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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18화 (1,898/2,000)

Chapter 2118 - 2118. 광명승천도

“마지막 참여자들이 왔군.”

일렁이는 공간을 넘어서자마자 들린 것은 한 빡빡이 노인이었다. 낡은 승복을 입었고, 몸에는 염주로 칭칭 감겨 있었다. 마치 염주에 봉인된 것처럼.

“넌 또 뭐냐.”

나는 늙은 중을 보며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허허. 마두여. 내 정체 정도는 파악하고 있지 않나? 이 의식을 시작한 세 명 중 한 명, 명혼대사(明魂大士)의 사념이 바로 나일세.”

“그런가. 죽여버리고 싶군.”

나는 천강성의 빛을 사용했다.

필요한 건 천살성의 힘.

무엇이든 죽일 수 있는 힘.

천살성의 힘을 느낀 명혼대사의 표정이 바위처럼 굳어졌다. 사마령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본다.

“마라가 천살의 힘을 손에 넣었는가…. 아니, 천기에는 천살은 없다. 천강이 마의 운명 위에서 빛나고 있나? 말세로군.”

“유언은 그것뿐이냐?”

“마라야. 진정하라. 나는 널 해할 수 없다. 네가 정녕 날 온전히 죽여버린다면 의식이 여기서 끝날 수도 있다. 너는 원하는 것이 있어서 도명산에 온 것이 아니더냐?”

“네놈을 보니 도명산 자체가 함정이라는 느낌이 드는군. 애초에 망자에 불과한 네놈들이 왜 나타나는 거지? 도명산의 보상을 날름 훔쳐 먹기 위해서?”

“의식을 주관하기 위해서네. 최초에 우리 셋이 있었고, 도명산의 의식을 진행하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했지. 하여 대가를 지불하기로 했다네. 도명산은 천년마다 진행되는 법칙과 사념의 일부를 남겨 의식이 원활하게 주관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개소리를 지껄이는군.”

주먹을 들어 땡중을 죽여버리려는 찰나, 사마령이 내 어깨를 잡았다.

“대협. 명혼대사의 말에서 틀린 건 없습니다. 명혼대사가 여기서 사라지면 의식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천년 주기로 열리는 도명산의 의식은 아마 인과(因果)를 위한 것이겠지요.”

“역시 뛰어난 술법사구려. 도명산의 완성을 위해선 미래의 인과와 업을 끌어다 써야 했지.”

나는 살기를 가라앉혔다. 여전히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사마령의 말대로라면 지금 놈을 죽이면 모든 것을 망칠 수도 있었다.

“어이, 땡중. 이 공간에선 뭘 해야 하지?”

“마라여, 주변을 둘러보게. 여긴 바로 도명산의 정상 바로 아래일세. 저기 중심에 있는 길이 보이나?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일세. 환상 같은 눈속임이 아닐세.”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히 산의 고도가 높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안개 같은 게 보였는데… 안개가 아니라 구름이었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의 입구는 오색구름이 그 앞을 막고 있었다.

“올라가는 길 앞에 웬 놈들이 진을 치고 있군.”

“저 오색구름은 앞으로 두 시진 후에 흩어진다네. 정상에 가장 빨리 오른 세 명만이 도명산의 기적을 누릴 수 있지. 의식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네.”

“결국은 선착순인가.”

“원래는 3명이 남을 때까지 싸워야 하네만… 이번 도명산에는 제물이 잘 모였네.”

나는 천안을 개안해 입구에 진을 친 3명을 확인했다. 그중 한 명은 알고 있는 인상착의였다.

거구의 중년 남자. 체모가 유독 많았다. 표범인지 호랑이인지 모를 가죽들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산왕(山王) 백오철. 저 옆에 둘은 그 형제들이겠군.’

형제들은 별거 없다. 오기 상단(上段). 삼정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다만 산왕은 삼정 상단의 절대고수다. 무시할 만한 놈이 아니다.

‘산왕 백오철은 전대 산왕을 잡아먹고 강해졌다던데. 그렇게 강하나?’

