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11 - 2111. 광명승천도
사마령이 내 몸을 잡고 일렁이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당연히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 그곳도 당연히 산속이었다. 저 멀리 도명산의 정상이 보인다. 아까 있었던 공간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정상과 가까웠다. 물론 이 광경 또한 실체 없는 환상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앞으로 1시간 내로 해는 완전히 저물고 산에 어둠이 찾아올 것이다.
지금 내 상황을 냉철히 바라봤다.
오른팔은 부러졌다. 움직이기 힘들었다.
왼팔은 뜯겨나갔다. 허전했다. 팔 아래로 피가 뚝뚝 흐른다. 사마령은 공간함에서 꺼낸 끈으로 왼팔을 동여매며 지혈했다.
기혈이 손상됐다. 단전에도 타격이 간 것 같다. 전투 중에는 몰랐는데 지금 돌아보니 내상이 꽤 심했다. 당분간은 내공을 쓰기 어렵다.
다리는 강시의 독 때문에 힘이 안 들어갔다. 다행히 하반신 전체가 마비된 건 아니었다. 허벅지까지는 감각이 있었다. 내상에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로 내공을 쥐어 짜내며 다리 쪽으로 내보낸다. 독이 올라오는 걸 막기 위해서다.
최대한 조심하는데도 기혈이 조금씩 손상 입고 있다.
“…대협. 이 단약을 드십시오. 진양해독단(眞陽解毒丹)이라는 영단입니다. 양기를 이용해 독을 없애는 것이기에 술식이 근본인 주독(呪毒)이 아니라면 해독될 것입니다.”
사마령이 조심스럽게 단약을 들고 내 입에 가져다 댔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나는 지금은 온전히 그녀의 호의에 기대야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건네고 단약을 받아먹었다. 입안에 들어온 단약은 굉장히 썼다. 약효가 퍼진다. 뜨거운 기운이 되어 몸 곳곳으로 퍼진다.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나는 몸 상태가 한 차례 좋아진 걸 느꼈다. 그래봤자 심각한 건 변함이 없지만.
“어떻습니까?”
“굉장히 쓰군요. 다만 여전히 다리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단순한 시독(屍毒)이 아니라 주독이었군요. 주독이라면 술법을 이용해 해독해야 합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것 같군요.”
“사마가주의 뛰어난 술법으로 바로 해독할 수는 없는 겁니까?”
“대협께서 정상인 상태였다면 모를까. 지금 대협은 중상입니다. 술법은 대협께 부담을 줄 테니, 신중해야 합니다. 우선은 쉴 곳이 필요하겠군요.”
사마령은 나를 들고 움직였다. 술법사라고 해도 삼정의 경지에 오른 초인이다. 일반인보다 육체 능력이 뛰어난 건 당연했다. 성인 남성 정도는 가볍게 들 정도로.
멀지 않은 곳에 동굴이 있었다. 밖에서 보면 내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깊이를 가진 동굴이었다. 그렇다고 안전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여긴 평범한 산이 아니라 도명산이다. 조금 방심하면 위험한 것들이 튀어나올 테지.
사마령은 동굴에 결계를 쳐서 그나마 안전하게 만들었다. 그 후, 내 몸을 살펴본다.
“…심각하군요. 다리에 남은 주독도 주독이지만… 기혈과 단전이 너무 많이 상했습니다. 심장이 당장 멈춰도 이상하지 않으나… 뇌기(雷氣)가 심장이 멈추지 않도록 보호하며 힘을 주고 있군요.”
그랬나?
심장에 집중했다. 그녀의 말대로 미약한 뇌기가 심장을 자극하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에 마기(魔氣)는 기혈을 조금씩 악화시키고 있다. 몸꼬라지가 이렇다 보니 통제력이 약해진 탓이다.
‘누가 마기 아니랄까 봐.’
문제는 없다. 마기는 내 기혈을 악화시키면서도 육체에 활력을 넣어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마기 덕분에 육체의 회복력이 상승했다는 뜻이다.
‘12시간만 견디면 돼. 그 후에 완전 회복을 쓸 수 있으니까.’
12시간을 버틸 수 있냐가 문제였다. 도명산은 부상자에게 친절한 곳이 아니니까.
그 외에도 최악의 경우도 있었다. 사마령이 나를 버리는 것. 지금 내겐 사마령이 희망이었다.
‘포인트로 재사용 대기시간 초기화권을 구매하는 건 최악의 순간으로 미루자. 포인트가 아깝잖아.’
엘릭서는 재사용 대기시간 초기화권보다 더 비쌌다. 나 자신에게 쓰긴 굉장히 아까웠다. 엘릭서는 남에게 쓸 수 있기에 귀한 거였다.
사마령은 내 옆에 앉아서 차분히 내 몸을 정리했다. 깨끗한 천으로 내 몸을 닦는다. 차가운 천이 얼굴에 닿으니 꽤 기분 좋았다. 내가 차분히 있긴 하지만, 지금 내 몸에선 고열이 발생하는 중이었다.
“더러운 옷은 탁기(濁氣)가 서려 있지요. 탁기는 회복에 방해됩니다. 옷을 바꿔입는 게 좋겠군요. 공간함에 여분의 옷은 가지고 계신지요?”
“…제가 입고 있는 흑호포(黑虎袍)라고 법기입니다.”
흑호포는 청결을 유지하고, 피를 흡수하는 능력이 있었다. 흡수한 피의 힘으로 저절로 재생하는 것이다.
