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8화 > 2168. 이터널 에덴
나는 각성자들을 캐서린에게 이끄는 척 병원 곳곳을 돌며 보안실로 향했다.
“괴물쥐들이 떼로 죽어 있군요. 감전당한 걸 보니... 성유진 씨의 활약이네요. 역시 성유진 씨입니다. 대한민국 최강의 각 성자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군요.”
한두호는 아까부터 나를 칭찬하며 띄워줬다. 내 관심을 끌기 위한 노골적인 아부라는 건 알고 있으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하하. 과찬입니다. 상성이 좋았습니다. 괴물쥐는 쥐보다 크긴 하나 그래봤자 50cm 정도이니 감전이 효과적이었습니다.”
"괴물쥐들이 감전에 약하긴 하더군요. 여기 계신 반호성 씨도 수십 마리의 괴물쥐를 한 번에 처리했습니다. 정말 토르가 이 세상에 강림하는 줄 알았습니다.”
한두호의 너스레에 반호성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별거 아니었습니다. 하하하.”
여기 각성자의 중심은 한두호였다. 그가 각성자들의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었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그에게 호감을 갖 고 있는 듯했다. 한두호는 각성자 연맹이란 목표에 착실히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한두호. 이 새끼도 주의해야 할 인물이군. 내 앞길을 막으면 가차 없이 죽인다.'
한두호가 내 적은 아닌 것 같으나 미래는 모를 일이다. 미래에 한두호가 각성자 연맹을 지지기반으로 대선에 출마한다? 그때는 나도 못 참는다.
"어? 저기 유독 엉망인 문이 있군요. 보안실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보안실로 인도했다. 다른 곳은 다 멀쩡한데 보안실은 입구부터 엉망이다. 이건 이상한 일이었다.
“유진 씨의 말대로 유독 엉망이군요. 다른 곳은 다 멀쩡하던데... 보안실에 들어가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보안실을 엉망으로 만든 건 나다. 그래야 뭔가 있어 보일 테니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박살 내느라 애좀 먹었다.
“...보안실 안에 캐서린이 있는 거 아닙니까?"
한 각성자의 우려 섞인 의견.
“우리 목표는 캐서린입니다. 잘된 일이지요. 제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앞장서서 보안실로 들어갔다.
“캐서린은 없습니다. 보안실은...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박살 내놓은 것 같은 모양새군요."
한두호와 각성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래도 보안실이 좁다는 느낌은 없었다. 대형 병원 보안실인 만큼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한두호는 주변을 쓱 둘러보고는 말했다.
“멀쩡한 CCTV도 있습니다. 괴물쥐의 위치가 보이는데... 캐서린은 안 보이는군요.”
“영상이 자동으로 저장되는 것 같습니다. 영상을 돌려보면 캐서린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한 번 살펴봅시다.”
나는 할발 짝 물러났다. 한두호는 당연하다는 듯이 주도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의 옆에는 카메라를 든 각성자가 있었다.
'설마 그 영상을 보고 모른 척하진 않겠지.'
만약, 모른 척한다면 한두호는 일우 그룹의 끄나풀이 가능성이 크다. 각성자 연맹을 창설을 꿈꾸는 놈이다. 자기 보신을 위해 이 악물고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어그로 끌기 딱 좋은 상황이니까.
그는 영상을 확인하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의 흔들리는 눈빛에 고뇌가 스쳐 지나간다.
'어쩔 거냐, 한두호.'
꿀꺽.
그는 마른침을 삼킨 뒤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에 말했다.
“여러분. 제가 엄청난 영상을 발견했습니다. 설마 이런 음모가 선월 대형 병원에서 일어나고 있을 줄이야. 저는 지금 혼란 스럽고 모든 게 의심스럽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 물론 여러분들에게도 알 권리가 존재하지요. 이 영상을 봐 주십시오."
한두호는 일우 그룹의 끄나풀이 아니었다. 카메라가 모니터를 찍기 시작했다. 카메라에 붙잡히지 않은 한두호는 히죽하고 웃었다. 아까 긴장한 표정은 전부 거짓이었던 거다.
'연기 좀 하는데?'
각성자들도 궁금한 듯 영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상황은 개판이 됐다. 각성자들은 하나 같이 분노했다.
“캐서린과 괴물쥐는 사람이 병원으로 데려온 거였다니!”
“변종과 변이체를 마취해서 데려온 거로 보이는데.. 대체 저들은 누굽니까?"
“마취가 맞는지도 의문입니다. 괴물쥐들은 두 눈을 뜨고 있지 않습니까. 마치 무언가에 조종당하는 것 같습니다. ...설마. 정신계 능력자가."
한두호가 앞으로 나섰다.
“자, 자. 진정하시고 차분히 생각해 봅시다.”
카메라는 한두호를 담았다.
“일주일 전 이 병원에 누군가가 변종과 변이체를 풀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목적은 무엇이냐입니다. 병원을 부수는것이 목표였다면 이미 변종과 변이체가 날뛰었을 겁니다. 광주시의 군대와 경찰은 드론으로 정찰은 했으나 제대로 된 진압 시 도는 하지도 않았습니다. 광주 시장은 바로 저희 각성자들에게 공략을 요청했지요. 여기서 이상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마치 광주 시장이 각성자들을 불러 모아 한 번에 처리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제 착각입니까?"
한두호는 분노한 얼굴로 카메라를 노려봤다. 정확히는 카메라를 통해 이곳을 보고 있을 누군가를.