삼정 1단에 불과한 나와 삼정 상단의 백오철. 경지 차이는 압도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근데 질 것 같지가 않군.’

명혼대사의 기척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증발한 것이라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기감을 펼쳤다. 기감이 널리 퍼지며 익숙한 기운과 처음 보는 기운이 감지됐다.

‘느껴지는 기운 대부분은 어중이떠중이들이군.’

익숙한 기운이 다가온다. 성지곤이었다.

“유진아!”

다가오는 성지곤에게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그는 팔다리가 없는 귀혼흑수의 뒷덜미를 잡고 있었다. 귀혼흑수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만 쳐다보고 있었다.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내 곁에 있던 사마령도 깜짝 놀랐다.

“귀혼흑수의 상단전이 상해있군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성지곤은 귀혼흑수는 땅바닥에 놓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 말로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반성은 아예 안 하더라고. 그래서 마음 가는 대로 범했어. 솔직히 삼정의 경지잖아? 그래서 그녀가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못 버티더라고.”

경지가 높을수록 정신력이 강해진다. 이건 맞는 말이다. 허나 그게 인간을 벗어날 정도로 초월적인 정신력을 갖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 경지를 높이더라도 결국은 인간. 정신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귀혼흑수를 범했다고요?”

사마령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성지곤과 귀혼흑수를 번갈아 쳐다봤다.

성지곤이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처음엔 저도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우리를 배신한 죄가 있으니 조금 혼내고 달랠 생각이었습니다.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한 번 정도는 용서해 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귀혼흑수는 반성을 전혀 안 하더군요. 그래서 벌이라도 줄 겸 귀혼흑수를 범했습니다.”

“……네?”

“한 번 범한 뒤에는 팔다리를 잘랐습니다. 술법을 쓰려고 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거기서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했더라면 좋게 대우해 줄 수 있었는데… 귀혼흑수는 끝까지 저를 미친놈 취급했습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었지요. 끝까지 저를 미친놈 취급하니 미친놈이 되어주는 수밖에. 저는 귀혼흑수를 계속해서 범했고… 귀혼흑수는 망가졌습니다. 이젠 똥오줌도 가리지 못합니다.”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이유가 정신적인 충격 때문일까? 아니면 물리적인 충격 때문일까? 나는 왠지 후자 같았다.

“세상에. 그 귀혼흑수가….”

“저는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도중에 너무 흥분해서 귀혼흑수가 이렇게 돼버린 게 아닌지….”

사마령은 기이한 것을 보는 눈으로 성지곤을 보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성지곤 대협이 잘못한 건 없습니다. 귀혼흑수는 무고한 도시를 멸망시킨 적 있는 범죄자입니다. 죽더라도 누구 한 명 동정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 일에 관해선 제가 뭐라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닙니다. 그러니… 이번 일은 함구하겠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사마가주.”

나는 성지곤에게 물었다.

“귀혼흑수는 어쩔 셈이냐?”

“내가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끝까지 책임져야지. 앞으로 귀혼흑수가 강시술사로서 날뛰는 일은 없을 거야.”

귀혼흑수는 성지곤의 오나홀이 되었다. 귀혼흑수를 바라보는 성지곤의 눈빛에는 안타까움과 색욕이 동시에 존재했다.

‘어떻게 된 건지 알겠네. 성지곤은 조교에 실패했어.’

귀혼흑수는 지금껏 성지곤이 상대해 온 늙은 여자들과 궤를 달리하는 여자였다. 기본적으로 적대적인 관계다. 성지곤은 귀혼흑수의 어마어마한 고집을 꺾지 못했다. 나처럼 성감 고조를 갖고 있는 게 아니니 쾌락 조교도 힘들었을 거다. 늙으면 성욕도 없어지니까.

여하튼 지금 중요한 건 두 시진 뒤에 열리는 길이었다.

성지곤과 사마령은 나를 보며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떨거지들을 이용하자.”

