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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81화 (1,961/2,000)

< 2181화 > 2181. 다크 문

나는 네오 런던 B 구역에 있는 하이텔 학파의 공간 정원으로 향했다. 일단 하이텔 학파의 일원이 되었기에 한 번은 들러야 하는 곳이다.

'B 구역이라 그런지 분위기에서부터 정돈되어 있군.'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 모두 깔끔한 복장과 매너를 장착한 지식인들이다. 과연 네오 런던의 최상위 계층 구역이라 할까.

나는 하이텔 학파의 문양이 그려진 외투를 입고 당당히 거리를 걸었다. 일부 사람들이 나를 힐끗거렸으나, 누구도 날 제지하지 않았다. B구역에서 일하는 런던 가드들은 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존경해서 인사하는 건 아니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 하는 느낌이 강했다.

'나쁘지 않은 느낌이야.'

하이텔 공간 정원에 도착했다.

겉으로는 높은 담벼락에 지켜지고 있는 오래된 저택.

그러나 실상은 수백 개 이상의 공간이 중첩된 특수 공간. 공간 정원의 전체 크기는 구역 하나와 맞먹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공간 정원 입구의 매표소 같은 작은 건물로 향했다. 입장권을 파는 곳이다.

공간 정원은 일반인이 입장권 없이 들어갈 경우 거의 10분 내로 길을 잃는다. 한 번 길을 잃으면 공간 마법사 도움 없이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입장권은 내비게이터이기도 하니 일반인은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

'게임에서는 무한히 이어지는 백룸처럼 표현했지.'

매표소에 들어갔다. 하이텔 학파 마법사는 내 옷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 하이텔 학파로 오신 유진 마이어 씨죠? 오르시아 님의 말을 듣고 오늘 오신다 들었습니다. 여기 학파증을 준비해뒀습니다."

그가 건네는 학파증을 받았다.

“이 학파증이 입장권을 대신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저희 공간 마법사들에겐 딱히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마이어 씨는 아직 신입이지 않습니까. 공간 마법이 익숙하지 않을 테지요.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아, 학파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오르시아 님의 공방으로 갈수 있을 겁니다. 그 오르시아 님의 초대를 받다니… 개인적으로 무척 부럽네요.”

"오르시아 님은 인기인인 모양입니다.”

“학파 내에서 오르시아 님을 싫어하는 마법사는 없습니다. 추한 질투를 하기엔 격이 다른 재능을 가지신 분이니까요. 성격이 차갑긴 하나, 침착하고 공명정대하시지요. 오르시아 님만큼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여자를 본 적 없습니다. 지성까지 빛나시니 완벽에 가까운….”

마법사의 입에서 오르시아의 칭찬이 끊임없이 이어 나왔다. 나는 대충 인사를 하고 건물 밖으로 나와 공간 정원에 들어섰다.

"......."

한순간에 공간이 바뀌었다. 보도블록이 깔린 드넓은 공간으로, 보도블록 옆에는 초록색 화분이 놓여 있었다. 학파증을 확인했다. 방금까지 없었던 화살표가 정면을 가리켰다. 앞으로 걷자 열 개가 넘는 갈림길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공간 정원에서 공허충을 포획할 수 있었지.'

공허충은 당장 내게 필요한 생물이 아니었다. 애초에 공허충의 활용도도 한정적이고.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식들을 털어내며 목적지로 향했다.

오르시아의 공방은 3층짜리 단독 주택이었다. 7급 마법사의 공방 치고는 지나치게 평범해 보인다.

‘공간 마법사의 공방이다. 진짜 중요한 곳은 공간 마법으로 숨겨뒀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공방에 다른 마법사를 초대할리 없지.'

철컥.

현관문이 열리며 오르시아가 나왔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차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홍차로 괜찮으신지?"

“홍차, 좋아합니다.”

네오 런던에서 홍차를 싫어한다고 말하면 경멸의 시선을 받는다. 오르시아는 홍차를 제법 잘 끓였다. 나는 그녀로부터 하이텔 학파의 규칙을 들었다. 대단히 성가신 규칙 같은 건 없었다. 그 외에도 학파의 역사 같은 걸 들었다.

“아, 잠깐 화장실에 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복도 끝에 있습니다.”

의자에서 일어나 복도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오르시아가 몸을 최대한 옆으로 움직여 나를 피했다. 조금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녀는 오늘 내내 나와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

'내가 더럽나? 냄새라도 나나?'

청결에는 제법 자신 있는데.

깨끗한 화장실에서 몸을 점검 했다. 아무 문제 없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오니 테이블 위에 두꺼운 책 4개가 올려져 있었다.

하이텔 학파의 기초 전공서, 공간 학개론, 하이텔의 역사, 공간과 시간의 폭풍.

“…오르시아 씨. 그 책들은?”

“한번 읽어 보면 좋은 책들입니다. 빌려드릴 테니 읽어 보십시오.”

"음. 알겠습니다."

일단 책을 챙기긴 했지만, 언제 읽을 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마법서가 아닌 책에는 영 손이 안 가니까.

“저는 오늘 학파장님과 인사라도 나눌 줄 알았습니다만, 레이썬 학파도 그렇고 학파장님이 안 계시는 모양이군요.”

“요즘 해외에서 학회가 자주 열리는 시기인지라… 학파장님을 직접 보시는 건 어려울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연락처를 드리겠습니다만."

