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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57화 (1,937/2,000)

< 2157화 > 2157. 이터널 에덴

이예빈은 지금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좀비와 괴물에게 목숨을 위협당하는 상황이긴 해도 어떻게든 생존할 수 있다. 기생충? 성가시긴 해도 극단적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괴물들처럼 대응하기 힘든 수준의 힘을 가진 것도 아니지 않나. 근처에 믿을만한 경비를 세우면 기생충은 자신을 어찌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에겐 능력이 있었다.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 여자에겐 잘 통하지 않고, 일부 남성들에겐 호감을 사는 게 전부이지만… 대부분 남성은 자신에게 정신을 못 차린다.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 간이고 쓸개고 다 주려고 한다.

‘남자가 날 사랑하게 되는 능력. 성유진은 같은 각성자라 그런지 안 통했지만… 다른 남자들은 날 사랑해.’

이예빈은 자신의 능력이 페로몬 능력이란 걸 몰랐다. 막연히 남자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인식할 뿐이다.

이 능력이 있기에 반쯤 망해버린 세상에서도 그녀는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남자들이 명품이고 식량이고 전부갖다 바치니까. 성욕을 푸는 것도 문제없었다. 젊고 잘생긴 남자를 발정 난 개새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녀에게 있어 샛별 아파트는 자신의 왕국이었다. 동대표인 강상기와 우태현이 조금 거슬리긴 해도… 결과적으로 그들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원래 계획은 성유진을 내 노예로 만드는 거였는데….’

인터넷이나 뉴스를 보면 성유진에 대한 소식이 계속해서 나온다. 괴물을 죽이는 초능력자이자 영웅. 국민들은 성유진의 실체를 모르고 칭송한다.

‘성유진에게 내 능력이 통했다면 성악초등학교도 내 것이 됐을 텐데.’

성유진에게 몇 번이나 능력을 사용했다.

처음 만난 날에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잘 먹히지 않았다. 방금도 성유진에게 능력을 사용했는데도 아무런 반응도 없지 않았던가.

'아직 늦지 않았어. 샛별 아파트에서 버티자. 괴물들은 정부가 처리해 줄 거야. 그 후에는 새로운 입주자들을 받는 거야. 내가 나서면 입주민이야 얼마든지 늘어날 거야.'

최악의 경우에는 다른 곳으로 떠나면 된다.

이예빈은 다른 곳에서도 잘 먹고 잘살 자신이 있었다.

1층에 내려온 이예빈은 강상기와 우태현을 돌아봤다. 능력을 사용한다. 아쉽게도 이 둘은 자신에게 푹 빠지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래도 자신에게 호감 정도는 느끼게 된다. 굳어있던 그들의 얼굴이 풀어진 것이 그 증거였다.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네요. 오랜만에 저희끼리 식사라도 할까요?”

우태현은 흑심을 대놓고 보였다. 젊어서 그런지 저돌적이었다. 눈빛에서 끈적한 성욕이 읽힌다. 이예빈은 비웃음을 삼켰다. 우태현이 이리나에게 개수작을 부리는 걸 알고 있었다. 이리나 때문에 자신의 능력이 잘 안 통했을 정도로 우태현의 집착은 강한 편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런 반응을 보인다?

'내가 꿩 대신 닭이라고? 미쳤나?’

우태현은 탈락이었다. 자신의 남자가 될 자격이 없었다. 그리고 우태현 정도 되는 남자는 차고 넘쳤다.

“식사는 나중에 하죠. 지금 분위기 안 좋은 거 아시잖아요."

“그렇긴 하죠. 101동은 죽을 맛입니다. 이리나의 빈자리가 유독 커요. 벌써 부터 괴물이 아파트 내로 들어오면 어쩌냐고하는 사람들이 있다니까요.”

괴물이 아파트에 들어오려고 했던 적이 예전에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이리나가 화살을 쏴서 견제해 괴물을 저지했다.

사태 초기에 아파트와 근처에 넘쳐났던 좀비들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리나의 덕이었다. 이리나는 샛별 아파트의 영웅이었다.

‘나름 언니 동생 하며 친하게 지냈었는데… 내게 말도 없이 성유진에게 붙을 줄이야. 혼자서 값비싸게 굴더니… 역시 가벼운 년이었네. 기회가 오니 바로 갈아타잖아. 성유진에게 다리도 벌렸겠지? 망할 년.’

잘된 일이었다. 우태현처럼 이리나의 미모에 빠져 자신의 능력이 잘 먹히지 않던 남자들을 지배할 기회이기도 하니까.

“이리나 일은 어쩔 수 없지. 너희 101동이 이리나를 죽이려 했잖아.”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투표만 제대로 했어도…! 이리나는 무사했을 거고 제게 감사했을 거라고요!”

“목소리 높이지 마라! 여기가 어디라고 목소리 높여?! 네가 한 실수를 우리에게 떠넘기지 마라!”

“내가 한 실수? 약속을 안 지킨 건 당신들이잖아!!”

우태현과 강상기의 분위기가 살벌해진다. 101동과 103동. 여전히 사이가 안 좋았다. 이예빈이 없었다면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는 일도 없었으리라.

“둘 다 진정해요.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니까요. 이리나의 일은 유감이긴 해도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앞으로를 생각해야죠. 그렇죠?”

“…예빈 씨의 말이 맞죠. 앞으로를 생각해야죠. 그래서 말인데… 성유진을 죽여버리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리나를 되찾는 겁니다. 제가 이리나를 설득하겠습니다.”

우태현은 이리나에 대한 집착을 아직까지도 버리지 못했다. 이를 빠득빠득 가는 걸 보면 오히려 더 심해진 느낌이었다.

