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24 - 2124. 광명승천도
파란 불꽃의 여우는 우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이 불여우는 뭐야?”
“글쎄요. 이런 애가 여기에 있었나…. 음. 제가 여우불 술법을 자주 써서 심상에 생겨난 거 아닐까요?”
불여우는 내 다리에 몸을 비볐다. 몸이 불로 타오르고 있지만, 정작 뜨겁지는 않았다. 나는 자세를 숙여 불여우를 잡아 들어 올렸다. 겉모습과 달리 무게나 감촉은 평범한 여우 같았다. 여우는 얌전했다. 불타는 몸에서 유일하게 타지 않는 검은색 눈동자를 빛내며 날 바라봤다.
“우와, 귀엽네요. 어디 저도 한 번 안아볼까요?”
미령이 호들갑을 떨며 불여우에게 손을 뻗었다.
“캬르르릉!”
불여우가 으르렁거렸다. 손까지 씹을 기세였던지라 미령은 재빨리 뻗은 손을 회수하며 울상을 지었다.
“내 심상에서 살고 있는 주제에 왜 날 싫어하는 거야?!”
불여우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러다 지겨워졌는지 다리를 버둥거리며 내려달라는 뜻을 내비쳤다.
불여우를 바닥에 내려놓으니, 불여우가 어딘가로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 꼬리를 살랑거린다. 우리는 불여우의 뒤를 쫓았다.
“심상 밖으로 나가면 뭘 할 거야? 바로 조화경에 도전하려는 건 아니지?”
“설마요. 성급하게 시도했다가 실패했는걸요. 좀 더 수련하고 확신이 들 때 시도해 봐야죠.”
“이번에 확신이 없는데도 시도 한 거야?”
“확신은 없었어도 막연한 자신감은 있었어요. 이래 보여도 저 천재예요. 실패한 경험은 거의 없어요. 이번에도 성공하겠지. 이유 없는 자신감은 결국 실패로 돌아왔죠. 사실 초조함도 있었어요. 서방님이 너무 빨리 성장하시니까요. 이렇게 뒤처지게 되면… 결국 서방님에게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게 아닐까 하고.”
“쓸데없는 걱정이야.”
“네. 그렇죠. 서방님이 좀 더 자주 절 현대로 불러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현대에서 꼭 하고 싶은 거라도?”
“많죠. 밀린 드라마도 보고 싶고, 신작 게임도 하고 싶고, 유행하는 음식도 먹고 싶고…. 그 외에도 너무 많아서 꼽을 수 없을 정도죠. 아, 가상 현실 게임도 해보고 싶어요. VR 고글 쓰는 거 말고. 풀 다이브로 진짜 같은 가상현실 게임이요.”
“현대 기술력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잖아.”
“하지만 서방님은 가능하잖아요. 가상 현실 게임을 할 땐 꼭 저도 불러주세요! 안 부르면 삐칠 거예요.”
“그래, 그래.”
대충 대답했다. 가상현실에는 별 관심 없었다.
불여우가 도착한 곳은 불타는 곳이었다. 파란 불이 풀과 나무를 태우고 있었다. 쫑알대던 미령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가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왜 그래?”
“…옛날 기억이 떠올라서요. 여우불을 수련하던 미숙한 시절이었죠. 여우불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산에 불이 났어요. 딱 지금처럼요. 그때는 어머니가 구해주셨는데… 제 친구가 불에 타 죽었죠.”
“친구?”
“사람은 아니고 여우 친구예요. 으음. 최근에는 떠올렸던 적도 없는데… 막상 떠올리니 기분이 안 좋네요. 이게 PTSD인가?”
PTSD 치고는 지나치게 멀쩡해 보였다. 농담할 여유가 있는 걸 보니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다. 근데 왜 심상이 불타고 있는 거지?
의아함을 느낄 때였다. 불타는 산에서 미령이 나타났다. 그녀는 불길에 휩싸여 내게 손을 뻗었다.
“서방님! 저 여자는 가짜예요! 제가 진짜예요! 절 구해주세요!”
