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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13화 (1,893/2,000)

Chapter 2113 - 2113. 광명승천도

쾅쾅쾅쾅쾅!!

괴물이 결계의 입구를 두들긴다. 그 행위에서 지성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직 살의와 본능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사마가주. 결계는 안전합니까?”

“…….”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괴물의 등장에 삶을 포기한 것일까? 아니다.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달싹거리며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주문이 흘러나온다. 아마도 결계가 부서지지 않도록 유지하고 있는 것이리라.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났다.

쾅쾅쾅쾅쾅!

괴물은 여전히 결계를 두들겼다.

사마령이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고 있기에 결계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 괴물 새끼도 집요한 놈이군. 어디 어떻게 생겼는지 상판 좀 볼까.’

[천안(天眼)을 개안합니다.]

흙과 바위 등으로 막혀 있는 입구 너머를 투시한다.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덩치는 곰보다 컸다. 인간처럼 두 발로 걷고 두 팔을 사용한다. 온몸이 털북숭이였고 두 눈에서는 녹색 기운이 흘렀다. 겉모습만 보면 괴물이라기보다는 괴인에 가깝다.

‘……괴물이 맞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피 대신 음기가 흐른다.’

생물인지, 생물이 아닌지 헷갈렸다. 내 식견으로서는 정체를 판단할 수 없었기에 그냥 괴물이라 부르기로 했다.

쾅쾅쾅쾅쾅!!

나는 조용히 입구를 노려봤다. 괴물이 결계를 뚫고 들어온다면 완전 회복을 써야 했다. 대놓고 쓰기엔 좀 그러니 사마령의 눈치를 좀 보면서.

쾅쾅쾅쾅쾅!!

‘이 새끼는 지치지도 않나? 3시간 내내 두들기고 지랄이야.’

다른 것보다 소음이 가장 짜증 났다. 사람들이 왜 층간 소음에 이를 가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할까.

세상의 어둠이 물러간다. 검은 하늘은 파랗게 변하고 태양이 떠오른다. 밤새도록 결계를 두들기던 괴물은 해가 떠오르자마자 어딘가로 도망쳤다. 몸을 옥죄던 금제도 사라졌다.

괴물이 결계를 두들기는 동안 계속해서 주문을 읊던 사마령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얼굴은 땀으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사마가주. 괜찮으십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말과 달리 피로의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초인이라 할지라도 며칠을 밤새는 건 힘들었다. 특히나 오늘은 밤새도록 주문을 외워 결계를 지켰다.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나와 달리 그녀에겐 완전 회복이 없으니까.

“대협. 땀으로 흠뻑 젖으셨군요. 회복에 방해될 테니 도와드리겠습니다.”

사마령은 본인의 땀을 닦는 대신에 내 몸의 땀을 천으로 닦았다. 그녀의 손과 육체가 평소보다 가깝다. 확실히 그녀는 지쳐있었다.

그녀는 내가 용변을 보는 것까지 착실히 도와준 뒤에야 자신의 몸을 돌봤다. 속옷과 겉옷을 갈아입는다. 유감스럽게도 천을 허공에 띄워 가렸기에 그녀의 알몸을 볼 순 없었다. 그녀는 요강 위에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본 뒤 뒤처리를 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사마가주. 이 동굴은 놈에게 들켰습니다. 떠나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게 어떻습니까?”

“그건… 의미가 없을 것 같군요.”

“의미가 없다니요?”

“이 결계는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확신이 없고서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저는 동굴 입구를 완벽하게 숨겼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여길 찾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죠. 허나 그 괴물은 바로 결계를 두들겼습니다. 저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확신하고 있다는 겁니다.”

나는 현실의 살인마와 생존자 게임을 떠올렸다. 그 게임의 후반에는 살인마에게 버프가 들어간다. 거기서 가장 강력한 버프는 생존자의 위치가 표시되는 버프.

‘……어제는 넷째 날 밤이었다. 우리에게 금제에 걸린 것처럼 괴물에게 새로운 능력이 추가되어 이상할 건 없지. 그 능력 중 하나가 인간의 위치를 알아내는 능력이라 하더라도.’

결국 괴물의 목표는 이 공간 내에 있는 모든 인간을 죽이는 것일 테니.

즉, 동굴을 나가서 새로운 은신처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의미 없을 수 있다. 괜히 힘만 빼는 꼴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후에 밥을 먹었다. 물론 손을 움직이는 건 그녀였지만. 밥을 먹고 난 뒤에는 적당히 휴식을 취하며 대화를 나눴다.

천마신교, 남궁세가, 만무탑 등등. 이 세계에서 겪은 이야기들이었다. 의외로 사마령은 내 이야기를 재밌게 듣는 듯했다. 반대로 그녀의 이야기는 상당히 지루한 편이었다. 대부분이 황궁에서 있었던 단조로운 이야기들이었으니까.

덕분에 확신할 수 있었다.

사마령은 온실 속의 화초였음을. 그녀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위협을 겪어본 적 없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한숨도 못 자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긴장을 놓고 싶어도 놓을 수 없는 거겠지.

쿵쿵쿵!

점심이 지날 무렵에 누군가가 동굴 입구를 때렸다. 슬쩍 풀려 있던 분위기가 다시 팽팽해진다.

