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2140화 (1,920/2,000)

< 2140화 > 2140. 이터널 에덴

이연희가 준 일우 그룹의 자료들을 확인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일우 그룹의 덩치가 컸다. 가전제품에서부터 음식까지. 손을 안 뻗는 사업이 없었다. 각각 다른 이름으로 사업을 진행했기에 인우 그룹과 관련 있다는 걸 일반인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일우 그룹이 일본의 지시를 받는다는 의혹이 있어서 안기부도 일우 그룹을 주시하고 있었군.'

오너 일가를 확인한 나는 혀를 찼다. 본사에 있는 건 회장이 아닌 부회장이었다.

일우 그룹의 회장은 운석이 떨어질 당시 일본에 있었고 지금까지 귀국하지 않았다.

‘못 온 게 아니라 안 온 거다. 일우 그룹에는 최소 4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있을 거라는 정보가 있으니까. 세상이 좆될거라는 걸 미리 알고 일본으로 도망친 거야. 일본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 거지.'

이연희는 일본이 일우 그룹을 앞세워 부산을 시작으로 침략을 계획 중이라 했다. 가능성이 넘치는 말이었다.

‘내일 바로 부산으로 가야겠군. 다행히 첩자 놈은 내가 호버 보드를 타고 움직이는 것까진 보고 하지 않았어.'

몰랐을 것이다. 호버 보드와 관련된 정보는 이연희만 알고 있었으니까. 블레이더 작전 이후에는 동료들과 같이 일하느라 일우 그룹에 정보를 전달할 여유가 없었다.

‘운이 따라줬어. 부산에 대공포를 최우선으로 설치했으면 날아가는 거도 힘들었을 테니까.'

부산은 요새화가 진행 중이나 대공포가 설치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5m가 넘는 장벽을 세우는 것에 집중 중이었다.

자료를 읽던 나는 한 정보를 발견하고 눈을 치떴다.

‘……일우 그룹이 후원 중인 서울 약탈자 무리는 최소 8곳 이상이라고?'

오늘 습격해 온 약탈자들은 그중에 하나일 뿐이다.

‘뭉쳐서 올 수도 있겠지. 높은 확률로 밤이나 새벽을 노릴 수도 있고. 보안팀은 당분간 경계 태세다.'

나는 편하게 잘 거다. 그게 체력 보존을 위한 일이니까.

위애애애애애애애애앵!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내 품속에 안겨 있던 나체의 나채영이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손에 힘을 줘서 그녀를 막았다.

“으윽. 이거 놔. 경보 울리는 거 안 들려? 성악초등학교가 습격받았어! 여유롭게 누워 있을 시간 없어!"

"보안팀이 있잖아."

나채영이 내 손을 꼬집었기에 그녀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나체의 나채영은 허겁지겁 침대 옆 벗어둔 옷을 입는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그녀의 엉덩이에 내 손자국이 남아 있었고, 목과 가슴 쪽에는 키스 자국이 있었다. 너무 급하게 입어서일까. 브래지어 옆으로는 가슴살이 삐져나왔다. 나채영은 옷을 입고 하얀 가운을 걸치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갈 곳은 뻔했다. 4층 통제실.

나는 느릿하게 옷을 갈아입고 통제실로 내려갔다. 통제실에는 나채영밖에 없었다. 성악초등학교의 시설을 대부분 제어할 수 있는 곳이라 관리자들도 통제실에는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다.

한쪽 벽면에 있는 작은 모니터들을 확인한다.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성악초등학교 곳곳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살핀 곳은 식량이 저장된 창고였다. 다행히 식량 창고는 멀쩡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벽에 사다리를 걸고 침입하려는 걸 AI가 발견하고 경보를 울린 거야."

“AI가? 그렇게 똑똑했었나?”

“CCTV에 비치는 벽에 이상이 있으면 경보를 울리도록 프로그램을 짜놨으니까.”

“나 박사가 한 건 했네. 그래서 벽이 뚫린 건 아니지?”

“그건 아니야. 보안팀이 움직이면서 총을 쏘고 있으니까. 담벼락 근처에 있는 약탈자들은… 도망가네.”

이대로 얌전히 포기하고 떠날 것 같진 않았기에 모니터를 주시했다.

‘폭탄을 사용해서 과격하게 나오겠지. 그게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좀비나 변종들을 성악초등학교로 유인한다거나.'

괜찮다. 변종을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저놈들이 유인할 수 있는 변종은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좀비 떼나 데려왔으면 좋겠다. 개중엔 예쁜 애들도 있겠지.'

나는 수준급의 미녀 좀비를 수집해서 관에 넣어 냉동 창고에 보관 중이다. 고르고 고른 미녀 좀비들. 나중에 여유가 있을때 회복 능력을 사용해 부활시킬 예정이다.

