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0화 > 2160. 이터널 에덴
"캬오오오오옹!!"
괴물 고양이가 포효하며 사람들을 향해 앞발을 휘두른다.
퍽!
냥냥펀치 한 방에 인간의 몸이 수박처럼 터졌다. 속도에서부터 힘까지. 전부 무시무시했다.
'지금껏 본 변종 중에서도 상위를 다투는 놈이다.’
탕!
사람 중 한 명이 괴물 고양이를 향해 총을 쐈다. 변종쯤 되면 9mm 탄은 맞아도 간지럽지도 않다. 특수탄이면 모를까. 평 범한 권총탄으로는 절대로 변종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
그런데 고양이는 몸을 옆으로 굴려 공격을 피했다.
"캬오옹...."
그리고 조용히. 벽담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긴다. 그 호랑이보다 커다란 몸이 숨긴다고 숨겨지나? 놀랍게도 숨겨졌다. 정확히는 존재감이 옅어졌다. 모습은 보이는데 저게 진짜인가? 그림자 아니야? 라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저 괴물 고양이의 능력이군.'
괴물 고양이가 뛰었다. 순식간에 15m를 도약해 권총을 쏜 남자의 머리통을 씹어먹는다.
쿵쿵쿵.
거인 변종이 주먹을 치켜들고 괴물 고양이를 향해 뛰어간다.
“캬아아아악!"
괴물 고양이는 거인 변종에게 하악질을 해대며 맞서 싸우듯 달려갔다. 거인이 주먹을 뻗었으나, 괴물 고양이는 뛰어난 반 사신경으로 피했다. 콰아앙! 거인의 주먹이 땅에 닿으니, 작은 지진이 일어났다.
'괴물끼리 서로 싸우네. 조금이라도 우세한 건 고양이 쪽인가.'
거인의 몸에는 작은 생채기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반면 고양이는 처음처럼 멀쩡했다. 거인의 공격을 전부 피했으니 당연했다.
그 전투를 지켜보던 사람 일부가 아파트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 새끼 기생충일지도 몰라. 여기서 놓치면 좆 된다.'
따라가서 죽이려고 했으나, 괴물 고양이가 먼저 움직여 냥냥펀치 한 방에 상체를 휘둘렀다. 퍽 터진 상체에서 기생충 본 체가 섞여 있는 걸 확인했다.
쾅!
괴물 거인도 도망치는 사람을 죽이고 최우선으로 죽이고 있다.
명확히 목적이 있는 행동. 기시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어느 한 놈이 앞장서서 나섰다.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평범한 얼굴. 아파트를 대표하는 동패도 아닌 놈은 괴물 고양이과 거인 변종에게 뭐라고 지껄였다.
귀를 기울여 봤다.
위일위이이잉이이익잉잌.
벌레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이게 사람의 입으로 낼 수 있는 소리인가. 놀라기를 잠시. 거인과 고양이가 다소 얌전해졌다.
'조종하는 게 아니야. 대화를 통해 협상하는 거다. 능력자인가?'
남자는 두 변종에게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리기를 반복했다. 변종을 떠받치고 있었다.
뭔가 알 것 같았다.
'저 새끼 기생충인가?'
변이체라고 능력을 각성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기생충이라고 스스로 각성하지 말란 법도 없다.
'저놈들과 협상할 수 있으면서 왜 사람들과 함께 아파트에 갇혀 있는 거지?'
아니다.
협상이 아니다. 저건 떠받치고 있다. 아파트 내에서 주기적으로 실종되는 사람들. 그중 몇몇은 기생충이 먹은 게 아닐 수 도 있었다. 기생충들이 몰래 저 괴물들에게 갖다 바친거라면? 괴물들은 이 샛별 아파트를 양식장으로 삼고 인간을 가축화 하여 인간으로 기르고 있는 거라면?
말이 된다.
'변종은 진화한 개체. 지능이 높아져도 이상하지 않아.'
몇몇 남자가 어린아이를 붙잡고 변종들에게 다가갔다.