정작 불에 잡힌 미령은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알몸인데도 땀 하나 흘리지 않고 있다. 화상을 입은 흔적도 없었다.
“저게 뭐라는 거야?!”
내 옆에 있는 미령이 소리쳤다.
나는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게 진짜인가? 저게 진짜인가? 똑같이 생겨서 잘 모르겠다. 느껴지는 기운도 똑같다. 다만 곁에 있는 미령에게 마음이 기운다. 지금까지 그녀와 돌아다니며 대화했으니까.
“대체 뭔 상황이야.”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제가 할 말이에요! 내 심상이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그냥 저희끼리 나가죠.”
“가짜 주제에! 서방님 믿지 마세요! 저년이 지금 서방님에게 꼬리 치고 있어요!”
“꼬리치는 건 너겠지! 옷도 안 입고 뭐 하는 거야?!”
“너도 안 입었잖아!”
둘이 빽빽 소리쳤다. 얼마 안 가면 샹년 소리가 튀어나오고 부모의 안부를 물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게 되면 미령의 부모만 일방적으로 욕먹는 꼴이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시덥잖은 생각을 지우며 일단 미령을 구분했다. 내 옆에 있는 미령은 그냥 미령. 불길에 손발이 붙잡힌 미령은 불미령.
그녀들은 서로에게 삿대질했다.
“서방님! 저건 심마예요! 저년이 절 여기에 박아두고 제 행세를 하고 있다고요!”
“심마는 너겠지! 서방님은 날 구하러 왔어. 이제와서 질척거리지 말라고!”
“그만.”
그녀들이 날 바라봤다. 일단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건 불가능했다.
심마(心魔)? 가능성은 있었다. 현재 미령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심상에 갇혀 있으니까.
“지금부터 진짜 미령이 누군지 내가 가려내겠다. 내게 협조하지 않는 미령은 가짜고 심마다. 오케이?”
“제가 진짜라는 걸 증명해 드리죠.”
불미령은 의욕을 내보였다.
“서방님! 누가 봐도 제가 진짜잖아요!”
그냥 미령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평했다.
나는 미령을 쏘아보았다.
“어? 반항해? 너 짜가야?”
“아, 아뇨. 제가 실수했어요….”
그냥 미령이 꼬리를 내렸다.
“너희 둘 다 내 앞으로 와봐.”
“서방님. 이 불 때문에 못 움직이겠어요.”
나는 불미령의 손발을 잡고 있는 불길을 노려봤다. 그러자 불길이 사라졌다. 이 심상에서 내가 최고였다. 미령의 심상이지만.
손가락을 까딱인다. 둘이 내 앞에 섰다. 나는 그녀들의 몸을 매의 눈으로 살펴봤다.
풍만한 유방, 유두의 크기와 색과 형태, 빽보지의 상태 등등. 전부 일치했다. 꼬리의 털까지 전부 똑같은 것 같다. 적어도 겉모습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이건 속을 봐야겠네. 이럴 땐 보지 싸움이 제격이지. 보지 조임이 약한 놈이 가짜겠지. 안 그래?”
“네?”
“서방님?”
나는 양방향 딜도를 허공에서 만들어 냈다. 상상을 하니 바로 생겨난 것이다. 현실이 아니라 가능했다.
“그, 우리 둘만의 추억 같은 건 묻지 않으시고요?”
“서방님. 저희 좋았잖아요.”
“하기 싫으면 기권이지. 기권할 사람?”
“…….”
“…….”
“없지? 그럼 빨리 다리 벌려.”
미령들은 결국 보지 씨름을 하게 됐다. 나는 그녀들의 보지에 친히 딜도를 끝까지 넣어줬다.
“시작! 딜도가 빠지는 쪽이 패배야.”
“으으읏…!”
“흐그윽!!”
영차영차.
두 사람은 엉덩이를 조금씩 당겼다. 그래서 당겨지느라? 팽팽하지만 당겨지고 있었다. 비슷한 힘이었지만 불미령 쪽이 더 유리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앙?!”
불미령이 신음을 흘리는가 싶더니 그 보지에서 딜도가 반쯤 빠져나왔다. 중간에 정신 차리고 보지에 힘을 주지 않았다면 분명 전부 빠졌으리라.
