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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29화 (1,909/2,000)

Chapter 2129 - 2129. 새로운 게임

미령과의 섹스는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그녀가 몇 번의 절정을 느꼈는지, 내가 몇 번의 사정을 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다만, 우리는 충분히 만족했다.

잠들었다가 일어났을 땐 오후 2~3시쯤이었다. 나는 하품하며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내 옆자리에 있어야 할 부드러운 여인의 육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눈을 뜨니 침대에는 나 혼자 있었다.

‘미령은… 자기 방에 들어갔군.’

컴퓨터가 있는 방이었다. 미령이 소환될 때마다 쓰던 방. 미령이 없을 때는 손님용 방으로도 쓰는 곳이다. 정작 내 집에 오는 손님들은 내 침실에서 같이 자지만.

거실로 나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박스들이었다. 그새 뭔가를 배달시킨 모양이었다. 하루도 안 지나서 왔다는 것에 놀라기를 잠시. 미령의 방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미령의 취미인 인터넷 방송이라도 하고 있다가 내 모습이 영상에 찍히기라도 한다면?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터질 것이 분명했기에 조심해야 했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미령의 방문을 열었다. 돌핀 팬츠와 하얀 티셔츠라는 편한 옷을 입은 미령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으나, 인터넷 방송은 하고 있지 않았다. 타블렛 펜을 쥔 그녀의 손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아, 서방님! 일어나셨어요? 점심이라도 차려드릴까요?”

“괜찮아. 나중에 저녁이나 같이 먹자. 근데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림?”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어요.”

타블렛과 연결된 PC 모니터를 바라봤다. 확실히 게임에서 볼법한 화려하고 고급적인 일러스트가 그려지고 있었다.

“갑자기 왜? 게임이라도 만들게?”

“정답! 요즘 할 게임이 없어서 직접 게임을 만들어 보려구요. 물론 서방님이 도와주시리라 믿고 있어요!”

“……내가?”

“게임은 일러스트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프로그램 코딩이라던가. 그런 건 전혀 모르거든요.”

“나도 몰라.”

“하지만 게임 경험이랑 돈, 인맥이 있잖아요. 서방님은 총괄 디렉터를 하는 거죠! 우리 같이 게임 만들어요. 네? 목표는 일주일 내로 출시하는 걸로!”

게임 경험. 만드는 것이 아닌 하는 경험이지만. 그거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긴 했다. ‘유희 생활 어플’의 유희 세계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온갖 창작물을 접하는 나다. 게임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 나는 흔히 말하는 똥겜도 한다.

“일주일? 무슨 미친 일정이야. 일주일 만에 게임 하나를 만들 수 있을 리 없잖아. 당장 일러스트만 해도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야.”

“뚝딱 만들 수 있는데요? 술법을 이용하면 1시간에 10장도 가능해요!”

“……왜 그렇게 잘 그리는 거야?”

“그야 몇십 년 동안 남는 시간이 생기면 그림을 그렸거든요. 원래는 만화를 직접 그리는 게 목표였지만… 게임이 더 만들고 싶어졌어요.”

몇십 년.

‘광명승천도’ 세계의 그녀였기에 나와 시간관념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미령은 다재다능했다. 재능과 시간이 합쳐졌으니 일러스트 계의 괴물이 태어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일주일은 좀 그렇잖아.”

“그치만 전 한 달밖에 여기에 못 있는걸요?”

“…….”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미령이 저렇게 하고 싶다는데 한 번쯤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일주일만에 게임을 만드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서방님. 서방님에겐 해킹 능력이 있잖아요. 전자기기를 조종할 수 있으니 데이터를 조작하는 등의 일도 가능할 거예요. 그렇죠?”

“그렇긴 한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과는 다르잖아.”

“프로그램 제작은 전문가를 쓰면 되죠. 서방님에겐 있잖아요. 공짜로 쓸 수 있는 프로그래머 노예가!”

“……있었나?”

“AI!”

“아.”

잊고 있었다.

현실의 기술력과는 동떨어져 있는 슈퍼 AI라 할 수 있는 마도카.

지금은 버튜버로 활동하며 정보를 수집해 성장하고 있다. 어디까지 성장했을까? 적어도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은 됐을 거다. 지금 시대에도 그림 그리는 AI가 있지 않던가.

잠시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마도카가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었다. 전 세계 시청자 수는 40만이 넘었다. 실시간으로 자막을 만들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구독자 수도 어느새 600만이 넘은 대형 버튜버가 되어 있었다.

‘이 새끼 하루 24시간 내내 방송하네. 아, 내가 그러라고 시켰지.’

AI는 슈퍼 노에였다. 돈을 줄 필요도 없고, 휴식 시간도 필요 없다. 인간처럼 사고 할 수 있는 데다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몇십 배, 몇백 배나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물론 장비라던가, 전기료라던가 소모되겠지만… 얻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지.

나는 마도카에게 전화했다. 마도카는 신호음이 들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섹스 지존이시여. 오랜만입니다.”

“그래. 마도카. 잘 지내고 있나?”

“버튜버 일은 완벽히 해내고 있습니다. 벌어들인 돈도 모두 계좌에 적금 중입니다. 언제든지 출금할 수 있습니다.”

생방송 중인 마도카는 나와 대화하면서도 계속 시청자들과 소통 중이었다. AI라 가능한 멀티 태스킹이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보다 너 프로그래밍 할 줄 아냐?”

“예.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프로그램이라면 10분 내로 만들 수 있습니다.”

“게임을 만들 거다.”

“어떤 게임 말입니까?”

“어….”

그러고 보니 어떤 게임을 만들 건지 정해지지 않았다. 게임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PC, 콘솔, 모바일….

