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9화 > 2169. 이터널 에덴
돌격소총에서 총알이 쏟아진다.
파지지직.
뇌천류(雷天流) 전자기막(電磁氣幕).
스파크가 튀며 나를 중심으로 막을 형성한다. 총알은 전자기막에 닿자마자 허공에 뚝 멈춘다. 전자기가 형성한 자기장을 뚫기에는 소총탄의 화력이 너무 약했다.
'바로 죽이진 않는다.'
지금 영상을 찍고 있었다. 생방송은 아니지만, 대중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니 최대한 잔혹한 광경은 자제한다. 카메라를 끈뒤 죽이든, 살리든 해도 당장은 제압하려는 애쓰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허공에 떠 있던 총알들이 일제히 바닥에 처박혔다.
일반인이 보면 기가 질리는 광경이다. 일반인들에게 있어 총이란 단순히 무기 이상의 의미가 있으니까. 총이 안 통한다? 그건 곧 괴물을 뜻하는 말이었다.
허나 눈앞의 남자는 잠시 주춤거릴지언정 겁에 질리지 않았다.
"총알이 안 통한다. 타깃의 능력 재평가가 필요하다. 폭탄을 사용한다.”
숨어 있던 3명이 튀어나와 내게 폭탄을 던졌다. 동시에 저들은 흩어지듯 도망친다. 누군가는 거실 창문으로, 누군가는 방과 연결된 테라스로.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니 저들은 전문가 중에서도 전문가였다.
딸깍.
스위치를 누르는 소음이 유독 크게 들리고.
뇌천류(雷天流) 질풍신뢰(疾風迅雷).
나는 뇌전으로 신체를 강화해 있는 놈들을 향해 뛰었다. 한순간 인간을 초월한 속도로 도망친 놈들처럼 창문 밖으로 뛰었다.
콰아아아아앙!
뒤에서 폭탄이 터졌다. 놈들이 던진 것뿐만이 아니라 내 방에 설치되어 있던 폭탄까지 일제히. 숙소가 작살나는 걸 카메 라로 찍은 뒤 바닥에 착지한다.
저도 모르게 몸을 비틀거렸다. 질풍신뢰는 지금 육체로는 부담이 너무 크다.
'회복'
무리한 움직임으로 상처 입은 육체를 회복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4명의 테러리스트가 흩어져 도망치고 있다. 아무리 나 라도 4명 전부를 잡는 건 무리였다.
'저들 중에 리더가 있을 텐데... 얼굴도 가리고 있어서 구분할 방법이 없어. 아까 나한테 소총 갈긴 놈을 잡아야겠군.'
나는 도망치는 놈에게 전력으로 뛰어가 그 뒤통수를 후려치려 했다. 놈이 몸을 옆으로 비틀어 내 공격을 피했다.
놈은 총과 탄창을 버리고 나이프를 손에 쥐었다. 나이프 파이팅의 자세. 그 두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나랑 근접전으로 싸운다고?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군.’
내 전투 영상은 이미 인터넷에 퍼져있다. 그 영상 중 하나만 봤어도 1대1 근접전은 승산이 아예 없음을 알 텐데?
'나를 무시한다. 라기보다는 비장의 수단이 있는 거겠지.'
꿀꺽.
얼굴을 가린 천 너머에서 무언가를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내 의문도 해결됐다.
'약물이었군.'
놈의 두 눈이 충혈되더니 실핏줄이 터져 피가 줄줄 흐른다. 놈의 근육이 팽창되어 부풀어 올랐다. 내가 모르는 약물이었다.
쿵!
놈이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그 간단한 동작에서 인간 이상의 힘이 느껴졌다. 행동도 빠르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만 큼 실력도 있다.
'그래봤자 평범한 인간이지.'
한순간에 얻은 초인의 육체. 아무리 전투에 익숙하더라도 그걸 완벽히 제어할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게다가 나는 인간 이상의 것들을 상대하는데 도가 텄다.