“이익!”
불미령이 이를 악물었다. 이번엔 미령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미령의 보지가 분수를 뿜은 것이다. 결국 딜도가 미끄러지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보지 씨름은 불미령의 승리였다.
“이겼다! 내가 진짜야!”
“아, 안 돼…! 이건 불공평해요!”
“뭐, 이년아. 순순히 승복하시지?! 서방님! 저년이 가짜예요!”
“서방님의 영향을 받아서 이런 거라고요! 서방님이 계속 발정 나 있으니까 곁에 있던 저까지 영향받아 이렇게 됐잖아요! 이건 시작부터 불공평했어요!”
그냥 미령이 승복하지 못하고 소리쳤다. 추하지만 일리가 있었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도 내 영향을 받아 보지가 젖어 있었지 않던가.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들을 보다가 말했다.
“너희 셋 다 미령이잖아. 심마 따윈 없어.”
“저년이 심마가 아니라고요?”
“…셋이라뇨? 저희 말고 또 있어요?”
나는 한쪽에 떨어져 있는 불여우를 가리켰다. 불여우는 한심하다는 듯 미령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심마는 이런 식으로 나타나지 않아. 애초에 이 심상에 내가 있는데 심마 따위가 나타나서 뭘 할 수 있겠어?”
지금 미령의 심상을 지배하고 있는 건 나였다. 지금 심마 따위가 나타나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없었다.
“그러니까 저게 또 다른 나라고요?”
“저기에 있는 불여우도 저고요? 그게 가능해요?”
“나도 잘 몰라. 근데 심상이니까 분신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내일의 나는 모두 다르니까.”
“…….”
셋은 조용히 서로를 쳐다봤다. 이변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불여우와 불미령이 미령에게 끌려가듯 이동하더니 흡수되어 사라졌다.
“서방님의 말씀대로 저였네요. 여우인 저와 수행자인 저. 아아. 전 무의식적으로 그 둘을 나누고 있었어요. 그럴 필요 없는데 말이죠.”
미령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불타던 산이 푸르게 변해 있었다. 미령은 미령 나름대로 뭔가를 깨달은 모양이다. 어쩌면 정말 별거 아닌 깨달음일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심상 세계는 조금 넓어졌다.
나는 그녀가 얻은 깨달음을 묻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깨달음은 저마다 다르다. 이번에 얻은 깨달음은 아마 정체성과 관련된 깨달음일 터. 절대정신을 가진 나에겐 아무 의미 없는 깨달음일 것이 분명했다.
“서방님. 나가서 라면 끓여 드릴까요?”
“오랜만이라 기대되네.”
심상 밖으로 나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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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을 뜬 미령과 시선이 마주쳤다. 더 이상 그녀의 몸에서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왜 제 하복부를 만지고 있어요? 뱃살 확인하는 거예요?”
“뱃살은 없지만….”
내 손은 더 아래로 내려가 그녀의 음부를 콱 잡았다.
“꺄악?!”
“보지털은 있네. 꽤 자랐어. 심상에서는 보지털이 없었는데.”
“손 치워요!”
손을 빼냈다.
주위에는 우리 말고도 다른 이들이 있었다. 사마령은 흥미 깊은 눈으로 미령을 쳐다봤다. 위유는 어느새 가져왔는지 맥주캔을 홀짝이고 있었다.
“너희 둘이 물고 빨고 하는 것에 뭐라 하지 않겠다만… 지금은 손님도 있지 않느냐. 자중하거라. 그리고 여우야. 슬슬 저녁때다.”
“위유 님! 제 취급이 너무하지 않나요? 저 방금까지 혼수상태였거든요?”
“그런 너를 누가 보살폈다고 생각하느냐? 네 똥오줌을 누가 받아줬다고 생각하느냐?”
“저, 정말요?”
“농담이다. 먹은 게 없는데 나오는 게 있을 리가.”
“아오, 진짜!”
미령이 성질을 냈으나, 그뿐이었다. 감히 위유에게 달려들기엔 미령이 너무 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