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2145화 (1,925/2,000)

< 2145화 > 2145. 이터널 에덴

성악초등학교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본격적으로 성악초등학교의 영토를 늘리기 시작하면서 사람들 또한 모여들었다. 원래라면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쫓겨나

야 할 사람까지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무작정 받아들이진 않았다. 신원 조회와 면접 등으로 문제가 있을 것 같은 놈들은 걸

렀다.

약탈자의 노예화는 단어를 조금 순화했다. 노동 복무 등등으로, 대놓고 노예 제도를 표방하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

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노예나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건 성악초등학교의 누구나가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 질서가 잡혔다는 것이다.

나나 나채영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문제를 해결한다. 덕분에 자유 시간이 늘어났다. 나는 단련과 섹스에 힘쓰고

나채영은 연구에 힘쓰는 평범한 나날.

지루하기까지 한 평범한 나날을 깨부순 것은 성악초등학교 공식 홈페이지에 투고된 이메일 한 통이었다.

“이메일? 뭐, 이번에 또 누가 받아 달라고 요청했는데? 연예인이야?”

나를 부른 나채영에게 말했다. 공식 홈페이지 이메일을 통해 여러 가지 메일이 들어온다. 대부분 구해달라거나 받아달라

는 요청이었다. 이런 요청은 대부분 무시한다.

성악초등학교에 들어오고 싶다고? 그럼 직접 와야지 어디서 오라 가라야. 나의 성악초등학교는 119가 아니었다. 연예인

이라도 예쁜 여자가 아니면 안 받는다.

“샛별아파트 주민 중 한 명에게서 온 메일이야.”

“30년 전쯤에 지어진 것 같은 촌스러운 이름이네. 요즘은 뭔가 프랑스 느낌의 아파트 이름이 많지 않았나.”

“요즘 아파트라…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샛별아파트가 오래된 아파트인 건 맞아. 1988년도에 준공된 아파트니

까.”

나채영이 모니터 하나에 아파트 사진을 띄웠다. 누런 건물의 복도식 아파트. 사진만으로도 세월이 느껴졌다. 아파트는 꽤

많았다.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단지는 디귿(ㄷ)으로 입구만 뚫려 있다.

“입구만 막으면 괜찮은 주거지가 될 것 같네.”

“그건 아파트 내부에 좀비가 없을 때의 이야기지."

그건 그렇다. D 바이러스는 아파트나 지형지물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가리니까. 운이 나쁘면 좀비가 되는 거고, 운이 좋

으면 살아남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날을 제외하고 D 바이러스에 공기 감염이 되는 사람이 없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이 아파트가 왜? 구해달래?”

“구조 요청이 온 건 맞아. 현재 아파트에 남아 있는 인원은 약 1,000명. 그들 중 한 명이 우리에게 구조 요청을 해왔어.”

나는 의문을 느꼈다.

성악초등학교에 구조 요청을 해오거나, 입주를 희망하는 자들은 개인 혹은 3~4인 가족 단위가 대부분이다. 수백 명 단위

의 생존자는 구조 요청을 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경찰이나 119에 신고한다.

“아파트끼리 뭉쳤으면 대부분 알아서 하지 않나? 식량 지원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잖아.”

“네 명성을 보고 구조를 요청하는 거야. 아파트 내외에 괴물이 있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야."

명성.

나는 현재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혼자서 변종을 죽이는 영상이 퍼지면서 그렇게 됐다. 한국 정부가 나를

영웅화 시키기도 했고.

약간 흥미가 생겼기에 이메일을 직접 읽어봤다.

-샛별아파트 주민회 회장 이예빈입니다.

자기소개에서부터 시작된 글들은 샛별아파트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구구절절 쓰여 있었다.

'요약하자면 와서 괴물 좀 죽여달라는 거군.'

괴물을 죽여주면 뭘 줄건지에 대해선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나를 공짜로 부려 먹겠다는 뜻이었다. 이메일을 무시하

면 인터넷에 우리를 구해주지 않았다고 말하겠다는 협박성 말도 적혀 있었다.

