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25 - 2125. 광명승천도
미령은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바쁘게 움직였다. 우선 우리를 방밖으로 쫓아내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나와 위유, 사마령은 거실에서 잡담을 나눴다.
사마령은 위유의 눈치를 많이 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위유는 강했으니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미령에게 향했다.
“그분의 이름이 미령이라 하셨나요. 호인족이라…. 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혼혈 일족이기에 놀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국에는 호인족같은 종족은 못 봤네. 혼혈 일족이라 부르나? 반요라 부를 줄 알았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때 미령은 무척 아름다웠다. 허나 다른 사람에겐 여우 귀와 꼬리가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 있었다. 나야 코스프레를 한 것 같아 꼴리지만. 이 세계의 사람의 눈에는 요괴로 보일 가능성이 충분했다.
“황제 폐하께서 그들을 혼혈 일족으로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요기를 사용하지 않는데 반요라 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혼혈 일족이라.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호인족의 조상은 영물이다. 그것도 그 유명한 구미호. 여우였던 그 영물은 인간과 혼인하여 자손을 남기고 등선하여 선계로 올라갔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호인족은 신선의 일족이었다.
영물의 특성을 물려받은 호인족은 특수한 능력이 있었다. 하나는 사람을 홀리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정기를 흡수하는 능력이다. 둘 다 어지간해선 잘 사용하지 않는 능력이라고 한다.
‘사용 못 하는 능력에 더 가깝지. 그야 호인족들은 자기들끼리 구유곡에 모여 사니까.’
자기들끼리 능력을 사용한다? 싸우자는 뜻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호인족들이 구유곡에 모여 사는 또 다른 이유는 구유곡에 정기가 풍족하기 때문이다. 정기란 곧 자연의 생명력이기도 하니까. 구유곡은 여러모로 호인족에게 딱 맞는 곳인 거다.
그렇다 하더라도 호인족이 마냥 구석에 틀어박혀 사는 일족인 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줄 안다. 인간의 정기를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수련에 도움이 되니까.
게다가 여긴 광명승천도 세상이다. 수련을 위해서, 재미를 위해서, 탐욕을 위해서 등등 온갖 이유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들이 널려 있는 세계.
“아까 보니 미령의 기운이 약해져 있었다. 정양할 필요가 있어 보이더군.”
위유가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멀쩡한 겉모습과 달리 미령의 기운이 약해진 것이 느껴졌다.
“경지상승에 실패하고 몇 달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으니 당연하죠. 요 몇 달은 제 정기를 줘야 할 것 같습니다.”
미령의 말로는 내 정기는 극상의 정기라고 한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굉장히 뛰어나다고 하던가. 정력 능력치가 낮았던 예전에도 그랬는데 지금은? 나는 미령에게 있어 걸어 다니는 보약이었다.
‘최근에는 내 정기를 전혀 안 탐냈지. 내 정기를 흡수하는데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건가?’
나야 죽을 때까지 정기가 빨려도 상관없었다. 완전 회복이 있었으니까. 아니, 내가 죽을 때까지 정기를 흡수할 수나 있나?
그때였다.
우우웅. 하고 공기가 진동한다. 미령이 낙월산에 쳐놓은 결게가 반응한 것이다. 즉, 불청객들이 낙월산에 들어왔다는 거다. 낙월산을 지나가는 이들은 아니다. 그랬다면 결계 자체가 반응하지 않는다.
낙월산의 주인인 위유는 태연자약했다. 불청객의 침입은 1년에 몇 번 있는 일이다. 그때마다 불청객을 내쫓거나, 죽여버린다.
“결계가 침입자를 감지했군요.”
“별거 아닌 일이지. 손님이 나설 이유도 없고. 제자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예.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위유가 이런 일에 직접 나서는 경우는 나나 미령이 없을 때였다. 내가 있을 때는 대부분 내가 처리한다.
“여긴 낙월산이다. 살생을 함부로 행하지 말거라.”
“넵.”
가서 모조리 죽이고 바로 돌아올 계획을 수정했다. 고작 이런 일로 위유와 갈등을 빚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집 밖으로 나가서 전자파를 퍼뜨렸다.
뇌천류(雷天流) 전자기파(電磁氣波).
전자파는 빠른 속도로 낙월산 전체를 뒤덮었다. 땅속에 있는 생물과 뛰노는 짐승들을 제외하고 인간의 기척을 찾는다.
5명의 인간이었다. 전원 무공을 익혔는지 빠른 속도로 낙월산 위로 오르고 있다.
비뢰신으로 내려가려던 나는 멈칫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제운령을 써볼까.’
인벤토리에서 제운령을 소환했다.
12각형의 쪽빛 금속패. 기운을 불어넣자, 빛이 났다. 동시에 내 앞에 구름이 뭉쳐져 만들어진다. 나는 구름 위에 올라타 아래로 내려갔다.
낙월산 위로 달리던 5명의 무인이 멈춘다. 오기의 고수 2명과 출지 3명. 그들은 나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강호의 선배님을 뵙습니다. 저희는 최근에 문파에 변고가 생겨 무야(無野)가 되었습니다.”
무야. 소속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손을 들어 그들의 말을 막았다. 그들의 사정 따윈 관심 없었다.
“너희들 사정 따윈 관심 없다.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주마. 여기서 떠나라. 낙월산에는 이미 주인이 있는 산이다.”
낙월산을 찾아오는 놈들 대부분이 자리 잡기 위해 오는 놈들이다. 낙월산에는 커다란 영맥이 있어서 수련하기 딱 좋은 곳이니까.
보통 내가 꺼지라 하면 꺼진다. 나는 삼정경에 오른 절대고수니까. 이놈들 전력으로는 날 이길 수 없다.