“으아아아아앙!”
“엄마아아아아앙!"
어린아이들은 울어 젖히며 제 엄마를 찾았으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들에게 달려드는 사람도 없었다. 두 변종에게 압도당해 공포에 질려 있을 뿐.
그리고 바쳐진 어린아이들은 변종의 한끼 식사가 됐다. 보란 듯이 쩝쩝거리며 인간 먹방쇼를 펼쳤다.
확신할 수 있다. 어린아이를 데려온 건 기생충들이다.
변종들은 기생충들의 대접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아파트 주민들을 한 번 둘러보고 떠날 준비를 했다. 아파 트 주민들은 자신들이 가축이었음을 지금 깨달았겠지.
부르르르.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이 진동한다. 내 스마트폰은 유희 생활 어플의 힘인지 고층에서 떨어져도 멀쩡했다. 태양에 던져놔 도 멀쩡할 것이다.
발신자는 나채영이다. 문득 하늘을 보니 드론들이 도착해 있었다. 50개가 넘는 드론 부대. 그중 20대는 폭탄으로 무장한 자폭 드론이다.
-…카메라로 확인했어. 촤악의 상황인 것 같네. 어떻게 할 거야?
“당연히 다 죽여야지. 저 변종 새끼들도, 기생충 새끼들도, 내게 총칼을 겨눈 아파트 주민 새끼들도.”
-알았어. 지금 전투를 시작할까?
"어, 안 말려?"
나채영의 성격상 한 번 정도는 말릴 줄 알았다. 내가 지시하는 건 학살이니까.
-이제와서? 나는 내 모든 걸 네게 걸었어. 내가 해야 할 일은 어쭙잖은 위선을 부리는 게 아니라, 널 보조하는 일이야.
“과연. 아내의 마음으로 내조한다는 건가.”
-……전혀 다르거든.
저들은 드론의 존재를 몰랐다. 드론이 조용히 높이 날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변종들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변종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던 기생충은 돌연 상체를 일으켜 나를 삿대질했다. 변종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이 사태의 원흉 으로 날 콕 찍은 것이다.
“시작해. 싹 쓸어버려. 절반은 거인에게 퍼부어."
하늘을 날고 있던 드론들이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수직 낙하한다. 자폭 드론의 움직임 하나, 하나가 정교하다. AI의 힘이었다.
쾅! 콰아아앙! 콰콰콰콰쾅!
떨어지는 폭탄이 아파트 광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투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전투 드론은 연기가 가시기도 전에 변종과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기관총을 갈겼다. 몇몇 드론은 아파트 안으로 도망간 사 람들까지 뒤쫓았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십시오.
전투 드론에 달린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울렸다.
뇌천류(流) 전자기파(電磁氣波).
나는 집중력을 끌어올려 연기 속을 주시했다. 괴물 고양이가 입구로 도망가는 게 포착됐다. 폭탄에 의해 옆구리가 너덜너 덜하다. 속이 다 보였다. 내장이 뼈에 걸려 덜렁거린다.
'권총탄을 피할 때부터 알아봤지. 힘과 속도에 비해 내구성이 낮은 거지.'
고양이의 달리는 속도도 멀쩡할 때보다 느렸다.
"캬오오오오오오!!”
고양이가 비키라는 듯 외친다. 투타타타. 드론이 쏟아내는 총알은 잘도 피했다.
파파팟!
괴물 고양이의 등에 화살과 연달아 꽂혔다. 고양이가 괴로워하며 바닥을 굴렀다. 이리나의 화살 지원은 완벽했다. 총알은 피하면서 활은 못 피하나? 하긴. 나도 화살이 꽂힐 때까지 모르긴 했다.
'이리나는 저격수 특화네.'
고꾸라진 괴물 고양이의 목을 치는 건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야오오옹...."
고양이가 애달프게 울었다. 나름 목숨 구걸을 하는 건가?
"좆까."
다리와 꼬리를 자른 뒤 심장을 찌르고 목까지 벴다. 완벽한 확인 사살이었다.