“아무튼 만들 거다. 일주일 내로 만들 수 있지?”

“…게임의 크기에 따라 다릅니다만, 복잡한 게임의 경우 연산력이 더 필요합니다. 슈퍼컴퓨터 수준의 장비가 있으면 수월할 것입니다.”

나는 미령을 바라봤다. 청력이 좋은 그녀는 나와 마도카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RPG 게임을 만들 거예요! 기왕이면 모바일로? 요즘 모바일 게임이 대세잖아요.”

“…자세한 내용이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수준급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선 연산 장비가 필요합니다.”

마도카는 장비를 내놓으라 말하고 있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슈퍼컴퓨터? 충분히 사줄 수 있었다. 돈이야 썩어날 정도로 많으니까. 근데 이게 구매한다고 해서 바로 나오는 게 아니다. 복잡한 장비는 다 그렇다.

“일주일 내로 만들어야 하는데….”

“제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카가야 미즈치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카가야 그룹은 휘하에 다섯 개 이상의 연구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사용하는 장비들을 받아오면 충분한 연산력이 나올 것입니다.”

“아, 그 호구 새끼?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호구야?”

“가능성은 있습니다. 카가야 미즈치는 유독 섹스 지존께 저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요청해봐.”

1분이 지나고 마도카가 결과를 말했다.

“카가야 미즈치가 수락했습니다.”

“이걸 진짜 해주네.”

카가야 미즈치.

리얼 호구 새끼. 내 머릿속에 녀석의 이름이 각인되었다. 재벌인 주제에 이렇게 호구인 새끼는 흔치 않았다.

카가야 그룹은 나도 이름을 들어본 적 있을 정도로 일본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이런 좋은 녀석이 회장이 되어야지.’

카가야 미즈치는 밀어줄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이참에 슈퍼컴퓨터도 주문해서 마도카의 연산력도 높여둬야겠군.’

최소 수백억에서 최대 수천억.

억 소리 나오는 가격이라도 지금의 나라면 구입할 수 있다. 세진 그룹의 하승희와 계약하며 HB-1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 어마어마하니까.

“그럼 게임 제작하는 거죠?”

“그래. 유통이나 법적인 건… 하승희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받으면 되겠지. 한국에서 대기업의 영향력은 막대하니까.”

돈과 권력에 슈퍼 일꾼까지. 정말로 일주일 내로 게임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성공 가능성이 보이니 나도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창작물이 유희 세계가 될 수 있잖아. 뭘 만드는 것에는 젬병인지라 그간 시도도 안 했지만… 다른 사람이 도와준다니 괜찮은 걸 만들 수 있을지도.’

나는 미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령은 잠시 멈칫하다가 내 손 위에 가슴을 올렸다. 묵직했다. 가슴을 주물렀다. 옷 위로도 그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아니, 게임을 만들겠다고 했으니 준비한 게 있을거 아니야. 스토리라던가. 전체적인 기획이라던가.”

“아, 있죠. 스토리도 짜봤어요.”

미령은 아공간에서 USB를 꺼내 내게 줬다. 바로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내 손은 여전히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다.

“어디 보자. 스토리는… 태초에 천족과 마족이 있었다…? 좆노잼이네. 버려.”

“앗, 잠시만요! 이거 제 희대의 역작이거든요? 프롤로그만 조금 지루할 뿐이거든요? 제대로 천천히 읽어보시면 서방님의 의견도 바뀔거 거든요?”

“그래. 내가 너무 성급했지.”

5분 정도 더 읽어봤다. 좆노잼이 아니라 개씹좆노잼이었다. 나는 스토리 데이터를 삭제했다.

“앗, 아앗….”

“스토리는 대충 만들자. 어차피 스토리 게임을 만들 것도 아니니까. 장르는… 핵앤슬래시 RPG로.”

핵앤슬래시 게임은 스토리 비중이 작아도 상관없었다. 있으면 좋겠지만, 액션이 더 중요했다.

“나한테 시나리오 쓰는 재주는 없고… 시간도 없잖아. 대충 괜찮은 소설 판권이나 사야겠군.”

안 되면 돈으로 해결하자.

게임에 들어갈 사운드도 마찬가지다. 돈이면 되겠지.

“마도카. 너 노래 만들 수 있냐?”

“전 현존하는 모든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창조할 수 있냐고. 키워드를 던져주면 그에 맞는 음악을 딱딱 만들어 내는 거지.”

“데이터는 충분히 쌓여 있습니다. 소설도 창작할 수 있습니다. 재미는 보장 못 합니다.”

AI의 무서운 점이었다. 데이터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AI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건가.’

아무튼 나는 그 AI의 주인이었다.

“직업은 5개로 하자. 기본적인 전사, 마법사, 도적, 궁수. 그리고 특수 조건에서만 개방되는 히든 직업인 올마스터로.”

“올마스터요? 그런 걸 꼭 넣어야 해요? 직업 이름만 들어도 사기라는 느낌이 풀풀 풍기는데요?”

“내가 하고 싶으니까. 다른 네 직업은 네가 구상한 그래도 갈 거야.”

“으음. 그렇다면야. 근데 멀티 플레이 기능이랑 PVP 기능은 넣을 거죠?”

“일주일 만에 만들려면 뺄 건 빼야지. 패키지 게임이니 멀티는 있으나마나고 핵앤슬래시에서 PVP는 노잼이야.”

“…구체적인 계획이 잡히자 뭔가 긴장되네요.”

“웬만한 건 마도카가 다 할 테니까. 우린 방향성을 잡자고. 아, 준비된 일러스트 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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