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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77화 (1,957/2,000)

< 2177화 > 2177. 다크 문

S급 범죄자 인간폭탄마 레조가 살아 있다? 이 소식만으로 전 유럽은 초비상 사태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레조가 살아있다고 주장해봤자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S급 헌터 여럿이 모여 레조를 토벌한 게 10년 전.

내가 증거도 없이 주장해봤자 미친놈 소리밖에 듣지 않는다. 아니, 유럽의 정세를 불안케 한다고 범죄자 취급받을 수도 있었다.

“서방님. 심각한 얼굴이시네요?"

“내 예상이 맞다면 인간폭탄마 레조가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 인간폭탄을 만드는 건 그놈의 능력이거든.”

알려진 레조의 정확한 능력은 생물을 터트리는 능력. 그 능력을 저주와 결합해 시한폭탄처럼 사용하기로 유명하다.

레조는 위험하다. 유럽에서는 나치의 히틀러급이라고 할까. 레조의 생존이 알려지는 것만으로 유럽 사회는 크게 경직될 것이다.

그런 놈이 한국에까지 손을 뻗쳤다? 그것도 내 여자인 미령을 노리고?

'어떻게 그 새끼를 죽이지?'

놈은 유럽에 있다.

S급 범죄자? 내겐 유희 생활 어플이 있다. 유희 생활 어플을 잘만 이용하면 S급 범죄자 정도는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레조는 저도 알아요. 인터넷을 서핑하다 보면 쉽게 접하는 정보니까요. 근데 레조라는 확신은 없잖아요?”

가만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렇다. 레조 본인이 살아있다. 라는 말보다는 레조의 제자나 비슷한 능력을 가진 놈이 레조를 모방한다는 쪽이 더 신빙성 있다.

“근데 놈이 널 노린 거잖아.”

“일부러 절 노린 게 아니에요. 절 노린 저 저주술사는 죽기 직전에 인간폭탄 저주가 발동한 것뿐이에요. 병이 잠복기를 가지는 것처럼 저주를 숨겨둔 거죠."

유럽에 있는 레조가 한국에 있는 미령을 노릴 이유는… 몇 없긴 하다. 당장 떠오르는 건 미령이 예뻐서?

“저주를 역추적해서 그놈이 유럽에 있다는 걸 알았잖아. 그놈도 우리를 알지 않을까?”

"에이. 제가 그 정도 실수를 할까요? 당연히 저희 정체를 감췄죠. 놈이 아는 건 자기 폭탄이 한국에서 터졌다는 것 정도가 전부예요. 술법적으로 저희 정체가 드러날 이유는 없을 거예요.”

“즉, 놈과 우리 사이에는 이렇다 할 접점이 없다 봐야겠군.”

“네. 저희가 모르는 척하면 이대로 일은 끝나는 거죠. 저쪽도 이번 일을 굳이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면요.”

“아, 그래. 그럼 돌아갈까?”

저주술사의 시체는 인벤토리에 박아넣고 나중에 처리하면 된다.

“아이참. 너무 안일하잖아요. 그놈이 언제 본색을 드러내서 전 세계에 테러를 저지를지 모르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너도 마찬가지잖아."

“피해 입거든요. 그놈의 테러 때문에 게임 발매가 늦어질지도 몰라요. 유럽에서 제작 중인 게임만 해도 얼만데. 그리고… 한국에까지 인간폭탄을 심어둔 건 좀 열받거든요? 한국은 제 영역이니까요.”

미령이 자기 뺨을 손으로 만지며 서늘하게 웃는다. 아름다우면서도 악의가 듬뿍 느껴지는 미소였다. 악녀 그 자체의 미소라고 할까.

“미령아?”

“이대로면 놈과 서방님이 부딪힐 가능성이 크고…. 서방님의 내조도 제 의무 아니겠어요? 여러 가지로 대비해 둬야겠네요. 후후후.”

