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6화 > 2176. 저주
나는 여자를 보며 당황했다.
이곳에 오기 전 미령이 여자의 얼굴을 보여줬다. 인터넷 방송을 하고있는 만큼 여자의 사진을 찾는 건 쉬운 일이었으니까. BJ 이름만 쳐도 인터넷에 사진이 나오니까.
내가 당황한 건 여자의 얼굴이 알고 있는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얼굴은 물론이고 몸매까지. 그나마 몸매는 흡사한데 얼굴은 아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년이 맞아? 잘못 찾아온 거 아니야? 얼굴이 다르잖아.”
못생긴 건 아니지만, 예쁜 것도 아니었다.
“에이. 설마 제가 그런 실수를 할까요? 이 여자가 맞아요. 저주 때문에 쓰러진 거잖아요. 얼굴은… 카메라 보정이 없으니 이런 거죠. 요즘 BJ들은 전부 카메라 보정 기능을 사용하니까요. 아, 물론 전 아니에요.”
“보정이야 나도 알고 있긴 한데… 대체 얼마나 보정했길래.”
스마트폰에 비치는 여자와 눈앞의 여자를 번갈아 쳐다본다. 아무리 봐도 동일 인물 같지가 않았다.
“뭐, 기절해 있으니 일은 편하겠어.”
“잠깐만요. 직접 보니 상태가 이상해요. 걸린 저주가 3개예요.”
“그런데?”
“제가 받아친 저주는 쇠약과 기력을 빼앗는 저주. 원래라면 기력을 빼앗는 저주는 걸맞는 대가를 치르고 소멸되어야 해요.”
“…저주 두 개가 걸려있다는 거지? 나머지 한 개는?”
“정신 약화의 저주네요. 정신이 점점 약해져서 스스로를 통제하기 힘들어지는 저주. 제가 알고 있는 저주술과는 조금 다르긴 한데… 효과는 같을 거예요.”
2개는 받아 친 저주, 1개는 원래 있던 저주. 잠깐 생각해 보니 어느 결론이 도출된다.
“이 여자는 이용당한 건가?"
“아마도요. 진짜 흉수는 따로 있을 거예요. 그 흉수에게 기력이 빼앗기고 있겠죠. 중간에 타인을 거처서 저주를 하고 기력을 흡수한다라…. 저주술사의 짓이네요. 그것도 상당히 실력이 있는.”
“이용당했다 해도 이 여자가 네게 저주를 건 건 맞잖아. 죽이자.”
“에이. 피해자예요. 살려주죠. 여긴 [광명승천도] 세계가 아니에요. 될 수 있으면 살인을 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고민하듯 미령과 여자를 번걸아쳐다봤다. 그러자 미령이 양손을 딱 붙이고는 애교를 부린다.
“제발요~ 솔직히 우리에겐 어떤 피해도 없었잖아요.”
미령에게 현실이 특별한 건가. 아니면 단순한 변덕인가.
어느 쪽이든 이번 일은 미령의 일이기도 하니 존중해 주기로 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하지만 그 흉수는 못 봐줘.”
“기력을 빼앗는 저주가 있으니 역추적을 하면… 흐음. 예상은 했지만 그리 먼 곳은 아니네요. 다음은 저주를 해체하고 이 사람의 이야기부터 들어볼까요.”
“이야기할 거면 다른 곳에서 하는 게 낫지 않나?"
“괜찮아요. 우린 피해자니까요.”
미령이 기운을 부려 술법을 행했다. 그녀의 손에서 빛이 흘러나오더니 여자의 몸에 있던 저주를 강제로 해제한다. 사악한 기운이 빛에 닿자마자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저주를 흉수에게 돌려보내지 않고?”
“그래봤자 별 타격이 없을 거예요. 저주술사가 그 정도 대비를 안 해뒀겠어요. 오히려 경각심만 일깨워 주는 셈이죠. 저주를 없애는 편이 더 나아요."
여자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했다. 미령은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기력 일부를 여자에게 밀어 넣었다.
여자는 눈을 뜨자마자 우리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헉?! 꺄아아아아악?!"
“아차차. 소리 차단. 소리 차단.”
미령이 작은 결계를 펼쳐 소리를 막았다. 이어 그녀는 입술에 검지를 세우고는 싱긋 웃었다.
“쉿. 조용히 해주세요. BJ 꽃소미 님. 너무 큰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예요."
“여, 여우령 님? 여우령 님이 왜 저희 집에?! 저 남자는 누구죠?! 서, 설마 저를…!”
이년이 뭐래. 네년같은 년은 공짜로 줘도 안 먹는다.
