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7화 > 2167. 이터널 에덴
나는 전자기파를 이용해 캐서린의 기습을 알아차리고 대응할 수 있었다.
전자기파가 아니었다면 캐서린의 기습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캐서린은 거구에 걸맞지 않게 바퀴벌레처럼 조용히 움직였다.
그렇다고 캐서린의 전투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여기 모인 각성자들은 캐서린에게 전멸당했을 것이다.
나는 캐서린을 상대하면서 의문들을 느꼈다.
캐서린 정도 되는 변종이 왜 대형 병원에 집착하는 거지? 캐서린은 느닷없이 병원에 나타나 점령했다고 한다. 캐서린이 원래 이 병원에 환자였던 것도 아니다.
종이 다른 변이체와 변종은 기본적으로 함께할 수 없다. 그야 먹고 먹히는 관계니까. 지능이 높으면 모를 일이긴 한데... 캐서린과 괴물쥐의 지능수준은 돌고래 이하였다.
'괴물쥐가 너무 많다. 쥐새끼들이 원래 번식을 잘한다고 해도... 쥐새끼들의 덩치를 생각하면 식량 문제가 남아. 저 쥐새끼들이 현명하게 식량을 보관하고 필요한 양만 딱딱 먹을 리 없잖아.'
식량 문제로 괴물쥐들은 일찌감치 병원을 떠나 흩어져야 했다. 그런데 꾸역꾸역 병원에 자리 잡았다?
‘캐서린에게 괴물쥐를 통제하는 능력이 있더라도... 그 쥐새끼들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나?'
캐서린은 기습도 잘하고 변이체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다재다능한 변종이다. 라는 결론은 가능성이 낮다. 그보다는 다른 무언가가 캐서린과 괴물쥐를 통제하고 있다는 게 더 가능성이 크다.
나는 각성자 일행과 떨어져 나채영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현 상황과 내가 느낀 의견을 전달했다.
-과학 기술로 변종과 변이체를 조종할 수 있어. 그게 아니더라도 정신계 능력자라면 더 쉽게 조종할 수 있고. 지금 과학력 으로는 어려운 일이니.. 아마 후자겠지. 각성자 중에 정신계 능력자가 숨어 있나?
브리핑 때 경찰의 행동이 수상쩍은 것도 떠오른다. 어쩌면 경찰 중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뇌당한 것일 수도 있고.
“변종이나 변이체에게도 세뇌가 먹혀?"
-변종이나 변이체는 결국 생물이잖아. 지속적인 세뇌 작업으로 행동을 유도할 수 있어. 정신계 관련 능력자가 있다면 더 쉽겠지.
“내 감으로는 일우 그룹 새끼들이 수작을 부린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야. 일우 그룹은 상황이 구리니까. 게임 속에서도 가끔 나오거든. 세계 정복을 노리는 악의 축 대기업. 캐서린은 사람이 만든 인공 변종일 수도 있겠네.
인공 변종. 꺼림직하지만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인간을 강제로 진화시키는 약도 존재하니까.
“캐서린과 괴물쥐의 통제력을 잃으면?"
-그야 본능대로 날뛰겠지. 병원에 있을 이유도 없으니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서... 엇. 설마 변종과 변이체를 광주로 풀어버릴 거야?
“아무리 봐도 광주 시장 새끼가 날 엿 먹이려고 준비한 것 같거든. 그러니 광주 시장도 엿 먹어야 하지 않겠어?”
-피해는 광주 시민들이 보잖아.
“그 새끼를 시장으로 뽑은 건 광주 시민들이야. 연대책임 몰라?"
바퀴벌레 같은 괴물쥐는 특히 재앙이 될 것이다. 쥐의 특징은 숨어 다니는 것에 있으니까. 괴물쥐와 싸우는 광주. 노잼 도시가 꿀잼 도시가 되는 것이다.
-...이번 일을 일부러 실패하겠다는 뜻이잖아. 그건 네 명성을 떨어뜨리는 일이야. 대중들이 얼마나 쉽게 손바닥을 뒤집을 수 있는지는 너도 알잖아.
“책임은 내가 지는 게 아니라 광주 시장이랑 일우 그룹이 져야지."
-……어떻게? 광주 시장과 일우 그룹이 개입했다는 증거라도 있어?
“그게 문제야. 증거가 없단 말이지. 그러니까 말인데... 조작하자. 대충 조작 영상을 만들어서 퍼뜨리는 거야.”
-미안한데 영상 제작에도 기술이 필요해. 어중간한 기술력으로는 바로 조작된 영상이란 사실이 탄로 날거야. 그리고 역으로 우리에게 불똥이 튀겠지.
-……그럼 진짜 증거를 찾아야겠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6인 병실. 놀랍게도 먼지가 좀 쌓인 걸 제외하고는 아주 깨끗했다. 리모컨을 누르면 TV도 잘 나온다. 수도나 전기가 끊기지 않고 잘 공급되고 있다는 증거다.
캐서린과 괴물쥐가 누군가에게 통제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괴물쥐가 돌아다닌 흔적조차 없으니까.
'이 정도 크기의 병원을 날려버리기엔 아깝겠지. 설비 대부분도 최신식인 것 같고.'
설비가 살아 있다. 나는 이 점에 주목했다.
나는 병원 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방심은 하지 않는다.
뇌천류(雷天流) 전자기파(電磁氣波).
전자기파를 흩뿌리며 캐서린의 기습에 대비했다. 감지 범위는 20m. 전자기파에서 몸을 숨길 방법이 없는 이상 캐서린은 절대로 날 기습할 수 없다.
'캐서린이 다른 각성자들을 노릴 수도 있는데...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괴물쥐떼를 발견했다.