그런데 이놈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저 아랫마을에서 듣기로 낙월산의 주인은 낙월신녀라는 여인이라 들었습니다. 듣자 하니 수십 년 동안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걸로 보아 죽었다고 하더군요.”
생필품을 내가 전부 제공하니까. 위유가 아랫마을로 내려갈 필요가 전혀 없었다. 아무래도 위유는 아랫마을에서 살아있는 전설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저희는 강수창(降水槍)에게 멸문당했습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늦지 않다고 하지요. 그 복수를 위해서라도 영맥이 필요합니다. 선배께서 낙워산에 터를 잡으신 건 알겠습니다. 허나 보아하니 혼자이신 것 같군요. 제자나 부하들이 있었다면 그들이 나섰을 테니까요.”
“말이 길다. 본론부터 말해라.”
“저희는 이곳에 새로운 문파를 창설하려 합니다. 아래에 있는 마을들을 지배하여 얻는 모든 이익의 5할을 선배께 바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수련에 도움이 되는 영단이나 영약의 형태로 제공하겠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이 산을 이용하게 해주십시오.”
다른 사람에겐 혹할만한 제안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이익이 생기니까. 허나 내겐 아니었다. 내겐 천강성 시스템이 있고, 천마신교가 있다.
“너희는 운이 좋다. 내가 자비를 한 번 더 내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오른팔을 바치고 꺼져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7할을 바치겠습니다.”
“두 번이나 자비를 내려줬음에도 스스로 걷어차는가. 그리도 죽고 싶다면 죽여줘야 인지상정일 테지.”
제운령을 사용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순식간에 만들어져 햇빛을 가린다.
“뇌명과 함께 뒈져라.”
콰콰콰콰콰쾅!
굵은 번개가 번쩍이며 놈들에게 내려친다. 평범한 번개가 아니다. 내 힘이 듬뿍 들어간 번개다. 구름 덕분에 효율이 더 좋아진 건 당연했고. 위력으로 따지면 놈들을 단숨에 재로 만들고도 남을 것이다.
허나 놈들은 살아남았다.
출지 3명은 예상했던 대로 재가 되어 사라졌지만, 오기의 2명은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놈들을 노려봤다.
“네놈들 인간이 아니군.”
“저희는 인간입니다.”
“개수작 부리지 마라. 벼락에서 몸을 보호할 때 요기를 쓴 걸 느꼈다.”
요괴가 인간으로 의태 하는 것 자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황제가 지배하는 이 대륙은 요괴가 살기 팍팍한 곳이니까. 의아한 것은 이놈들이 구태여 의태를 해가며 낙월산에 자리 잡으려는 이유다.
“자비를 내려준 건 네가 아니라 우리란 걸 알거라.”
“흐…. 좋게 넘어갈 것이지… 네놈의 오만함이 결국 죽음을 불렀다.”
놈들이 의태를 풀었다.
인간의 모습이 녹아내리고 말의 몸에 호랑이의 털가죽을 입은 듯한 괴물이 나타났다. 둘 다 삼정경의 요괴였다.
“우리는 녹촉(鹿蜀)의 일족이다.”
“낙월샹년이 과거 우리의 부모와 조부를 죽였지.”
놈들의 목소리는 사람을 홀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동시에 사이한 힘이 담겨 있었다.
‘내 몸이 멀쩡한 걸 보면 정신에 영향을 주는 목소리인가 보군.’
물론 내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내가 침묵하자 놈들은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 계속해서 말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는 별개로 입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얼마나 많은 생물을 잡아먹었는지 주둥이에 피 냄새가 배 있었다.
“인간인 척 그년에게 다가가 기습할 계획이었다.”
“그걸 네놈이 다 망쳐놓았지. 위유가 살아있다는 건 알고 있다.”
“너는 우리에게 자비를 두 번의 자비를 내렸으니, 우리 또한 네게 두 번의 자비를 내려주마.”
“오른팔을 바치고 꺼져라.”
자비는 개뿔. 이놈들은 위유랑 싸우기 전에 나랑 싸워서 힘을 빼놓기 싫은 것이다.
“니들 따위가 스승님을 죽인다고? 너무 황당무계해서 헛웃음도 안 나오는군.”
“…그년의 제자였나?”
“그럼 이야기는 다르지. 죽어라!”
놈들이 요기를 폭발적으로 뿜으며 내게 달려든다. 오른쪽과 왼쪽. 그들의 보폭은 완벽하게 일치했다. 협공에 능숙한 놈들이다.
둘은 나와 비슷한 경지인 삼정 초단의 요괴들. 이렇게 둘이서 협공하면 당연히 내가지는 게 맞지만…. 나는 평범한 삼정 초단이 아니다.
뇌천류(雷天流) 비뢰신(飛雷神).
파지직. 내 몸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나는 뇌기를 이용해 하늘로 솟구쳤다. 놈들은 내 뒤를 하늘을 날았다.
놈들은 저돌적이었다. 내가 위유의 제자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깔이 분노와 광기로 돌아버린 것이다.
‘위유에 대한 증오가 엄청나군. 게다가 이 새끼들. 기운에 비해 몸놀림이라던가 어딘가 어설퍼.’
왜 이럴까. 답은 곧바로 나왔다. 놈들의 주둥이에 밴 피비린내가 단초였다.
“생물을 잡아먹고 경지를 높이는 데만 열중했군. 때문에 기량이 떨어지는 거야. 멍청한 새끼들.”
나는 하늘을 채운 먹구름 속으로 들어 갔다. 온몸에 요기를 두른 놈들은 개의치 않고 나를 따라 먹구름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