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1화 > 2171. 이터널 에덴
진성화는 괴물쥐의 통제가 풀리고 광주 도시 곳곳으로 퍼져나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안 그래도 사람들은 대형 병원의 일을 일우 그룹과 연관해서 생각했다.
광주 시장에게 모든 잘못을 덮어씌운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CCTV 영상만 공개되지 않았어도. 아니, 캐서 린과 괴물쥐가 병원에서 사라지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됐을 것이다.
“오 비서! 어떻게 할 거야?!!"
"……."
진성화가 히스테릭을 부렸다.
오하백은 억울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자신이라도 알았던가. 하지만 대놓고 그리 변명할 수는 없었다. 함부로 대들었다 가 실험체로 전락할 수 있었다. 지금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는 게 최선이다. 다행히 비서로서 자시만큼 뛰어난 이는 거의 없다.
“어떻게 할 거냐고?!"
두 번째 물음. 여기선 침묵하면 안 된다. 오하백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손절밖에 답이 없습니다. 필사적으로 광주를 모르는 척해야 합니다.”
“폐기반을 보냈잖아! 폐기반이 군대와 함께 캐서린과 괴물쥐를 죽이면 되잖아!"
“...캐서린의 통제 신호기가 박살 났습니다. 캐서린이 죽었거나, 통제가 풀려 자유로워졌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전자라 면 괜찮습니다만, 후자라면...."
오하백이 말을 끊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에 진성화의 눈이 더 매서워진다.
"후자라면? 답답하게 굴지 말고 말해.”
"...전에도 말했듯이 캐서린은 도시 하나를 멸망시킬 수준입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광주가 멸망할 것입니다.”
실제로 도시가 멸망할 가능성은 30%도 되지 않는다. 정부가 머저리도 아니고 광주라는 대도시가 멸망하도록 내버려 둘 리 없으니까. 그전에 폭격이든 뭐든 해서 캐서린을 죽이려 하겠지.
"하. 대형 병원. 그건 내 명의가 될 예정이었는데.... 일우 그룹이 광주에 투자한 돈이 적지 않아. 그건 너도 알고 있지?"
“예. 광주 시장과 공무원, 일부 시민 단체, 하청업체. 그 외에도 인프라 등에 30년 전부터 꾸준히 투자해 왔습니다. 다행히 광주의 영향력을 전부 잃은 건 아닙니다. 시간을 들이면 광주를 삼킬 수 있을 겁니다.”
“광주는 멸망한다며?"
"...그. 최악의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됐어. 경위서 작성이나 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질 게 분명하니까. 변명거리도 만들고. 알았어?"
"...네.”
진성화는 광주 영상을 찾아봤다. 어두운 새벽, 괴물쥐들이 광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편의점에 들어 가서 식품을 노리는 건 귀여운 수준이다. 괴물쥐 여러 마리가 길 가던 행위를 공격해 산 채로 잡아먹는 영상이 떠돌고 있었다.
원래라면 삭제되어야 할 영상이지만... 지금 시대에서 사람이 죽는 영상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떠돌아다닌다. 사람들은 죽음에 너무 익숙해졌다.
경찰과 군대가 나서서 괴물쥐를 소탕하고 있으나, 도시의 빈틈 곳곳에 숨어드는 괴물쥐들을 완벽히 소탕하는 건 불가능 할 것이다. 괴물쥐는 그 번식력도 만만치 않으니.
'개판이네. 도시에 있지 않길 잘했어.'
도시는 안전한 동시에 위험했다. 인구가 많으니 군대가 신경 써서 보호하지만, 인구가 많으니 위험한 변종이 언제 튀어나 올지 모른다. 감염체와 변이체는 생물을 먹고 진화한다. 그 먹이는 인간도 포함된다. 물론 변종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한다.
풀려난 캐서린은 광주 시민을 잡아먹고 진화할 것이다.
'광주의 일이야. 내가 어떻게 할 방법도 없고. 손 떼자.'
