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34 - 2134. 이터널 에덴
시간이 지날수록 내 표정은 좋지 않았다.
얻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철물점에서 여러 물건을 얻긴 했으나…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양이었다.
얼굴이 굳어졌다.
‘큰맘 먹고 계획한 건데… 정작 얻어 가는 것들이 적잖아.’
내가 서울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아니, 서울의 인구수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사람들은 물자를 알뜰하게 챙겨가며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도로 전방에 좀비 떼가 나타났습니다! 추정 숫자 70마리!”
전방을 주시했다. 좀비 떼가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허리춤에서 새하얀 칼, 갈치검을 뽑아 들었다.
파지지직.
하얀 칼날이 전기를 머금자 은색으로 반짝였다. 이 칼이 갈치검이라 불리는 이유였다.
뇌천류(雷天流) 뇌섬(雷閃).
허공을 향해 휘두르자 번개를 휘감은 검기가 날아가 달려오는 좀비 떼를 베어 가른다. 허나 한 번에 모조리 쓸어버릴 순 없었다. 살아남은 놈들이 겁도 없이 우리들에게 달려든다. 총을든 보안팀이 앞으로 나서서 방아쇠를 당겨 나머지를 정리했다.
파르르르.
손이 떨린다.
‘젠장. 전력으로 검기 한 번 날렸을 뿐인데 손이 떨리네.’
광명승천도 세계에선 몇 번이고 난사할 수 있었던 기술이 이 세계에선 아니었다. 이 점을 주의해야 했다.
토벌대의 마지막 목적지는 공장이었다. 공장의 이름 배표. 나무내장재를 전문으로 만드는 공장이었다. 나무 자재도 자재지만 기계 쪽이 목적이었다. 테크놀로지스트인 나채영의 힘으로 기계를 개조하는 것도 가능하니까.
드론이 먼저 날아서 공장으로 들어갔다.
탕탕탕!
총성과 함께 잘 날아가던 정찰용 드론이 추락한다.
-공장에 무장한 인간들이 점거 중이야.
“총을 가졌다고? 정부 소속이야?”
-군대는 아니야. 입고 있는 옷은 평상복이었으니까.
“근데 총을 가졌다라….”
나채영과 같은 테크놀로지스트가 저들에게 있을까? 그 가능성은 적다. 플레이어가 뭐 하러 저런 놈들과 손을 잡겠나. 차라리 국가 정부나 기업과 손을 잡고 말지.
“어둠의 루트로 구했겠지. 군에서 얻었을 수도 있고.”
세상이 개판이다 보니 온갖 가능성이 있었다.
-어쩔 거야? 물러날 거야?
“공장에 기계가 있는 건 확실하지?”
-확실해. 그게 아니면 공장을 점거할 이유가 없잖아? 요즘 정부가 멀쩡한 공장 기계를 매입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으니… 그거 때문에 점거하고 있는 걸 거야.
“기계가 있다면 우리가 얻어야지.”
전투 드론은 이용할 수 없었다. 지금 전투 드론은 성악초등학교를 지키는 데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전투 드론을 쓸 거면 이렇게 병력을 끌고 나오지도 않았다.
“정면으로 갈까.”
내가 앞장서서 갈까. 아니면 병력을 밀어 넣을까. 앞장서서 갔다가 총 맞기 딱 좋았다. 총을 맞으면 아프다. 내가 그런 고통을 감수할 필요가 있나? 차라리 병력이 줄어드는 편이 더 낫다. 병력이야 다시 차출하면 된다. 널리고 널린 게 노예고 인간이니.
“전략 같은 건 필요 없다. 장비도 우리가 더 좋으니까. 보안팀. 돌격 준비해라. 트럭으로 꼬라박아.”
“잠시만! 성 대표님!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손에 창을 쥔 중년 남자였다. 상태를 보니 보안팀도 아니다.
주변에 있던 보안팀원들이 경악했다.
“이런 미친놈이!”
“감히 누구에게 함부로 말을 거는 거냐?!”
“죽고 싶어?!!”
보안팀원이 그의 몸을 붙잡았다.
나는 시큰둥하게 쳐다보다가 남자의 눈을 보고 웃음을 흘렸다. 반쯤 돌아간 눈빛. 미치광이나 다를 바 없는 눈이었다. 주변에 있는 보안팀도 긴장하고 있었다.
“좋다. 말해봐라. 쓸데없는 이야기면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제가 공장을 돌아서 침투하겠습니다. 소총 한 자루만 내려주십시오.”
“왜?”
“…놈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고 공장을 더욱 쉽게 빼앗을 수 있습니다.”
“그건 네가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잖아. 너 혼자서 그 짓을 할 수 있다고? 뭐, 특수부대 출신이라도 되나?”
“특전사를 전역했습니다.”
“특전사 출신이면 보안팀에 갈 수도 있잖아.”