“아, 그거 말인데. 힘들 것 같아. 사흘 전에 반오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협박해서 한 무리로 모았어. 혼자서는 저 입구를 뚫기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야. 다른 사람들은 실날같은 희망을 위해서라도 반오에게 협력하기로 했고. 뭐, 진심으로 협력하는 건 아니겠지만.”

쿵쿵쿵!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소가 수십 명의 사람들과 함께 산왕을 향해 돌진한다.

“시작하는 모양이네.”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텐데도 돌진이라…. 어지간히 자신 있는 모양이군요. 대협. 우린 어부지리를 노리면 되겠습니다.”

사마령의 말이 맞았다. 조용히 있다가 어부지리를 노리면 된다. 명혼대사의 말로는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열릴 때까지 두 시진이나 남았으니까.

‘뭔가 찝찝한데.’

뭐가 찝찝한 거지? 저기서 날뛰고 있는 반오? 결계 등을 이용해 잘 버티고 있는 산왕쪽?

‘아니. 그게 아니야. 명혼대사. 그 땡중이 찝찝해.’

명혼대사가 말한 두 시진 후에 길이 열린다는 말. 그게 정말 두 시진 후일까?

그 땡중이 9개의 진실과 1개의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었다.

“너무 찝찝해서 안 되겠군. 나도 저기에 참가한다. 령이는 술법으로 보조를. 지곤이 넌 령이를 지켜.”

“알겠습니다.”

“네 감이면 맞겠지. 좋아.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사마가주를 지킬게.”

나는 지면을 박차며 격전지를 향해 달렸다. 눈앞에 보이는 장애물들을 모조리 죽일 생각을 하니 찝찝함이 가셨다.

전장은 혼란스러웠다. 산왕 무리를 싸우던 놈들이 동료를 배신하며 자기들끼리 싸운다. 반오는 산왕과 1대1로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내가 나타나자, 모두가 내게 시선을 보낸다. 내 존재감이 전장을 압도한 것이다.

쿵!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전력을 다해 일보(一步).

마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쿵!

출지(出志)를 넘지 못한 약해빠진 것들이 피를 토했다.

떨거지들을 조소하며 이보(二步).

이어서 약자들의 죽음을 확신하며 삼보(三步).

대부분의 경쟁자는 천마군림보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몸이 터져나간다. 피비린내가 전장을 뒤엎었다. 나는 오른손에 화련비도를 쥐고 반오를 향해 뛰었다.

“반오!! 그때의 복수다! 네놈을 쳐 죽일 순간만을 손에 꼽아 기다렸다!!”

“이, 주제도 모르는 인간놈이!”

“크하하! 요괴놈아! 네놈이 죽을 때가 왔구나!”

반오는 노성을 지르고 산왕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내 칼날이 향하는 곳은 반오가 아니라 산왕이었다. 온몸에 호신강기를 두른 채 반오를 상대하고 있던 산왕이 깜짝 놀랐음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몸에 두른 호신강기를 믿는 것이다.

천마검은 산왕의 호신강기를 가르며 몸통을 베어낸다. 그제야 산왕이 뒤로 물러났다.

“이제 막 삼정에 오른 애송이 놈이…!”

“내장까지 깊숙이 베지 못했나? 외공을 극한까지 익힌 놈이군.”

“네이놈!”

쾅!

반오가 산왕을 들이받았다. 내가 욕하려던 놈이 뒤로 날아가 처박힌다.

소의 형태에서 인간의 형태로 돌아와 뼈칼을 쥔 반오가 내게 제안했다.

“소천마. 우선 저놈을 죽이는 게 어떠냐?”

“좋지.”

대답과 동시에 반오에게 칼을 휘둘렀다. 반오는 뼈칼을 들어 내 공격을 막았다.

“하. 마공을 익힌 인간놈들은 역시 거기서 거기군.”

뒤로 날아갔던 산왕이 폭발적인 기세로 우리에게 뛰어왔다.

“이 자라 같은 새끼들이! 둘 다 산채로 씹어먹어 주마!!”

결승점은 앞두고 개 같은 삼파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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