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7화 > 2137. 이터널 에덴
“야, 성유진! 난 언제까지 여기에 박혀 있어야 하는 거야?!"
독수리가 그려진 야구 점퍼를 걸치고 야구 모자를 쓰고 있는 최혜진이 불만을 담아 내게 말했다. 한 손에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거미 괴물에게 잡혀 죽어 있던 여자다. 나는 회복으로 그녀를 되살렸다.
「개체명: 최혜진
잠재력: ★★★★★
각성 능력: 황금 육체.
특성: 본능, 순수성. 전사.」
무려 잠재력 별 5개의 각성자. 능력은 신체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황금 육체라는 능력답게 그녀의 몸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넌 너무 약해. 수련하라고 했잖아.”
“나보다 약한 놈들은 잘도 데리고 나가잖아.”
최혜진의 눈에서 불꽃이 튄다. 가출팸 출신에 현상금이 붙은 범죄자였던 최혜진은 성질이 썩 좋지 않았다. 예쁜 얼굴에 비해 성질이 상당한 다혈질이다.
손바닥을 들었다. 최혜진이 움찔거렸다. 두 눈에서 힘이 빠진다. 그녀는 엉덩이를 가리며 뒤로 물러났다. 최혜진을 길들일 때 폭력을 사용했다. 다른 무엇보다 폭력이 잘 통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엉덩이를 자주 때린다.
“걔들이랑 너랑은 다르잖아. 네가 몇 배는 더 중요해.”
“뭐… 그 새끼랑 난 다르긴 해.”
“여기서 나 다음으로 강한 건 너야. 내가 없을 때 여길 지켜줘. 가뜩이나 최근에 적이 생겨서 불안하거든.”
“일우 그룹 말이야?”
“어. 그래. 듣긴 했네.”
“요즘 사람들이 죄다 일우 그룹 얘기만 하고 있잖아. 모를 리가.”
이 좁은 곳에서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대기업을 적으로 돌렸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국은 문화 탓인지 몰라도 재벌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두려움 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사기가 떨어져 이탈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일우 그룹에 회유된 놈들이 있을지도 몰라. 수상해 보이는 놈 있으면 손태형에게 말해서 수감동에 처넣어. 본관에 허락없이 접근하는 놈들은 그냥 죽이고."
“손태형? 그 아저씨 말이지. 그 아저씨 좀 미친놈 같던데.”
“곱게 미친놈이야."
대답을 끝내는 동시에 최혜진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최혜진은 예상했다는 듯이 내 주먹을 피하며 반격한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대련. 그녀의 성장을 위한 거름이 될 것이다.
대련의 승자는 당연히 나였다. 아무리 최혜진이 재능 넘치는 천재라 해도 내 전투 경험을 순식간에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그럼 슬슬 오늘의 마지막 일과를 해볼까.”
“…젠장․ 빨리해. 샤워하고 싶으니까.”
최혜진이 핫팬츠와 팬티를 벗고 바닥에 엎드려 엉덩이를 내게 내밀었다. 움찔대는 보지에선 이미 음탕한 액체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보기 좋은 엉덩이를 잡고 허리를 움직였다.
“하윽!”
"완성됐어."
한동안 호버 보드의 제작과 개조에 매달리고 있던 나채영이 말했다. 가슴팍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에 하얀 가운을 입은 그녀의 안색에서 피로가 느껴졌다. 최근 잠을 줄여가며 일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가져온 호버 보드를 바라봤다. 겉모습은 스케이트보드와 비슷했다. 보드 아래쪽에는 복잡해 보이는 기계들이 달려 있었다. 저번에 듣기로는 항공 모터를 달았다고 하던데. 중요한 건 내가 이용할 수 있냐는 거다.
“너도 알겠지만, 실험 자료가 부족해서 안정성이 떨어져. 마음 같아선 AI를 이용해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싶어도 그럴 연산력이 없어. AI의 성능도 아직 확실하지 않고.”
“직접 사용하면 돼.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곧 알 수 있겠지."
“원래는 추락해도 문제없는 호수가 강에서 먼저 실험해 보는 게 좋아.”
“내 능력이 있는데 무슨. 그리고 지금 한강은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곳이란 거 알지?"
얼마 전에 한강이 뉴스에 나왔다. 한강의 물고기들이 변이를 일으켜 괴물이 되었으니 한강 근처로 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뉴스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강 다리는 멀쩡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호버 보드 위에 올라섰다. 고정대가 올라오더니 발을 고정했다.
“이거 조종은 어떻게 하는 거야? 리모컨 같은 건?”
“컨트롤러는 없어. 일이 더 복잡해지니까. 어차피 지금 만든 건 네 전용의 프로토타입에 가까워. 전기 신호를 이용해 작동시키고 속도를 조절해. 작동 구조는 단순하게 만들었으니까. 전기로 도어락도 열 수 있는 네겐 쉬운 일일 거야."
파지직.
전기를 사용한다.
위이이이이이잉.
모터가 돌아가며 호버 보드가 허공으로 떠오른다.
“오오. 재밌는데?”
소음이 적고 냄새도 없었다. 전기 모터로 돌아가는 물건이라 그렇다.
"조심해서 조종….”
나채영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호버 보드는 순식간에 출력을 높여 위로 솟구쳤다. 슬쩍 아래를 보니 나채영이 죽일 듯이 날 노려보고 있었다. 뒷감당을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높이 날았다. 구름이 있는 높이까지 올라가는 건 쉬웠다. 그 이상은 힘들 것이다.
좀 더 아래로 내려와서 하늘을 날아다녔다.
