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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56화 (1,936/2,000)

< 2156화 > 2156. 이터널 에덴

내가 면담하는 주민은 꼭 기술자만이 아니었다.

여자.

그것도 젊은 여자들은 아량을 베풀어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송은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샛별 아파트 내에서 이리나 다음으로 미모가 뛰어난 여인. 나이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4살 배기 아들을 가진 유부녀였다. 102동 주민이고, 남편은 이예빈 친위대 중 한 명이었다.

나는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마시는 그녀의 몸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으나 그것만으로 풍만한 몸매가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수척했다. 도리어 그게 가련한 느낌이 났다. 예쁘면 뭐든 긍정적으로 보이는 법이다.

"식은땀을 흘리는군. 커피가 뜨겁나?”

“아. 아니요. 괜찮아요."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을 텐데.”

“……그, 면담을 진행한 사람들 모두 짐을 싸고 있다 들었어요. 혹시 면담자들은 성악초등학교로 가는 건가요?"

나는 송은하를 바라봤다. 미모가 뛰어나다는 점을 제외하면 특출난 것 없는 여자였다. 모델 일을 하다가 남편을 만나 애를 낳고 전업주부가 됐다. 그런 평범한 여자가 알고 있을 정도면 아파트 전체에 소문이 퍼졌다고 봐야 했다.

“맞아. 성악초등학교로 가는 거지. 거긴 내가 완벽히 통제하는 곳이라 내 통제를 따라야 하지.”

“…저도 데려가시려는 건가요?”

“억지로 데려갈 생각은 없어.”

“저는 특별한 능력이 없어요. 힘도 약하고… 총도 잘 못 쏘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식충이. 네. 식충이죠.”

식충이? 자조적인 단어였다.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피하는 걸 봐서 짐작하고 있었는데… 자존감이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가스라이팅을 당했나?'

누구한테? 남편이겠지. 그녀의 남편은 이예빈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고 있으니까.

'지금 상황에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니…. 일부러 가스라이팅을 한 건 아니군. 자연스럽게 가스라이팅이 된거야.'

이러면 일이 더 잘 풀릴 것이다.

“특별한 능력이 없긴. 네 외모. 이예빈보다 뛰어난 미모가 특별한 능력이야."

“저, 정말요?”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예빈보다 예쁘다는 칭찬이 먹혔나.'

송은하의 입장에서 남편을 이예빈에게 뺏긴 것이니… 이예빈을 적대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별로 없잖아요.”

“말했잖아. 성악초등학교는 완전히 내 통제하에 있다고. 그 미모를 이용해 내게 봉사하는 것도 중요한 일 중 하나지.”

"……."

창녀처럼 몸을 팔아라. 거의 대놓고 말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송은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나와 대화하기도 싫다면 지금 당장 일어나서 나가도 돼. 이후에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송은하는 몸을 떨면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과를 쳐다보고 커피를 마셨다.

“성악초등학교에는 물자가 풍부한가요?”

“삼시세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하지. 콜라나 커피, 과자 등의 먹을거리도 있어."

“제, 제가 그곳에 가면 매일 유진 씨에게 봉사해야 하나요?”

“아니. 한 달에 한 번? 몇 달에 한 번이 될 수도 있어. 내게 봉사하는 여자는 생각보다 더 많으니까.”

여자는 지금도 늘어나고 있었다. 매일 똑같은 여자를 품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내 몸은 하나니까.

송은하의 떨림이 멎었다.

“가족들과 함께 갈 수 있나요?”

“네 자식은 가능해.”

"나, 남편은요?”

"문제 일으킬 놈이라 불가능해. 걘 탈락이야."

“남편을 버리라는 뜻이네요.”

“남편을 사랑해서 여기에 같이 있겠다면 상관없고.”

"……."

송은하가 눈을 깔며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그리고 나오는 결과는 정해져 있다. 자존감이 떨어졌어도 멍청이가 된 건 아니니까.

아파트는 이미 지옥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녀가 사는 102동은 자체적으로 투표를 시작했다. 당장 내일 그녀와 그녀의 아이가 처형될 수 있었다.

