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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47화 (1,927/2,000)

< 2147화> 2147. 이터널 에덴

“뒤지기 싫으면 총 내려라. 3초 준다.”

3초. 저들에게 큰맘 먹고 내린 자비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시간을 센다. 저들의 굳어 있는 눈동자를 보면 3초 만에 총을 내릴 것 같지 않았다.

뇌천류의 전자기막을 준비한다. 전자기막을 펼치면 저들이 일제히 총을 쏘더라도 총알이 내 몸에 닿지 않고 튕겨 나갈 것이다. 그 짧은 틈을 이용해 저들을 벤다.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계획이다.

“그만! 총 내리세요!!"

이예빈이 표독스럽게 외쳤다. 짜증과 분노로 한껏 갈라진 목소리. 남자들은 움찔거리다가 이예빈의 눈치를 보며 총구를 내렸다.

“유진 씨! 방금 일은 저희가 사과드리죠. 박 경비가 이렇게 나올 줄은 저도 몰랐어요.”

“예빈 씨가 이 아파트의 대표가 아닙니까? 예빈 씨가 그놈에게 몰래 제 여자를 건들라고 시킨 거 아닙니까?”

"아니에요! 제가 샛별 아파트의 대표이긴 하지만 아파트의 모든 일을 통제하는 건 아니에요! 아무리 그래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정신병자까지 통제할 수는 없잖아요!”

한 세력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사람을 걸러내는 성악초등학교에서도 가끔 미친놈들이 나왔다.

바로 수감동에 처넣어 버리지만, 샛별 아파트는 그러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어.'

이곳에 온 목적이고 나발이고 그냥 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인간인 척하는 기생충도 그중에 끼어 있지 않을까. 학살은 명쾌한 답이었다.

'아니지. 아니지. 뭐든 학살로만 일을 처리하면 안 돼.’

실제로 최혜진이 화를 입은 건 아니었다. 그럴 성격도 아니었다. 지금 최혜진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저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 허락만 떨어지면 야구 빠따를 휘둘러 깽판 칠 것이다.

최혜진을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진정되었다. 저 대책 없는 년을 보자니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예빈 씨의 주장은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예빈 씨와의 협력은 할 수 없을 것 같군요.”

“…그게 무슨 뜻이죠? 우리를 버리고 떠나겠다는 건가요?”

“떠나도 일을 마치고 떠나겠습니다. 아파트 내부에 있는 그 괴물은 위험한 놈이니 처리해야 합니다. 제가 여기에 온 목적도 그거고요. 단지 저희는 알아서 행동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저희한테 간섭하려 하지 마십시오."

이예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입술을 깨문 그녀가 곧 버럭 소리쳤다.

“새별 아파트의 주민은 저예요! 손님이라도 아파트의 규칙은 따라야 하고, 손님인 이산 제 말을 따라야 해요!”

“이예빈 씨. 혹시 기생충입니까?"

“네? 기, 기생충?!”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건 이예빈 씨를 모욕하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 샛별 아파트 내부에서 인간인 척하는 괴물. 저희는 그놈을 기생충 변이체로 보고 있습니다. 즉, 그 괴물이 당신이냐고 묻는 겁니다.”

“이, 이! 제가 괴물이면 당신을 왜 불렀겠어요? 말도 안 되는 모함으로 몰아가지 마시죠!”

“아니면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 씨발.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짜증을 참지 못하고 본성을 드러냈다. 살기를 흩뿌리자, 주변의 남자들을 포함한 이예빈이 주춤거린다. 특히 이예빈은 딸꾹질까지 하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앞으로 한 시간 뒤, 샛별 아파트의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개별 면담을 시작한다. 기생충을 찾아내기 위한 목적이니 전부 협조하도록. 개별 면담에 응하지 않는 놈들은 기생충으로 판단하고 처형한다. 이예빈. 넌 샛별 아파트의 주민 명단을 가져와라. 주민회 대표이니 명단 정도는 가지고 있겠지.”

