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2141화 (1,921/2,000)

< 2141화 > 2141. 이터널 에덴

"우아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보안팀원 중 한 명이 하늘로 솟구쳤다. 이어서 총성이 연달아 울린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각성자가 있었나 보네.’

이후에 소란이 가라앉은 걸 보면 각성자도 죽은 모양이다.

‘능력을 각성했다고 해서 총알이 안 통하는 건 아니니까.'

각성자도 인간이었다. 총알이 통하지 않는 능력이 아닌 이상 각성자도 총 앞에선 평등하다.

우우우우웅.

전투 드론 중 하나가 내 옆으로 다가온다. 드론에 달린 스피커에서 나채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친 곳은 없지?

“내가?"

-…한 번 물어본 것뿐이야.

"없어. 뒷문 쪽은 어때?"

뒷문 쪽에도 약탈자들이 있었다. 나는 최혜진과 손태형, 보안팀 몇 명을 뒷문으로 보냈다.

-제압했어. 부상자도 없어. 뒷문에 있던 약탈자들은 제대로 싸우려 하지도 않더라고. 아마 우리가 뒷문으로 도망가는지 확인하는 임무를 받은 거겠지.

“이쪽에는….”

나는 주위를 힐끗거렸다.

검붉은 피가 도로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사망자가 좀 있어. 부상자도 좀 있는 것 같고.”

-어떻게 할 거야? 보안팀원들에게 회복 능력을 쓸 거야?

“공을 세웠으니 해줘야지."

솔직히 말하면 하기 싫었다. 내 몸을 회복하는 것보다 남을 회복하는 건 배로 힘들고 귀찮다. 그러나 경험이 쌓인 보안팀원을 잃는 건 너무 큰 손해였다. 그리고 좀 고생하는 대신에 보안팀의 충성심을 확 끌어 올릴 수 있다.

지금 보안팀은 내게 충성한다고 보기에는 애매했다. 내가 그들에게 의식주를 제공해 주기에 일하는 것뿐이다. 말하자면 고용 관계. 앞으로를 생각하면 내 뜻대로 움직이는 병사들이 필요했다. 그 시작은 보안팀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지지도 필요하니 능력을 마냥 아낄 수도 없어. 남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니 쓸 땐 써야지.'

물론 마구잡이로 능력을 써서 성자 소리를 들으려는 생각은 없었다.

차별을 둔다.

공을 세운 자에게만 혜택이 가야 한다. 그래야 빌붙는 놈들이 없어지겠지.

나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중상자를 회복시켰다. 대부분 장비를 무장했기에 중상자는 적고 경상자가 많았다.

“가, 감사합니다, 대표님…!”

회복 능력에 의해 죽기 직전까지 갔던 보안팀원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나를 보는 눈에는 경외심이 가득하다. 그럴 만도 한 게 나는 순식간에 생명의 은인이 된 것이다. 앞으로 배신 마려울 때가 오면 이 순간을 떠올리겠지.

나는 발목이 부러지거나 팔목에 가벼운 상처가 난 경상자들도 회복시켰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단단히 알렸다.

“내가 너희를 치료해 주는 건 너희가 내 밑에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 자격이 있다. 저기에 있는 노예 새끼들이나, 성악초등학교에 있는 노동자들과는 명백히 다르다. 너희는 전사다! 목숨을 걸고 수호하는 전사들! 따라서 너희는 노예를 소유할 권리가 있다!”

“와아아아아! 성유진 만세!!"

보안팀의 대부분이 환호했다. 하지만 몇 명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노예제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음에도 선비 기질을 가진 놈들이 꼭 있었다.

“노예가 필요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팔아도 된다. 내가 특별히 노예 인증서를 발급해 주마. 이번에는 특별히 무료로.”

“…저, 대표님. 저들은 비록 약탈자이긴 하나 인간입니다. 노예로 삼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보안팀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젊고 깔끔한 인상의 남자였다. 고생은 별로 안 해본 듯한 얼굴.

"인권? 지금 이 시대에 인권이 어디에 있지? 권리는 힘이 있어야만 가질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약탈자 놈들로부터 승리하지 못했다면, 너는 죽고 네 가족은 범해졌을 거다. 식량을 빼앗기고 안전한 이곳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르지. 그런데도 이놈들에게 인권을 주고 싶나?”

“약탈자들의 범죄는 인정합니다. 저는… 노예제가 부당하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노예제는 미개한 제도입니다.”

“미개는 무슨. 전통이지. 인류의 역사에서 노예가 빠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는 그 어떤 역사보다 끔찍한 상황이지. 뭐, 나는 네 의견을 존중하니 너를 비롯한 보안팀에게 물어보겠다.”

주위를 둘러봤다. 보안팀원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노예가 될 약탈자들은 묶인 채로 바닥에 무릎 꿇었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나를 향한 적의가 아니다. 이 젊은 보안팀원을 향한 적의가 쏟아진다.

“노예제를 반대하는 사람? 손만 들어라.”

"……."

침묵이 고요한 곳에서 손을 든 자는 없었다. 심지어 내 앞에서 노예제는 미개하다고 말했던 놈도.

"만장일치군."

젊은 놈은 앞으로 사회생활이 좀 고단해질 것이다.

이후에 노예가 약탈자들을 심문해 본거지를 알아냈다. 트럭을 개조하고 총기를 사용하는 약탈자들이다. 가진 재산이 적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우선 드론을 정찰 보내고 규모에 따라 보안팀을 파견했다. 약탈자들의 재산을 모조리 긁어모았다.

'이 새끼들 본거지에 포로를 데리고 있었군.'

