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2144화 (1,924/2,000)

< 2144화 > 2144. 이터널 에덴

일우 그룹의 회장 진수결은 일본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한국의 소식은 빠짐없이 듣고 있었다. 일본에 있다고 하여 그의 귀와 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

당연히 부산 본사에 일어난 참극도 들었다.

아들이자 부회장인 진성만이 죽었고, 손자이자 이사인 진충현이 죽었다. 범인은 본사를 테러한 인물.

물론 그 테러리스트의 정체도 알고 있었다.

성악초등학교의 대표인 성유진.

현재 대한민국의 영웅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그의 전투 영상은 전 세계적으로 퍼졌고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평화로운 시대에선 영웅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되지만, 생존이 걸린 지금 고단한 시대에서 영웅은 우상이 되었다. 성유진은 명실상부한 한국의 우상이었다.

테터리스트의 정체를 알면서도 공식적으로 발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기도 했고.

'이미 영웅화가 된 성유진을 건들기에는 부담스럽다.'

정부가 성유진을 밀어주고 있었다.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스트레스를 낮추기 위해 성유진이라는 영웅을 내세우는 것이다.

더군다나 일우 그룹은 현재 한국 정부의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멋대로 부산을 요새화하여 집어삼키려 했으니 당연했다.

'부산을 일우 그룹의 영지로 만드는 계획은 실패했다.'

본사가 테러당하고 계획의 책임자인 진성만과 진충현이 사망했다. 부산에 대한 일우 그룹의 영향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고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정부도 일우 그룹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회장인 진수결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아들과 손자의 죽음에 슬픔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강대한 이성으로 감정을 억눌렀다. 냉철한 이성이야말로 그의 강점이자 모토이며 신념이었다.

‘한국에 있는 다른 계열사에게 알려 성유진을 건들지 말라 명령해야겠군.’

반발할 것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가족이 죽은 일이니까. 그의 자식들이자 일우 그룹의 실세들은 복수를 해야 한다고 외칠 것이다.

‘지금은 복수를 할 때가 아니다. 복수는 준비가 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그가 결정을 내렸다. 그의 자식들이라 할지라도 그 뜻을 거스르지 못 하리라.

진수결이 뒤를 돌아봤다.

일본의 어느 곳에 있는 진수결의 별장. 그 실상은 일본 정부와 협력하여 만든 비밀 연구소. 연구소의 연구 주제는 인간의 진화 수 많은 인간들이 고통당하며 실험당하고 있었다.

'인간의 진화를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게 된다면… 일우 그룹은 세계의 주인이 될 것이다.'

현재 유일한 친위대의 일원이자, 친위대원을 뽑을 인사권을 손에 쥔 손태형은 성악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눈여겨봤다.

가장 먼저 살핀 것은 보안팀이었다. 성악초등학교에서 풍부한 전투 경험을 가진 이들이었으니까. 조금만 훈련시켜도 쓸만한 병력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허나 곧 보안팀을 제외했다. 보안팀은 충성심이 있을지언정 신앙심이 없었다. 스스럼없이 목숨을 바칠 정도로 충성심이 깊은 것도 아니었다. 받을 만큼 일한다는 느낌이었다.

‘친위대는 그분을 지키는 최후의 장벽이다. 목숨 따윈 초개처럼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보안팀은 탈락이었다. 허나 손태형의 박한 평가와는 별개로 보안팀은 현재 꽤 분위기가 좋았다.

이번에 얻은 노예들 때문이었다.

노예가 일하면 그 일당을 노예의 주인이 얻는다. 즉, 노예를 가진 보안팀원은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노예를 마음대로 굴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보안팀에게도 거부감이 들었다. 약탈자들이 범죄자라고 해도 같은 인간이 아닌가. 어떻게 함부로 대하겠는가.

어렸을 때부터 배운 도덕 교육과 유교적 문화가 그들의 양심을 툭툭 건드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과 노에의 관계가 명확해질수록 양심은 둥글게 변했다.

그 시작점은 약탈자에게 동료를 잃은 보안팀이었다. 성유진은 다친 보안팀원을 회복시켜도 죽은 보안팀원을 되살리지 않았다. 그는 노예가 된 약탈자에게 분노를 쏟았다. 모욕은 당연했고 폭력까지 사용했다. 노예는 저항할 수 없었다.

그런 장면이 여기저기서 보였고, 그의 다른 동료들도 그에게 동참하며 노예를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다.

남자 노예는 폭력에 시달리며 일을 해야 했다. 노예에서 벗어날 방법은 하나. 공을 세우고 인정받는 것. 허나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었다.

여자 노예의 경우 좀 특별했다. 미모가 뛰어난 여자 노예는 성유진의 소유가 되고 어느 순간부터 지위가 높아졌다. 반대로 미모가 평범하거나, 그 이하일 경우? 어김없이 성노예 행이다. 주인의 명령에 의해 창녀가 되어 일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운이 좋을 경우 주인과 결혼해서 노예 신세를 벗어 나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이들은 손태형이 원하는 인재가 아니었다. 손태형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가족을 잃은 자들.

좀비나 변종, 약탈자에게 공격당해 장애를 얻은 자들.

