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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79화 (1,959/2,000)

< 2179화 > 2179. 다크문

레이썬 학파의 마법사가 볼트게이저라는 고철 덩어리를 마법으로 치우며 나를 힐끔거렸다.

3,751억 볼트. 마법사가 말해준 썬더 볼트의 전압이었다. 6급 마법사 중에선 신기록이라고 하는데… 글쎄. 썩 위안이 되는 말은 아니었다. 7급으로 가면 그 이상의 전압이 나온다는 뜻이니까.

'신기록이든 뭐든 불쾌하네.’

누군가에게 시험당한다. 이 상황 자체는 마도 협회의 초청을 받았을 때부터 동의한 일이지만 썩 불쾌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대충할 수는 없다. 마도 협회 내에서의 입지와 영향력을 생각해서라도 나를 증명해야 한다.

'내 전력을 내보여도 상관없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테니까. 지금 이 경지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물론 넘버즈 아티팩트 등을 선보일 생각은 없다. 아직은 나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물건들이다. 함부로 내보였다가 강도들이 날 노릴 테지.

생각에 잠겨 있는데 레이썬 학파 마법사가 다음 시험의 변경을 알려왔다. 마나 보유량, 마나 제어, 마법 지식 등의 자잘한 시험은 생략하고 마법 전투로 넘어간다는 이야기였다.

‘썬더 볼트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나 보군.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 잘된 일이야.'

저들은 알까. 썬더 볼트는 만뢰의 묘리를 넣어 사용한 즉흥적인 마법이었다는 걸.

모를 것이다. 설령 내가 말해주더라도 허세라 여기며 믿지 않겠지.

레이썬 학파 마법사는 훈련장의 결계를 발동하고 떠났다. 결계를 둘러봤다. 결계의 주체는 지하에 있는 것 같다. 레이썬의 이름답게 상당히 견고한 결계다.

‘썬더 볼트를 연달아 내리박아도 못 뚫을 것 같군.’

결계에서 뇌속성이 느껴진다. 번개 원소 결계, 압도적인 힘이 아닌 이상 번개 원소로 이 결계를 뚫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가장 효율적인 결제를 해석해서 역산하는 거지만, 그건 전문 결계술사도 힘들어하는 일이며 시간이 걸린다.

머릿속으로 결계를 뚫을 방법을 찾고 있을 때였다. 훈련장 안으로 한 여인이 걸어왔다.

금발의 안경 낀 여인이었다. 깔끔한 하얀 투피스에 가디건 비슷한 검은색 로브를 상의에 걸쳤다. 로브 어깨 부분에 새겨진 파란색 원형 마크는 하이텔 학파를 나타내는 문양이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듯한 금발은 8대2 가르마로 넘겼다.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왔다. 한쪽 머리는 귀 뒤로 넘겼고, 은색의 금속 반무테안경을 꼈다. 얼굴은 인형처럼 아름다웠으나, 무표정하다 못해 깐깐하고 냉혹한 분위기를 풍겼다.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면 가슴이 빵빵하게 부풀어 있다. 깐깐해 보이는 인상 때문일까. 괜히 저 가슴이 천박해 보인다.

허리는 잘록했고, 무릎까지 가리는 H라인 스커트에 감싸인 엉덩이도 컸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전투를 앞두고 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남자의 본능을 이겨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은 한숨과 함께 성욕을 억누르며 상대를 다시 한번 살펴봤다.

그녀의 귀 끝이 아주 살짝 뾰족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엘프 인자를 주입했다면 귀가 길었을 테고… 조상 중에 엘프가 있는 것 같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상대인 오르시아 하이텔이라 합니다. 전력을 다해 임해주십시오."

광택이 도는 분홍색 입술 사이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인상만큼이나 차가웠으나 귀에 쏙쏙 박힐 만큼 깔끔했다. 목소리만 들으면 전문 아나운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유진 마이어입니다. 그 유명한 하이텔 학파의 마법사와 싸우게 될 줄은 몰랐군요. 그것도 하이텔 학파의 후계자를 상대로.”

하이텔 학파.

네오 런던에서 역사 깊은 학파 중 하나다. 주로 공간 마법을 연구한다. 공간 마법을 배우고 싶으면 네오 런던의 하이텔 학파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학파다.