'거인 변종은?'
자폭 드론에 집중적으로 당한 놈은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부서진 담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하늘에서 호버 보드를 탄 최혜진이 변종 거인을 향해 날아간다.
"죽어라, 이 새끼야!"
5m 높이에서 떨어지며 온 무게를 실어 야구 방망이를 내려친다. 약해진 거인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대로 머리가 터지 며 사망.
'방어에 집중하라니까.'
야구 방망이로 확인 사살이라도 하려는 듯 거인 시체를 퍽퍽 때리던 최혜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호버 보드를 타 고 옥상을 향해 줄행랑쳤다.
'최혜진이 이렇게 한 이유는... 그냥 하고 싶어서 했겠지.'
거창한 이유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연기가 가신 아파트 광장에는 시체만이 널브러져 있었다. 웃긴 건 동대표는 한 명도 없다는 거다.
“나 박사. 전투 드론으로 아파트 주민이 도망 못 가게 감시해. 그리고 친위대 불러. 드론에는 한계가 있으니 친위대가 경 계를 서줘야겠어.”
-어, 아파트 뒷문으로 도망가려는 사람들을 발견했어. 담벼락에 몰래 개구멍을 파놨었나 봐?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개구멍이겠지.”
-전투 드론으로 포위했어. 이예빈? 명품으로 도배한 여자도 있어. 어쩔래?
“나머지는 남자 둘이고?"
-맞아.
우태현과 강상기다. 동대표끼리 사이좋게 도망치려는 것이다.
"거기서 딱 기다려. 내가 갈 테니까.”
전투 드론에 포위당한 놈들은 날 보자마자 무릎 꿇었다. 우태현과 강상기는 절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이예빈은 놀랍게도 아직 희망을 놓지 않았다. 블라우스와 치마를 벗더니 속옷 차림이 됐다. 가터벨트 스타킹. 아주 남자를 유혹하는 차림새였다. 상체를 살짝 숙여 가슴을 강조하며 내게 싹싹 빌었다.
“한 번만. 한 번만 봐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시키는 건 뭐든지 할게요. 주인님으로 모실게요."
나는 그녀의 목숨 구걸을 비웃었다.
“이러기엔 선을 너무 넘었어. 너도 알잖아?"
이예빈의 얼굴이 표독스럽게 일그러진다.
“너 때문이야! 씨발놈! 너 때문에 다 망했다고 이 씨발 새끼야아아악!!"
“병신들. 내가 없었으면 너흰 기생충이랑 변종들에게 말라 죽었어. 차라리 화끈하게 죽는 거니 감사해라. 아, 투표 놀이는 나름 재밌었다."
“개씨발놈!!”
칼을 휘둘렀다.
셋의 머리가 동시에 떨어졌다. 강상기? 처음부터 관심 없는 놈이었다. 우태현은 내 여자를 탐한 죄로 천 번은 더 죽일 것 이다.
이예빈? 좀 괘씸하긴 해도 그뿐이었다. 나는 우태현의 머리를 들고 떠나기 전에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이예빈의 보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칼을 휘둘러 이예빈의 팬티를 자른다.
“불고기.”
샛별 아파트의 최대 위험인 변종 두 마리는 죽었다. 군용 미사일이 아니면 처리하기 힘든 놈들을 자폭 드론의 폭탄으로 처리했다. 어지간한 미사일보다 자폭 드론이 더 뛰어나다는 뜻이다. 아마 이 기술은 조만간 군대도 사용할 것이다.
여하튼 샛별 아파트의 모든 주민이 죽은 건 아니다. 생존자는 400명. 본래 1,000명이었던 것에 비해 절반도 못 살아남았 지만, 어쨌든 살아남았다. 이들 대부분이 샛별 아파트를 떠나고 싶어했다.
다른 대피소나 생존자 무리에 합류해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했다.
허나 나는 그들을 보내 주지 않았다. 철저히 감시했다. 그들 사이에 숨어 있는 기생충을 놓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이틀 뒤, 나채영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생충 판독기를 개발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