뇌천류(雷天流) 벽계(碧溪).
보법을 밟는다. 신묘한 보법은 상대의 거리감을 흐리게 만들었다.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에 집중하면 통하지 않는 잔재주 에 가까운 기술이지만, 반대로 시각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는 놈에겐 반드시 통하는 기술이었다.
놈의 옆을 지나가며 옆구리를 베었다. 놈의 옆구리에서 피와 내장이 쏟아진다. 그러면서도 나이프를 휘두르며 싸우려 들 기에 팔도 벴다. 양팔을 잃은 놈이 침몰하듯 쓰러졌다. 극심한 상처에도 불구하고 놈은 아직 살아있었다.
“이름이 뭐냐?"
"……."
놈이 침묵했다.
“네가 걸친 장비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야. 뒤에 누가 있지? 누가 날 죽이라고 시켰지?"
"……."
놈이 계속해서 침묵했다.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하지. 난 네게 2번이나 질문했고, 넌 침묵으로 대응했다. 편하게 죽을 수 있는 기 회를 잃었다는 거지. 겨우 이런 일로 시간을 끌기 싫으니 마지막 3번째 기회를 주마. 네 뒤에 일우 그룹이 있다고 말해.”
"흐, 흐흐흐."
놈이 웃었다. 사포로 목을 긁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곧 죽는다. 너는 내게서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을 거다. 흐흐흐.”
“짜증 나게 구는군.”
놈이 완전히 죽기 전에 그 심장에 칼을 박았다. 천천히, 차가운 날붙이가 제 안으로 파고드는 걸 잘 느낄 수 있도록.
나는 무기력하게 신음만 흘리며 죽어가는 놈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예언하나 할까? 결국 넌 말하게 될 거다. 아마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길어봤자 2시간이겠지.”
“헛소리. 나는... 죽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놈의 숨통이 끊어졌다. 나는 그의 시체를 보며 비웃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동의한다. 그러니 살려서 말을 들어야겠지.
시체를 들고 숙소 밖으로 빠져나간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 걸 보니 경찰들이 출동한 모양이다.
'도망칠 곳은 많아. 좀비 사태 때문에 도시에도 빈집이 넘쳐나니까.'
나는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훔쳐 탔다. 창문을 깨고 뇌전을 활용해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시체는 뒷좌석에 대충 던져 놓았다.
창문이 깨져 시선을 끌긴 했지만, 도시는 폭탄 테러로 인해 어수선했다. 최대한 사람이 없는 길을 이용해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도시 외곽에 있는 한 고물상 집에 들어갔다. 사람은 없었다.
나는 모닥불을 피우고 폐드럼통에 물을 가득 담아 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을 회복시켰다. 팔다리는 잘린 상태로 몸통 만 회복시켰다. 눈을 뜬 놈은 당황한 듯 고개를 젓다가 나를 보고 굳어진다.
“...난 분명 죽었을 텐데.”
놈이 당황했다. 처음 되살아난 놈들 대부분이 그랬다. 자신의 죽음을 인지했으니 살아 있는 건 이상한 일이니까.
“죽음은 끝이 아니지. 일우 그룹이 시킨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나?"
“우리는 고문을 대비한 훈련도 받았다. 네가 어떤 고문을 하든 네 뜻대로는 절대로 되지 않을 거다.”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래서 준비했지. 토사구팽. 누군가의 사냥개인 네놈에겐 팽형이 딱이다.”
놈이 두 눈을 부릅뜬다. 뒤늦게 자신의 뒤편에서 물이 끓고 있는 드럼통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놈이 뭐라하기 전에 뒷덜 미를 잡고 드럼통 안에 집어 던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보글보글 끓는 수리와 함께 사람의 몸이 산채로 익기 시작한다. 얼마 안 가 비명이 끊겼다. 나는 푹 익은 놈을 끄집어낸 뒤 찬물로 식히고 회복시켰다. 그리고 다시 드럼통 안에 집어넣는다.
