 때, 다른 강시들이 사마령에게 달리는 게 보였다. 거기에 반오의 뼈창 또한 사마령을 노린다. 놈들은 조용히 사마령을 먼저 죽이기로 한 것이다.

“사마가주!!”

나는 위로 뛰어올라 날아오는 뼈창을 칼로 받아쳤다. 우지끈. 오른팔이 부러진다. 뼈창은 바닥으로 떨어지다가 돌연 사마령의 머리를 노리며 급발진한다. 이를 악물고 왼팔로 뼈창을 막았다. 왼팔이 뜯겨나간 대신에 사마령을 구했다.

“…대협.”

사마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그녀에게 씩 웃어주려고 했으나… 다리에 힘이 풀렸다.

강시의 손톱이 발목에 파고들었던 게 생각난다. 그 손톱에 독이 묻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사마가주! 피하십시오! 강시가 덮쳐옵니다!”

“……어쩔 수 없군요. 당장은 자리를 피할 수밖에….”

그녀는 쓰러진 내 어깨를 잡고 일렁이는 공간 속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이렇게 전장을 이탈했다.

• • •

성지곤은 사마령과 성유진이 공간 속으로 사라진 걸 확인했다. 그 뒤를 쫓던 강시들은 일렁이는 공간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몸을 돌려 반오를 향해 달려든다.

‘잘된 일이야. 조금 더 늦었으면 유진이가 위험했어. 지금 유진이는 너무 무리한 상태야.’

성유진이 상대했던 반오도 지쳐있다. 지금 여기서 가장 위험한 건 귀혼흑수였다.

성지곤은 비교적 안전했다. 그를 포위한 강시들은 모두 약했다. 지금 이 전장에서 가장 무시당하고 있는 존재는 성지곤이었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귀혼흑수와 반오와 달리 오기경에 불과했으니까.

성지곤은 인기척을 죽이며 기회를 엿봤다. 품속의 공간함을 만지작거린다. 그에게도 비장의 수는 있었다.

반오와 귀혼흑수는 여기서 끝장을 보려는 듯 싸우기 시작했다. 반오는 강시들의 뼈를 역으로 흡수했고, 귀혼흑수의 천박한 웃음을 점점 사라졌다.

“금강강시! 혈강시! 천빙강시! 쇄혼강시!”

귀혼흑수가 비장의 강시들을 모두 꺼냈다. 마침내 전투의 판도가 비슷해진다. 귀혼흑수의 정신이 전부 반오에게 쏠렸다.

기회였다.

성지곤은 공간함에서 법기를 꺼냈다. 이미 죽은 그의 애인 중 한 명이 남긴 유품이었다. 손바닥의 반도 되지 않는 작은 화살이었다.

섬광시(閃光矢).

성지곤은 망설임 없이 귀혼흑수를 향해 섬광시를 날렸다. 그의 몸이 섬광시에 빨려 들어갔다. 섬광시는 귀혼흑수의 어깨를 꿰뚫었고, 그 옆에 성지곤이 나타났다. 성지곤은 곧장 귀혼흑수의 지팡이를 빼앗았다.

허를 찔린 귀혼흑수가 주춤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허억! 바, 방해마라! 이놈!!”

“귀혼흑수. 넌 나랑 같이 가자.”

성지곤은 귀혼흑수의 몸을 잡고 일렁이는 공간 속으로 내달렸다. 곧 그의 몸이 사라졌다.

주인을 잃은 강시들은 폭주하여 날뛰기 시작했다.

“…쯧.”

혀를 찬 반오는 일렁이는 공간 속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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