공간 마법에 흥미가 없다면 거짓이겠지. 근거리 공간 이동 마법만 익혀도 전투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도 하이텔 학파는 꺼려진다. 오랫동안 전통과 명성을 지켜온 곳인 만큼 아주 고지식한 곳이니까.

“준비는 되셨습니까?”

오르시아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물었다.

"네."

“그럼 시작하죠.”

오르시아는 사무적인 말과 함께 아스트랄을 개방했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녀의 주위를 장악한다. 그녀의 칼날처럼 날카로운 마법사의 정신에 나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7급.

초인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

침을 꿀꺽 삼켰다. 6급과 7급 사이에는 쉽게 메꿀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아티팩트를 사용한다면 승산이 생길 테지만… 순수 마법으로 이길 가능성은 한없이 낮으리라.

‘지더라도 상관없다. 7급 마법사. 그것도 공간 마법사와 싸울 수 있는 기회다.'

천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기회. 이 경험은 분명 성장의 거름이 될 것이다.

[일렉트릭 필드]

사방으로 전류가 뻗어간다. 이건 공격이 아니라 전투를 위한 환경 조성이다. 원소 마법사는 그 특성상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오르시아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녀가 수인을 맺어 마법을 발현한다. 일렉트릭 필드가 공간 압력에 짓눌러 사라진다.

주변에 가득 차 있던 번개 원소가 밀려 나가고 그 자리를 순수한 자연 마나가 채운다.

문제는 그 마나들이 오르시아의 통제하에 있다는 것.

'7급 마법사가 상대다. 마나 주도권은 포기한다.'

포기할 건 포기해야 했다.

나는 앞으로 걸어갔다.

뇌천류를 이용한 접근전은 불가능했다. 뇌천류의 정보가 머릿속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몸으로 펼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니까. 나는 육체적 재능이 없었기에 뇌천류를 이용한 전투는 깔끔히 포기했다.

[라이트닝 스피어]

번개의 창이 오르시아를 향해 날아간다.

[웜홀]

오르시아가 영창을 외웠다. 그녀의 앞에 새까만 공간이 나타나 라이트닝 스피어를 삼키더니 다시 토해냈다.

'5급 공간 마법, 웜홀. 투사체 반사 마법.’

날아오는 라이트닝 스피어를 통제해 바닥으로 처박았다. 내가 사용한 전격 마법이기에 가능했다. 다른 속성의 공격이었다면 통제가 불가능했을 테지.

‘어지간한 투사체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봐야겠지. 심지어 썬더 볼트마저 반사 당할 거야.'

일렉트릭 필드와 같은 광역기는 공간 압력에 짓눌릴 테고, 투사체 공격은 반사당한다. 그렇다면 아주 강력한 광역기는 어떨까?

'영창할 시간을 안 줄 테지.'

뿌드득.

앞으로 걸어가던 몸이 멈췄다. 그녀와의 거리 5m. 보이지 않는 공간 압력의 벽이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마법사의 육체로는 못 뚫겠군.’

[라이트닝 스트라이크]

하늘에서 낙뢰가 떨어진다. 오르시아의 웜홀이 낙뢰 또한 받아들이고 반사한다. 나는 기차처럼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낙뢰를 피하지 않았다. 거리가 가까워서 피할 수 없었기도 했다.

몸으로 낙뢰를 맞았다. 감전? 번개 법사가 감전이라니 웃기지도 않다. 나는 뇌천류의 묘리를 이용해 뇌전을 통제했다. 온몸에서 스파크가 튀어도 내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질풍신뢰]

오르시아가 허공에 손을 긋는다. 공간의 칼날이 생성되어 내게 날아왔다. 당연히 나는 옆으로 피했고… 하마터면 넘어질뻔했다. 질풍신뢰로 인해 신체 능력이 갑자기 상승해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일단 중력을 이용해 공간 압력부터 떨쳐내야겠어. 그 후에 프로스트로 얼린다.’

[리버스 그래비티]

반중력이 공간 압력을 밀어낸다. 오르시아의 다리도 허공으로 살짝 떠올랐으나, 마법을 썼는지 다시 내려왔다.