'시체라고 하기엔 아까울 정도의 미녀들이지.'

미모만 따졌을 때 연예인 이상인 여자들. 좀비라고 죽이기엔 너무 아까웠다.

내 예측은 빗나갔다. 1시간이 지나도 약탈자들의 재습격은 없었다. 나채영은 드론으로 주변을 정찰해서 꼼꼼히 확인했다. 약탈자들은 물러갔다.

“하아.”

한숨을 내쉬는 나채영의 몸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스킨십에 익숙해진 나채영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가서 잠이나 계속 자자. 중간에 깨어나서 피곤하잖아?”

“방심하도록 만든 뒤에 다시 습격해 올지도 몰라.”

“보안팀은 폼은 아니야. 장비랑 음식을 주는 이유가 이럴 때를 위해서잖아.”

“…그래.”

나채영과 함께 5층 침실로 돌아갔다. 잠자기 전 약간의 운동을 곁들인 건 두말할 것도 없다.

위애애애애애애애애앵!

좆같은 사이렌 소리에 눈이 떠졌다. 오전 10시 15분. 바깥은 이미 대낮이었다. 옷을 입고 통제실로 향했다. 나채영이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약탈자?"

약탈자가 정문 입구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뒷문에도 약탈자 몇 명이 어슬렁거린다. 뒷문으로 나가지 않는지 감시하고 있다. 당장 보이는 약탈자의 수는 200명이 넘었다. 보안팀보다 많았다.

“근처에 있는 약탈자들이 임시로 모여서 진을 치고 있어."

“드론 보내서 쓸어버리지?”

“…앞에 있는 약탈자들을 봐. 무기를 들고 있지 않잖아. 민간인으로 위장한 거야. 뒤에는 카메라를 들고 약탈자들이 있어. 우리가 먼저 공격하면 여론전을 펼칠 계획이란 거겠지. 민간인을 공격한 성악초등학교. 기사에 나오기 딱 좋은 제목이잖아."

"그건 안 되는데.”

한국의 영웅이 되어 대통령까지 해먹겠다는 내 계획이?!

고작 이런 짓에 여론이 나빠질까 싶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선동당하기 쉽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저희에게 음식을 나눠주십시오!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많이는 바라지 않습니다! 조금만! 조금만이라도 음식을 나눠주십시오! 성악초등학교에 음식이 산처럼 쌓여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안간성을 보여주십시오!

"인간성은 지랄. 폭탄 드론으로 다 죽여버리자. 밀집된 진형을 보니 한 번에 죽이기 딱 좋네.”

“카메라가 있다니까? 저기 봐 지금 이 장면이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어."

노트북을 바라봤다. 정말로 실시간 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청자 수는 60명이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저놈들이 약탈자라는 걸 밝히면 되지 않나?”

“밝히더라도 왜곡될 수 있어. 저들 뒤에 일우 그룹이 있다면 더더욱.”

“어쩔 수 없지…. 영웅 루트는 포기하고 정복 군주 루트로 가야 하나?”

서울을 시작으로 한반도를 하나, 하나 정복하는 것. 한반도의 생산시설이 죄다 박살 나고 최악의 경우 국력이 10분의 1도 남지 않게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매일 같이 전쟁을 해야 해서 귀찮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국 정부와 군대가 남아있는 이상 질 수도 있었다.

“일단 식량을 나눠주고 지금 상황은 넘기는 게 좋을 것 같아. 적당량을 주면 바로 요구하진 않을 거야."

“다음에 또 요구할 텐데?”

“…그럼 어쩌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잖아.”

“성가신 건 저 카메라잖아. 저 카메라만 어떻게 하면 돼. EMP가 제격이겠지."

“갑자기 EMP…? 펄스를 방출할 장비가 없는데?”

"있어. 나."

엄지로 나 자신을 가리켰다. 나채영은 조용히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EMP 쓰면 기계 전부 셧다운되는 거 알지? 그럼 우린 망하는 거야."

“당연히 알지. EMP 범위는 걱정하지 마. 지금 나로선 기껏해야 10m? 그 정도밖에 안 될 테니까.”

그러니까 놈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나는 냉동 창고에 있던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들고 입구를 나섰다. 초를 꽂아 불까지 붙였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약탈자들이 굶주린 민간인을 연기하는 이상 나를 먼저 공격할 수 없었다.

먼저 공격하면 오히려 좋았다. 약탈자의 더러운 수작이라며 여론을 선동할 수 있으니까.

‘옷 아래에 방탄복을 입고 왔지. 쏘려면 쏴라.’

“……당신은 누굽니까?”