“제 눈에는 평범한 옷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방금 전투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군요.”
아쉬우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삼정경의 고수와의 전투에서 멀쩡할 정도로 대단한 법기는 아니었으니까.
“제 공간함에 여분의 옷이 있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필요한 일을 꺼릴 정도로 수양이 얕진 않습니다.”
사마령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사마령의 경지를 생각하면 그 나이는 최소 200살이다. 어쩌면 그 배 이상일 수도 있었다. 외간 남자의 알몸을 보고 부끄러워할 나이는 아니었다.
그녀가 내 공간함에서 물건들을 꺼냈다. 내 공간함에 있는 건 여분의 옷과 검, 비상식량과 은자 몇 개가 전부였다. 내겐 인벤토리가 있으니 털릴 위험이 있는 공간함을 중요하게 쓸 이유가 없었다. 적당히 구색만 갖춰 놓았다.
“대협께선 소탈하시군요.”
쓴웃음을 지었다.
소탈? 그럴 리가. 그냥 중요한 것들은 안전한 곳에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사마령이 내 옷을 벗겼다. 고개를 움직일 수 있었기에 나도 내 몸을 볼 수 있었다. 썩 좋은 꼴은 아니었다. 피부는 벗겨져 있고 혈관도 몇몇 곳이 터져 있었다. 단지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가 바지를 벗겼다. 자지가 드러났다. 사마령이 멈칫거렸다. 곧바로 손을 움직여 일을 이어갔으나 분명 멈칫거렸다.
‘내 자지를 보고 놀랐네. 놀랄 수밖에 없는 크기긴 하지.’
뿌듯함을 느꼈다. 그녀는 내 옷을 완전히 벗긴 뒤 깨끗한 천으로 몸을 닦았다.
자지가 발기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미녀가 내 몸을 정성스레 닦아주는데 어찌 발기를 참을 수 있으랴. 병신 꼴인 몸과 달리 내 자지는 아주 건강했다.
나는 민망한 척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건강한 남성이 성욕이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사마령은 조심스럽게 내 자지를 잡고 천으로 닦았다. 몸 구석구석을 닦는데 자지만 안 닦으면 이상한 일이긴 했다.
야릇한 시간은 지났다. 나는 뽀송뽀송한 상태가 되어 바닥에 누워있었다. 사마령은 내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사마가주. 왜 저를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보시다시피 지금의 저는 짐 덩어리일 뿐입니다.”
“대협께선 저를 구하려다 이렇게 되셨지요. 그저 구명의 은을 갚을 뿐입니다. 저는 신의를 모르는 여자가 아닙니다.”
“제 질문 자체가 실례였군요.”
사마령의 평가를 재평가한다. 겉으로 볼 때는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혈한 같았는데.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의문이 생겼다. 나는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적당한 대화는 쌓는데 좋으니까.
“그때 갑자기 공간이 일렁였지요. 원래 시간이 지나면 다음 공간으로 갈 수 있었던 겁니까?”
“아닙니다. 그 공간에서 제물이 채워졌기에 다음으로 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제물들이라면….”
“요괴, 뼈벙사, 강시. 그것들은 제물로써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요괴는 말할 것도 없고, 뼈병사와 강시는 시간과 재료, 노력을 들여서 만들어진 물건이니까요.”
“계속 여기에 이러고 있어도 됩니까?”
“도명산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먼저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 그 전제는 틀렸습니다. 셋이 남기 전까지 도명산의 정상은 열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살아남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대협께선 회복에 집중하시지요. 제겐 대협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전 이 꼴입니다.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이전과 같은 힘을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이곳에서 대협만큼 믿을 수 있는 인물은 없습니다. 저는 대협의 강함을 믿고 있습니다.”
“기필코 그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런데… 물 좀 마실 수 있겠습니까? 목이 마르군요.”
“도와드리지요.”
사마령이 공간함에서 물통을 꺼냈다.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받쳐 주며 입에 물통을 갖다 대준다. 응애가 된 느낌이었다. 나는 이 묘한 감각을 느끼며 물을 받아먹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차가운 눈빛은 여전했다. 아니, 눈매가 날카로워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인 것 같다. 편견을 버리고 다시 그녀의 눈을 보면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콰지지직!
“으아아아아아악!”
동굴 밖에서 나무 부서지는 소리와 비명이 울렸다.
나와 사마령이 동시에 움찔거렸다. 동굴 밖에 무언가가 있었다. 우리는 숨죽이고 최대한 감각에 집중했다.
감각이 엉망이었다. 느껴지는 게 없었다. 내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가?
“사마가주. 뭔가 느껴지십니까?”
“아니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공간 자체가 기감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아까까지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나가서 확인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약한 놈들일지도 모릅니다.”
“안전이 제일입니다. 대협께선 회복에 전념해 주십시오. 이 동굴에는 혼원만진(混元萬陣)이 설치되어 있으니, 삼정경의 고수가 아닌 이상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자세히는 몰라도 자신하는 결계인 듯했다. 나는 그녀를 믿기로 했다.
회복에 전념하는 척 두 눈을 감고 사마령을 어떻게 꼬실지 고민했다. 회복? 12시간만 완전 회복을 쓸 수 있게 된다. 회복에 전념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기회였다. 사마령은 지금 내게 호의를 가지고 있으니까. 무리해서 그녀를 구해준 보람이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저 멀리서 또 다른 비명이 들려온다. 퍽이나 공포스러운 상황이었으나,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