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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93화 (1,973/2,000)

< 2193화 > 2193. 다크 문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며 일행과 함께 세빛둥둥섬 내부로 향한다. 긴 복도가 펼쳐져 있었다. 11번 입구는 다른 입구보다 함정의 수가 적고 비교적 안전한 대신에 길이 길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1번 입구에서 시작하는 건데.'

가장 위험하면서도 내 계획에 가장 빠른 1번 입구.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미련은 털어내고 지금부터 다시 계획을 세운다. 한국인으로 인정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안전한 건 아니다. 이 고대 유적은 오랜 시간이 흘러 던전이나 다를 바 없으니까. 방심해서는 안 된다.

“신기하군요.”

오르시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뭐가 말입니까?”

“유진 씨 말입니다. 그레이트 코리아의 고대 유적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는 듯하더니… 그레이트 코리아의 적법한 후손일 줄은 몰랐습니다. K-DNA가 99% 이상이면 그레이트 코리안 그 자체가 아닙니까? 혹시 그레이트 코리아의 냉동 인간이셨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전 고아인지라… 제 뿌리에 대해선 저도 잘 모르겠군요.”

사실을 말했으나, 오르시아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솔직히 나도 내 정체가 궁금하긴 했다. 허나 그 누구도 속 시원하게 답해줄 수 없는 부류의 문제였다.

“냉동 인간은 아니겠지. 인공지능이 데이터베이스에 정보가 없다 했잖아.”

인비저블 블레이드가 말했다.

“…하긴. 그레이트 코리아의 냉동 인간이었다면 데이터베이스에 정보가 있었겠군요. 그렇다면 우연이란 건데… 역시나 신기하군요.”

“우연이 아니라 운명일지도 모르지.”

“운명이라. 저는 운명론을 믿지 않습니다.”

“응, 나도 안 믿어."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인비저블 블레이드 씨는 좀 더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글쎄. 그런 게 없어도 지금까지 잘만 살아왔어. 하나, 하나 따지면서 사는 건 짜증 나지 않아? 특히 당신은 강자잖아.”

“힘을 떠나 사람에겐 교양이 있어야 합니다. 교양 없는 인간은 짐승이고 야만인일 뿐이지요.”

“내가 짐승이란 뜻이야? 사람이란 한 꺼풀 벗겨보면 다 비슷비슷해. 교양 넘치는 당신도 숨기고 싶은 모습은 있을 거 아니야."

그녀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만."

내버려 두면 내부부터 분열할 것 같다.

"여긴 고대 유적입니다. 오르시아 씨. 자중해 주십시오. 인비저블 블레이드. 너도 다. 특히 넌 해야 할 일이 있을 텐데?”

“…죄송합니다. 그런 대화를 할 때가 아니긴 했지요.”

“아, 함정 말이지? 몇 개 발견하긴 했는데… 작동을 아예 안 하길래 무시하고 있었어. 설령 작동하더라도 대처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

그녀의 실력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순간이 찾아왔다.

"멈춰."

앞서 걸어가던 인비저블 블레이드의 말에 일행이 멈췄다. 인비저블 블레이드가 간단한 수인을 맺는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물로 이루어진 표창이 나타났다.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맹렬한 기세로 날아가 바닥에 물표창이 꽂힌다.

콰아아아앙!

바닥이 터졌다.

“지뢰형 폭탄이네. 입구에 인공지능을 깔아둘 정도로 발전됐으면서 지뢰는 꽤 구식인걸. 보통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무기가 있는 경우는… 내부에서 전투가 일어났다는 뜻이지. 어쩌면 여기서 반란 같은 게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네.”

내심 인비저블 블레이드의 통찰에 감탄했다. 세빛둥둥섬의 내부 반란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었으니까. 여기 고대 유적을 돌아다니면 그와 관련된 기록을 몇 개 볼 수 있다.

“길이 두 개가 됐네. 위와 아래. 어디로 갈까?”

LK-99 초천도체를 얻으려면 아래로 가야 한다. 핵심 중앙 지역에 초전도체 연구생산시설이 존재하니까.

“위로 가자.”

여기까지 왔는데 겨우 LK-99만 얻어서 나가는 건 미련한 짓이다. 기왕 이곳에 온 거, 얻을 수 있는 건 전부 얻어야지.

콰아아아앙!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폭음이 울린다. 해적. 아니, 기업의 개들이 세빛둥둥섬에 들이받은 것이 뻔하다.

위애애애애애앵!

세빛둥둥섬 전체에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세빛둥둥섬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세빛둥둥섬을 침입하려는 적들을 확인했습니다. 긴급 경비 체제로 전환합니다. 시민 여러분은 대피소로 이동해 주십시오.

철컥 철컥.

