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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49화 (1,929/2,000)

< 2149화 > 2149. 이터널 에덴

서걱!

다섯 명째가 반으로 갈라져 처형당했다.

여기 분위기는 고요하다 못해 공포에 질려 있었다. 처형자들이라고 저항 없이 처형당했을까. 당연히 아니다. 죽기 싫어총 들고 난리 쳤으나, 아무렇게나 쏘아대는 총으로는 내 몸에 털끝 하나 상처를 낼 수 없었다. 나는 총을 쏜 놈들을 최우선으로 처형했다.

은빛의 칼날이 아래로 내려가고 어김없이 한 명의 인간이 반으로 갈라져 죽는다. 반으로 갈라진 시체에선 있어야 기생충 대신 피와 내장이 흐른다.

“다음은, 서준생.”

11명째.

서준생은 비쩍 마른 남자였다. 머리카락은 싸구려 염색약으로 노랗게 칠했고, 얼굴에는 여드름이 있었다. 귀에는 피어싱이 3개가 박혀 있었다. 아무리 봐도 양아치인 그놈은 눈물을 질질 흘렸다.

"저, 저도 기생충이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그걸 확인하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 당장 튀어 나와 새끼야."

피가 뚝뚝 흐르는 갈치검으로 서준생을 가리켰다.

“나, 난 아니라고! 여러분도 봤지 않습니까! 처형당한 사람들은 모두 기생충이 아닌 인간이였습니다! 무고였다고요! 이대로라면 저놈이 우릴 모두 죽일 겁니다! 그 전에 저 새끼를 죽여야 해요!”

서준생은 나쁘지 않은 선택을 했다. 사람들을 선동해 뭉치려고 한다. 허나 상황이 나빴다. 사람들은 이미 공포에 압도당했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릴 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서준생이 괴성과 함께 내게 권총을 겨누고 격발했다.

뇌천류(雷天流) 전자기막(電磁氣幕).

쇄도하던 탄환은 내 몸에 닿기 전에 바닥으로 수직 낙하해 처박힌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보여줬던 퍼포먼스를 또 보여줬다. 총기는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그들에게 각인된다.

사람들이 내게 반항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들의 가장 큰 무기는 총기였으니까.

“빨리 나와!”

퍽!

최혜진이 서준생에게 다가가 방망이를 휘둘러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서준생은 비명을 지르며 끝까지 버티다가 팔다리가 부러져 최혜진의 손에 억지로 끌려 나왔다.

나는 놈을 바로 죽이지 않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뜸을 들였다. 내게 거스르면 기생충이든, 기생충이 아니든 결국 이렇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다.

"처형을 시작한다!"

서준생의 앞에 서서 갈치검을 높이 치켜올린 순간이었다. 서준생의 눈과 입에서 가늘고 긴 촉수가 수십 개가 튀어나와 내머리를 노렸다.

방심하지 않고 몸을 긴장시키고 있던 나는 바로 뒤로 빠지며 칼을 내려 촉수를 베어냈다.

‘찾았다, 기생충.’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당황하며 당했을지 몰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내겐 특별한 일도 뭣도 아니었다. 늘 그래왔듯이 반격에 들어선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푸른 섬광이 번쩍이며 서준생의 목을 벤다. 그의 머리통이 허공에 뜨며 빙글빙글 돌았다. 목의 단면에서 촉수가 튀어나와 마지막 발악을 하듯 내게 쇄도한다.

'징그럽게.'

촉수가 닿기 전에 머리통을 반으로 갈랐다.

툭.

떨어진 머리통 단면에서 뇌의 역할을 하고 있던 촉수 뭉치가 꿈틀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누가 봐도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괴물의 형체에 사람들이 기함을 터트렸다.

“봐라. 기생충을 성공적으로 처형했다. 내게 온 밀고가 사실이었던 거지."

기생충 괴물이 사람의 행세를 하고 있다고 들어서도 의심하고 있던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것으로 내 말이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기생충이 나왔으니, 명분은 내게 있었다.