나는 쏘아붙이려다 관뒀다. 이 여자의 일은 미령에게 맡기기로 했으니까.
‘날 알아보지 못하는 건가. 알아볼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나름 TV에도 나오고 화제가 됐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유명세도 한순간이었다. 다른 영상매체에 몇 개월 언급되지 않으니 대중들에게 잊혔다.
“네, 네. 여우령입니다. 꽃소미 님의 뜨거운 성원에 못 이겨 꽃소미 님의 집으로 직접 찾아와 버렸어요. 경찰에 신고하셔도 돼요. 그 전에 꽃소미 님이 제게 저주를 건 것부터 경찰에 설명하셔야겠지만요.”
"……."
BJ 꽃소미의 안색이 새까맣게 변했다.
세계에는 헌터법이 있었다.
헌터들에게 적용되는 법.
좀 더 정확하게는 각성자 법이라 할 수 있다. 각성자가 능력을 악용했을 때 가중처벌을 받는다는 법이다. 또한 각성자가 아니어도 아티팩트, 스크롤 등의 능력으로 범죄를 행할 경우 헌터법으로 처벌받는다.
꽃소미가 일반인이어도 저주를 사용한 이상 헌터법에 의해 가중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못해도 10년 이상의 형기가 나오겠죠. 그러니 조용히 저와 합의하시죠. 아, 돈을 원하는 건 아니에요. 묻는 말에만 잘 대답해 주신다면 없었던 일로 해드릴게요.”
“저, 저는 그저….”
“꽃소미 님의 변명을 들으려는 것도 아니고요. 어떻게 제게 저주를 거셨어요? 꽃소미 님은 일반인이시잖아요.”
꽃소미는 눈물을 흘리고 덜덜 떨면서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냈다. 빛을 잃은 펜던트였다. 길거리에서 천 원 정도에 팔 것 같은 볼품없는 펜던트였다.
“저주의 흔적이 느껴지네요. 이걸 이용해 제게 저주를 걸었군요.”
“…네. 그, 쇠약의 저주를 건다고 들어서….”
"어디서 얻었죠?”
“그, 근처 골목길에서 얻었어요. 아줌마가 아티팩트를 10만 원에 판다고 해서…. 아티팩트는 헌터가 아니면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잖아요. 호기심이 들어서 구매했었어요.”
“처음부터 제게 사용할 목적은 아니었네요?”
“…아니요. 그럴 목적도 있었어요.”
꽃소미가 머리를 푹 숙였다. 나는 그 뒤통수를 보니 주먹이 간지러웠다. 그냥 죽여버리면 안 되나? 나와 눈이 마주친 미령이 고개를 저었다.
“그 아줌마가 저를 언급했나요?”
“으, 갑자기 생각하려니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정말로 아줌마였어요?"
“…아저씨였나? 젊었던 것 같기도 한데…. 으…. 기, 기억이 안 나요.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예요!”
“그 저주술사의 농간이네요. 알았으니 우린 이만 가볼게요. 오늘 일은 서로에게 없었던 일이에요."
“네, 네. 근데 옆에 계신 남자분은…?”
“당연히 저의 서방님이죠!"
뛰듯이 다가온 미령이 내게 팔짱을 꼈다. 그녀의 가슴이 내 팔에 닿는다. 불쾌했던 기분이 급격히 좋아진다.
"이건 비밀이에요. 꽃소미 님의 입이 무거워야 제 입도 무거워지는 거 잊지 마시고요.”
집 밖으로 나와 차에 탔다. 미령이 운전대를 잡았다.
“미령아. 너 운전면허 없잖아.'
“허, 참. 제가 세계 신기록도 세운 S 랭크 베스트 드라이버거든요?”
"레이싱 게임이랑 현실은 달라.”
“잔말 말고 저만 믿으세요!"
조수석에 앉은 나는 언제든지 해킹을 사용할 수 있게 몸을 긴장시켰다. 해킹을 쓰는 일은 없었다. 해킹을 사용할 일은 없었다. 그녀는 정말로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흉수가 있는 곳으로 가는 거지.”
“네. 동업자인 꽃소미를 이용하려 했으니…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죠. 후후.”
“이해가 안 가는 게… 꽃소미를 이용해 널 노린 거야? 꽃소미가 널 저주한 건 우연 아니야?"
“꽃소미에게 정신 약화 저주를 걸고 암시를 걸어 절 노리도록 유도한 거죠. 일이 실패해도 꽃소미가 처벌받을 테니까요. 그 흉수가 절 노린 이유는… 뭐, 미녀의 숙명 같은 거죠. 아시잖아요. 제 이메일이나 쪽지에 온갖 이상한 놈들이 메시지를 보내는걸요.”