[프로스트]

냉기가 그녀에게 몰아친다.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막이 얼어붙는다. 나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얼어붙은 배리어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마법을 영창한다.

[라이트닝 그랩]

파지지지직! 뇌전으로 번쩍이는 손이 얼어붙은 배리어에 닿기 직전, 내 몸이 멈췄다. 시선을 내린다. 공간의 족쇄가 내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빠른 캐스팅 속도와 마법 연계가 훌륭하군요. 당신은 제가 본 배틀 메이지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재능을 갖췄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꽤 실망한 눈치입니다만?"

“제게는 엘프의 피가 일부 섞여 있기에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가령 대상의 마나 친화력 같은 걸 말이지요. 당신에게선 강렬한 마나 향기가 느껴졌지만… 그뿐이군요.”

"……."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한 방 맞고 싶다는 뜻인가? 저 경멸의 눈빛을 보니 내 짐작이 맞는 것 같았다.

‘이기진 못해도 한 대 때려줘야겠군.’

먼 미래, 존재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초월적인 내가 전해준 아스트랄 비전인 페이즈 아스트랄(위상 정신)을 발동한다.

아스트랄이 확장되며 마나 로드가 전체 활성화된다.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공간의 족쇄를 마나 저항력으로 풀어낸다.

움찔.

오르시아가 놀란 듯 눈을 치떴다. 허나 금방 침착함을 되찾고는 주변의 마나를 끌어모은다.

[페이즈 오버랩]

원래의 아스트랄과 페이즈 아스트랄을 겹친다. 정신이 강제로 고조된다. 두 명의 내가 하나로 합쳐진 듯한 기묘한 감각.

마나 로드가 두 배로 늘어나며 육체에 부담이 오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단기 결전으로 간다.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고.’

정신이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마법을 캐스팅했다.

허공에 마법진이 그려진다.

처음에는 내 앞에 그려졌으나, 이어서 오르시아의 오른편에도 마법진이 그려진다. 2개였던 마법진은 4개로, 그리고 8개.

마지막에는 16개의 마법진이 훈련장 곳곳에 나타나 그 포대를 그녀에게 겨누었다.

5급 이하의 공격 마법으로 이루어진 16 영창.

‘사방에서 쏟아지는 마법 폭격. 전부 반사할 수 있으면 반사해 봐라.’

16개의 마법을 일제히 활성화하지 않았다. 그건 오히려 방어하기 쉬우니까. 나는 약간의 텀을 두고 마법 폭격을 시작했다.

사용된 마법은 곧바로 다른 마법을 캐스팅하며 16 다중 영창을 유지한다.

마나 로드는 불타고 머리는 터질 것 같다. 하지만 버틸 수 있다. 초월자의 아스트랄 비전이 말도 안 되는 마법 폭격을 가능케 했다.

"윽!"

오르시아는 월홈 3개를 이용해 자신에게 쏟아지는 마법을 내게 반사했다. 허나 나는 빙글빙글 돌면서 반사된 마법을 피하며 영창 했다. 의외로 반사된 마법은 명중률이 낮았다. 반면에 내 마법은 노리는 곳을 정확히 파고든다.

물, 불, 바람, 얼음, 암석, 전격 등의 온갖 속성의 마법이 그녀의 빈틈을 노린다. 오르시아는 땀을 뻘뻘 흘리며 웜홀과 배리어에 집중했다. 웜홀로 반사하지 못한 마법 공격을 배리어로 버틴다.

‘젠장. 배리어가 부서지기 전에 내가 먼저 뻗어버리겠군.’

다행이라는 점은 오르시아 또한 정신이 없어 보이는 것.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던 마법 폭격에도 끝이 존재했다. 62번째. 마지막으로 쏘아진 라이트닝 스피어가 오르시아의 배리어를 때렸다. 배리어가 출렁이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마법 폭격이 끝나자 방심하고 있는 그녀에게 마지막 마법을 사용한다.

'염력 펀치.'

마법 폭격이 끝났다는 안도감, 보이지 않는 공격.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염력을 느꼈지만,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공격을 허락했다. 염력 펀치가 그녀의 하복부를 작렬한다. 그 너머에 자궁이 있을 부위.

“으켁…!”

다소 어울리지 않는 비명과 함께 그녀의 무릎이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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