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5화 > 2175. 저주
[유희를 종료합니다.]
[경험치 정산을 시작합니다.]
[나채영의 인연 레벨은 6입니다.]
[최혜진의 인연 레벨은 5입니다.]
[이리나의 인연 레벨은 4입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
[성유진
레벨 : 93
근력: 130 체력: 130 민첩: 130 지능: 130 정력: 134 마나: 133]
[사용 가능 포인트: 21,680]
포인트를 확인한 고개를 끄덕였다. 이터널 에덴에는 페널티가 있다보니 다크 문 수준은 아닐지라도 제법 잘 벌렸다. 이번에 꽤 오래 있기도 했고.
나는 능력치에 포인트를 사용했다. 솔직히 별생각 없었다. 피지컬을 올리는 기분이랄까. 기술이든 뭐든 일단 피지컬이 받쳐줘야 한다.
‘능력치 하나 올리는데 1,500 포인트라….’
[성유진
레벨: 93
근력: 130 체력: 130 민첩: 130 지능: 130 정력: 140 마나: 140]
[사용 가능 포인트: 2,180]
나는 몸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생명력과 마나가 늘어나면서 발생한 일이다. 육체에는 활력이 넘쳤고, 그 내부에는 마나가 휘몰아친다.
이런 감각을 느껴본 적 있다. 광명승천도에서 영약을 먹었을 때다. 영약빨로 갑자기 확 강해지는 느낌. 물론, 단순히 생명력과 마나의 양만 늘어난 게 아니다.
뇌천류(雷天流) 전자기파(電磁氣波).
전자기파를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느낄 수 없는 전자기파동이 나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진다. 오피스텔 건물을 넘어서 바깥 도로까지도.
‘하린이는 건물 내에 없고… 미령이는 방에서 인터넷 방송 중인가? 오. 움찔거리는 게 전자기파를 느낀 건가?'
전자기파라곤 하나 그 근본은 마나다. 뛰어난 술법사인 미령이 느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1층의 연놈들이 섹스를 하고 있군. 흠. 둘 다 못생겼군.’
전자기파의 범위는 300m. 범위는 물론이고 정보의 양도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나 능력치가 올라가면서 마나의 양만이 아니라 마나 운용력도 올라갔기 때문이다.
'부족하군.'
내가 목표로 하는 S급이 고작 전자기파 300m? 최소 1km 이상이어야 S급이라 할 수 있다.
'S급은 자연재해 그 자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괴물들이니까.'
능력치가 높아지면서 느끼는 것은 능력치 1개를 올릴 때마다 강해지는 게 체감된다는 것이다.
'예전에 예상했던 대로 능력치 150 정도는 되어야 S급 평균이라 할 수 있겠지.'
능력치 140부터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선 2,000 포인트가 필요하다. 아무리 나라도 좀 부담스러웠다.
'유희 생활 퀘스트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지. 보상으로 대량의 포인트를 획득하거나, 능력치 자체를 올릴 수 있으니까.'
나는 손바닥을 펼쳤다. 그 위로 마나를 모은다. 푸른색 마나가 뭉쳐지더니 칼날의 형태로 변한다. 별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기운. 강기(罡氣). 달리 오러 블레이드라고 불리는 힘. 현실에서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하지만 헌터들은 강기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비효율적이니까. 기본적으로 헌터드는 무술보다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켜 싸운다. S급 헌터인 한아영도 무술에 대해선 잘 모른다. 대신 압도적인 빙결 조작 능력으로 힘을 증명했다.
‘뭐, 무술을 사용하는 헌터도 제법 많긴 하지만.'
당장 영천류 같은 무술이 존재하지 않나. 무술과 관련된 가문도 찾아보면 많다.
나는 손바닥 위의 강기를 번개로 바꾸었다. 천천히 빙글빙글 돌며 회전하는 번개. 번개의 크기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만뢰(卍雷).
최근에 깨달은 건데 만뢰의 진짜 활용도는 압축이 아니라 증폭이다. 뇌전이 회전하면서 자가발전을 하는 느낌이랄까.
공명이 증식의 개념으로 질보다 양이면, 만뢰는 하나의 번개를 강화하는 양보다 질.
이전에는 몰랐다. 압축과 증폭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광명승천도 내에서 수련하다가 우연히 알아낸 사실이다.
만뢰는 신의 아틀란티스에서 얻은 클래스 스킬. 특수 클래스라 할 수 있는 뇌절사의 스킬만큼 평범한 기술은 절대 아닌 것이다. 그걸 알아차리는 게 좀 많이 늦었다.
‘만뢰를 1시간 동안 지속한다면… 어떤 힘이 나오는 거지?'
궁금했으나, 지금의 나도 만뢰를 1시간 동안 지속할 자신이 없었다.
"아아아아악!"
돌연 미령의 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나는 차분한 눈으로 미령의 방을 쳐다봤다. 아까 전자기파로 미령이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는 걸 파악했다.
‘평범한 리액션이네.'
꼭 방송용 리액션이라 말할 수는 없다. 미령은 방송을 하지 않을 때도 가끔 호들갑을 떠니까.
‘아마 게임 캐릭터가 죽은 거겠지.’
흔한 일이다. 근데 의외로 이런 게 궁금했다. 전자기파를 한 번 더 사용했다. 미령은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귀를 기울이니 목소리가 들린다.
"이건 억까야! 내가 왜 죽어야 하는데?! 이거 저격당한 거 맞죠?! 그렇지 않고선 내 동선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미령의 게임 실력은 나와 대등하거나 그 이하다. 따라서 억까라 주장하는 것도 진짜 억까일 확률도 컸다.