“말도 안 되는 폭거예요! 이런 폭거를 저지르고도 무사할 줄 알아요? 외부에! 경찰에 이 사실을 알릴 거예요! 당신이 뭔데 사람을 처형하니 뭐니 하는 거죠?! 이 살인자가…!”

"살인자가 학살자가 되는 꼴이 보고 싶나? 따르지 않을 거면 네년부터 본보기로 죽이겠다.”

파지직.

갈치검의 칼날을 타고 푸른 뇌전이 튀었다. 그에 갈치검이 반응해 갈치처럼 은색으로 빛났다.

칼을 휘둘렀다. 아파트 난간이 베였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발생하자 저들의 얼굴이 멍청해졌다. 기선 제압을 끝낸 나는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고는 몸을 돌렸다.

“정확히 한 시간 준다.”

나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최혜진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거점이 필요했고, 거점은 옥상으로 향하는 문과 가장 가까운 곳이 최적이다.

호버 보드가 있으니 베란다로 하늘을 날 수 있긴 하지만, 옥상에는 주기적으로 보급품이 떨어지니까. 언제까지 이 샛별 아파트에 머물러야 할지 알 수 없기에 보급품은 내가 차지할 생각이다.

'바람이 차가우니 옥상에 텐트 치고 머무는 건 안 되지.'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 바로 옆집 현관문에는 붉은 페인트로 X자가 그려져 있었다. 집안에 좀비가 있다는 표시.

나나 최혜진은 시큰둥했다. 평범한 좀비 따위는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다른 감염체인 변종은 내가 아니면 상대하기 힘들고, 변이체는 인간과 동떨어진 성질을 갖고 있었기에 주의해야 한다.

뇌천류(雷天流) 전자기파(電磁氣波).

혹시 모르니 현관문에서 전자기파를 보내 집안의 구조와 좀비를 확인한다.

“좀비 둘. 거실에 있군. 가사 상태에 빠진 상태다. 아마 문이 열리면 깨어나겠지."

“내가 한 마리, 네가 한 마리. 딱이네!"

최혜진이 씩 웃는다.

“머리 터트리지 마라. 당분간 이 집에서 지내야 하니까. 최대한 깨끗이 처리하라고.”

"알았어. 잔소리는.”

파지직.

전자식 도어락에 전기를 흘려보내 가볍게 해킹했다.

띠리리리링.

도어락의 잠금이 풀리고 현관문이 열린다. 집에 갇혀 가사 상태에 빠져있던 좀비들이 사람 냄새를 맡고 깨어났다. 깨어난 좀비가 우리를 향해 달려든다.

좀비는 상대하기 쉽다. 일반인들도 장비가 있으면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다. 좀비는 결국 감염된 인간. 좀비가 할 수 있는 공격은 한정되어 있다. 무술 같은 전문적인 기술은 사용하지도 못한다.

퍽!

달려드는 좀비의 복부를 걷어찼다. 최혜진 또한 방망이로 좀비의 복부를 때렸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는 나가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나는 여자 좀비의 얼굴을 살펴보고는 낙제점을 줬다.

빠각!

좀비의 팔다리를 부순다. 아무리 좀비라도 팔다리가 박살 나면 움직일 수 없었다. 다음은 베란다 문을 열고 밖으로 좀비를 불법 투기했다.

퍼억!

좀비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우와. 밖에 좀비들 우르르 몰려오는데?”

베란다에 몸을 걸친 최혜진은 아래를 보며 즐거워했고, 나는 거실을 둘러봤다. 좀비들이 활개 쳤는지 엉망이 된 상태다.

“야, 최혜진. 청소 좀 해. 먼지가 너무 많아.”

“너도 하는 거지?"

“난 할 일이 있어서."

“아, 왜 나만 시키고 지랄이야."