“……출신은 일부러 숨겼었습니다. 전역하고 난 뒤에는 목사로 일했습니다.”
“목사? 신을 믿나?”
“안 믿습니다.”
“크크. 재밌는 놈이군. 좋아. 이 새끼한테 소총이랑 탄창 넘겨줘. 단, 실패하면 뒤진다.”
“전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그러니 만약, 성공한다면.”
“성공한다면? 뭘 원하냐?”
“…절 중히 써주십시오.”
권력욕인가?
아니, 저런 눈빛을 한 놈들은 대개 권력이 아니라 자기만의 무언가를 원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권력을 원했다면 자기 편을 만들었겠지. 주변을 보면 그는 혼자였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다. 진짜던가. 그냥 미친놈이던가.
“이름이 뭐지?”
“손태형입니다.”
“그래? 가봐.”
손태형이 움직였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날쌨다. 신속한 행동을 보니 특전사 출신이란 건 거짓이 아닌 모양이다.
‘대놓고 구라쳤으면 바로 죽였지.’
사실 지금도 긴가민가했으나, 나중에 판단하면 그만이다.
“아, 아아!”
공장 쪽에서 확성기로 증폭된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병력의 머리가 공장 쪽으로 향한다. 입구와 우리 사이에 벽이 있었기에 총알이 날아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여긴 일우 그룹의 공장입니다! 다가오지 마십시오! 다가오시면 자기방어를 위해 발포하겠습니다!”
“일우 그룹? 뭐 하는 놈들이야?”
“…대기업입니다만.”
옆에 있던 보안팀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우 그룹의 이름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세계의 유명한 기업인가 보네.’
“다시 말합니다! 여긴 일우 그룹의 공장입니다! 가까이 오지 마시고 돌아가십시오! 자기방어를 위해 발포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전투를 원하지 않습니다!”
확성기로 증폭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가 뭔데 가라 마라야.”
짜증을 내는 나와 달리 병력들의 사기를 내려가 있었다.
“대표님. 그, 일우 그룹을 건드는 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들리는 소문으로는 조폭 출신인데 일본 쪽 자금을 받아 성장한 기업이라고…. 그래서 정부도 함부로 못 건드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뭔 개소리야. 그건 소문일 뿐이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총기를 무장한 걸 보면 가능성이 상당히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도망치자고?”
나는 보안팀원을 빤히 쳐다봤다. 2팀장이었던가? 팀장의 직위를 갖고 있는 놈은 침을 삼키며 땀을 뻘뻘 흘렸다.
“잘 들어라. 저 새끼들이 일우 그룹이든, 일우 그룹의 할애비든 나를 적대한 이상 죽여야 할 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알아들었냐? 우리는 저 새끼들을 죽이고 물자를 약탈한다. 불만 있는 사람?”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내 눈치를 봤다. 민주주의식으로 해결하려 했는데 만장일치로 내 의견이 통과되었다.
‘가보기 전에 입구나 확인해 볼까.’
저들은 트럭이나 컨테이너 박스, 드럼통 등의 바리케이드를 쌓아두고, 그 뒤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바리케이드가 저 모양이면 정면에서 뚫는 건 어렵겠는데? 꼴을 보아하니 각성자는 없는 것 같고….’
지금 돌격시켰다간 병사들이 죄다 갈려 나갈 것 같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숙련된 보안팀을 잃는 건 아까웠다. 경험을 쌓는 것에는 시간이 드니까.
“나 박사. 드론 폭격 가능해?”
-가능해. 물자가 많이 소모되겠지만. 그 정도 가치가 저 공장에 있는 거야?
“있으니까 저놈들이 지키고 있는 거겠지?”
-…좋아. 지금 전투 드론 보낼게.
콰아앙!
돌연 공장 뒤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적들이 당황하며 우왕좌왕한다.
‘손태형. 들어간 그놈의 짓이군? 적들의 폭탄을 썻나 보네. 저 정도 장비면 저기에 폭탄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입구를 지키던 놈들이 빠진다. 이러면 할만해진다.
“전투 드론 안 와도 되겠다. 트럭 앞세우면서 돌격한다. 가자.”
나는 사각 방패를 앞세우고 앞으로 달려갔다.
타타타타타타타탕!
탄환이 빗발친다. 예상했던 것보다 적긴 했으나 방패 하나로 전부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탄환 일부가 내 몸을 스치거나 팔다리에 박혔다.
‘존나 아프네.’
회복을 사용했다. 힘줄이라도 끊어졌는지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팔다리에 박혔던 총알들이 툭 튀어나온다. 상처는 흔적도 없이 회복되었다. 뒤에서 날 보고 있던 병력들이 놀란 것 같지만, 이 정도야 알려져도 상관없다.
부아아아앙! 쾅!
트럭이 급발진하며 내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공장 입구에 꼬라박았다.
‘시발 갑자기 미쳤나? 보폭을 맞춰야… 아니, 운전자가 총알 맞고 뒈졌네.’
