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2화 > 2142. 이터널 에덴
“이런 씨발 새끼가!!!"
쾅!
분노한 진충현의 주먹이 집무실 책상을 내리쳤다. 냉철한 이성을 모토로하는 그의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입술은 벌어져 으르렁거렸다. 왁스로 정리한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고급 정장은 구겨졌다.
그때였다.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그의 비서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이사님! 본사 건물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경호팀의 말로는 폭탄 드론을 활용했다고 합니다! 당장 본사 빌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당황한 비서를 본 진충현은 오히려 냉정해졌다.
“박 비서, 진정해. 본사 빌딩을 지을 때 얼마나 견고하게 지었는지 잊었어? 겨우 이 정도로 무너지지 않아. 게다가 얼마 전에 건물 보강까지 했잖아. 드론 폭탄? 비행기가 날아와서 꼬라박는 것도 아닌데 충분히 견디고도 남지.”
“그, 그렇지요. 겨우 이 정도로 본사 빌딩이 무너질 리 없지요.”
“다른 습격은 없나?"
“없습니다. 국군의 짓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합니다. 국군이 저희를 징벌하기로 했다면 이런 식이 아닐 텐데…. 배신자의 짓일까요?"
“성유진. 그놈의 짓이다.”
“성악초등학교의 대표 성유진 말입니까? 서울에 있어야 할 그놈이 왜….”
“그딴 미친놈의 정신 상태는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지금 그 새끼가 빌딩 옥상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거다. 감히 날 죽이겠다는 개소리를 지껄이면서!!"
"이, 이사님. 진정하십시오. 성유진이 빌딩 옥상에서 내려오고 있다면… 저희가 먼저 내려가서 빌딩을 나가면 그만입니다. 설마 도시까지 따라오겠습니까? 부산은 저희 일우 그룹의 영지나 다를 바 없습니다.”
“본사를 나간다? 웃기지 마라. 그딴 놈이 두려워서 본사를 버릴 것 같으냐."
“만일을 대비해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이번 폭탄 테러로 경호팀이 절반 가까이 사망하긴 했으나… 나머지 절반은 무사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그도 있습니다.”
“그래. 본사의 저력이 고작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할까. 경호부장에게 명령해서 어떻게든 성유진을 죽이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놈이 옥상에서 내려온다고 했죠. 지금 경호부장에게… 엇, 잠깐. 위에서 내려온다면 회장실이….”
“회장님은 일본에 있는 걸 잊었냐?”
“잊지 않았습니다. 회장실 바로 아래에 부회장실이 있지 않습니까. 놈이 노리는 건 혹시….”
부회장.
진충현의 아버지였다. 깜짝 놀란 진충현은 스마트폰으로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신호음이 한번 짧게 들리고 그의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당장 아래층으로 내려오십시오! 미친놈이 아버지를 노리고 있습니다!"
다급한 진충현은 이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와락 구겨졌다.
-늦었어. 네 아버지는 이미 오체분시됐거든.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내줄까?
“이 빌어먹을 새끼가 기어코!!"
-기어코는 지랄. 너랑 나는 적이다. 넌 날 죽이려 했고, 이번에는 내가 널 죽이려 하는 거지. 아쉽게도 너의 다른 가족들은 모두 다른 곳에 있더라? 다 같이 모여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다음은 네 차례다. 죽이러 갈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뚝.
전화가 끊겼다.
"아아아아악!"
진충현은 괴성을 지르며 스마트폰을 내던졌다. 벽과 부딪친 스마트폰이 박살 났다.
진충현은 이를 뿌득 갈며 비서에게 명령했다.
“박 비서! 경호부장에게 전해! 성유진! 그 새끼를 죽이라고! 아니, 될 수 있는 한 생포하라고! 그 새끼가 아버지를 죽였어…. 우리 가문을 건드렸다고!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아, 알겠습니다. 바로 경호 부장에게 지시를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꺼내!"
"그거라 하시면…?”
“전투용으로 개발한 로봇! BP라 했나? 당장 투입해!"
“BP는 아직 실험 중입니다만….”
“투입하라고!”
“네, 네. 알겠습니다."
“그에게도 협조를 요청하고.”
진충현이 목소리가 한층 조심스러워졌다. 그는 진충현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일단 내려가시지요. 빌딩에 난 화재는 거의다 진압했을 겁니다."
“난 여기에 있겠다.”
“네?”
“내가 그놈이 무서워서 내 집무실을 버리고 도망간다? 절대로 안 될 일이지. 난 내 집무실에서 그 새끼를 볼 거다.”
진충현의 두 눈이 이글거렸다. 진충현의 고집은 일우 그룹에서도 유명했다. 10년 전에 그 고집이 빛을 발하며 중동에서공을 세웠던 적이 있었다. 그 공적 덕분에 지금 이사 자리에 오른 것이고.
진충현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인물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중에 비서는 없었다. 비서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나는 일우 그룹의 부회장, 진성만을 죽였다. 진충현의 아버지인 진성만과 대화 한 번 나누지 않고 보자마자 죽였다. 때마침 진충현이 진성만에게 전화했고 진성만의 죽음을 알렸다. 분노한 진충현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확 좋아졌다.
‘진충현의 집무실은 여기서 5층 아래에 있다. 밖을 보니 벌써부터 경찰들이 모여들고 있군. 빨리 움직이자.'
혼자서 저들 전부를 상대할 수 없다. 내 체력이 떨어지고 패배하게 될 테니까.
‘도망갈 시간까지 고려하면 10분 내로 진충현은 죽여야 한다.'