이놈들은 좁고 어두운 방이 아닌 넓고 햇빛이 잘 드는 복도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넓은 밝은 데를 좋아한다? 아니었다. 괴물쥐 중에서 유독 덩치 큰 놈들은 구석진 곳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복도에서 악취가 났다. 괴물쥐들이 싸지른 분변과 시체 조각이 널려 있다. 시체는 괴물쥐의 것이었다. 즉, 동족 포식의 흔적이다.
복도에서 쉬고 있던 쥐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인식했다. 동시에 괴물쥐들이 돌진해 온다.
나는 진각을 밟으며 뇌전을 일으켰다. 반호성은 장도리로 지면을 쾅쾅 두들기며 전류의 파동을 일으켰으나, 나는 일보를 내딛는 것만으로 전류의 파동을 일으켰다. 전류 파동은 반호성의 것보다 더 선명하고 더 빠르게 복도 전체로 퍼져나갔다.
전류에 닿은 괴물쥐들은 달리는 자세 그대로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다. 죽은 것이다.
여유롭게 복도를 걷다가, 코를 찌르는 악취를 견디다 못해 복도를 뛰었다.
도착한 곳은 보안실이었다.
병원에 설치된 CCTV를 전부 통제하고 확인할 수 있는 곳.
'설비가 무사하니 며칠 전에 있었던 일도 돌려볼 수 있겠지. 멍청한 새끼들. 할 거면 CCTV부터 박살 냈어야지.'
증거가 내 손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싱글벙글 웃음이 나왔다.
저장된 영상을 확인하던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장된 영상은 일주일 치밖에 없었다. 일주일 전의 영상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저장된 영상의 시작 지점부터 캐서린 과 괴물쥐는 병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씨발. 누군가가 영상을 삭제한 것 같은데?'
빠른 속도로 영상을 확인해 봤다. 캐서린과 괴물쥐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증거가 될 만한 영상이 없는 것이다.
“개씨발!"
쾅!
짜증이 치솟아 모니터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모니터가 박살 나며 일부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박살 난 모니터를 노려보다가... 내 능력인 회복을 떠올렸다.
'내 능력은 기계에도 먹히잖아. 그럼 데이터도 복구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죽은 자도 살리는 능력인데 데이터 쪼가리 하나 회복하지 못할까.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일단 보안실에 설치 된 CCTV를 박살 냈다. 내 능력이 영상에 저장되면 안 되니까.
그 후에 부서진 모니터를 회복시키고 하드 디스크를 찾아 회복을 사용한다.
조심히.
너무 빠르고 강하게 회복을 사용하면 하드 디스크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모니터를 보며 능력을 사용하던 나는 이윽고 미소를 지었다. 삭제되었던 데이터가 회복을 통해 복구된 것이다.
"이거지!"
일주일 전의 영상을 확인한다.
내 입가에 그려진 미소가 더 진해졌다. 증거를 찾았다. 한 트럭이 병원 주차장에 들어오더니 그곳에서부터 구속된 캐서린과 우리 속의 괴물쥐들을 병원에 내려놓은 것이다. 특히 괴물쥐들은 트럭 여러 대에서 쏟아져 나왔다.
'캐서린과 괴물쥐들이 얌전하다. 마치 기절한 것처럼. 아니, 마취인가?'
누군가가 음모를 꾸민 증거.
트럭 운전사와 직원들은 얼굴도 가리지 않았다. 그야 당연했다. 처음부터 CCTV 영상을 제거할 계획이었으니까.
‘트럭에 그려진 마크를 보니 병원 협력 업체로 위장했군.’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그 협력 업체도 일우 그룹과 연관되어 있었다. 이 증거를 인터넷에 퍼뜨리면 광주 시장의 인생은 끝장이다. 덤으로 일우 그룹의 이미지도 떨어지겠지.
‘보나 마나 꼬리 자르기에 들어갈 테지만.'
일우 그룹 전체를 자빠뜨리기에는 부족하다.
'일단 영상 데이터 사본은 나채영에게 보내고... 그냥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심심한데.'
잠깐 고민하다가 계획을 세웠다.
나는 각성자들에게 돌아갔다. 각성자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총성이 울리는 곳으로 가면 되니까. 각성자들은 아주 요란하게 괴물쥐들과 싸우고 있었다.
"성유진 씨! 오셨군요!"
한두호가 나를 먼저 발견하고 소리쳤다. 그는 카메라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괴물쥐와 싸우고 있었다. 그의 양팔과 양다리는 곰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죄송합니다. 캐서린을 도중에 놓쳐버렸습니다."
"아아. 그 괴물은 어쩔 수 없지요.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변종이었으니…. 근데 몸이 피투성이시군요. 당장 돌아가셔서 구급차에 몸을 실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전 괜찮습니다.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보이는 상처도 전부 자해로 낸 상처다. 내가 너무 멀쩡하면 이상함을 느낄 테니까. 실제로는 캐서린과 마주치지도 못했지만 사투를 벌인 척한다. 그래야 내 가치가 올라갈 테니.
'지금 캐서린은 숨어서 상처를 회복하는 데 집중하고 있겠지.'
최대한 진지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캐서린은 지쳐있습니다. 지금 가서 캐서린을 죽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각성자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마땅찮은 표정이었다. 입밖으로 내뱉진 않고 있지만, 캐서린을 상대하고 싶지않은 티가 팍팍났다.
“물론이지요. 우리 목적은 캐서린을 죽이는 것이니까요. 캐서린만 죽이면 괴물쥐는 군대와 경찰들이 처리할 수 있습니다. 자, 갑시다."
한두호가 나서며 말했다. 안 그런 척하면서도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다. 수백만 명이 보고 있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먼저 나서서 주도하는 게 낫다. 그런 의미에서 한두호는 제법 머리가 좋은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