'아주 괘씸하네.'

그렇다고 직접 가서 보복할 필요는 없었다.

샛별아파트의 상황은 심각했으니까. 아파트 외부에는 변종 2마리가 돌아다니며 아파트 출입구를 통제하고 있다. 변종이

꽤 강력해서 군부대가 출동했는데도 잡지 못했다고 한다.

'아파트 때문에 미사일을 쓸 수 없었겠지. 군부대는 다른 급한 일이 터졌으니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철수했다라.'

샛별아파트는 후순위로 밀렸다. 아파트 출입구가 막혀 있었고, 변종도 구태여 아파트 안쪽으로 넘어가려 하지 않았으니

까.

‘문제는 아파트 내부에 변종이 생겼다. 매일 아침 아파트 주민이 한 명씩 사라지고 있다. 괴물이 먹다 남긴 시체도 발견했

다라…’

안전한 곳은 안전하지 않게 됐다.

정부에 도움을 요청해도 미적지근하게 대응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정부는 다른 지방 도시에 정신이 팔려 있으니까. 아파트 단지 하나와 지방 도시를 저울질하면 당

연히 지방 도시 쪽이 더 중요하니까.

“이 아파트 안에 있는 변종에 대한 정보가 없잖아.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 지도.”

부족한 정보에 혀를 찼다. 구조를 원한다면 좀 자세히 써야지.

“아마… 기생형 변이체일 가능성이 커."

“기생형 변이체?”

“동물이나 곤충이 변이를 일으켜 괴물이 되는 세상이야. 기생충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야. 사람에게 기생해서 결국에는

그 뇌를 차지해서 인간 행세를 하는 기생형 변이체. 이것들은 위험해. 나중에는 사람과 같은 지능을 갖게 되니까. 박멸할 수 있을 때 박멸해야 해."

나채영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녀는 내가 샛별 아파트로 가서 기생충들을 박멸하기 원하는 것 같았다.

“박멸 안 하면? 한국이 기생충 제국이라도 될 것 같아? 기생충은 기생충일 뿐이잖아.”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지금 단계에서는 5%도 안 되겠지만… 내버려 두면 그 가능성은 더 커질 거야. 너도 알잖아.

D바이러스는 진화를 촉진 시킨다는 걸. 기생충은 박멸해야 해.”

“기생충은 징그러워서 상대하기도 싫은데. 귀찮기도 하고.”

“기생충은 남녀를 가리지 않아. 네가 원하는 여자도 기생충에 감염될 수도 있어.”

기생충이 감염된 미녀.

무심코 상상했다가 눈살을 찌푸린다. 그런 건 내가 원하는 미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주민회 대표라는 이예빈이라는 사람은 쇼핑몰 피팅 모델이었던 모양이야."

나채영이 SNS 창을 띄워 보여줬다. 이예빈. 피팅 모델인 만큼 상당한 미녀였다.

‘주민회 회장이라길래 아줌마인 줄 알았는데… 20대 후반 정도네. 사진을 보면 포토샵을 한 것 같긴 해도… 만날 볼 가치

는 있겠어.'

가슴은 C컵에 엉덩이도 빵빵하다. 사진을 보면 대부분 해외여행이나, 오마카세 식당 사진이라 좀 쎄하긴 한데….

‘데리고 살 정도로 뛰어난 미녀도 아니잖아. 나채영이나 최혜진에 비하면 손색이 좀 많네.’

나는 눈이 너무 높아져 버렸다.

성격이 개판이어도 내 총애를 받으려면 나라를 흔들 정도의 미모는 갖춰야 한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보긴 할게. 그 아파트에 1,000명이나 있으니 마음에 드는 놈들이 있으면 성악초등학교로 데려오

면 되겠지. 근데 기생충은 어떻게 찾아내?”