기생충을 포함해 11명이 뒈졌지만, 결국 기생충이 나오지 않았던가. 나는 당당할 수 있었다.

목적을 잃었으니 칼을 갈무리했다. 오늘의 처형쇼는 이것으로 끝이다.

“기생충 한 마리가 죽었다고 안심하지 마라. 우리는 샛별 아파트에 기생충이 최소 5마리 이상이 있다고 판단 중이다. 그러니 기생충으로 보이는 자가 있다면 지체없이 내게 보고하도록.”

기생충에 대한 대처법은 말하지 않았다. 나도 모른다. 어차피 위험한 건 내가 아니라 저들이니 알아서 잘하겠지.

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침묵했다.

“아, 참. 아파트의 모든 식량은 앞으로 내가 관리하겠다. 기생충이 식량을 건드릴 수 있으니 말이다. 불만 있는 놈은 높은 확률로 기생충일 테지. 혹시 불만 있는 놈?”

"……."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에는 103동 개별 면담을 시작한다. 어제처럼 내 말을 무시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무시해도 상관없다. 다만, 내일 또 103동에 숨어 있는 기생충 하나가 처형되겠지.

나는 최혜진과 함께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중간에 이예빈과 눈이 마주쳤다. 남자들 사이에서 여왕벌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노려보면 어쩔 건데? 이젠 이 아파트는 내 거다.'

추종자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킨다? 글쎄. 내게 총기가 통하지 않는 걸 직접 눈으로 봤는데 섣불리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을까.

그리고 이예빈은 아파트 대표이긴 해도 완전히 아파트를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101동과 103동 주민은 이예빈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경계하고 있다.

'103동 대표인 강상기를 왜 안 죽였겠어. 이예빈을 견제하라고 안 죽였지.'

만약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고 둘이 손이라도 잡는다면? 그땐 둘이 기생충이 되는 거다.

아파트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성유진에게 구타당한 강상기는 온몸이 욱신거렸다. 몸의 절반에 붕대로 감싸고 진통제를 투여했지만, 사라지지 않은 고통이 그의 정신과 마음에 분노의 불꽃을 일으켰다.

"빌어먹을 새끼…. 갑자기 나타나서 하는 짓이 학살이라니…! 한국의 영웅이라는 소리는 전부 다 개소리였군!”

분노하는 강상기와 달리 곁에 있던 경비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이미 전의가 꺾였다.

“그래도 실력 하나만큼은 진짜였습니다. 총알이 아예 안 먹히다니…. 그런 인간을 어떻게 상대합니까?"

총이 안 통하는 초능력자. 아파트 밖을 돌아다니는 괴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초능력자도 인간이다. 방심할 때 칼을 찌르거나 총 맞으면 죽어!"

왕년에 조폭이었던 강상기가 호기롭게 외쳤다.

"오. 형님이 놈을 죽이시는 겁니까?!”

사람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쳐다본다. 그러나 강상기는 대답하지 못했다. 성유진에게 구타당한 기억이 분노를 씻어내리고 공포를 주입했다. 성유진만 떠올리면 손발이 덜덜 떨리는 상태였다.

“씨발. 죽이긴 뭘 죽여. 근데 그 새끼는 왜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이번에 우리 동 사람만 죽었잖아!"

“…실제로 기생충이 나왔습니다. 서준생이. 그 녀석이 기생충이었을 줄이야."

D 바이러스 사태가 터지고 3개월이 지난 시점. 그들은 사람들의 죽음보다 기생충이 더 경악스러웠다. 기생충의 존재는 그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니까. 성유진의 말에 따르면 인간인 척하는 기생충이 더 있다고 하니.

사람들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 사람을 둘러봤다. 혹시 저놈이 기생충이 아닐까? 둘이 남았을 때 나를 잡아먹으려 하지 않을까? 그들 사이의 신뢰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강상기는 이래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내부를 똘똘 뭉치려면 외부의 적이 필요했다. 허나 성유진을 적으로 돌리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놈은 103동에 기생충이 있다고 누군가가 밀고했다지? 밀고한 놈이 누군지 알아냈냐?”

