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2화 > 2192. 다크 문
네잎 클로버 트레저 헌터. 그놈이 몇몇 퍼즐을 풀고 보물을 챙긴 덕분에 계획이 빨라졌다.
우리는 강릉 군도의 거대한 섬 중 하나인 동해 섬으로 향했다.
동해섬의 섬주인 타케시는 부하들과 함께 직접 나서서 우리를 반겼다. 무기를 무장했으나, 손에 쥐지는 않았다. 싸울 의지도 느껴지지 않는다. 타케시는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남성이었다.
“고대 유적의 비밀을 풀고 계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희가 협력하겠습니다. 뭘 하면 되겠습니까?”
해적들은 우리가 있는 곳에서 전쟁을 멈췄다. 최대한 우리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 이상으로 도와주려고도 한다.
해적들의 뜻은 아니고 그 뒤에 있는 기업들이 입김이 작용한 결과겠지. 놈들은 누구보다 고대 유적을 원할 테니.
“마침 잘됐군. 안 그래도 인력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일곱 곳을 지정해 주지. 가서 땅을 파라.”
“…어느 정도 깊이까지 파야 합니까?”
“물이 나와서 땅을 판 곳이 채워질 때까지."
우리는 그동안 해적들의 시중을 받으며 휴식을 취했다. 해적들은 먹을 것도 건네줬다. 물론 음식을 입에 대진 않았다. 수상쩍었으니까. 음식은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 굳이 믿을 수 없는 놈들이 주는 걸 먹을 필요도 없었다.
휴식을 취한 지 3시간이 지났을 무렵. 쿠르르르릉. 강릉 군도 전체에 지진이 일어났다.
‘시킨 대로 땅을 판 모양이군.’
우리는 다음 섬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섬은 평창섬이다. 강릉 군도에서 가장 큰 섬.
평창섬의 섬주도 우리를 반겼다. 그는 다른 두 해적 두목보다 더 해적 두목처럼 생겼다. 지저분한 검은 수염과 아무렇게나 자란 검은 머리카락. 어깨에는 검은 코트를 걸쳤다. 그는 씩 웃으며 검은 이빨을 내보였다.
“마법사님! 전 평창섬의 섬주인 아만이라 합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하십쇼.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얼굴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더러워진다. 내 시야에 안 보이게 짜져있어라."
짜증을 담아 말했다. 아만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꿈틀거렸으나, 이내 실실 웃는다.
“어이쿠. 제가 못생기긴 했지요. 마법사님들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물러나겠습니다.”
해적들이 물러갔다.
“이번 일에는 오르시아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력은 충분히 있으니 걱정 마시길.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가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번 조건은 바닷속으로 들어가서 만족시켜야 합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성공적으로 끝나면 고대 유적이 떠오를 겁니다.”
"큰일이 벌어지겠군요."
“네. 아마 기업들이 달려들겠지요. 괜찮습니다. 고대 유적의 정보를 가진 제가 있으니까요. 어디까지나 유리한 건 우리 쪽입니다.”
나는 바람 마법으로 일행을 감싸며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정확하게는 섬 아래에 있는 바다로. 바닷속에 숨겨져 있는 철문에 다가가 비밀번호 q1w2e3r4을 입력하자 문이 열린다.
“겨우 그게 비밀번호야?"
인비저블 블레이드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그레이트 코리아의 유구한 전통이지. 만약 그레이트 코리아와 관련된 유물이 비밀번호를 요구하면 이걸 치거나 쳐봐라. 비밀번호가 4자리면 1234 혹은 0000이면 대부분의 문은 열릴 거다.”
“거 참 유용한 정보를 얻었네.”
정작 그레이트 코리아의 고대 유적이 희귀해서 정보를 사용할 일이 없을 테지만.
어쨌든 문이 열려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인위적인 바위기둥 수십 개가 천장을. 그러니까 섬을 떠받치고 있었다.
이번 퍼즐은 여기 있는 바위기둥들을 올바른 장소로 옮겨야 했다.