이예빈은 우태현이 역겹게 느껴졌으나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에요. 당장 우리가 해야 할 건 샛별 아파트에 들이닥친 위기를 타파하는 거죠. 가장 급한 건 기생충이에요."

“…하긴. 매일 마다 사람을 죽이는 새끼들이니.”

“101동에는 기생충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만….”

"기생충을 막아야 해요. 그놈들도 사람처럼 생각하니 성유진이 손을 뗐다는 걸 알 테고… 앞으로 더 활발하게 활동할 테죠. 그러니 각자 투표로 기생충을 찾아내 죽이죠.”

“나쁘지 않은 계획이야. 우리 쪽에도 기생충으로 의심되는 놈들이 몇 있었거든."

“저희 101동에도 기생충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투표는 찬성입니다."

그들이 의심하는 자들 중 절반은 자신들에게 불만을 품은 자들이었다. 이참에 기생충으로 몰아서 처형한다. 그럼 자신들의 권력은 더 강해질 것이다.

남은 문제는 하나. 식량 문제.

이예빈은 강상기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능력을 최대한으로 사용한 상태였다. 강상기의 눈빛이 뜨겁게 느껴졌다.

“103동에 식량이 많다는 건 알고 있어요. 비축해 둔 식량을 조금 나눠주시죠. 같은 아파트 이웃끼리 돕고 살아야죠.”

“허, 참. 나도 그러고 싶은데… 비축해 둔 식량이 그렇게 많지 않아.”

“그래도 나눠야죠. 다른 동은 103동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요. 같은 아파트 주민끼리 돕고 살아야죠.”

“그러니까 식량이 없다니까? 그리고 식량이 줄어들긴 했어도 너희에게 식량이 아예 없는 건 아니잖아. 식량 지원이 없는것도 아니고. 식량은 심각한 일이 아니야."

"어디서 멍멍이가 짖나? 103동에 있는 식량으로 아파트 전체가 보름 동안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멍멍이? 이 새끼가 돌았나? 식량은 없어. 101동 네놈들은 착한 척하면서 뒤로는 온갖 구린 짓을 하는 거 모를 줄 알아? 우리 동의 여자들한테 수작 부리는 놈들 대부분이 101동 출신인 건 알아? 어?!”

이예빈은 강상기에 고집 가득한 얼굴을 보며 미래를 직감했다. 103동은 101동과 싸우는 한이 있어도 101동에게 식량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102동만이라도 지원받아야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야겠어.'

솔직히 말해 101동의 장래는 어두웠다. 우태현이 101동의 실세이긴 하나, 이리나는 나름의 인망이 있어서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녀의 활 솜씨는 진짜였으니까. 하지만 우태현은? 머리는 나름 좋아도 101동 전체의 구심점이 되기엔 힘들었다.

'기생충 때문에 102동 사람이 줄었어. 101동 사람을 받아들여서 채워 넣어야겠어.'

사람이 많은 것은 그 자체만으로 힘이 된다. 그 사실을 옆 나라인 중국이 증명하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문제도 많이 터지지만. 지금 중국에도 인구수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던가.’

특히 도시에 인구수가 집중된 편이라 이번 사태 때 상당한 곤혹을 치른다고 들었다. 인프라가 부족한 인도는 벌써 그로기 상태에 가까웠다.

뭐. 이예빈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그녀는 우태현을 보내고 강상기와 비밀 회담 자리를 가졌다. 능력을 한껏 이용해 강상기를 꼬셔 식량을 얻어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능력은 성공했다. 단지, 103동에는 식량이 없었다.

“시, 식량이 없다니요?! 무슨 말이에요?!”

"기생충 새끼가 식량 창고에 똥오줌을 뿌렸어. 통조림이고 나발이고 다 까버린 상태여서 썩어버렸다고.”

“그걸 왜 이제 말해요?!”

“식량이 없다고 하면 니들이 우릴 무시할 거잖아. 특히 101동. 그 새끼들한테 무시당할 수는 없지.”

“하, 하하….”

“그래서 말인데…. 우리 합치는 게 어때? 102동 대표인 너와 103동 대표인 내가 결혼하는 거야. 결혼 동맹. 아주 유구한 전통 아니겠어. 우리가 합치면 101동은 아무것도 아니야.”

강상기가 이예빈에게 은근히 손을 뻗는다. 이예빈은 냉정히 그의 손을 쳐냈다.

"어딜 만져? 가진 것도 없는 늙은이 주제에!!"

“느, 늙은이? 이년이! 먼저 유혹한 건 네년이잖아!”

“하, 아무것도 없는 늙은이인 줄 몰랐지. 식량이 없어? 잘됐네. 103동은 알아서 굶어 죽겠어. 103동만 없으면 줄어든 식량으로 버틸 수 있겠지. 가서 유서나 쓰고 자살이나 해!”

“이 씨발년이!”

강상기가 분노를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나 이미 늦었다. 이예빈은 바로 밖으로 나가버렸으니까.

여긴 102동. 소란을 일으켜도 적들이 먼저 모여들 것이다. 강상기는 이를 갈며 103동으로 돌아갔다.

나는 샛별 아파트를 얕보고 있었다.

기생충 처형 투표를 시작했어도 기껏해야 10명 내외가 죽을 거라 예상했다. 허나 다음날 바로 50명이 처형당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이 될 때마다 투표로 사람을 죽여댔다. 참으로 민주주의적인 방식이었다. 사람들은 외부에 연락할 수도 없었다. 통신기기는 이예빈이 가지고 있으니까. 소형 발전기도 이예빈이 관리한다. 그렇다고 투표를 거부할 수도 없다. 투표 거부자는 기생충으로 몰리니까.

'50명 중 5명이 기생충이었어. 10%. 단순 계산에 불과하지만… 정말로 아파트 주민 중 10% 이상이 기생충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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