“어, 그래. 적당히 해.”

미령이 마음먹은 이상 제대로 할 것이다. 평소에는 허술함이 느껴져도 마음먹고 일할 때는 완벽주의자에 가까우니까.

S급 범죄자이자 저주술과 부두술의 대가 레조? 내 눈앞에 있는 미령은 수백 년간 술법을 수련해 온 여우였다. 본래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그 지식과 경험은 그대로 그녀에게 남아있다.

“서방님. 조금 불쾌한 생각을 하셨지 않나요?”

“밖에 나온 김에 제주도나 갈까 생각했는데… 싫어?"

“제주도 여행?! 당연히 좋죠!"

미령이 날 듯이 안겨 왔다. 나는 가뿐히 그녀를 받았다. 눈이 마주쳤다. 마침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쪽.

입술이 마주치고.

"으응….”

미령이 야릇한 비음을 흘렸다.

미령이 정확히 무슨 짓을 하려는 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레조가 마음에 안 드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일부러 미령을 노린게 아니라 해도 결과적으로 미령을 노린 저주술사와 놈이 관련돼 있다는 거 아닌가. 확실하진 않지만 놈이 그 저주술사를 조종했을 가능성도 아예 없지는 않다.

나도 최악의 경우를 대비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니까 포인트가 필요했다.

[다크 문을 선택했습니다.]

[유희를 시작합니다.]

집무실에 앉은 나는 장부를 확인했다. 유유 치킨을 통해 들어오는 매출과 순이익.

사업 구조는 안정화되었으나, 매출은 2달 전부터 늘지 않았다. 원인은 유유 치킨을 따라 한 치킨 기업의 증가다. 그렇다해도 유유 치킨의 맛을 쉽게 따라 하지 못했기에 네오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치킨집은 유유 치킨이다.

‘다른 국가나 도시로 확장하기도 어렵군. 저마다 환경이 다르니까. 유유 치킨의 한계는 여기까지 인가.'

유유 치킨이 아니어도 돈 나올 곳은 있었다.

하이스트 제국의 르멘 교도소. 특히 범죄자 생존 게임 쇼인 레인보우 쇼를 통해 얻는 이익은 유유 치킨의 매출을 뛰어넘을 정도다.

‘이 돈은 세탁 과정을 거치기 전까지는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

출처를 밝힐 수 없는 돈을 사용해 투자했다가 세무청에 걸리기라도 하면 범죄자로 낙인 찍혀 기반 자체를 빼앗길 수 있다.

'내가 네오 런던에 제대로 자리 잡고 권력을 가졌다면 모를까. 준남작이란 작위는 고위 귀족의 입김 한 번에 날아갈 수 있는 불안정한 자리지.'

불법 자금을 보다 안전하게 사용하려면 지금보다 더 강한 권력이 필요하다. 네오 런던에서 더 많은 권력을 얻는 법? 명성과 영향력. 사업을 확장하거나 용병으로 일해서 내 무력을 알리거나. 어느 쪽이든 지금 이 자리에 안주해선 안 된다.

‘기존에 준비하고 있던 마도 공학 사업을 슬슬 시작해야지. 첫 번째로 판매할 상품은… 발전기.'

나는 마법사다. 마법 속성 중에서 가장 자신 있는 분야는 당연히 전격계. 자신 있는 분야를 밀고 나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발전기는 사업성도 있다. 이 세상에서 전기를 쓰지 않는 곳은 없으니까. 특히 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에서 뛰어난 소형 발전기를 원하지. 그 외에도 기존의 발전기보다 약간의 효율만 더 높아도 기업과 군대에서도 주문이 들어올 거다.'

성공만 한다면 네오 런더에 끼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필요한 게 하나 있지. 그걸 얻기 위해선… 먼 곳으로 떠나야 하는데, 다행히 내겐 No.9 월드 도어가 있다.'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되새기며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이었다.