나채영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내 눈을 피했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빤히 쳐다보자 모기 기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기생충 감지기나 판별기를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해. 한 달…. 아니, 못해도 보름 이상의 시간은 필요해."

“진짜냐….”

현실판 임포스터를 하게 생겼다.

샛별 아파트로 가기로 했다.

이번엔 혼자 가지 않고 최혜진을 데려가기로 했다. 최혜진 본인이 마피아 게임을 존나 잘한다는 이유였다. 또라이년이었

다.

샛별 아파트는 같은 서울에 있는 만큼 거리상으로는 많이 멀지 않았다. 호버 보드를 타면 몇 분 내로 도착한다.

“샛별 아파트? 거기 1,000명 정도 있다며. 우리 세력 1,000명 늘어나는 거야? 보자, 우리가 지금 2,200명이니… 3,200

명이네! 이거 이러다 우리가 서울 먹는 거 아니야?”

최혜진이 킬킬 웃으며 좋아했다.

“누가 데려온 데? 데려오더라도 끽해야 수십 명이지. 지금 시기에 아무나 받았다가 개판 난다.”

“개판은 무슨. 문제 일으키는 놈들은 싹 다 죽이면 되잖아."

"죽이는 것도 일이야. 일."

데려오는 것도 더 큰 일이다.

오늘은 10월 20일. 싸늘한 바람이 부는 날. 겨울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인구수가 많아질수록 식량 소모도 커지지만… 겨울은 난방까지 신경 써야 해.'

겨울에도 성악초등학교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충분히 수용하기 위해서라도 여력은 남겨둬야 한다.

이 일에는 이미 나채영과 이야기가 끝난 일이기도 하다.

'무작정 덩치만 키우면 안 돼. 한국 정부의 시선을 끌게 될 테니까. 덩치는 적당히 키운 뒤에 한국 곳곳에 스며들어야지.'

마침 스며들기 딱 좋은 패가 내 손에 있었다.

종교.

나를 현인신으로 여기는 종교를 한국 곳곳에 퍼뜨린다. 성진교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그 시작은 성악초등학교 내에서 손태형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음식으로 꼬드긴 것도 있었지만

직접 나서서 회복을 사용해 준 게 상당히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눈먼 장님의 시력을 되찾아 주고 잘린 팔까지 회복시켜 줬으니 당연히 날 빨아줘야지.'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다 보니 종교가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무신론자로 신을 믿을 정도로 세상이 개판이 되어 가고 있

는 것이다.

“성님. 뭐해? 가자."

성(聖)님.

성진교의 신도들이 날 부르는 말이었다. 충청도 사투리가 생각나서, 영 아니다 싶었지만, 충청도 출신이 없는 성진교에서

는 이게 좋다고 한다. 차라리 주님이라 부르는 게 낫지만, 다른 종교와 헷갈린다고 신도들이 꺼려했다.

나는 손태형에게 일을 맡긴 만큼 대충 넘어갔다. 결과적으로 신도들에게 신앙심을 심어주는 건 성공했으니까.

“그따위로 부르지 말라니까.”

호버 보드에 올라탔다. 최혜진은 신나서는 나보다 먼저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리는 하늘을 가르며 샛별 아프트로 향했다.

샛별 아파트가 있는 곳은 서울 외곽 중에서도 발전이 덜 된 곳이다. 20~30년 전의 느낌이 그대로 묻어있는 곳. 몇 달 전까

지만 해도 재개발이 한창이었던 구역.

“저 건물이네. 우와. 닭장 같잖아.”

낡은 복도식 아파트는 가구가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멀리서 보면 최혜진의 말처럼 닭장처럼 보였다.

나는 샛별 아파트 주변을 확인했다. 3m나 될법한 커다란 덩어리 하나가 아파트 주변을 쿵쿵 돌아다닌다.

'덩치형 변종인가. 다른 변종은 안 보이는군.'

우리는 일단 중앙에 있는 아파트 옥상에 내려섰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