나는 일부러 침묵했다. 광주를 건드리는 건 조심해야 한다. 광주 시민의 수가 적지 않으니까. 훗날 광주 시민들의 표를 얻으려면 지금은 조용히 묻어가야 하니까.
“광주 시장 김광석 씨. 이 일은 반드시 해명해야 할 겁니다. 군대와 경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경찰은 억지를 부리며 촬영을 저지하려 했습니다. 이 순간을 우려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 방금 시청자 중 한 분께서 새로운 제보를 해주셨습 니다. 트럭은 의료기기 제조 기업인 S테크로 일우 그룹의 협력사라는군요. 선월 병원이 일우 그룹 소속인데.... 이것도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한두호는 마지막 말을 흐렸으나, 일우 그룹을 저격하는 말이었다. 한두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각성자들과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결심한 듯 선언했다.
“작전을 중지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일은 이상합니다. 사건이 투명하게 밝혀질 때까지 광주에서 대기하겠습니다. 또한 저는 각성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각성자 연맹의 창설을 지금 여기서 선언하겠습니다. 각성자 연맹의 이름으로 이번 사건의 진상 규명에 힘쓸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아, 물론 다른 각성자 여러분의 의견도 중요하지요. 여러분은 어 떻게 하겠습니까?"
각성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환영했다. 안 그래도 캐서린이 두려웠던 그들이었다.
“저도 한두호 씨를 따르겠습니다.”
“각성자 연맹에 가입하겠습니다.”
모두가 찬성한다. 한두호는 마지막으로 내게 물었다.
"성유진 씨. 성유진 씨는 어쩌시겠습니까?”
“저는 성악초등학교가 있기에 각성자 연맹에 가입할 수 없습니다만, 한두호 씨의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작전을 중지하고 진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각성자들은 후퇴했다. 당연히 대한민국은 난리 났다.
방송을 보고 있던 진성화는 비명 지르듯 오하백을 불렀다.
“오 비서!!!! 증거는 없다며?!! 흔적은 다 지웠다며?!! 지금 나랑 장난해?!!"
“CCTV 영상은 모두 삭제했습니다! 그 외의 흔적도 전부 없앴습니다!”
“영상이 남아 있잖아! 그 영상을 700만 명이 지켜봤다고!!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오하백은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중요한 건 어떻게 변명하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수습하느냐다.
"광주 시장 김광석에게 모든 일을 덮어씌우겠습니다. 김광석은 평소 각성자를 아니꼽게 보던 정황이 있었으니 분명 먹힐 것입니다."
꼬리 자르기. 김광석은 모든 혐의를 인정할 것이다. 워낙 받아먹은 게 많으니까. 그의 가족도 일우 그룹의 손에 달려 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사람들이 변종과 변이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 이건 어쩔 거야?!"
“그건… 마취로 우기거나 정신계 능력자의 짓이라고 우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각성자의 짓이라고 우겨. 실제로도 각성자의 힘으로 통제하는 거잖아?"
유감스럽게도 일우 그룹에도 변종이나 변이체의 정신을 지배하는 기술력은 없었다. 대신 정신계 능력자가 있었다. 변종 과 변이체를 세뇌해 미리 각인시켜 둔 행동을 뇌파 신호기를 통해 지시하는 것이다. 세세한 통제는 불가능했다.
"청부업자들에게 알려서 성유진을 죽여. 캐서린은 폐기해.”
“알겠습니다. 캐서린은 폐기반에 알려 폐기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1시간 뒤, 오하백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청부 업자들이 일우 그룹의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뭐?"
숙소에 돌아오면서부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뭔가 시선이 느껴지네. 이거 기분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암살을 하도 당하다보니 이런 쪽으로는 느낌이 팍 꽂힌다.
뇌천류(雷天流) 전자기파(電磁氣波).
눈을 감고 전자기파를 사용했다. 주변의 구조와 형태가 머릿속에 꽂힌다.
'옆방에 4명이 소총으로 무장한 상태로 있군. 폭탄까지 가지고 있네. 잠깐.... 하, 이 새끼들 봐라.'
내 방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었다. 암살이 아니라 테러에 가까웠다.
'아주 막무가내네.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날 처리하겠다는 거잖아.'
나는 방을 나서는 대신 스마트폰을 꺼냈다. 녹화를 시작한다. 우선 셀카 모드로 내 얼굴을 찍는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카메라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여러분. 여긴 광주시가 제공해 준 숙소입니다. 생방송이 아닌 것은 양해 바랍니다. 저들이 눈치챌 수 있으니까요. 저는 지금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있습니다.”
침대 옆에 있는 협탁 서랍을 열었다. 책을 빼내고 그 안에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서랍 안쪽에 폭탄이 붙어 있었다.
“보이십니까? 폭탄입니다. 여기 뿐만이 아니라 제 방 곳곳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침대 아래, 변기통 안, 거실 소파 뒤쪽, 에어컨 내부 등등.
“이 작은 숙소에 총 11개의 폭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옆방에 수상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걸 봤습니다. 옆방 이 수상하니 한 번 가보겠습니다.”
똑똑똑.
옆방 문에 정중히 노크했다. 문 너머에서 탁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문은 열려 있습니다. 들어오시죠.”
끼이익.
문을 연 순간이었다.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소총으로 날 겨누고 있었다. 남자는 차가운 눈으로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