푸드득, 푸드덕!

열린 창문을 통해 하얀 부엉이 한 마리가 내 집무실로 날아왔다. 나는 미간이 구겨지려는 것을 참았다.

저택에는 결계가 있었다. 그 결계를 뚫었다는 것은 평범한 부엉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패밀리어 마법의 흔적이 보였다. 부엉이는 마법사의 사역마다.

부엉이는 부리에 물고 있던 편지를 내게 획 던지더니,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졌다.

‘이메일을 보내면 될 일을 굳이 부엉이로 보낸다니…. 네오 런던에서 오래 살았지만, 그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군.’

속으로 투덜거리며 편지를 확인했다.

‘보존 마법이 걸려있군. 수준은 그럭저럭. 종이도 고급스러운 걸 썼어.’

편지에 찍힌 밀랍 인장을 확인한다. 팔망성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팔망성은 마도 협회를 뜻하는 문장이자, 상징이었다. 네오 런던의 마법사 대부분은 학파에 속해 있고, 학파의 연합이 마도 협회다. 네오 런던에 있는 마법사 중 8할 이상이 마도 협회 소속인 만큼, 강력한 권력을 가진 단체이기도 하다.

'이제와서 내게 접촉한다라. 좀 많이 늦은 거 아닌가.'

마도 협회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내 영향력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편지의 봉인을 풀고 내용물을 확인한다. 깔끔한 종이에 수필로 작성한 글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친애하는 유진 마이어 준남작께. 라는 말로 시작된 글을 요약하자면 한번 만나자는 뜻이었다.

‘단순히 마도 협회에 가입하라는 뜻은 아니군.'

만나는 장소를 확인한 순간 웃음이 나왔다.

J구역의 레이썬 발전소.

J구역은 중요 산업 구역이다. 네오 런던의 중요 산업 시설이 죄다 몰려 있는 곳. 보안이 뛰어난 건 두말할 것도 없다.

레이썬 발전소는 전격 마법을 연구하는 레이썬 학파가 운영하는 발전소다. 부자들을 중심으로 양질의 전력을 제공한다.

‘레이썬 발전소에 마도 협회의 이름으로 나를 초대한다? 내가 전격계 마법사라는 걸 알고 실력을 테스트해 보려는 거다. 레이썬 발전소는 전격계 마법사에겐 뛰어난 연구소이자, 훈련장이기도 하니까.'

편지 말미에는 내 의견을 존중하니 초청을 거부하더라도 불이익은 없다고 적혀 있으나, 마도 협회의 관심이 멀어질 것은 당연했다. 네오 런던에서 자리 잡은 만큼 기왕이면 마도 협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좋다.

‘운이 좋아. 마도 공학 발전기 상품을 만들려고 했는데, 마침 네오 런던 최고의 발전소를 견학할 기회가 주어졌군.'

나는 밖으로 나가 근처 집사를 불렀다.

“네. 명령하십시오, 주인님."

“마도 협회에 답장을 보내야겠다. 제안에 응하겠다는 내용을 알아서 써서 보내라.”

“알겠습니다.”

집사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떠났다. 원래 이런 귀찮은 일은 고용인들이 하는 법이다.

나는 정원 중심에 있는 벚나무로 다가갔다.

계절이 봄이 아닌데도 벚나무에는 분홍색 벚꽃이 피어 주변에 꽃잎을 흩뿌렸다. 나는 나무에 손을 뻗어 교감을 시도했다.

아스트랄을 개방하자 벚나무의 의지가 흐릿하게 느껴진다.

'전기가 먹고 싶다고? 그래. 먹어라.'

파지직.

손에서 발산된 뇌전은 조용히 벚나무에게 흡수되었다. 벚나무의 분홍색 벚꽃잎이 은은히 빛나고, 꽃잎 사이로 전격이 뛰놀았다. 활기로 가득 찬 벚나무는 한동안 내 전기를 받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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