말이 포로지 노예들이었다. 특히 여자들이 많았다. 여자들이 주로 하는 일은 당연히 약탈자들의 성욕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다. 약탈자들의 노예는 노예로 만들지 않았다.

나는 아무래도 좋았지만, 나채영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죄가 없잖아. 죄 없는 자는 노예가 되어선 안 돼.

반발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어차피 그들은 노예가 아니어도 노예였다. 그리고 노예들의 진정한 주인은 나뿐이고.

-얻은 자원이 제법 많아. 성악초등학교를 확장할 수 있겠어. 슬슬 성악초등학교라는 이름도 버릴 때가 온 것 같지 않아?

나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다. 세력은 더 커지고 있다. 계속 성악초등학교라 부르는 것도 뭔가 우습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약탈자들의 재산을 챙기는 데 집중하자. 이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아."

상황이 적당히 정리됐다.

나는 호버 보드를 타고 부산으로 날아갔다. 중간에 휴게소가 보여 잠깐 들렸다. 좀비와 함께 물자들이 널려 있었다. 아쉽게도 물건을 챙길 여력이 없어서 빈손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휴게소도 발견했다. 변종이 지배하고 있었기에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호수를 지나갈 때도 경악했다. 수면 아래로 10층짜리 건물 크기의 물고기가 헤엄치는 게 보였다. 저것 또한 변종일 것이다.

하늘을 날다 다른 도시를 발견했다. 쑥대밭이 된 도시. 좀비나 변종 때문이 아니다. 군대에 의해 폭격당한 것이다.

‘도시를 폭격할 정도로 위험한 변종이 있었나 보군.’

정부 쪽에도 플레이어가 있으니 위험한 변종이 있으니 수단을 가리지 않고 처리한 것 같았다.

'개판이네.'

산과 들에는 변이체들이 돌아다니고, 마을에는 좀비들이 돌아다녔다. 인구수가 많은 도시 쪽에는 좀비보다 변종들이 더 큰 문제였다.

‘이걸 보면 성악초등학교가 천국인 수준이군.’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을 본 나는 감탄했다. 사람들이 모여 부산 주위에 장벽을 세우고 있었다. 그 외에도 무장한 사람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경계한다. 입고 있는 옷을 보니 군대는 아니다.

보니까 돌아다니는 좀비가 없다. 도시 내부의 정리도 어느 정도 끝난 것 같다.

'서울보다 더 안전한데?'

무슨 수를 쓴 건지 몰라도 도시가 정리되어 있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부산이 아닐까.

‘좀비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아주 철저하게 준비한 게 느껴지는군.’

고도를 높였다. 구름이 제법 있어서 모습을 숨기기에 적합했다. 일우 그룹의 본사는 부산의 중심부. 그것도 초고층 빌딩인지라 눈에 확 띄었다.

나는 빌딩을 내려다보며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미리 알아둔 번호를 누른다. 신호음이 가고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나다.”

-……성유진? 내 개인용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일우 그룹의 이사 진충현의 목소리는 냉철했다. 이 정도는 당황스럽지도 않다는 거다.

“네가 보내준 선물은 잘 받았다. 그 멍청한 약탈자들 덕분에 성악초등학교의 자원이 3배 가까이 늘어났지.”

-하, 겨우 그딴 자랑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나? 그 멍청이들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패중에 하나일 뿐이다. 운 좋게 얻은 작은 승리에 기뻐해라. 이제 네 앞날에는 지옥이 펼쳐질 테니.

호버 보드를 타고 수직 낙하한다. 빌딩 옥상에 도착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연락한 건 선전 포고를 해주기 위해서다.”

-…선전 포고?

빌딩 옥상에는 헬리콥터가 하나 대기 중이었다. 비상용 헬리콥터. 꽤 탐나는 물건이지만… 당장 저걸 가져갈 순 없었다.

“이 몸께서 널 죽이려 친히 부산에 행차하셨다. 너와 네 가족을 모조리 죽여주마.”

등에 메고 있던 배낭에서 C4 폭탄을 꺼내 헬기로 획 하고 던졌다.

쾅!!

헬기가 박살 난다. 이제 놈의 탈출 수단은 없다.

-무슨… 설마 본사에 있는 거냐?!

폭발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지금 본사에 있는 거 안다. 10분 내로 죽여주마.”

통화를 끊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배낭에서 C4를 하나 더 꺼내 옥상 문에 던졌다.

쾅!!!!

박살 난 문으로 걸어가며 배낭에서 복면을 꺼내 뒤집어썼다. 눈과 입. 세 개의 구멍만 있는 싸구려 검은색 복면.

'지금의 나는 영웅 성유진이 아니라 테러리스트 성유진이다.'

허리춤에서 갈치검을 뽑아 들었다. 하얀 갈치검은 붉게 칠해져 있었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갈치검에 색을 입힌 것이다.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면서 귀에 꽂은 무선 이어폰을 건드렸다.

“나 박사, 시작해."

-하아. 설마 테러를 하게 될 줄이야. 별걸 다 하네. 진짜.

나는 부산에 혼자 오지 않았다.

내 뒤를 따라 성악초등학교의 드론이 따라왔다. 중간중간에 배터리를 갈아야 하는 귀찮음이 있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위이이이이이이이잉!

하늘 높이 날고 있던 드론들이 일제히 출력을 높이며 아래로 떨어진다. 총 12개의 드론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빌딩 곳곳에 처박혀 자폭했다.

쾅! 쾅쾅쾅쾅쾅!!!!

폭음과 함께 빌딩이 흔들린다. 후두둑 떨어지는 유리조각과 불타는 빌딩에서 울리는 끔찍한 비명.

나는 이연희에게 받은 자료로 미리 파악해 둔 빌딩의 구조를 떠올리고 부회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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