확성기를 든 약탈자가 물었다. 찢어진 정장을 입고 무테안경을 낀 남자였다. 뭔가 지능캐같은 느낌이 나는 놈이었다.

“성악초등학교의 대표인 성유진입니다.”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좋은 사람을 연기했다. 연기 특성이 없어도 지금껏 해온 짬밥이 있었다. 이 정도 연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대표께서 직접 나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 케이크는 무엇입니까?”

“하하. 이런 일인데 당연히 제가 직접 나와야죠. 케이크는 저희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한 아이스크림 케이크입니다. 지금 시대에선 아주 귀한 물건이지요."

약탈자는 당황한 듯 눈동자를 굴렸다. 약탈자 리더가 있는 곳이다. 리더는 팔짱을 낀 채로 지켜보고만 있다.

“…성악초등학교는 겉보기와 달리 무척 혹독한 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근거 없는 유언비어입니다. 성악초등학교는 안전한 곳이고 누구나 환영합니다. 같이 성악초등학교로 들어가시지요. 음식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대접은 개뿔.

성악초등학교로 들어오는 순간 노예 이하의 가축으로 만들어 평생 굴려주마.

"…저희가 원하는 건 단지 약간의 식량일 뿐입니다. 성악초등학교에 폐를 끼칠 수는 없지요."

"알겠습니다. 일단 이 케이크는 받아주십시오. 날씨가 더워서 벌써 녹기 시작하는군요."

내가 약탈자들에게 다가갔다. 약탈자들이 당황한다. 숨겨 놓은 총을 꺼내려는 듯이 손을 움찔거린다. 리더가 손을 들어 그들을 만류했다.

'날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군. 이 새끼들은 성악초등학교의 재산을 탐내는 거다.'

일우 그룹의 개노릇을 한다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리더가 직접 나섰다. 그는 입가에 조소를 걸며 나를 비웃었다. 나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봤다. 카메라를 비롯해 트럭부터 시작해서 여러 장비가 10m 내로 밀집해 있었다. 외부로부터 총격을 막기 위한 밀집 대형인 것이다. 오히려 좋았다.

"하하.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잘 먹겠습니다."

뇌천류(雷天流) 전자기파(電磁氣波) EMP.

전자기파를 최대출력으로 사방에 퍼뜨린다. EMP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전기 장비들은 순식간에 먹통이 된다.

“그래, 잘 먹어라 새끼야."

리더의 얼굴에 케이크를 던졌다.

퍽!

“컥?!”

당황한 리더에게 파고들어 허리춤에서 군용 나이프를 빼앗았다. 직후, 리더가 권총을 꺼내기 전에 그 목을 그었다. 피가 쏟아진다.

“리더!”

“젠장! 저 새끼 죽여!!"

“트럭 움직여서 자리 잡아! 곧 공격이 온다!”

“트럭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타타타탕!

총성이 울린다. 나는 리더를 앞세워 총알을 막았다. 리더답게 방탄복을 입고 있어서 방패로서 성능이 뛰어났다. 뒤에는 트럭이 막아주고 있었다.

‘EMP를 너무 세게 터트렸나? 전자기막을 못 쓰겠네.’

최대한 머리를 숙이고 견딘다. 총알이 팔다리를 스쳤는지 화끈하다.

우우우우우웅.

기다리던 드론들이 나타났다.

쾅! 쾅! 쾅!

먼저 자폭드론들이 약탈자 사이로 들어가 폭발을 일으켰다. 전투 드론은 하늘에서 약탈자들에게 총을 갈겼다.

당황한 약탈자들이 혼비백산할 때.

"뭐하냐, 이 자식들아! 당장 대응 사격해!"

“이대로 죽을 거냐?!"

“씨발, 저딴 드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다른 약탈자 무리의 리더들이 소리치며 부하들을 휘어잡는다. 혼란이 가라앉고 그들이 트럭에 엄폐하며 전투 드론에 대응할 무렵.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방탄복으로 몸을 보호하고 방패를 앞세운 보안팀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당연히 보안팀에게도 총이 있었다. 허나 보안팀은 총 대신 진압봉을 들었다.

보안팀의 사기가 왜 이렇게 높을까? 사전에 생포한 약탈자를 노예로 준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내가 노예의 소유를 인정해 준 것이다.

'보안팀은 내 노예니까. 노예의 노예는 당연히 주인인 내 것이지.'

보안팀은 특히 여자 약탈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보안팀 대부분이 남자라 여자 노예가 탐나는 것이다. 그중에서 예쁜 여자 약탈자는 별로 없지만.

‘그나마 리더 급의 애인이 미녀군. 이것들은 내 거다.'

나는 느긋했다. 예쁜 여자 노예는 빼앗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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