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2화 > 2162. 이터널 에덴
나는 샛별 아파트의 인재들과 함께 성악초등학교로 돌아왔다.
그러나 바로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뒤처리가 필요했다.
샛별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 이게 고스란히 알려지면 내 명성이 떨어진다. 날 비난하는 놈들도 늘어날 것이다.
'원래는 샛별 아파트 주민을 전부 죽이는 게 가장 깔끔한데.... 정부는 샛별 아파트를 주시하고 있었어.'
내 평판을 위해서라도 학살은 선택지에서 없앴다. 대신 아파트 내에 있었던 일들은 모두 아파트 주민과 기생충에게 뒤집 어씌웠다. 아파트 생존자들이 뭐라 하기 전에 언론에 샛별 아파트에 있었던 일을 제보했다.
안기부의 이연희가 내 계획에 동참해 주니 여론은 손쉽게 조작되었다. 당장 언론에서 떠드는 것도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 가 대부분이었다.
TV 뉴스를 켜도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샛별 아파트에 있었던 기생충 소동 영상입니다. 보시는 대로 기생충이 변종에게 인간 어린아이를 바치는 영상입니다. 변종이 기생충을 관리자로 삼아 인간을 가축처럼 사육한 것입니다.”
뉴스의 아나운서가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샛별 아파트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서로 싸웠다? 투표로 기생충을 찾아내 죽이려고 했다? 투표 처형은 잠깐 시선을 끌 었어도 그뿐이었다. 죽음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기생충과 변종에 의해 가축처럼 사육됐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했다.
만물의 영장.
지구 최고의 포식자.
인간의 위치가 뒤흔들리는 사건이었다.
감염자 좀비? 괴물 변종?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이 이길 것이다. 인간에게 빛나는 지성과 수천 년 동안 쌓아 올린 문명이 있으니까. 과학의 힘은 굳건하고 언젠간 인간의 적들은 굴복할 것이다. 그런 믿음이 있었다.
허나 저 변종들이 인간을 가축화했다. 그것만으로 인간들이 공포를 느끼기에도 충분한데 기생충은 인간의 뇌를 파먹고 기억과 지식을 손쉽게 손에 넣는다.
인간의 힘, 인간의 지혜, 인간의 역사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강탈당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성악초등학교의 대표, 성유진이 샛별 아파트 사태를 해결했습니다. 직접 샛별 아파트에 머물며 기생충을 찾아 내 죽였습니다. 성유진은 기생충의 시체를 정부와 공유하였고, 정부는 기생충 판별기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뉴스에 내 얼굴이 떠오른다.
얼마 전에 화상 통화로 인터뷰를 한 영상이다. 정장을 빼입은 나는 정치가처럼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성악초등학교의 대표인 성유진입니다.”
“안녕하세요. 구하얀 기자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하얀 기자. 그녀는 꽤 미녀였다. 성악초등학교에 오라고 꼬드겼는데 통하지 않았다. 사적인 만남도 딱 잘라 거절당했다.
“이번 샛별 아파트 사건이 전국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샛별 아파트 주민들은 성유진 씨에게 고마워하기보다는 두려워하고 있더군요."
“이해합니다. 샛별 아파트의 상황은 제가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부터 최악이었습니다. 기생충들이 이미 활개를 치고 있었죠. 매일 기생충에 의해 아파트 주민들이 죽었습니다. 전 아파트를 통제할 필요성을 느끼고 다소 강압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생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요.”
모두 기생충 탓이다.
이 말이 먹힐까? 당연히 먹혔다. 사람들이 관심 있고 두려워하는 건 아파트 주민들이 아니라 기생충이니까. 나는 인터뷰 를 하면서 기생충의 위험성을 설명했다.
“상상해 보십시오. 옆에 있는 사람이 사실은 기생충이다? 끔찍하지 않습니까. 전 기생충을 죽이려고 집중했습니다. 그리 고 약간의 희생이 따랐지만 기생충을 찾아냈습니다. 그 기생충 시체를 정부와 공유하였기에 기생충 판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지요."
“마지막 날에 발견한 기생충 12마리를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고 생포해서 데려갔다고 들었습니다. 그 기생충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기생충을 제압해서 데려가는 걸 본 사람들이 많았으니 당연히 나올 말이었다.
“정부에 인계했습니다. 아마 연구소로 이송되었겠죠.”
“그에 사람들이 불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생충이 연구소를 빠져나가서 번식하면 어쩌냐는 반응이죠.”
“하하. 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보신 거 아닙니까? 우리 정부는 영화 속 정부처럼 무능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금 나라 유지되고 있는 것도 정부가 힘써주는 덕분입니다. 정부를 믿으십시오."
“...안 믿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불안하죠. 여지를 남겨두는 일이니까요. 그 자리에서 기생충을 전부 죽였으면 미래도 안전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따지면 미래는 처음부터 불안전했습니다.”
“네?”