‘원래는 다른 고대 유적에서 얻은 시스템 키로 구조물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지만… 그 유적지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까지 한다면 최소 3년 이상의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
시간이 너무 걸렸다.
'여긴 게임 속 세상이지만 현실이지. 꼭 원작 게임의 방식을 따를 필요는 없어.'
이쪽에는 7급 공간 마법사가 있었다.
“오르시아 님. 저 기둥을 저기 홈이 파인 곳으로 옮겨주십시오. 가능하겠습니까?”
염력이나 완력으로 옮기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기둥 하나만 해도 수백 톤은 할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게 공간 마법이다.
내가 아직은 사용할 수 없는 계통의 마법.
“바위기둥이 바닥과 천장에 결합된 상태가 아니군요. 그렇다면, 예. 물질 이동이 가능합니다. 크기가 크기다 보니… 많게는 옮기지 못할 것 같군요. 15개. 그 정도가 한계일 것 같습니다.”
“9개만 옮기면 됩니다.”
여기선 순서가 중요했다. 순서에 대한 힌트는 다른 고대 유적지에서 나온다.
‘정작 나는 힌트를 보고 퍼즐을 푼 적이 별로 없어.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왔거든.”
원작의 지식이 온전히 떠올라서 다행이었다. 쓸데없는 고생을 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오르시아가 안경을 벗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은회색으로 빛난다. 마안 공령안이 발동되며 그녀의 아스트랄과 마나가 한순간에 증폭되는 게 느껴졌다. 오르시아의 손이 앞으로 뻗어지는 동시에 은회색의 마법진이 펼쳐진다.
공간계 고등 마법.
‘비전 마법인가. 수준 높은 락이 걸려있군. 심도 깊게 해석하려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설령 어떻게든 해석하더라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 나는 아직 공간 마법의 기초도 완벽히 습득하지 못했으니까.'
7급 마법사의 공간계 마법 시전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배워가는 게 있다. 공간 마법 특유의 감각이라던가, 오르시아의 술식 조작, 마나 장악 요령이라던가.
나는 숨을 죽이며 그녀를 지켜봤다.
마법진이 번쩍인다. 공간이 일렁거리더니 떨어져 있던 바위기둥이 한순간에 정해진 장소로 이동되었다. 한 치의 오차도없이 깔끔했다.
“다음 기둥은 어느 것입니까?"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손을 들어 다음 기둥을 가리켰다.
“저기 기둥입니다. 아래쪽에 보시면 푸른색 띠가 있습니다.”
기둥마다 특징이 있었고 구분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가리키는 대로 기둥을 이동시켰다.
9개의 정해진 기둥이 제자리를 찾는 순간, 수십 개의 바위기둥이 빛나며 회전을 시작했다. 기둥 속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오더니 바닥으로 처박히기 시작했다.
“오르시아 씨. 섬 위로 올라가시죠. 재미난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쿠르르르르.
굉음과 함께 강릉 군도 전체가 움직였다. 섬들이 서로에게 밀려나듯 떨어지며 그 중심에 원형 공간을 창출한다.
그 넓은 바다 공간에 거대한 회오리가 일어났다. 회오리에 휘말린 해적선은 순식간에 박살 나 잔해로 변했다. 저곳에서 살아남은 해적? 당연히 없었다. 인간의 몸으로 버틸 수 있는 소용돌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서서히 거대한 무언가가 위로 떠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래와 같은 거대 생물 같아 보였던 그것은 점점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현대식 건물이 지어진 섬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레이트 코리아의 고대 유적, 세빛둥둥섬.
우리는 평창섬 꼭대기에서 하늘 높이 솟아오른 자기부상섬을 멍하니 지켜봤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자, 잠깐. 섬에서 물이 다섯 줄기로 끊임없이 흘러나오잖아. 저런 방대한 양의 물이 저런 섬에 있는 건 말이 안 돼. 물을 만들어 내는 거야?"
“저건 바닷물이다.”
“…위로 올라가는 바닷물이 없는데? 더 말이 안 되잖아.”