진성화는 침실로 들어가 꿀잠을 잤다. 아침 늦게 일어난 그녀는 성유진의 생방송을 봤다. 최악인 여론에서 어떤 변명을 할지 궁금했다.
'어떤 말이라도 지껄여 봐. 기자들이 바로 반박하고 댓글 부대가 나서서 역으로 공격할 테니까. 아버지라면 조만간 검경 도 움직이겠지.'
대한민국 고위지도층은 일우 그룹의 돈을 받아먹고 성장한 자들이 많았다. 흔히 '일우의 아이들'이라고 불리는 자들이었다. 아이들이라고 하기엔 절반은 중년이지만.
이제 성유진은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추락할 것이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잊혀질 테지. 그때가 시작이다. 일우 그룹은 모든역량을 동원해 성유진을 괴롭히고 죽일 것이다. 일우 그룹 본사를 테러하고 후계자와 그 아들을 죽인 죄는 절대 가볍지 않으니까.
'발버둥 쳐봐.'
하지만 이어진 영상 내용은 그녀의 기대를 배신했다.
성유진은 변명하지 않았다. 자신이 옳은 데 왜 변명하냐는 태도였다. 대신 기자들을 잔뜩 끌고 병원으로 이동했고, 불치 병에 걸린 아이를 능력을 사용해 치료했다.
성유진은 능력을 사용한 대가로 각혈했고, 불치병에 걸려 오늘내일하던 아이는 생명을 얻었다. 죽음이 확정된 사람을 살 려 놓고 각혈했다. 고작 그 정도의 대가로 사람을 살린 것이다.
"……."
치료 능력.
일우 그룹이 그토록 찾고 있던 각성자가 성유진이었다. 아니, 일우 그룹뿐만이 아니라 모든 기업이. 모든 국가가 원하는 능력자다.
불로장생. 모든 인간이 원하는 그것을 저 남자가 손에 쥐고 있다. 권력자들이 움직일 것이다. 그들은 성유진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꺼이 일우 그룹을 적대하겠지.
만약에.
미국이 성유진을 포섭하기 위해 움직이고, 성유진이 포섭의 대가로 일우 그룹의 죽음을 원한다면?
일우 그룹은 끝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니까. 일본과 한국이 일우 그룹을 보호할 리 없었다.
진성화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불치병 아이의 부모가 연신 감사 인사를 하며 성유진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른다. 불치병에서 벗어난 아이도 마찬가지다. 마치 성유진을 우상 숭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곳에 있는 그 누구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성유진은 그들의 기적이었고, 구원이었으니까.
근처에 있던 다른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성유진에게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성유진 님! 제발! 제발 우리 아이를 구해주십시오!
-저희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내 동생을 구해주세요! 제발요!
-진정하세요. 제가 전부 구해드리겠습니다. 저는 국민 여러분의 편입니다.
성유진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환자들을 구했다. 피를 토해가며 죽어가는 자들을 치료한다. 그 모습은 경건했고, 고귀 했으며, 아름다웠다.
그리고 성유진은 자기 목적에도 충실했다.
-광주시가 고통받는 건 모두 일우 그룹 때문입니다. 일우 그룹이 캐서린과 괴물쥐를 풀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일우 그룹을 매도했다.
-일우 그룹은 매국노 기업이자, 혐한 기업입니다. 일우 그룹의 태생은 조폭과 야쿠자입니다. 그거 아십니까? 일우 그룹의 음료수에서 방사능이 유출되었다고 하더군요.
거짓부렁을 섞어가며 욕한다.
-일우 그룹은 대한민국을 좀먹고 있는 기생충입니다. 기생충은 한시라도 빨리 박멸해야 합니다. 모두 일우 그룹을 불매합시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노골적인 의도의 비난.
하지만 통한다.
왜? 성유진이니까. 성유진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지금 여론이 그러했다.
성유진은 피를 토해가며 환자들을 치료했다.