맞다. 개인 이메일에 나체 사진을 보내는 놈도 있었다. 미령은 무시했지만, 나는 일부 마음에 안 드는 놈을 몰래 찾아가 죽이고 시체를 광명승천도 세계에 파묻었다.
“저주술사가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 뭔지 아세요?"
“글쎄. 저주로 살해새서 죽이고 재산 훔치기?”
“그건 강도잖아요. 리스크가 있죠. 부자에게 저주를 걸고 저주를 들먹이며 접근해서 해주로 돈을 버는 거예요. 덤으로 저주 대상과 친해질 수 있죠. 이번 사건도 그와 비슷해요. 제가 저주에 걸린 것을 빌미 삼아 접근하려 할 테고…. 현대식으로 말하면 가스라이팅이죠."
“이거 참… 용서할 수 없는 새끼네.”
나는 놈을 곱게 죽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도착한 곳은 꽃소미의 동네보다 더 허름한 곳이었다. 동네의 집 대부분이 비어 있었고, 간혹 보이는 주민도 모두 노인이었다.
원흉은 20대 후반의 남자였다. 몸에서 시체 썩은 내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놈.
“여, 여우령? 어떻게 여기에?!”
“우와. 예상은 했지만 진짜 역겨운 남자였네요.”
“아, 아니. 잘된 일이야. 내 여자가 돼라, 여우령!”
남자가 마나를 끌어올린다. 그의 주위로 오물과도 같은 사악한 기운이 질척거린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1]
나는 순식간에 놈의 앞으로 다가가 주먹을 휘둘렀다.
퍽!
“씹새끼야. 난 안 보이냐?"
집중력이 풀린 탓인지 놈의 기운이 그대로 흩어졌다. 마나를 다루는 걸 보면 최소 C등급이상인데 전투력은 그 이하로 보였다.
"커헉! 너, 넌?!”
“여우령의 남자다.”
“아앙. 서방님!”
미령이 다가와 내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놈은 충격받은 듯 미령을 보다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외쳤다.
“이, 이 걸레 같은 년아! 남자친구 없다며!”
“그거야 당연히 구라죠.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면 시청자 수가 확 줄어드니까요.”
“씨발년! 내, 내가 너한테 얼마를 후원한 줄 알아?”
“으음. 팬분이셨나? 얼마 후원했는데요?”
“삼천만 원! 삼천만 원을 후원했다고!! 저주술사가 돈 모으기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내가 3년 동안 모은 돈을 너한테 줬다고!! 근데 어떻게 네가 이럴 수 있어?!"
“아, 그 돈 대부분 서방님에게 줬어요. 애초에 그 후원 계좌도 서방님 계좌거든요. 후후.”
“이럴 수가…! 이럴 수는 없어! 여우령이 개걸레 빗치년이었다니!"
“아니, 아니. 말이 좀 심하시네. 누가 들으면 내가 몸을 함부로 굴리는 년인 줄 알겠어. 내 몸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서방님 한 분만의 것이었거든?"
미령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소리와 함께 푸른 불이 나타나 놈의 몸을 적당히 태웠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놈이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놈의 몸을 발로 찼다. 혹시 모르니 놈을 심문했다.
그가 속한 조직 같은 것도 없었다. 꽃소미를 이용한 것도 우연히 꽃소미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단다.
“어라. 잘 살펴보니 이놈에게도 저주가 걸려있네요?”
“저주?"
“네. 꽤 수준 높은 저주인데… 해석하자면 강제로 의식을 빼앗는… 처음 보는 저주네요. 어디 누가 저주를 걸었는지 역추적을….”
펑.
놈의 몸이 폭탄처럼 터졌다.
비장의 한 수가 있을지 몰라 준비하고 있던 나는 놈의 몸이 부풀어 오르자마자 찰나를 사용해 미령을 끌어안고 물러났다.
"아, 고마워요. 서방님."
“역추적에는 성공했어?”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어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거든요. 대략적인 위치는… 유럽? 네. 거기였어요."
"……."
내 얼굴이 굳어졌다.
인간 폭탄 테러.
한때 유럽을 공포에 빠뜨렸던 S급 범죄자가 떠올랐다.
‘그놈은 유럽 S급 헌터들에게 제압되어 사형당했잖아.'
그것도 무려 10년 전의 일이다.
능력이 워낙 흉흉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범죄자.
안 그래도 안 좋은 저주술사의 이미지를 나락으로 처박은 장본인. 인간폭탄마 레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