미령은 자기 나름대로 즐거운 생활을 만끽하고 있으니, 나는 인벤토리에서 드론을 꺼냈다. [이터널 에덴] 세계에서 가져온 기계. 나채영이 직접 만든 전투 드론이다. 원래는 AI를 이용해 조종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이터널 에덴의 AI는 현실에 가져올 수 없다.
'대신 마도카가 있지. 전투 드론 정도는 알아서 조종하겠지. 못해도 딱히 상관없고.'
전투 드론을 사용하기 위해 가져온 게 아니다. 현실에서 전투 드론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헌터들이 있는데 굳이 전투드론을 왜 쓰는가.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 낫긴 해.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에선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전투 드론보다 더 가치 있는 건 전투 드론의 부품과 갈치늄일 것이다. 현실의 기술보다 더 진일보된 기술로 만들어진 게 전투 드론이니까. 특히 갈치늄은 초전도체 만큼은 아니더라도 배터리 계에선 혁명에 가까운 물질이다. EMP 차폐 효과까지 있으니 군수 시장에서 군침을 뚝뚝 흘릴 물건이다.
‘갈치늄을 풀거나 팔 생각은 없어. EMP 차폐 효과는 전기 능력자인 내겐 안 좋은 거니까.'
돈은 충분하다. 내가 손해 보면서 남들 좋을 일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슬슬 저녁 식사를 고민할 때쯤, 미령의 방 밖으로 나왔다. 어쩐지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라면 싱글벙글 웃으며 저녁 뭐 먹을 거냐고 물어봤을 그녀였다.
"왜 그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제가 저주를 받았어요.”
“시청자가 문제야? 밴 먹여."
“아뇨. 아뇨. 시청자가 하는 개소리가 아니라, 진짜 저주요. 몸이 쇠약해지고 기력을 빼앗기는 저주를 받았어요.”
"감히 누가!”
발작하듯 일어났다. 내 여자를 저주한 놈이 있다? 나는 보복할 준비가 됐다.
“서방님, 진정해요. 제가 저주 따위에 당하겠어요?”
지금 미령은 나와 같은 능력치다. 못해도 A급 헌터 수준. 더해서 그녀의 술법적인 지식과 경험 등을 합치면 S급 헌터의 저주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년이 제게 살(煞)을 날렸지만, 제가 살(煞)을 맞받아쳤죠.”
“그년? 여자가 널 저주한 거야?”
“BJ예요. 저주를 받아치면서 자연스럽게 대상의 얼굴이나, 위치를 알 수 있거든요. 저주의 동기는… 흔히 말하는 질투겠죠. 저 인터넷 방송계에서 최상위권이거든요."
미령이 으스대듯이 자랑스럽게 풍만한 가슴을 내밀었다. 연예인 뺨치는 얼굴과 신성함까지 느껴지는 몸매. 인기가 없을 수 없었다.
“고작 질투 때문에 저주를 한다고?”
“에이. 서방님이 할 말은 아니죠. 서방님은 눈에 거슬리면 죽이잖아요.”
"그렇긴 해."
그래도 현실에선 최대한 자제하는 편이다. 그래도 미령에게 저주를 날린 년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년 어디에 있어.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
“으음. 꼭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그 여자 일반인이에요. 저주는 도구를 이용해 날린 것 같아요."
“너답지 않게 왜 그래?”
광명승천도의 미령이었다면, 자신을 저주한 여자를 가만히 뒀을까? 절대 아니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했을 거다.
"여긴 서방님의 세계잖아요. 제가 멋대로 날뛸 수는 없죠.”
“네가 참아도 내가 못 참아."
수습할 방법은 몇 있었다. 시체가 없으면 범인도 없다는 말이 있다. 시체를 다른 세계에 유기하면 완전 범죄라 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더라도 [정보 말살]을 사용하면 어떤 일이든 해결할 수 있다.
"정말이지…. 알았어요. 그래도 저녁부터 먹죠? 어차피 급한 일도 아니니까요.”
"오늘 저녁은….”
“찜닭 어떠세요?”
“좋지.”
미령의 요리 실력이면 라면을 조리해도 내 입맛을 만족시켜 줄 것이다.
미령에게 저주를 건 여자는 차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낡은 건물이 모여 있는 동네. 재개발지역이 될 거라는 말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동네의 낡은 빌라였다.
“그 여자도 유라시아 TV BJ라며? 근데 왜 이런 곳에 살아?”
“BJ라고 해서 돈을 전부 잘 버는 건 아니거든요. 하꼬는 되려 적자일걸요? 요즘 인터넷 방송계도 레드 오션이라구요. 특히 요즘 뜨는 건 헌터 BJ예요."
“잘나가는 헌터가 연예인 대우를 받는 건 흔한 일이긴 한데… 요즘은 BJ도 하나보네.”
“네. 이젠 단순히 예쁘기만 해서 방송이 잘 나가는 시대는 아니에요. 나름의 컨텐츠도 있어야 하죠. 아니면 저처럼 엄청나게 예쁘거나."
주변에 사람이 없다. 미령은 모자와 마스크로 가렸던 얼굴을 드러냈다. 그녀가 유명한 것도 이유지만… 얼굴을 공개하고 있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죄다 그녀를 돌아본다. 미모가 너무 뛰어난 것이다.
“설마 대놓고 들어갈 생각은 아니죠?"
“몰래 들어가서 조용히 해결해야지."
미령이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녀의 기운이 우리를 감싼다. 존재감이 옅어지고 공간이 일그러지는 걸 느꼈다.
'아니, 단순히 빛을 굴절시켜 모습을 안 보이게 한 건가.'
공간 굴절이라기엔 너무 가벼운 술법이었다.
우리는 여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문 도어락은 해킹을 쓸 필요도 없이 전기를 조작해 열었다.
그리고 여자가 거실에 쓰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