‘최대 속력은 200km/h 정도인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이면 가겠네.’
전기 능력자인 내겐 배터리 문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10분간 하늘을 날고 성악초등학교로 내려왔다.
“나도! 나도 탈래!”
최혜진이 소리쳤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넌 안 돼. 이건 리모컨도 없는 프로토타입이라고. 나중에 양산되면 타.”
“나도 프로토타입!"
최혜진이 시선이 나채영에게 향했다. 나채영은 귀찮다는 듯이 무시하며 내게 물었다.
"조종은 어때?"
“쉬워. 무게 중심을 살짝 움직이는 거로 방향 조정이 되니까. 속도도 이만하면 만족스럽고.”
“호버 보드에는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오늘은 호버 보드를 조종하고 적응하는 데 집중해. 나는 수면을 보충하러 갈 테니까.”
“아니, 잠깐! 나도 프로토타입 만들어 달라니까!”
최혜진이 나채영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소리쳤다.
“시끄러. 지금 기분 안 좋으니 소리치지 마.”
나채영이 돌아갔다. 나는 호버 보드를 타고 근처 하늘을 날아다녔다.
최고 속력으로 30분이 지나자, 배터리 용량이 떨어졌다. 갈치늄 배터리가 이 정도이니 평범한 배터리로는 10분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이거라면 당일치기로 부산에 갔다 올 수 있겠어.'
부산에 있는 일우 그룹의 본사. 그 새끼들을 조질 수단을 마련했다.
‘나 혼자서 일우 그룹 전체를 상대할 순 없겠지.'
하지만 그 일부라면. 일우 그룹의 오너 일가를 조지는 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부산의 요새화가 끝나기 전에 가서 죽인다.'
적이 약할 때, 적이 더 커지기 전에 죽이는 건 상식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도로를 불법 점거한 변종부터 죽이고.
나는 호버 보드를 타고 드론들과 함께 서울 하늘을 날았다. 전투 드론이 4대와 촬영을 위한 드론 1대.
하늘을 날아가서 가니 금방 변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블레이더.
키 2.3m에 양팔에 손대신 칼이 돋아난 인간형 변종이 햇빛을 맞으며 묵묵히 서 있었다. 변종이라도 생물. 뭔가를 먹어야했다. 그 뭔가는 인간 같은 동물이었다. 그 주변에 썩은 시체들이 보였다.
‘지금은 도로 위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굶주리기 시작하면 움직이겠지.'
블레이더가 고개를 들었다. 붉은 피부 위로 핏줄이 튀어나와 꿈틀거렸다. 놈의 생기 없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탐색하듯 서로를 바라봤다.
“나 박사. 저 변종을 알아?”
-모르겠어. 나도 처음 보는 종류야. 하지만 정부가 이름을 붙인 만큼 평범한 변종은 아닐 거야.
게임으로 치자면 네임드. 평범한 변종도 종류에 따라 상대하기 어렵다. 하물며 네임드이니 조심해야 한다.
오랜만에 헌터로서의 감각이 꿈틀거린다.
헌터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방법. 그 첫 번째는 정보를 파악하는 것. 작은 정보라도 좋다. 블레이더의 정보가 필요하다.
“전투 드론을 움직여."
-정밀 조종은 어려우니 AI에게 조종을 맡기겠어.
전투 드론 4대가 허공에서 퍼지며 움직인다. 블레이더와 거리를 두고 사방을 점하며 총구를 겨눠 일제히 발포했다.
타타타타타타탕!
블레이더는 총알을 피하지 않았다. 온몸으로 총알을 맞았으나, 총알은 놈의 피부를 꿰뚫지 못했다. 기껏해야 피부에 생채기를 내는 수준이 전부였다.
‘자, 하늘을 날고 있는 전투 드론을 어떻게 공격할 거지?'
블레이더는 근처 도로에 서 있는 자동차 부품을 적당한 크기로 베어내고는 발로 찼다.
쾅!
자동차 부품에 얻어맞은 전투 드론이 폭발과 함께 지상으로 추락한다.
'무식해도 효과적인 원거리 공격이군.'
“나 박사. 근거리전을 봐야겠어. 전투 드론을 내려.”
-알았어.
전투 드론이 내려간다. 블레이더가 기다렸다는 듯이 득달같이 전투 드론에게 달려가 칼을 휘두른다. 드론의 회피기동보다 칼날이 더 빨랐다. 순식간에 드론 2대가 고철이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파악했다.
검술 자체는 보잘것 없다. 보법을 보면 검도를 베이스로 한 자신만의 검술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 같다. 아마 변종이 되기전에는 검도 유단자였으리라.
무시할 수 없는 건 신체다. 총알을 맞아도 생채기만 난다. 팔과 어깨 부위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반대로 얼굴과 하반신과 복부의 생치기는 제법 크다. 즉,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뜻.
주의해야 할 건 저 칼과 힘. 칼을 맞댄다면 갈치검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아마 한 번은 견디겠지만 그 이상으 무리일 터.
'검술을 제외한 모든 게 불리하다. 그러니 속전속결로 끝낸다.’
놈의 심장을 꿰뚫거나, 놈의 머리를 베거나.
결론을 내린 나는 지상을 향해 내려갔다.
블레이더는 내가 내려가는 와중에 공격하지 않고 물끄러미 날 바라봤다. 좀 더 정확히는 내 칼을 보고 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놈은 칼싸움을 하고 싶은 것이다.
호버 보드를 도로 한편에 버려두고 블레이더에게 뚜벅뚜벅 걸어간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블레이더는 내게 달려드는 대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나는 블레이더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