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2151화 (1,931/2,000)

101동과 103동의 전투.

그 원인은 식량 분배였다. 나는 광장에서 식량을 분배했다. 공평하게 식량을 나눠주고 남은 것들은 103동에 몰아줬다. 이유? 103동이 내게 접대를 했으니까. 금품과 여자를 바치며 나를 즐겁게 했으니까.

오는 게 있으니 가는 게 있다는 말은 사회의 이치였다. 나는 남아도는 식량을 103동에 몰아줬다.

참고로 식량 분배는 내가 직접 하지 않는다. 그런 생노가다를 직접 할 리가. 아랫것들을 시켰다. 대부분 103동이었다. 강상기가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쪽으로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으니까.

101동 주민은 그에 불만을 가졌다.

“대체 왜 103동에만 남은 식량을 주는 거지?"

“성유진한테 돈과 여자를 바친다는 말이 있던데. 아마 사실이겠지. 성유진이 103동의 집을 자주 찾는다잖아.”

“빌어먹을. 정부에서 조만간 식량 지원을 줄인다는 소문이 있던데…. 이러다 103동만 식량이 풍족해지는 상황이 오는 거 아니야? 저 새끼들이라면 식량 가지고 온갖 염병을 다 떨 거야."

안 그래도 101동과 103동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런데 식량 관련 소문까지 나돈다? 침착하고 질서를 지키는 101동이라도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불안감은 사람들의 이성을 흔든다.

103동은 101동보다 더 불안하면 불안했지, 덜 불안하지 않았다.

풍족한 식량? 103동에 있어 가장 큰 우환거리는 식량이 아니라 투표였다.

투표로 인해 처형된 주민의 절반 이상은 103동 출신이니까. 103동의 주민 수는 다른 동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투표는 다수결. 사람이 많아야 훨씬 유리했다.

“이러다가 우리만 죽어 나갈 거야."

“101동 출신은 대부분 반대표를 받잖아. 어제도, 그저께도 우리 103동 주민이 처형당했어. 심지어 기생충도 아니었다고!"

“그 개새끼들은 기생충을 핑계로 우리를 죽이려는 거야. 그 새끼들이 우리를 밀고하는 거라고!”

일이 이렇게 된 모든 원인은 성유진이다. 적어도 성유진이 없었다며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테니까. 허나 그들의 감정은 같은 아파트 주민들에게 향했다. 이미 안 좋은 감정이 쌓여있다는 게 원인이었고, 성유진은 투표의 관리자로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는 위치였으니까. 무엇보다 성유진을 적으로 돌려봤자 일방적으로 죽여나가는 건 자신들이란 걸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다 싸움이 일어난 날. 101동 사람들은 103동 사람들에게 요구했다.

“식량 좀 바꿔주시죠. 여기 보시면 통조림 채소가 썩어 있습니다. 적당히 상태가 안 좋으면 군말 없이 먹을 테지만… 이건 먹으면 100% 식중독에 걸립니다.”

“식량 분배는 끝났어. 다른 식량에는 전부 다 주인이 있다고. 못 바꿔주니까 꺼져.”

“개소리 마! 너희가 남은 식량은 다 가져가잖아! 우리한테 일부러 상태 안 좋은 식량을 분배한 거지?! 솔직히 말해! 저번주에 받은 식량으로 바꿔서 우리에게 분배한 거 아니야?!”

“아주 시나리오를 쓰고 계시는구만! 이거 오늘 받은 식량이야! 우리가 옥상에서 광장까지 직접 옮겼다고! 이거 옮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씨발, 존나 편하게 있었던 주제에 지랄은!”

언성이 커진다.

사람들이 흥분함에 따라 꾹꾹 눌러 참고 있던 불만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새끼들이 식량 귀한 줄도 모르고…! 어차피 식량은 다음에도 분배하잖아. 사람은 며칠 굶는다고 안 죽어! 적당히 하고 꺼져!"

“니들이 식량에 또 무슨 수작을 부릴 줄 알고? 닥치고 바꿔! 아니, 여분의 식량을 나눠! 니들이 식량을 모아두고 있는 걸모를 줄 알아? 같은 아파트 사람끼리 나누자고! 어차피 니들은 내일도 처형될 테니 식량이 여유로울 거 아니야?!"

“이 개새끼들이!! 니들이 밀고자지?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진 놈도 다 너희지?!"

“그럼 어쩔래? 반대표를 받고 싶었으면 마음을 곱게 쓰던가! 전부 니들 업보다!”

“개새끼들이!"

"십새끼가!"

퍽.

주먹이 오갔다.

탕.

어쩌다 총성이 울렸고 전투의 시작이었다. 한 번 울린 총성은 수십 발의 총성을 불렀으니까.

전투는 총성을 듣고 아파트에서 튀어나온 다른 이들에 의해 진정되었다. 제압되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사망자는 15명. 중상자 6명. 경상자 11명.

이중 절반 이상은 101동 주민이었다.

성유진은 사건의 발단이 된 자들, 식량 분배에 불만은 품고 바꿔 달라고 한 101동 출신 5명을 처형했다.

“이미 식량 분배가 끝났는데 바꿔 달라고 떼를 써? 규칙이 왜 규칙이겠어. 지키라고 있는 게 규칙이지. 101동. 너희는 반성해라."

성유진은 아무 생각 없이 101동 주민을 처형했다. 썩은 식량을 분배했다? 성유진에겐 알빠인 내용이었다. 성유진은 성악초등학교에서 배달오는 고급 요리로 배를 채우고 있으니까.

다만, 다른 주민들 눈에는 성유진이 103동을 편애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을 중재해야 할 102동의 이예빈은 조용했다. 성유진 때문이었다. 함부로 나섰다가 성유진을 적대하게 되면? 가만히 있는 것도 못 한 꼴이 될 테니까.