“모르겠습니다. 일단 103동 사람은 아닙니다. 103동은 형님 명령으로 어제 개별 면담을 무시했으니까요.”

“……보나 마나. 이예빈. 그 계집년 짓이지. 그놈을 불러온 것도 계집년이잖아.”

“맞습니다. 그 계집애가 요즘 너무 나대는 것 같습니다.”

“102동 병신들은 그 계집을 왜 빨아주는 건지 모르겠군요.”

“밤마다 다리를 벌려주는 거겠지."

“우리 쪽 여자 좋아하던 애들도 그 계집애 쪽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대준 게 확실합니다. 창녀 같은 년.”

“101동 놈들 짓일지도 몰라. 그 새끼들 우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잖아. 그 백마년도 이예빈처럼 몸을 대주고 있겠지. 형님, 이참에 확 엎어 버리죠?”

“엎기는 시발. 네가 앞장설래? 엉?"

“……아닙니다.”

총은 저들도 가지고 있었다. 여자보다 피지컬이 뛰어난 남자라도 총 앞에선 무력했다.

“어쨌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성유진. 그 씹새끼가 식량을 자기가 관리한다고 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판이야."

물론 비상용으로 숨겨둔 식량이 있긴 했다. 허나 말 그대로 비상용이다. 섣불리 손에 댈 수 없고,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양도 아니었다.

“그 씹새가 쉽게 식량을 줄 것 같진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그 괴물 새끼랑 싸울 수는 없잖아. 어쩔 수 없으니… 접대해야지."

“접대요?”

강상기는 씩 웃었다.

왕년에 조폭이었던 그는 조직의 간부가 되기 전까지 올라갔다. 조직이 경찰에 의해 강제로 해체만 되지 않았어도 간부가 되었을 거다. 그는 온갖 더러운 일을 해왔고 그중에는 부패한 공무원을 접대하는 일도 있었다.

“언니야들 준비해라. 모아둔 술도 좀 까고. 혹시 몰라 챙겨둔 금도 있지? 그것도 가져와."

“…형님. 여자까지 바치는 건 좀 오버 아닙니까? 게다가 새끼 옆에 있던 미친년 얼굴이 보통이 아니던데. 우리 여자들로 만족하겠습니까?"

“병신아. 남자는 아무리 예쁜 여자가 옆에 있어도 새로운 여자를 찾기 마련이야. 그게 본능이라고. 화장하면 이예빈 수준은 될 거 아니야? 아, 걔들한테도 협조를 구해. 이대로면 우리 모두 죽는다고. 걔들도 몸 파는 정도는 몇 번 해봤을 거잖아.”

103동은 퇴폐가 가득한 곳이었다. 대부분 불법적인 일을 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에 있는 여자들을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팔 각오가 되어 있는 여자들이다. 그렇지 않은 여자들은 101동이나 102동으로 떠났으니까.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그들의 공간에 들어왔다.

“형님. 그놈이 면담하러 오라 합니다.”

"씨발."

강상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경고했다. 무식한 놈들인지라 가서 사고를 치지 않을지 걱정되었다.

“가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묻는 말에만 적당히 대답하고 나와. 알아들었냐?"

"예. 형님. 걱정마십시오."

강상기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며 성유진이 머무는 호실로 향했다. 가는 와중에 102동 사람들이 그를 감시하듯 바라봤다. 그중에 이예빈도 있었다.

"너지?"

"뜬금없이 뭔 소리죠?"

“그 새끼한테 밀고한 사람 말이야. 네가 밀고했으니 우리 애들만 죽었잖아.”

“헛소리하지 마세요. 당신들이 어제 면담을 무시해서 그놈이 빡친 거예요. 억울하면 면담에 성실히 임하지 않은 스스로를 반성하세요."

“두고 보자."

“하. 댁이 뭘 할 수 있는데요? 102동에서 사고나 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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