이 끔찍한 세상에 절망하여 삶의 목적을 잃고 죽음을 고민하는 자들.

손태형은 그들에게 접근했다, 바로 친위대로 데려오지 않았다. 이들 중에서도 걸러낼 자는 걸러내야 했다.

손태형은 그들을 모았다. 당연히 순순히 따르려 하지 않았다. 손태형은 돈과 식량, 약품을 미끼로 걸어 그들을 모았다.

“그분이야말로 저희의 진정한 구원자이시며, 저희를 지켜줄 수호자이십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분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분이 죽으라 하면 죽고, 살라고 하면 살아야 합니다. 저희가 지금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도 모두 그분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목사였던 손태형은 모인 이들에게 부드럽게 설교를 이어갔다. 때로는 성경의 내용을 적당히 바꾸었고, 반복적으로 그분을 찬양하도록 했다.

이미 깊은 절망을 겪어 기댈 곳이 없는 자들이었다. 이런 이들에게 신앙심은 빠르게 자리 잡는다. 그들 중에는 이미 다른신앙을 가진 자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성 대표가 대단한 인물인 건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성 대표는 신이 아닙니다!"

“진정한 구원자는 미륵뿐입니다. 언젠간 미륵불께서 나타나 이 세상을 구원하실 겁니다!”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 꼴이 났겠습니까?!”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손태형에게 분노를 토하는 자들. 그들이 모임에 참가한 이유는 오로지 식량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분께서는 아직 진정한 신으로 거듭나시지 않으셨습니다. 허나 그분께서 신이 되어 천상으로 날아오르시는 건 정해져 있는 미래입니다.”

손태형이 말했다. 당사자인 성유진은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으나, 손태형은 그가 진정 신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헛소리! 당신의 말은 사이비나 다를 바 없습니다!”

“들어주는 것도 지치는군요. 이만 나가봐도 되겠습니까?”

“성 대표가 저희를 세뇌하라고 시켰습니까? 저는 그런 말에 거부하는 멍청이가 아닙니다.”

신앙을 극심하게 거부하는 자들.

손태형은 오히려 웃었다. 저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미 신앙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악물고 종교를 거부하려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저들을 설득하는 건 간단했다. 신의 증거를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여러분에게 그분의 기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틀 뒤, 이곳으로 오십시오. 오시는 분들께는 돈가스 도시락을 점심으로 제공하겠습니다.”

“꿀꺽."

돈가스로 살살 꼬시자 여기저기서 군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돈까스조차 쉽게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틀 뒤, 성유진이 나타났다.

성유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높은 의자에 앉아서 이곳에 모인 자들을 내려다봤다. 손태형은 그의 앞에서 찬양의 말을 읊고 기도의 말을 올렸다.

“아아, 주여, 여기 괴물에게 팔을 잃은 자가 있습니다. 그는 비록 거짓된 신을 믿고 있는 자이나, 그에게 온화한 자비와 거룩한 기적을 내려주십시오!"

팔을 잃은 기독교인.

성유진이 그를 향해 조용히 손짓했다. 손태형은 아주 조심스럽게 그와 함께 성유진의 앞으로 다가갔다. 성유진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기독교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변종에게 잃었던 오른팔이 쑥쑥 커지며 재생된 것이다.

기적을 경험한 당사자인 그는 멍한 눈으로 자신의 오른팔을 쳐다봤다. 고통도 없이 재생된 오른팔의 감각이 선명했다. 그는 자신의 오른손을 몇 번 움직이다가 조용히 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흐윽…. 제, 제가 감히 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건방을 떨었나이다…! 참회합니다! 참회하겠습니다!”

기적을 체감한 남자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네게 참회할 기회를 주겠다. 손태형을 따르라.”

성유진이 말했다. 그의 시선이 손태형에게 향했다. 손태형은 주변을 둘러봤다. 기적을 목도한 어리석은 자들이 멍하니 성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여, 여기 불치병을 앓는 아이의 어미가 있습니다. 이 불쌍한 모자에게 자비를 내려주소서!"

성유진은 일곱살 짜리 아이가 다가갔다. 창백한 피부, 죽은 생선과 닮은 눈동자,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두피.

성유진이 능력을 사용했다. 피부에는 생기가 돌아왔으며 두피에는 새까만 머리카락이 자랐다.

“아, 아프지 않아! 진짜 병이 나았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이는 기뻐했고 어미는 고개를 조아렸다.

“주여! 여기 썩은 포도주가 있습니다! 오늘만큼은 우리 모두가 목을 축일 수 있도록 기적을 내려주십시오!"

손태형이 살마을 시켜 썩은 포도주가 담긴 통을 가져오라 시켰다. 사람들은 포도주가 썩은 것을 두 눈과 코로 확인했다.

이것 또한 예정된 퍼포먼스.

성유진은 썩은 포도주에 회복 능력을 사용했다. 부패한 시체를 되살리고, 부서진 능력도 복구하는 능력이 썩은 음식을 되돌리지 못할 리 없었다.

그의 손에서 포도주가 회복되었다. 포도주의 썩은내 대신 달콤한 향기가 널리 퍼진다.

"……."

기적을 목도한 자들은 눈을 감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마음에 신앙을 품고 기도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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