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20 - 2120. 광명승천도
반오와 산왕이 죽었으니 나를 막을 놈은 없었다. 나는 나머지 어중이떠중이들도 싹 다 죽였다. 산왕에게 일격을 허락하긴 했어도 죽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건 아니다. 피를 3번 정도 토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이제 남은 건 도명산 정상에 오르는 것뿐이니까.
우리는 정상 입구로 다가갔다.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건 셋. 여기에 모인 건 넷이었다. 허나 아무 문제 없다. 성지곤이 들고 있는 귀혼흑수는 팔다리가 없는 데다 정신도 나간 상태다. 대충 입구에 구속해 두고 정상으로 올라가면 된다.
정상을 막고 있던 오색구름도 이젠 색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옅어졌다.
“령아. 넌 뭘 원하기에 도명산에 온 거야? 네가 가진 권력과 사마세가의 힘이면 어지간한 건 전부 구할 수 있잖아.”
사마령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하늘을 올려봤다.
“대협은 승천을 알고 계시나요?”
“승천. 들어봤던 것 같긴 해.”
나는 성지곤을 바라봤다. 성지곤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승천. 하늘로 올라간다. 저를 비롯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우화등선(羽化登仙)의 다른 이름이라 생각했습니다. 허나 고문헌을 뒤져본 결과 등선과 승천은 다른 개념이란 걸 알아냈습니다. 저는 승천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승천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황궁 제사장 출신인 네가 모르는 정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는 정보는 아니라는 뜻이군.”
“저라고 해서 황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닙니다. 황제 폐하께서 금하신 정보는 알 도리가 없지요.”
“승천이 황제가 금지한 정보야?”
“제가 알 수 없었다는 걸 보면 그럴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황제 폐하께서 건국하시기 전부터 정보가 제한되고 있었거나….”
건국이전의 이야기라.
아마 천년도 더 된 이야기다. 나로서는 까마득하고 재미없는 역사이야기. 대충 고개를 끄덕여 줬다.
길을 막고 있던 오색구름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숨어 있던 자들이 튀어나왔다.
백호 가면을 쓴 자들이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놈들이 숨어 있는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놈들은 은신술 하나만큼은 경지에 올랐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면 은신술에 다른 비밀이 있거나.
짜증이 확 났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긴 꼴이다.
“너희는 또 뭐냐.”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마풍(魔風).
칼을 휘두른다. 강기는 검은 바람이 되어 백호 가면을 쓴 놈들에게 날아갔다. 닿는 것만으로도 썰어버리는 마풍. 기껏해야 오기 상단의 경지에 불과한 놈들이 마풍을 쉽게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들 앞에 황금빛이 일렁거린다.
황금빛에 검은 바람이 닿는다. 검은 바람의 방향이 강제로 꺾여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소멸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억눌린 것처럼.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백호 가면을 쓴 놈들 뒤를 노려봤다. 황금빛 기운이 일렁이며 하나의 형상을 취한다.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명혼대사였다. 그의 머리 뒤로 황금빛 후광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그의 자태는 하나의 불상과도 같았다.
나는 이를 갈았다. 보고 있자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딱히 정신적인 공격 같은 게 아니다. 바퀴벌레를 보고 혐오감을 느끼는 것과 같다. 정확히는 나의 마기(魔氣)가 명혼대사의 기운에 반발하는 것과 비슷하다.
“너희는 이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원래 그러해야 했고, 그러려고 했었네. 허나, 너를 보고 내 뜻을 바꿨네. 마라여, 너는 지극히 위험하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순수한 악을 품고서 절세의 신공까지 손에 넣었지. 더군다나 별 중의 으뜸이라는 천강성의 힘을 받지 않았나. 내게는 보이네. 너로 하여금 신음할 천하의 모습이…!”
“아주 자기가 부처인 줄 아는군.”
천마신공을 운용하며 마기를 내뿜었다. 내상이 도졌다. 상관없었다. 완전 회복이 남아있다.
명혼대사에게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와 마기에 저항했다. 역시 짜증 나는 기운이다.
“마라여, 너는 이곳에서 죽어야 한다.”
“그 가면 쓴 놈 셋을 이용해 날 죽일 셈이냐? 아니지. 저것들은 고기 방패인가?”
“이들은 백호의 일족. 아주 오래전부터 세상을 위해 헌신해 온 자들이지. 지금 또한 그들은 세상을 지키기 위해 일하고 있나니.”
“백호의 일족? 아, 기억나네. 청룡의 일족이 배신한 건 알고 있냐?”
“마라여, 거짓으로 우롱할 생각 마라. 청룡의 일족이 배신해? 그들은 세상을 위해 희생한 자들이다. 청룡의 가호가 그들을 지켜주고 있나니. 배신과 타락은 존재하지 않는다.”
확고한 명혼대사의 말과 달리 백호 가면을 쓴 놈들이 유일하게 드러낸 부위인 눈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청룡의 일족의 배신을 알고 있는 것이다.
사마령이 속삭이듯이 내게 말했다.
“…대협. 명혼대사는 소림의 절기 중 하나인 불광항마신공(佛光降魔神功)을 익혔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마공의 상극인 불가계 무공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무공입니다. 듣기로는 과거의 천마가 불광항마신공에 당해 죽었다고 합니다.”
“아, 그래? 그럴 수 있지. 역대 천마 중에는 병신들이 꽤 많아서. 근데 난 그놈들과 달라.”
칼을 쥐고 놈들에게 걸어갔다. 백호 가면을 쓴 놈들이 긴장하며 검을 뽑았다.