"와. 이거 무한 육수도 가능하겠네.”
3번 정도 반복하니 놈은 내 능력에 깨달은 듯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말하겠다. 전부 말하겠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네 이름 따윈 됐으니 누가 시킨 건지 말해."
“우리는 살인 청부업자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인다. 이번에 너를 죽여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본래 폭탄까지 사용하지 않지만... 확실함을 원하는 의뢰인으로부터 폭탄을 제공받았다.”
“사족이 길어. 그래서 그 의뢰인이 누구냐고.”
“우리도 모른다.”
"이 새끼가?"
여기까지 와서 나랑 장난을 쳐? 어떤 의미로 대단한 놈이었다.
“살인을 청부하는 의뢰인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려 하겠나? 당연히 의뢰인은 정체를 감추고 우리에게 의뢰했다.”
“그러시겠지.”
나는 놈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러자 놈이 다급해졌다. 뒷덜미를 잡은 건 끓는 물 가득한 드럼통에 던지겠다는 뜻이니까.
“의뢰인의 정체를 알고 있다!”
우뚝. 행동을 멈추고 그를 내려다봤다.
“아까는 모른다며?”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이 업계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의뢰인의 뒤를 캤다.”
“그래서 의뢰인의 정체는?"
“오하백. 진성화의 비서이니 진짜 의뢰자는 진성화다."
"진성화?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일우 그룹 회장의 둘째 딸이다.”
“아. 맞다. 그런 이름이었지. 진성화. 이건 뭐 하는 년이지?"
“일우 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일우 제약 회사의 사장이다. 내가 먹은 일시적으로 괴물의 힘을 갖게 해주는 약도 의뢰인 이 준 약이다."
“제약 회사라.”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제약 회사? 구린내가 풀풀 났다. 분명 생물 병기 같은 걸 만들고 있을 것이다.
‘캐서린과 괴물쥐를 통제하는 것도 놈들의 기술이라면.... 가능하겠어.’
일우 그룹이면 날 죽이려 한 이유도 납득된다. 나와 일우 그룹은 불구대천의 원수니까.
"진성화. 그년은 어디에 있지?"
“모른다. 일우 제약 회사는 3달 전, 변종에 의해 무너졌다. 사원 대부분이 사망했으나 일부는 실종됐다고 하더군. 진성 화는 그 소식이 아예 없다."
"근데 너희에게 의뢰를 한 건 진성화지. 진성화는 숨어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뜻이군. 진성화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
“모른다.”
“그 비서인 오하백은?"
“연락 수단은 있으나... 연락해도 응하지 않을 거다. 소란이 너무 크게 일어났으니까.”
"그렇긴 하군.”
나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켰다.
“넌 일우 그룹의 회장인 진수결의 의뢰를 받아 날 노렸다고 카메라에 대고 말해라.”
"그깟 여론 조작이 일우 그룹을 상대로 먹힐 거라 보는 거냐?"
“더 삶아지고 싶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 아, 복장도 테러리스트처럼 갖춰 입는게 좋을 것 같군.”
놈은 더 삶아지긴 싫었는지 내 말에 순순히 따랐다.
"수고했다.”
영상을 찍은 뒤 놈을 드럼통 안에 넣어 삶아 죽였다.
영상은 나채영에게 부탁해 편집한 뒤 내 SNS 계정에 올렸다. 안 그래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언론인들은 곧바로 영상을 확인하며 기사를 써댔다.
일우 그룹의 명성은 땅에 처박히고 국민들에게 온갖 욕을 다 받아야 하는데... 갑자기 일우 그룹에 우호적인 기사들이 우후죽순 나타났다. 역으로 날 욕하는 놈들도 많아졌다.
'순순히 당하지 않겠다고? 지금 존나 불리한 건 일우 그룹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