“기생충이 샛별 아파트에만 있다. 라고 어떻게 확신합니까? 기생충의 발생지는 샛별 아파트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 기생충이 변이할 수 있습니다. 지구는 넓습니다.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기생충이 진화하여 나올 수 있습니다. 정부가 기생충을 연구하는 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생충이 이미 퍼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본 기자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그, 그럼 우리는....”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겐 기생충 판별기가 있지 않습니까. 판별기의 가격은 당장은 비싸더라도 시간이 지날 수록 싸질 것입니다. 군대에는 이미 무상으로 지급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생충을 경계하고, 판별기가 존재하는 이상 기생 충은 우리 사회에 스며들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이럴 때 우물거리면 사람들이 불안을 느낀다. 대한민국의 영웅인 나는 사람들을 안심시켜 줘 야 한다. 그래야 날 더 지지할 테니까.
“변종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고 있다는 게 증명되었습니다. 몇몇 변종들은 이미 인간 수준의 지능을 보유했죠. 이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 국민 여러분을 위해 기꺼이 사냥꾼이 되겠습니다. 변종이 진화한다? 진화는 변종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변종이 진화 하는 만큼 인류 또한 진화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수단과 방 법을 가리지 않고 변종을 사냥할 것입니다.”
내 포부를 내비치며 인터뷰는 종료.
영웅화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뉴스나 인터넷이나 내 이름이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이 유명세는 해외까지 뻗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크크. 좋군.'
대한민국의 모든 표를 휩쓸며 대통령으로 당선될 미래가 그려진다.
영웅 대통령.
분명 그런 이름이 붙겠지.
'내가 대통령이 될 테니.. 대한민국은 자동으로 세계 최강국이 될 테지. 중국과 일본은 식민지로 삼아서 쪽쪽 빨아먹자. 미녀를 조공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미래를 설계하며 웃었다.
12월 7일. 눈이 내리는 날.
성악초등학교는 안정화되었다. 성악초등학교를 확장하는 건 그만뒀다. 물리적으로 세력을 늘릴수록 견제가 들어올 게 뻔하니까. 대신 지하를 파고 위로 빌딩을 올리기로 했다. 덤으로 남들 몰래 요새화를 진행한다.
'성악초등학교는 시작일 뿐이야.'
내 목적은 성악초등학교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그것도 통일 대한민국.
이대로 성악초등학교에만 집중해서 언제 대한민국을 먹을 수 있을까.
'성악초등학교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지. 성악초등학교가 커 보여도 실제로는 서울의 10분의 1도 안 돼.’
세력만 따지면 대기업과는 비빌 수도 없다. 성악초등학교만으로는 영향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 방법을 찾았다.
'종교. 대한민국 곳곳에 날 추앙하는 성진교를 퍼뜨린다.'
퍼뜨릴 방법도 모색했다. 정신 교육을 끝마친 광신도들. 전투 능력이 없어 친위대에 들지는 못했으나 '사제' 계급에 오른 자들. 그들이 선교사가 되어 대한민국 곳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포교할 테지.
'신성 대통령 성유진! 나쁘지 않은 어감이군.'
종교는 마약이라던가? 그렇다면 나는 대한민국의 마약왕이 될 것이다.
“대표님."
나의 친위대장이자, 성진교의 추기경인 손태형이 다가왔다.
참고로 성진교에 교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종교의 주인은 이들이 신으로 모시는 나다. 내가 존재하니 교주는 감히 될 수 없는 것이다.
“선교사들이 떠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래? 몸조심하라 그래. 일은 잘할 거라 믿는다.”
“그들은 잘 해낼 것입니다. 그들의 가슴에는 진실한 신앙이 자리 잡았으니까요."
“네가 그러면 그런 거겠지.”
나는 손태형을 빤히 쳐다봤다. 손태형은 감히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손태형은 내 그림자조차 받지 않으려 했다.
그동안 손태형의 신앙심을 몇 번 시험해 봤다. 결과적으로 이놈은 진짜배기 광신도였다.
'남자 새끼지만 도움이 돼. 당장 성진교의 뼈대를 세운 건 이놈이니까.'
지금에 와서 성악초등학교의 인원 절반 이상이 성진교를 믿을 정도다. 손태형이 나를 배신한다? 당장 성진교가 흔들릴거다. 전직 목사여서 그런지 사람을 휘어잡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손 추기경.”
“예. 성님."
손태형이 무릎 꿇었다.
그놈의 성님. 좀 마음에 안 들지만 넘어가기로 한다. 손태형의 경우 매우 진지했다.
“너는 내 시련을 극복했다. 시련을 극복한 자에게는 마땅한 보상이 따라야 하는 법. 너의 소원이 아내와 딸을 살리는 것이었지?"
손태형이 몸을 떨었다. 그가 고대하고 고대하던 순간이 찾아온 만큼 감격하고 있는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아내와 딸. 둘 중 한 명만 구원해 주마. 선택해라.”
나는 손태형이 오랫동안 고민하며 괴로워할 줄 알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손태형의 대답은 빨랐다.
“아내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십시오."
“...딸이 아니군. 왜지?"
“딸에게는 안전한 세상을, 구원이 내린 세상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뭐, 상식적으로 어린아이에게 가혹한 세상이기도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식을 준비해라.”
모처럼 하는 쇼다.
“증명된 자들을 의식에 참관시켜라.”
이참에 신도들의 신앙을 공고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늘 너희 어린 양들은 신성을 목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