최혜진이 툴툴거리거나 말거나 스마트폰을 꺼내 나채영에게 연락했다.

“나 박사. 나야. 여기 약간 문제가 생겼어."

샛별 아파트에 있었던 일을 설명한다. 나채영은 묵묵히 들었다. 나를 비난하지도 않았다.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이예빈. 그 여자가 능력으로 널 유혹한 게 사실이야?

“100%. 그 여자랑 단둘이 있을 때 갑자기 심장이 팔딱팔딱 뛰었다니까. 몸이 반응한 거지.”

-넌 여자만 봐도 심장이 뛰지 않아?

“내 심장은 진정한 미녀가 아니면 안 뛰어. 이예빈은 직접 보니 화장빨이랑 포토샵빨이더라. 네가 훨씬 예뻐. 넌 내 심장을 매일 뛰게 해."

"우웩."

최혜진이 옆에서 헛구역질했다. 청소나 하라는 뜻으로 중지를 세워주니, 최혜진도 지지 않고 중지를 세웠다. 이 중지를 보지에 처박아 주기로 다짐했다.

-쓰, 쓸데없는 소리는 됐어. 여하튼 이예빈이 능력자고, 능력을 이용해 아파트를 지배하고 있다는 거지?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니야. 정신 지배 쪽이랑은 다른 것 같더라. 근처에 남자밖에 없었던 걸 보면…. 남자들에게 떠받들어지는 여왕벌? 그런 느낌이야."

이예빈은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어도, 아파트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경비가 돌발 행동을 일으킨 꼴을 보면 확실했다.

아마도 이 아파트 내부엔 이예빈 말고도 다른 세력이 있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예빈. 그 여자가 각성자가 맞다면 아마 페로몬 능력을 가지고 있을 거야.

“페로몬이면 정신 지배랑은 다른가?”

-비슷하지만 달라. 육체를 지배하는 거에 가까울 테니까. 페로몬으로 이성을 유혹하는 거지. 아마 남자들이 그 여자를 따르는 것도 페로몬에 중독된 상태일 거야.

“정신으로 저항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저항하지 못할 수준은 아닐 텐데.”

-보통 정신은 육체를 따라가길 마련이야. 육체가 기분 좋으면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는 거지.

“너처럼?”

-…난 아니야.

“어쨌든 이예빈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계획은 틀어졌어."

-이예빈이 먼저 능력을 써서 널 유혹해서 영입하려 했다며? 먼저 선을 넘은 건 저쪽이야.

나채영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사고를 친 내게 화를 내진 않는 이유가 있었다.

“아파트 내의 전기와 가스가 끊겼어. 정부로부터 받은 작은 발전기로 버티는 모양인데 기껏해야 TV나 라디오에 사용하는 거겠지. 아파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 밖으로 퍼질 가능성은 적어. 설령 퍼지더라도 이연희에게 협력을 요청하면 인터넷 여론을 조작해서 우리 평판이 나빠질 일은 없을 거야.”

-…학살을 생각하는 거야?

“그것만큼 빠르고 확실한 건 없잖아. 물론 아직 생각만 하는 단계야. 지금으로선 학살을 실행할 의도가 없어. 기생충 판독기만 있으면 학살도 없을 거야."

-그건 아직 연구 중이야.

“엑스레이로는 안 되나?"

- 엑스선으로는 기생충을 판독할 수 없어. 내 말이 안 믿기면 직접 해보지 그래? 네 능력이면 가능할걸.

“흠. 엑스선에 잡힐 거면 전자기파에 잡혔겠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기생충을 알아낼 방법도 마땅히 없었으니까. 인간의 몸에 들어가 인간의 뇌를 먹고 육체를 지배하는 놈들은 인간의 기억으로 행동하니까. 그러면서도 인간을 잡아먹고 진화할 생각이 만만인 기생충 놈들.

곧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나는 아파트 주민들과 면담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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