“아뇨. 괜찮습니다.”

이어 분위기를 잡고 그녀에게 말했다.

“오르시아 씨. 저번에 제 부탁을 세 번까지 들어준다고 하셨지요.”

“예.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면 들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부탁은 공간 마법 기초를 오르시아 씨에게서 배우고 싶습니다.”

하이텔 학파의 정식 후계자에게 직접 배우는 공간 마법 기초. 천금을 들여도 얻을 수 없는 기회.

“알겠습니다. 하지만 공간 마법의 기초는 방대합니다. 무작정 기초를 배우려 했다간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저도 당신도 시간이 부족할 테니… 목표가 있으면 좋겠군요.”

“제가 가장 익히고 싶은 공간 마법은 아공간 마법입니다. 아공간 마법을 목표로… 가능하겠습니까?”

“어렵지 않은 목표군요. 당신의 재능이라면 몇 달 내로 가능할 테죠.”

4급 공간 마법 아공간.

까다로운 마법이긴 해도 공간 마법사의 도움을 받으면 평범한 마법사도 아공간을 소유할 수 있다.

“두 번째 부탁도 있습니다. 2주 정도 고대 유적 탐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마법사로서 끌리는 제안이군요. 하지만 2주란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까?”

“고대 유적이 먼 곳에 있습니다. 수상 열차를 탈 예정입니다. 물론. 비용은 전부 제가 대겠습니다.”

3번째 고대 유적 탐사 일원을 고용하기 위해 X인력소의 소장 로즈를 찾았다.

로즈는 내 말을 듣고 헛웃음을 흘렸다.

“아, 그러니까. 고대 유적 함정을 알아볼 수 있는 통찰력에 몬스터가 나왔을 때 전위역을 수행할 수 있는 실력과 절대 배신하지 않는 최소 5급 이상의 용병을 원하신다?”

요구 사항이 좀 양심없긴 하다.

절대 배신하지 않는 용병. 용병계에선 환상종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다.

탐욕에 눈이 멀어서 고용주를 배신한 용병 이야기는 이 세계에서 가십거리도 되지 못한다. 용병 입장에서 한탕 제대로 챙기고 잠수타면 그만이니까. 고용주를 사고사로 위장해 죽이고 재산을 강탈하는 방법도 있다. 떨어진 신용도야 천천히 복구될 테고, 고용주의 막대한 재산을 단번에 꿀꺽할 수 있으니 이득이었다.

"부탁하지."

“마침 네가 원하는 인재가 있긴 해. 나랑 계약한 게 있어서 배신하지 못하거든. 근데 가격이 좀 많이 비싸.”

“감당할 수 있다.”

“치킨 사업으로 번 돈으로는 감당 못 해.”

“…출처를 밝힐 수 없는 자금이 있다.”

“그럼 수수료가 더 붙어. 세탁도 내가 해야 하니까.”

“괜찮다. 필요할 때 쓰려고 돈을 모은 거니까.”

용병 고용뿐만이 아니라 수상 열차 탑승권 등으로 빠져나가는 경비가 만만치 않았다. 지금까지 모은 돈의 80% 이상을 써야 했다.

뼈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쓸 때는 써야 한다. 돈을 도박으로 갖다 버리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이건 완벽한 투자다. 몇 배, 몇십 배 이상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내일 다시 찾아와. 그 용병이 수락하면 만나게 해줄 테니까. 들어가는 돈이 적지 않으니 너도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잖아.”

"알겠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사이버 닌자, 인비저블 블레이드와 마주했다. 얼굴은 여우 가면으로 가렸고, 머리카락은 흑갈색 포니테일로 묶었다.

은색의 사이버 슈트는 그녀의 풍만한 몸매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은밀하게 행동해야 할 닌자인 주제에 사람의 시선을 확 끄는 복장.

"오랜만이네?"

인비저블 블레이드가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내며 손을 흔든다. 나는 긴장했다. 사이가 좋은 관계라 말할 수는 없으니까.

대신 옆에 있는 로즈에게 물었다.

“다른 용병은 없나? 저 여자는 믿기 힘들다만.”

“쟤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관심도 없는데 네가 요구하는 조건에 맞는 용병은 얘뿐이야. 다른 용병을 구하려면 몇달은 있어야 할걸?”

“…….”

인비저블 블레이드를 바라봤다. 아주 중요한 순간에 배신하지 않을까?

내 우려를 알아차렸을까. 로즈가 말을 이었다.

“복장이 저래도 유능한 닌자야. 어지간한 함정은 바로 포착하고, 근접전도 뛰어나. 나랑 엮인 게 있어서 배신할 걱정도 없어."

“……그쪽의 의견은?"

인비저블 블레이드에게 물었다.

“요즘 의뢰가 영 없어서 몸이 녹슬어 가던 참이었어. 고대 유적은 몸풀기로 딱이겠지. 아, 조건이 있어. 고대 유적에서 얻는 물건 중 일부는 내가 갖는 거야. 대신 고용비는 30% 깎아줄게.”

“…물건의 우선권은 내게 있다.”

“뭐, 그쪽이 발견한 고대 던전이고 경비도 대준다고 하니…. 그 정도는 양보해 줄게.”

어쨌든 멤버는 갖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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