“모르는 건가. 블루투스 전송기로 바닷물을 끌어오는 거다. 그레이트 코리아는 블루투스 기술이 어마어마하게 발달했다. 블루투스 무선 샤워기는 그 기술의 부산물이지."
“블루투스 무선 샤워기 같은 건 없어. 마법 샤워기는 있어도.”
“그레이트 코리아에는 존재한다.”
“그레이트 코리아란 대체… 앗, 잠깐. 소용돌이 없어지고 배가 나타났네. 흐음. 전투선으로 불법 개조하긴 했지만 해적선이 아니야. 식별 가능한 깃발도 없고…. 이건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모양이네. 미리 근처에서 준비하고 있었나….”
“예상대로다.”
기업들의 선박에서 헬리콥터가 떠오르고 있었다. 목적지는 당연히 세빛둥둥섬이다.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병력이 세빛둥둥섬으로 모여들 것이다.
“유진 씨. 이대로 여유를 부려도 괜찮은 겁니까?”
고대 유적을 두 눈으로 확인한 오르시아는 평소보다 살짝 흥분한 상태였다.
“조급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과정이 어떻든 고대 유적의 모든 것을 손에 넣는 건 우리가 될 겁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네. 유진 씨를 믿습니다.”
“텔레포트는 아껴두십시오. 제가 바람 마법으로 여러분들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나는 바람 마법을 이용해 몸을 띄웠다.
레비테이션이나 염력을 이용해 날 수 있지만, 다른 이들까지 함께 하늘을 날려면 바람 마법을 응용하는 쪽이 더 효율적이었다.
‘세빛둥둥섬은 고대 유적 중에서도 규모가 큰 만큼 얻는 것도 많은 곳이지. 대신 상당히 귀찮은 기믹들이 많은 곳이기도해. 아무 지식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건 미친 짓이지.'
세빛둥둥섬의 입구는 총 15개. 그중 10개는 함정과 직결되는 입구였다.
'이 세상에서 오래된 무언가는 신비한 힘, 신령에 의해 변할 가능성이 있다. 고대 유적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어. 고대 유적이 위험한 이유가 이 때문이지. 고대 유적은 위험한 던전이라 봐도 무방하니까.’
홍천섬의 섬주, 홍배적 박사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에 꿈에도 그리던 그레이트 코리아의 고대유적이 존재했다.
“세빛둥둥섬…. 틀림없어. 그레이트 코리아와 관련된 고대 문헌에서 나온 세빛둥둥섬이다…!”
홍배적은 감격했다.
자신의 선조, 그레이트 코리아의 유산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래. 자신은 저 위대한 문명을 일군 그레이트 코리아의 후손이다! 자신이 그레이트 코리아를 연구하기 시작한 이유가 자신의 뿌리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홍 박사는 만족했고, 또 다른 욕망을 샘솟는 걸 느꼈다.
‘결국 저 유적도 기업들의 손에 떨어지겠지. 그 전에 나도 가서 확인하고 싶다! 어쩌면 나만이 찾을 수 있는 유물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레이트 코리아의 후손이고, 그레이트 코리아를 오랫동안 공부한 박사니까!’
그가 방법을 모색할 때였다. 기회가 찾아왔다.
평창섬의 섬주인 아만이 헬리콥터를 타고 홍 박사를 찾은 것이다.
“홍 박사. 마지막 제안을 하지. 우리와 함께 저 빌어먹을 고대 유적지로 가겠나?”
“…아만. 내 지식을 원하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널 찾아올 이유가 없지."
“조건이 있습니다. 홍천섬의 사람들을 건들지 마십시오."
“그놈들? 이미 관심 밖이다."
“…또한 제게도 유물 일부를 나눠줬으면 합니다.”
“그건 네가 판단할 주제가 아니군. 기업이 판단할 거다. 가서 네 쓸모를 증명해라. 기업이 널 원하도록 말이야."
“나는 그레이트 코리아의 전문가요. 기업은 분명 날 원할 것이오.”