"…남편은 저와 아이에게 식량만 주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최근에는 쟁여둔 식량을 이예빈. 그 여자에게 갖다 바치고 있죠. 제 남편은 이예빈의 노예예요.”

“이예빈… 샹년 기질이 있지. 탐욕도 많잖아. 몸에 걸친 명품만 몇 개야."

“그 여자의 가방 중 2개는 제 거예요. 남편이 멋대로 가져가더니 그 여자에게 바쳤죠.”

분노가 담긴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하지만 곧바로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제겐 어린 아들이 있어요. 승후와 함께 성악초등학교로에서 생활하려면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죠. 그곳에 제가 할 일이 있나요? 제가 생활비를 벌 수 있나요?”

"일이야 뭐, 넘쳐나지. 기계가 들어와서 공장을 가동 중이기도 하고… 어린애들을 보살필 여자들도 있으면 좋지. 생활비는 걱정하지 마. 내가 확실하게 밀어줄 테니. 내게 봉사하는 조건으로 안전하고 편한 생활을 영위하는 여자가 제법 많아. 어떡할래? 지금 결정해."

“할게요. 승후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현명한 결정이야. 자, 그럼 봉사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볼까.”

“지, 지금요?”

"싫으면 말고."

송은하는 입술을 꾹 다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오한 그녀가 옷을 벗었다. 임신을 경험한 몸이라 그런 걸까. 약간의 뱃살이 나와 있었다. 튼살이라던가, 화상 자국 같은 흉터도 보였다. 가슴은 컸지만 유두 색이 진했다. 털은 수북했다. 관리의 흔적이 적었다.

“…보시다시피 좋은 몸은 아니에요. 그런데도 절 원하시나요?”

"넌 이예빈보다 예쁘다니까. 가슴통이랑 엉덩이도 이예빈보다 크잖아."

뱃살 같은 자잘한 흠결은 말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대신 긴장이 좀 풀어진 듯했다.

“마술 보여줄까?”

내 손이 그녀의 몸을 만진다. 가장 먼저 그녀의 어깨에 있던 화상 자국이 사라졌다.

“아?”

손이 움직일 때마다 흉터가 사라진다. 그녀는 깜짝 놀라 나를 바라봤다. 나는 내친김에 그녀의 가슴도 만졌다. 유두의 색이 옅어지더니 보기 좋은 진홍색으로 변했다.

"이, 이건 뭐죠?"

"기적이지."

이게 되네.

유두색만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능력을 다루는 실력이 늘어난 것이다.

나는 송은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깨를 살짝 누른다. 그녀는 버티지 않고 몸을 아래로 내렸다. 그녀의 무릎이 바닥에닿고, 내 자지가 그녀의 얼굴 앞에 위치했다.

“유부녀의 봉사 실력 좀 볼까.”

"……."

송은하는 반문하는 대신 입을 벌리고 내 자지를 삼켰다. 약간 어설프긴 했어도 자지는 점점 단단해졌다.

101동, 102동, 103동의 대표인 우태현, 이예빈, 강상기는 모여서 움직였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102동의 최상층, 성유진이 있는 곳이다. 그 목적은 당연히 성유진에게 지금 사태를 따지기 위해서다.

샛별 아파트의 기술자를 성악초등학교에 데려간다? 누구 마음대로? 그들은 오랜만에 한마음이 되어 계단을 올랐다.

“그놈이 오고 나서 아파트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놈을 죽여야 합니다!"

코뼈가 부러진 우태현이 이를 박박 갈았다. 그는 몇 시간 전에 101동을 휘어잡고 정식 동대표가 되었다.

“성유진이 선을 넘긴 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부르는 게 아니었는데….”

이예빈은 인상을 팍 쓰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 새끼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이참에 확실하게 따지자고. 놈을 압박해서 식량을 받아내는 게 어때? 그 새끼 볼 때마다 보란 듯이 콜라 마시고 있더만."