“소천마여. 도명산은 저희에게 양보해 주십시오. 명혼대사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희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세상의 평화를 위한 일입니다.”
“세상의 평화는 개뿔. 지금 평화와 질서를 지키고 있는 건 너희가 아니라 황제다. 너희는 청룡의 일족이나 하루빨리 정리해라.”
“……소천마여, 지금 그대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다는 건 누구나가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토혈을 억지로 참고 있지 않으십니까?”
“토혈을 참아? 우에에에에엑!”
나는 일부러 혈도를 자극해 피를 토해줬다. 시커멓게 죽은 피와 깨끗한 선혈이 뒤섞여 바닥에 떨어졌다.
“확실히 불광인지 물광인지 좀 좆같긴 해. 저 가짜 부처를 보고 있으면 역겨운 벌레가 내 주위를 빨빨 돌아다니는 느낌이랄까.”
“갈! 마귀여, 너는 결국 부처 앞에서 회개하며 눈물 흘리리라!”
명혼대사가 소리쳤다. 나는 놈에게서 뿜어지는 황금빛을 몸으로 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가면 쓴 놈들의 행색을 살폈다. 전투 흔적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명혼대사와 손을 잡고 여기까지 왔을지도 모른다. 명혼대사 입장에선 유력 후보들이 마두, 요괴, 산적, 강시술사 등 하나 같이 마음에 안 들었을 테니까.
“씨발놈들이. 마지막에 나타나서 내 걸 날름 훔쳐 먹으려 해? 절대 안 되지.”
천마신공(天魔神功) 파천황(破天荒).
나의 영혼을 부수고, 부순 영혼을 장작 삼아 활활 태운다.
내 머리카락은 새하얗게 변하고, 거대한 마기가 내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지금의 나는 천마를 넘어선 천마, 초천마다.
“이 마귀놈이! 자신의 영혼을 바쳐 역천의 힘을 손에 넣었는가! 허나,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백호의 일족이여! 그것을 사용하라!”
백호 가면을 쓴 놈들이 품에서 하얀 백호 조각상을 꺼내 바닥에 내던졌다. 그것들은 3개의 신성한 바위가 되어 내 몸에 달라붙었다. 내 몸을 구속한 것이다. 바닷물처럼 콸콸 쏟아져 나오던 마기가 강제로 틀어막힌다.
“대협!”
“유진아!”
사마령과 성지곤이 경악한다. 나는 그들이 뭔가를 하기 전에 말했다.
“알아서 할 테니 가만히 있어.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앞으로 나아가자, 백호 가면을 쓴 놈들이 움찔거린다.
“영백석 3개의 구속을 당하고서도 움직이다니….”
“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명혼대사!!”
그들의 뒤에 떠 있는 명혼대사는 반개한 눈으로 날 지긋이 바라봤다. 그의 오른손이 천천히 움직인다. 그의 손가락이 아래로 내려가는 동시에 하늘에서 황금빛 불광이 내려와 내 몸을 짓누른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그 어떤 마도 불광을 넘지 못하며 굴복하리라.”
온몸이 타는 것 같다.
그뿐이었다.
나는 모든 힘을 개방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피부가 녹아내렸다. 마기가 살점에 달라붙어 내 피부가 되었다.
“마라…!”
명혼대사의 자비로운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 눈을 통해 공포심이 느껴졌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백호 가면을 쓴 놈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바르르 떨다가 이내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시체에 시선조차 주지 않고 명혼대사에게 다가갔다.
“부처를 본 적 있지. 대적할 마음이 안 들더군. 그 파순마저 부처를 보자마자 꼬리를 말았다.”
“이, 마라가. 무슨 허언을 하려는 것이냐!”
“네놈은 진짜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다. 부처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놈. 열반의 열 자도 모르는 땡중놈.”
“이놈!!”
명혼대사가 황금빛 기운이 서린 손바닥을 뻗는다. 그 유명한 여래신장(如來神掌)이다.
그에 나 또한 손바닥을 뻗었다. 새까만 마기를 담은 손바닥.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신장(天魔神掌).
콰아아아아앙!
폭발음과 함께 밀려난 것은 명혼대사였다. 불광이 빛을 잃고 몸의 절반이 사라졌다. 명혼대사는 허공에 떠 있지도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뜬 채 바닥에 떨어졌다.
“말도, 말도 안 된다! 이 내가 마라 따위에게…!!”
“죽어라, 땡중.”
화련비도로 명혼대사의 목을 벴다. 천살성의 힘을 사용했다. 완전한 죽음. 비록 진짜가 아닌 도명산에 귀속된 망령이라 하더라도 두 번 다시 나타날 일은 없을 것이다. 명혼대사의 몸은 잿빛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나 또한 파천황의 대가로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혼이 깨져 죽고 다시 부활 했다. 이제 정말로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없었다. 오색구름도 사라지고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사마령은 백호 가면을 쓴 놈들의 시체를 바라봤다.
“아는 놈들이야?”
“아뇨. 하지만 그들 일족이 이 세상을 위해 암약한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여기서 만나니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암약은 개뿔. 걍 자기 만족하는 대로 사는 놈들이야.”
“그들 수호사신(守護四神)은 사신과 계약하여 인간계를 지키는 수호자들이죠. 그런 이들이 뭐가 부족하여 도명산에 입산했을까요.”
“글쎄. 중요한 일은 아닐걸? 그보다 정상으로 가자고. 보상만 받으면 끝이야.”
보상을 받은 뒤에는 바로 사마령과 함께 미령이 있는 낙월산으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