빗발치던 총알이 잠시 멈췄다. 갑작스러운 사고가 호재로 적용한 것이다. 바로 방패를 팽개치고 검을 들며 앞으로 달려갔다.
3m가 넘는 바리케이드를 밟고 올라가 단숨에 뛰어넘었다. 그 위에 있던 놈이 경악하며 총구를 내게 겨눈다.
서걱!
내 칼이 더 빠르게 놈의 목을 그었다.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시체를 방패 삼아 곁에 있던 놈에게 다가갔다.
타타타타타타탕!
아군 쪽에서도 총성이 울린다. 적들이 당황했다. 누군가는 나를 죽이기 위해 총을 쐈고, 누군가는 몰려오는 적들을 견제했다. 적들의 전력이 분산된 것이다. 난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서걱!
적을 베어 죽인다. 난전은 내가 원하는 바다.
파지직.
뇌전으로 근육을 자극하며 쉬지 않고 적들에게 돌격했다.
뇌천류(雷天流) 전자기파(電磁氣波).
전자기파를 뿌려 숨어 있는 놈들을 찾아낸다. 광명승천도에서는 산 전체를 커버하고도 남을 정도지만, 지금은 내 기준으로 15m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것만으로 숨어 있는 놈들을 찾아내기에 충분했다.
“찾았다.”
구석에 움츠려 벌벌 떨던 놈이 권총을 갈겼다.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려 총알을 피했는데, 놈의 운이 좋았는지 총알 하나가 내 오른쪽 눈에 박혔다.
회복.
뇌를 꿰뚫은 총알이 툭 튀어나오고 뇌와 눈알이 흔적도 없이 회복된다.
철컥철컥.
놈은 벌벌 떨면서 방아쇠를 당기지만 총알은 나가지 않았다.
“괴, 괴물놈.”
“음. 다행히 본놈이 아무도 없군.”
상처를 회복하는 것과 즉사했다가 다시 살아나는 건 차원이 다르니까.
총성이 점점 잦아들었다. 전투가 끝난 것이다. 대충 훑어보니 우리 쪽 피해도 있었다. 보안팀원 3명이 죽었고, 일반인 8명이 죽었다. 경상을 입은 자들이 있었다. 나는 무시하려고 했다.
-회복시켜 줘. 최소한의 민심은 얻어야지.
이어폰에서 나채영의 목소리가 났다. 다른 이가 말했다면 무시했겠지만… 나채영이 그러니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경상을 입은 자들을 회복시켜 줬다.
“가, 감사합니다! 대표님!”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소, 손가락이 회복됐어!”
총알에 날아간 새끼손가락이 회복된 것이다. 주변에 있던 이들이 경악했다. 나를 보는 눈이 더 존경스러워졌다.
‘이게 힐러의 맛인가.’
사실 손가락까지 회복시켜 줄 생각은 없었다. 능력 조절에 실패했다. 작은 상처를 원하는 만큼 회복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흉터가 사라지다니….”
“몸이 더 가뿐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들의 찬양을 받았다. 특히 경상에서 회복된 자들이 진심을 다해 찬양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힘을 썼더니 좀 피곤하군. 나머지는 너희가 처리해라. 시체는 쌓아두고…. 보안팀은 공장 쪽에 진입. 반항하는 놈들은 싹 다 죽여라. 나머지는 노예로 삼아서 데리고 간다.”
공장 내부는 바리케이드 같은 건 없었다. 저항 세력이 적다는 뜻. 이런 조건이면 장비를 갖추고 있는 보안팀이 유리했다.
“대표님! 내부에 수십 명이 죽어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수류탄 폭발로 인해 죽었습니다!”
보안팀원들은 내게 보고하면서 누군가를 데리고 왔다. 그은 무릎 꿇듯이 내 앞에 쓰러졌다.
허벅지에 총알 2개. 복부에 총알 3개를 맞은 손태형이었다. 중요 장기는 비껴갔는지 아직 살아 있었다. 당장 죽을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두 눈은 형형히 빛났다.
“대표님…. 전, 성공했습니다.”
“그래. 좀 하더군.”
쓰러진 손태형의 머리를 잡는다. 회복을 사용한다. 출혈이 멈추고 총알이 빠져나와 바닥을 굴렀다. 구멍을 메꿔진다. 그의 몸에 있던 크고 작고 오래된 흉터들이 사라졌다. 혈색이 좋아진 손태형은 눈물을 흘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내 발밑에 머리를 조아리며 엉엉 울기 시작한다.
“감사,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신 안 믿는다며.”
“…예. 그랬었습니다. 하지만 신은… 실존하는 것 같습니다.”
“미친놈인가. 아무튼 잘해라. 넌 다른 놈들보다 쓸만한 것 같으니까. 내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네. 그러겠습니다.”
말로는 누구나가 그럴 수 있지. 나는 손태형을 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