홍 박사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한 뒤,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헬리콥터는 세빛둥둥섬의 한쪽에 내려섰다.
세빛둥둥섬 최외곽에 위치한 장벽과 거대한 문.
보이지 않는 방어벽 같은 것이 있어서 헬기로 장벽을 넘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아만과 홍 박사, 기업에서 파견된 직원들은 입구 앞에 내려서야 했다.
커다란 철문의 센서가 붉은빛으로 점멸하더니,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삐빅. 3번 입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하지만 현재 정부 방침에 따라 세빛둥둥섬은 손님을 맞이하지 않습니다. 오직 유전적 한국인만이 세빛둥둥섬으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홍 박사는 자신감 있게 앞으로 나섰다.
“그럼 문제없겠군. 나는 그레이트 코리아의 후손이다! 내 몸에는 그레이트 코리안의 피가 흐른다!”
"삐빅! 스캔을 시작합니다."
문에서 나온 푸른색 빛이 홍 박사의 몸을 스캔했다.
“삐빅! 스캔 결과 당신의 K-DNA는 1% 미만입니다. 보유 한남력은 26입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한국인이 아닙니다."
“하, 한국이 아니라고? 나, 나는 한국인이다!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한국인이다! 유서 깊은 홍씨 가문이란 말이다! 무엇보다 한남력이란 건 뭐냐!"
“한국 남자정신력의 줄임말입니다. 당신의 몸에는 J-DNA가 60% 이상이며 C-DNA는 30% 미만입니다. 당신의 일남력은 358입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은 전쟁 중인 상태. 일본인은 세빛둥둥섬에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마, 말도 안 돼. 내가 일본인이라고? 일본인의 후손이라고? 거짓말하지 마라!!”
“저는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5분 내로 사라지지 않으시면 공격을 시작하겠습니다.”
지켜보고 있던 아만이 경악하는 홍 박사의 어깨를 잡아 뒤로 끌었다.
“비켜, 홍 박사. 이참에 일본식 이름을 생각해 봐.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말이야.”
아만은 바주카포를 들어 입구를 겨눴다.
“문이라는 건 원래 박살 내고 들어가는 법이지."
그가 방아쇠를 당겼다.
“삐빅. 11번 입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하지만 현재 정부 방침에 따라 세빛둥둥섬은 손님을 맞이하지 않습니다. 오직 유전적 한국인만이 세빛둥둥섬으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입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원작과 똑같은 반응에 무심코 나온 웃음이었다.
‘한국인으로 폴리모프하는 방법도 있는데… 한국인의 피를 못 구했단 말이지.'
애초에 이 세상 한국인의 피를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인의 후손이란 자들도 순수한 한국인이 아니니까. 저 인공지능의 기준에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시간이 너무 흘러서 순수 한국인이 거의 없지.'
성가시더라도 입구를 박살 내고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도 11번 입구를 제대로 찾아온 것이 됐다.
"삐빅! 스캔을 시작합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결과 인비저블 블레이드가 당당히 앞장서서 스캔을 받았다.
"삐빅! 90% 이상의 J-DNA가 감지되었습니다! 일녀력은 611! 상당한 수준의 일녀로군요. 현모양처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할 경우 귀화 조건을 만족합니다.”
“후후. 재밌는 인공지능이네. 어떻게 해? 그냥 무시하고 돌파해?”
인비저블 블레이드가 내게 물었다. 내가 뭐라 하려는 순간, 인공지능이 멋대로 나를 스캔했다.
"삐빅! 99% 이상의 K-DNA가 확인되었습니다! 한남력은 999! 최상위 등급입니다!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인물이시군요. 조건에 따라 특급 주민등록증을 발급하겠습니다. 이름이 무엇인가요?”
아니, 내가 전생에 한국인이긴 했는데…. 이 몸도 한국인인가? 그러고 보니 내 얼굴이 전생과 똑같긴 했다.
"……유진이다.”
“특급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었습니다. 세빛둥둥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한남 유진!"
쿠쿠쿵.
입구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