장님이 눈을 뜨고, 식물인간이 벌떡 일어났으며, 팔을 잃은 불구가 팔을 되찾았다.
기적. 그것 말고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일우 그룹은 악입니다. 사악한 기업인 일우 그룹은 반드시 대한민국에서 퇴출당해야 합니다.
-일우 그룹 퇴출!
-일우 그룹 해체!
-일우 그룹 사형!
기적을 경험한 환자와 그 가족들은 성유진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일우 그룹을 적대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성유진을 까대던 글은 온데간데없다. 성유진을 비난하던 기사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성유진을 비난하는 댓글 부대? 성유진을 욕하는 순간 사람들이 달라붙어 그를 욕했다.
성유진은 빛이 되었다. 또한 성자가 되었다. 예수의 얼굴에 성유진의 얼굴을 합성한 이미지가 올라온다. 그 외에도 성유진과 종교를 엮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다.
진성화마저 납득해 버렸다. 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데 어떻게 종교를 엮지 않을 수 있을까.
영상 속의 사람들은 이미 광신도나 다를 바 없었다. 성유진이 움직이면,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른다.
진성화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치료 능력자가 희귀한 건 알고 있었다. 일우 그룹에도 플레이어가 있었으니까. 플레이어의 말에 따르면 치료 능력자는 고작해야 외상을 치료하는 게 전부라고 들었다. 불치병 치료는 불가능했고, 불구를 치료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런데 성유진은? 대놓고 불치병과 불구를 치료했다. 성유진의 치료 능력은 격이 달랐다. 정말 치료 능력이 맞긴 한가?
덜컥!
“사장님!"
“오 비서. 호들갑 떨지 마. 영상은 나도 다 봤으니까.”
“……회장님께서 연락하셨습니다.”
오하백이 그녀에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진성화는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
“네. 아버지.”
“일이 망했다는 건 너도 알 테지. 성유진은 당분간 방치한다.”
“...복수를 포기한다고요?"
“복수 이상으로 중요한 게 있다. 지금 그룹 전체에 세무 조사가 들어왔다.”
"네?! 한국 정부가 벌써 움직였다고요?!"
"성유진의 가치는 이미 영웅 수준이 아니다. 한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도 성유진을 탐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성유진에 게 잘 보이려고 아양을 떠는 거다. 그렇다 해도 너무 빠르게 행동하는 걸 보니... 성유진의 뒤에 누군가가 있다.”
"성유진은? 성유진은 어떻게 할 거죠?"
“생포한다. 반드시 생포해서 연구한다. 그 능력의 비밀을 풀고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일우 그룹은 세계를 지배할 것이 다. 잊지 마라. 기회는 위기와 함께 온다는 것을.”
뚝.
진수결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시선이 화면으로 향했다. 성유진이 수백 명 앞에서 연설하고 있었다. 연설 내용의 절반 이상이 일우 그룹을 비난 하는 내용이었다.
'미친 새끼.'
아무리 원수를 졌다 해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욕하다니?
진성화는 억울함까지 느꼈다. 솔직히 일우 그룹이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니지 않나. 먼저 일우 그룹의 일을 방해하고 테러 를 한 건 성유진이니까.
-국민 여러분! 저는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정치계로 입문하려 합니다! 국회의원이 되어 여러분께 봉사하겠습니다! 나이 제한이 있다는 건 압니다! 그럼에도 제가 국회의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대한민국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법으로 나를 막을 수 없습니다! 정 안 된다면 미국의 국회의원이 되어서 국민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지금 법 안 바꾸면 미국으로 가겠다고 국민을 협박하는 거야? 이런 개미친 새끼가 적이라니....”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저건 엄연한 갑질이니까.
그래야 하는데.
-성유진! 성유진!
-성유진을 국회로!!
-성유진 님! 대한민국을 부탁해요!!
벌써 대가리 깨진 놈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러다가 대통령까지 하는 거 아니야?'
진성화는 저도 모르게 불길한 상상을 했다. 그때는 진짜 끝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