강상기는 성유진이 부러웠다. 성유진의 힘, 성유진이 가진 물건들, 성유진의 옆에 있는 미녀들까지. 할수만 있다면 전부 빼앗고 싶었다.

“성유진이 데려간 우리 사람들을 되돌려 받는 게 먼저예요. 그 사실을 잊지 마세요.”

이예빈이 주의시켰다. 이번에는 그저 압박해서 요구할 뿐이다. 진정 성유진을 죽일 계획이었다면 전투원들을 데려왔을것이다.

최상층 복도로 진입한 그들은 일시에 다리가 굳어졌다.

복도는 피와 내장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팔, 다리, 몸통 할 것 없이 토막 나 바닥을 굴러다녔다. 잘린 단면은 소름 돋을 정도로 깔끔했다. 성유진의 칼에 베인 것이 확실했다.

“…이 미친 새끼가 7명을 여기서 죽였습니다.”

우태현이 질린다는 듯이 말했다. 7명인 걸 확실한 건 전시하듯이 머리통 7개가 복도 입구에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의 머리에선 촉수가 튀어나와 축 늘어져 있다. 기생충이다.

그들은 피바다가 된 복도를 지나 성유진의 집으로 향했다. 당당했던 그들의 기세는 꺾여 있었다. 문을 두들기자, 성유진이 목소리가 들렸다.

"아, 씨발. 뭐야.”

짜증 가득한 목소리.

이예빈이 대표로 말했다.

“…동대표들이에요. 나와서 이야기 좀 하시죠?”

"기다려."

성유진이 나왔다. 상의는 벗고 바지만 대충 걸친채다. 그의 사타구니는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방금까지 뭘 하고 있었을지는 뻔했다.

“바쁘니까 용건만 간단히 말해.”

“우리 사람들을 성악초등학교로 데려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을 돌려주시죠.”

“데려가? 헛소리하고 자빠졌군. 너희 아파트가 떠나는 주민을 막을 권리가 어디에 있지? 너희에게 떠나는 사람을 막을 권리는 없어. 제발 부탁이니 착각하지 마라. 너흰 권력자가 아니야."

"……."

이예빈은 대꾸할 수 없었다. 아파트를 떠나는 이들을 막을 권리가 없다. 사실이었다. 아파트는 국가 같은 거대 단체도 아니니까.

그래도 따져야 한다. 아파트 주민들의 이탈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 하지만 피투성이 복도가 자꾸만 생각나서 목소리를 높이고 따질 수 없었다.

“…알겠어요. 아파트를 떠나는 것도 사람들의 자유죠. 네. 근데 아파트 복도에 있는 시체들…. 그들은 왜 죽인 거죠?"

“자기들도 성악초등학교에 데려가달라 요청하더군. 이 아파트에서 더는 못 살겠다고 말이야. 나야 꺼지라고 했지. 근데이 새끼들이 꺼지기는커녕 총을 꺼내 협박하려 하더라고? 기생충이 확실하다 싶어서 다 죽였지. 실제로 하나는 기생충이었고."

“…저들의 머리는 왜 전시하듯 꽂아둔 거죠?”

이예빈은 말하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페로몬을 조작하는 능력. 웬만한 남자는 이 능력으로 조종할 수 있고, 조종하기 힘든 남자도 자신에게 호감을 품는다.

“당연히 경고의 의미지. 알아들었으면 너희도 꺼져. 그 꼴이 되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하지만 성유진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 목소리엔 짜증과 살기가 담겨 있었다.

"……."

이대로 있으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이예빈은 한발 물러났다. 떠나기 전에 조심스레 성유진에게 물었다.

“우리 사람들을 데려갔으니… 이제 저희에게 간섭하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뭐, 이젠 관심도 없어. 근데 기생충은 어쩌게?"

"기생충은 저희가 찾아내 처형할 수 있어요.”

"퍽이나.”

성유진은 대놓고 그들을 비웃은 뒤 말했다.

"알았으니 꺼져."

"……."

이예빈은 성유진 한 번 쏘아보고는 몸을 돌렸다. 우태현과 강상기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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