그렇게 101동과 103동 사이의 골은 더 깊어져 갔다.

다음 식량 분배가 있던 날.

101동 주민이 분배받은 식량의 20%는 썩어 있었다. 그나마 통조림류는 괜찮았다.

마침 식량 분배 장소에 성유진이 있었기에 101동 주민들은 바로 성유진에게 항의했다.

“성유진 님! 이것 보십시오! 103동이 분배한 식량입니다! 썩어 있습니다! 끔찍한 냄새도 난다고요!”

그의 실수는 성유진이 기분이 안 좋았다는 거였다. 어젯밤에 그와 몸을 섞었던 창녀가 기생충에게 당해 죽었다는 정보 때문에.

“씨발. 지금 나한테 고함친 거냐? 너 기생충이지? 개씨발새끼. 너 처형."

“죄, 죄송합니다. 살려 주십….”

댕강.

목이 잘려 바닥을 구르기까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소란스럽던 광장에 침묵이 내려앉은 순간이었다.

“지금 기생충이 난리를 치고 있는데 그깟 식량 문제로 개지랄을 떨어? 씨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지. 니들은 이번 주 굶는다. 식량 모아서 태워."

이예빈과 강상기가 깜짝 놀라 앞으로 나섰다.

“자, 잠시만요. 아무리 그래도 식량을 전부 태우라뇨?!”

“그, 그렇습니다. 다음 지원은 5일 뒤입니다. 그때까지 물만 먹고 버틸 수는….”

“말 많네. 혹시 너희 기생충이냐?"

성유진이 칼을 뽑았다. 살기를 줄줄 흘리는 그 모습에 이예빈과 강상기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잘못하면 진짜 죽는다.

“식량 태워."

화르륵.

결국 식량은 활활 타올랐다.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사라지는 식량을 바라봤다.

“최근 밀고가 너무 많아졌다. 대부분이 무고야. 실제로 요즘에는 기생충도 못 잡았잖아. 그러니 다음 주까지 투표는 중단한다. 이상."

독재자는 짜증스레 침을 뱉으며 떠났다.

"……."

광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강상기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필사적으로 내리려고 애썼다. 103동의 창고에는 쓰지 않은 식량들이 보존되어 있으니까. 이 식량을 잘만 이용하면 101동에 엿을 먹이는 것은 물론이고 102동도 흔들 수 있다.

‘성유진은 알게 모르게 103동에 호의적이야. 여자 좋아하는 놈. 접대 효과가 꽤 좋아.’

강상기가 파악한 성유진은 여자에 미친 새끼였다. 여자가 해달라는 웬만한 요구는 다 들어준다. 접대하며 깨달은 사실이다. 특히 성유진은 미녀에게 약했다.

'이예빈은 예쁘긴 한데… 성유진에게 미운털이 박힌 것 같고, 이리나. 그년은 자기 얼굴을 드러내기도 싫어하고 자존심이 강해서 성유진에게 몸을 바치는 년이 아니야. 이거 상황이 나쁘지 않아.’

다음날.

102동에 3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기생충의 짓이다. 최근 발생한 실종자 대부분이 102동이다. 기생충들이 102동에서 활개 치고 있다.

“예빈 씨! 내 아내가! 아내가 사라졌습니다! 기생충에게 당했다고요! 기생충을 그 새끼를 죽여야 합니다! 죽여야 한다고요!!!"

“…일단 진정하시죠. 기생충이 누군지 모르잖아요.”

“606호! 그 남자가 기생충일 겁니다! 예전부터 제 아내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습니다! 투표로 처형해야 합니다! 내버려두면 계속 죽을 거라고요!”

“투표라뇨. 투표는 잠정 중단됐습니다.”

“우리끼리 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전부 다 죽는다고요!”

“어쨌든 안 됩니다. 같은 동 사람을 확실한 증거도 없이 처형할 수 없어요."

세력이 붕괴할 수 있었다. 반드시 같은 동 사람을 처형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예빈 씨는 기생충 처리에 왜 이렇게 미적거리시는 겁니까? 혹시….”

“말조심하세요. 우린 항상 냉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생충을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게 할 방법은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3인 1조로 활동하고 있죠? 5인 1조로 늘리세요. 잘 때는 모여서 불침번을 3명 이상 세우고요. 개별 행동을 하려는 사람은 제게 보고하세요."

효과는 없었다. 기생충은 이젠 밤뿐만이 아니라 낮에도 활동했다. 사람이 시선이 줄어들면 가차 없이 인간을 죽였다.

식량이 없어 굶어야 하는 102동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103동 사람들이 식량을 가지고 그들과 접촉했다.

“이예빈. 그년이 뭘 해주는 것도 아니잖아. 가족이랑 같이 103동으로 와. 우리가 식량을 나눠줄게.”

“…예빈 씨는 내가 필요하다고 했어. 식량은 조금만 버티면 되는 거고."

“네 옆집 자식은 기생충에 당했잖아. 오늘 밤엔 네 차례일지도 몰라. 103동에는 최근 기생충 활동이 없다고.”

"진짜 기생충이 없다고?"

“최근에 기생충에게 당한 사람이 없어. 102동이나 103동이나 크게 다른 것도 없잖아. 거처만 옮기는 거지."

“…그래. 우린 같은 아파트 사람이지."

102동 주민 일부가 103동으로 넘어갔다.

이예빈이 강상기에게 항의했다.

“미쳤어요? 당장 저희 주민을 돌려주시죠!”

“주민이 선택한 일에 왈가왈부하지 말지.”

“……이러고도 제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아요?"

“샛별 아파트의 대표는 네가 아니야."

샛별 아파트는 점점 혼돈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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