부회장실 밖으로 나가 아래로 내려간다. 엘리베이터는 사용할 수 없다. 자폭 드론을 이용해 엘리베이터를 중점으로 폭파시켰으니까.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는데 경호원들이 나타났다. 방탄복과 소총에 바이크 헬멧 같은 것들을 뒤집어쓴 놈들.
'최신 무장이군. 기술 수준이 높아. 군대도 상용화하지 못한 장비를 이놈들이 쓴다? 일우 그룹에 테크놀로지스트가 있는 건 확실하군.'
기왕이면 일우 그룹의 테크놀로지스트도 죽이고 싶은데, 정보가 없었다. 누군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죽이겠나.
“테러리스트!!”
"죽어라!!"
경호원들이 인정사정없이 총을 갈겼다. 나는 계단 벽면을 달리며 총알을 피해 그들에게 접근했다.
서걱!
가볍게 휘두른 칼날이 그들의 목을 베고 지나간다. 굴러떨어지는 시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삐삐삑!
계단 중간에서 붉은색 빛이 번쩍였다.
‘폭탄?!’
순간적으로 파악하고 방향을 틀어 위로 올라갔다.
콰아아아아앙!
계단 전체가 날아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폭발에 휘말려 온몸이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검은 연기 아래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뇌천류(雷天流) 전자기파(電磁氣波).
부서진 계단 아래. 6명의 무장 병력이 총구를 위로 겨누며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모습을 드러내면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이거나 먹어라.'
배낭에서 C4를 꺼내 던졌다. C4가 작아서 그런지 그들의 반응이 늦었다.
콰아아아앙!
강렬한 폭발이 적들을 분쇄했다. 나는 불타는 계단을 향해 뛰어내렸다. 날 막아서는 병력을 죽이면서 진충현의 집무실이 있는 층으로 도착했다.
복도에 들어서니 웬 로봇이 있었다. 하얀 금속 몸체에 수십 개의 다리를 가진 쥐며느리와 비슷한 외형의 로봇이다.
‘다리가 많으니 로봇이라도 징그럽네.'
로봇의 머리에는 눈처럼 생긴 렌즈가 붉은빛을 냈다.
“아, 안녕하십니까, 고, 고객님. 여, 여긴, 출입이, 금, 금지된, 곳입니다. 주, 죽어 주십시오!”
“기계 새끼가 맛이 갔나 보군. 아니면 아직 미완성인가."
“안녕히, 안녕히 가십시오! 고객님!”
로봇이 수십 개의 다리를 움직이며 달려든다. 정면에서 오는가 싶더니 벽을 타고 벌레처럼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 속도는 내 눈으로도 쫓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눈으로 좇을 수 없다면… 다른 감각으로 파악하면 된다.’
뇌천류(雷天流) 전자기파(電磁氣波).
전자기파 퍼지며 로봇의 위치를 확인한다. EMP로 쓰면 편하겠지만, 체력의 소모가 크니 아끼기로 했다.
'머리 위.'
어느새 천장에 매달려 있던 로봇이 떨어진다. 수십 개의 다리는 모두 날카로운 칼날로 변해 있었다.
떨어지는 로봇을 칼날로 걸어 바닥에 패대기쳤다. 뒤집어진 로봇 벌레가 버둥거리며 몸을 뒤집으려 한다.
“아, 안 돼. 아파. 아픕니다!”
“로봇 주제에 시끄러워 죽겠네. 아프다고? 오냐, 편하게 해주마.”
로봇의 몸통 관절 사이에 칼날을 찔러 넣었다.
'뇌전.'
푹 들어간 갈치검을 타고 전류가 흘러 들어가 로봇의 회로를 망가뜨렸다.
펑!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로봇의 몸에서 붉은 액체가 주르륵 흐른다.
“고, 고, 고객님. 계산은, 1층입니다!!”
로봇이 죽은 벌레처럼 축 늘어졌다.
나는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왠지 모를 찝찝함이 느껴졌다. 칼을 움직였다. 갑판을 피해 관절을 베어 로봇을 해체했다.
로봇의 안쪽에 복잡한 기계와 함께 뇌가 들어 있었다.
사람의 뇌와 비슷해 보였지만… 그 크기가 작았다.
‘다른 동물의 뇌인가. 이를테면 원숭이 같은 거? 설마 AI를 대신해 동물의 뇌를 썼나?’
뭐 이딴 말도 안 되는 게 있나 싶다가, 이 세계를 특징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있을 만한 기술이었다.
로봇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번에는 한 남자가 나타났다. 검은 가죽옷을 입은 그는 무감정하게 날 바라봤다.
“아무리 나라도 이런 짓은 저지르지 못했을 텐데…. 대단하긴 하군.”
딱히 이렇다 할 장비가 없음에도 당당하면서도 여유로운 태도. 이상함을 느낀 나는 배낭 안에 있던 마지막 C4를 놈에게 던졌다. C4는 허공에섯 멈췄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잡힌 것처럼.
'염력?'
“위험한 걸 들고 다니는군. 이건 내가 처리하지.”
콰직.
C4에 완전히 분해되어 바닥에 떨어진다. 뇌관을 건드리지 않고 한순간에 C4를 해체한 것이다.
“염력을 그딴 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니…. 평범한 각성자에겐 불가능한 일이지. 너, 플레이어냐.”
플레이어의 4가지 클래스. 로드, 에스퍼, 테크놀로지스트, 바이오닉스. 남자는 그중 하나인 에스퍼가 확실했다.
에스퍼는 다른 클래스에 비해 포텐셜이 떨어질지 몰라도 초반에는 어떤 클래스보다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클래스다.
언젠간 마주하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설마 여기서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몸을 긴장시키며 칼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