“이 결계 안에 그대가 있는 걸 알고 있소! 결계를 열어주시오! 밤의 괴물을 대처하기 위해 우린 손을 잡아야 하오!”

남자 목소리가 울린다. 남자는 계속해서 동굴 입구를 두들겼다.

‘남자 새끼가 나와 사마령의 보금자리에 들어오려 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놈이군!’

사마령의 눈치를 살폈다. 결정권은 내가 아니라 그녀가 가지고 있으니까. 그녀의 눈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마가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믿을 수 없는 자입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진 않군요.”

쿵쿵쿵!

남자는 멈추지 않고 입구를 두들겼다.

“나는 혼자요! 결코 그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오! 결계를 열어주시오! 나는 그대의 의견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소! 대화를 나눕시다! 정 나를 믿을 수 없다면 내가 가진 천옥으로 성의를 표하겠소!”

천옥을 준다? 이건 좀 끌렸다.

남자에게서 천옥만 받고 죽여버리면 괜찮지 않을까.

그러나 사마령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우습군요. 고작 재물 따위로 우리의 호의를 사려고 하다니.”

사마령은 그를 무시했다. 흔한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남자는 결계를 두들기며 애원했다. 우리는 그저 침묵했다. 답답해진 그의 말투는 애원에서 분노로 변해갔다.

“침묵만 하지 말란 말이오!!!”

쿵쿵쾅!

결계를 박살 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사마령은 조용히 주문을 외워 결계를 보강했다.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강기(罡氣)가 결계를 때린다. 결계가 살짝 흔들렸으나, 그뿐이다. 사마령이 두 눈을 뜨고 있는 한 결계가 뚫릴 일은 없다.

“빌어먹을 놈! 언제까지 여기에 처박혀 있을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괴물이 네놈을 끄집어내 사지를 갈기갈기 찢을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남자는 저주를 남기고 떠났다. 그는 끝까지 자기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다섯째 날 밤이 찾아왔다.

어김없이 금제가 몸을 덮쳐왔다.

“흡…!”

이번 금제는 단전을 직접적으로 압박했다. 마기가 흔들린다. 지금 내 몸 상태에서 내공을 억지로 운용했다간 내상으로 죽을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었다.

쿵.

무언가가 결계를 두들긴다.

쿵쿵쿵쿵쿵!

기계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타격음. 괴물이다. 괴물이 질리지도 않고 찾아왔다.

사마령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인내의 시간이 시작됐다.

체감상 자정이 되었을 무렵, 사마령의 주문이 잠깐 끊어졌다. 그녀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침을 삼켰다고 하기엔 목울대의 움직임이 너무 컸다. 무언가를 억지로 삼킨 듯한 모양새다. 나는 그녀가 피를 삼켰음을 알았다.

피가 입 밖으로 나오려 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주문을 계속해서 외고 있으니 목이 상했을 수도 있지만… 내상일 확률이 더 컸다.

그녀에게 한계가 찾아오고 있었다.

• • •

한 시간.

해가 떠오르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문제는 그 남은 시간을 막기 힘들었다. 사마령은 내상을 숨기지 못했다. 입과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른다. 그녀의 옷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쿨럭!”

그녀가 기침했다. 피가 한 움큼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의 상체가 앞으로 넘어지려 했다. 그녀는 간신히 상체를 세웠다. 다시금 주문을 외우려고 했으나….

콰직.

결계가 뚫리고 검은색 털로 가득한 팔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까마귀의 부리같은 시커먼 손톱이 허공을 긁어댄다.

“아.”

사마령이 탄식한다. 그녀의 눈에 체념과 절망의 빛이 돌았다.

괴물의 손은 결계의 틈을 붙잡고 억지로 찢는다.

“대협. 저 괴물은 생각보다 더 집요했습니다. 제게 아껴놓은 수단이 있긴 합니다만… 지금 상태로 제대로 발휘될지 장담할 순 없군요. 그래도 시도는 해보겠습니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니….”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사마령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녀가 공간함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쨍그랑!

괴물이 갑자기 결계를 확 부수고 달려와 사마령의 몸을 후려쳤다. 사마령의 몸이 종잇장처럼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혀 바닥에 쓰러졌다.

‘씨발!’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몸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부서진 오른팔에 힘이 실리고 찢겨나간 왼팔이 재생되었다. 다리를 좀먹던 주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기혈은 제 자리를 찾았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괴물이 천마군림보에 흠칫거리는 사이 거리를 좁히고 주먹을 내질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주먹이 놈의 몸통을 때린다. 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압축된 마기가 놈의 몸을 꿰뚫었다. 그럼에도 괴물은 쓰러지지 않았다.

‘한 방으로 안 되면 여러 방 때려주마.’

이어지는 용권 세례. 괴물도 무적은 아니었다. 그 몸은 서서히 무너지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곧 놈은 흐릿하게 변하더니 사라진다. 성공적으로 괴물을 죽였다.

“사마가주!!”

나는 바로 사마령에게 달려갔다. 다행히 사마령은 죽지 않았다. 내상을 심각하게 입긴 했으나 목숨은 살아있었다.

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좀 더 빨리 나섰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기회이긴 해.’

사마령을 꼬실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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