복도 곳곳에 문이 열리더니 이족보행 로봇이 질서정연하게 걸어 나왔다. 오르시아와 인비저블 블레이드가 저도 모르게 긴장했으나, 특수경찰 로봇이란 한글이 몸통에 적힌 로봇들은 우리 옆을 조용히 지나쳤다.

‘세빛둥둥섬의 전력도 만만치 않지만… 기업들이 제대로 나서기로 했으니 결국 무너지는 건 세빛둥둥섬이겠지.'

우리는 계단 위로 올라갔다. 천장에 설치되어 있던 카메라가 빛난다. 나는 두꺼운 강철 문 앞에 섰다.

“삐빅. 특급 주민증을 소지하신 분이군요. 환영합니다. 이곳은 세빛둥둥섬의 전투 로봇 연구소입니다. 현재 전투 로봇 연구소는 소장을 비롯한 연구원들 모두가 사망하여 가동이 중지된 상태입니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군. 문을 열어줄 수 있나?”

“삐빅. 허가되었습니다.”

원래는 한국인이라도 열리지 않는 곳이다. 특급 주민증이란 것 덕분인 듯했다. 실제로 주민등록증 같은 걸 가지고 있진않지만.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소는 엉망이었다. 금속 부품들이 바닥을 기었다.

“삐빅. 원하시는 자료가 있으십니까? 연구 자료는 모두 폐기 된 상태입니다.”

“그래. 알아서 챙겨가지."

나는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구체 형태의 부품을 손에 쥐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부품.

나는 그걸 인비저블 블레이드에게 던졌다.

“어라? 이거 나 주는 거야?”

“팔중 압축 배리어 기술의 핵심 부품이다. 가져라.”

“난 닌자인데?"

“기업 출신의 닌자지. 아크로텍스 사는 유독 동양 쪽 출신이 많다더군.”

“흐음. 고맙게 받을게. 걔들이 좋아할 것 같은 기술이긴 해. 사이버 슈트에 적용하면 꽤 쓸만한 물건이 탄생하겠어."

다음으로 바이오 연구소로 이동했다. 나는 그곳에 남아 있는 연구 샘플들을 모두 오르시아에게 줬다.

“아마 그것들은 이종 안정제 샘플일 겁니다. 직접 연구하셔도 좋고, 바이오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에 팔아도 상관없습니다.”

“…이종 안정제라는 건… 제가 생각하는 그 약인가요?”

“예. 맞을 겁니다. 이종의 피가 섞인 자들의 부작용을 줄여주는 약입니다. 엘프 같은 경우는 부작용이 크게 없겠지만… 다른 종족의 경우 크고 작은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그건 현존하는 어떤 이종 안정제보다 안정성이 뛰어날 겁니다. 필요 없으십니까?"

“…아니요. 필요한 물건입니다. 하이텔 학파에서 이 안정제를 발표한다면… 예. 큰 이득을 얻을 수 있겠군요. 다만, 그렇게 되면 제 업적이 되어버립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대신 LK-99 초전도체의 권리는 제가 가져갑니다.”

괜히 그녀들에게 막 퍼주는 게 아니다. 진짜는 어디까지나 초전도체다. 이렇게 퍼줘야지 초전도체에 욕심을 부리지 않을테니까.

우리는 그 외에도 자잘한 것들을 챙겼다. 그레이트 코리아의 전투 식량이나, 그레이트 사이다 같은 이상한 브랜드의 음료수 같은 것들. 큰 가치는 없어도 챙길 건 챙겨야지.

우리는 세빛둥둥섬에서 가장 높은 건물 위로 올라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세빛둥둥섬 곳곳이 불타고 있었다.

기업에서 파견된 전투 직원과 세빛둥둥섬의 전투 로봇이 한바탕 붙고 있다. 기업 직원들은 거침없이 고화력 무기를 써댔다. 미사일이 여기저기 꽂히며 강력한 폭발을 일으킨다.

다른 기업에서 파견된 직원이 휘말렸는데도 멈추지 않는다. 아니, 휘말리게 하는 쪽이 목적인 듯했다. 결국 기업들도 서로를 경쟁자라 인식하는 것이다.

여긴 이미 전쟁터였다.

나는 몇몇 노리고 있던 건물들이 무너진 걸 보며 혀를 찼다. 저 안에 있었을 제법 괜찮은 유물들이 아까웠다.

'이 새끼들은 유물을 찾는 건 뒷전이고 경쟁자부터 없애려 하고 있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나오는 건 이상하지. 기업은 최대한 멀쩡한 유물 기술을 원할 테니…. 기업 중 하나가 배신 때렸나? 그럼 이 개판도 이해 가는군.’

지켜보고 있는데 무언가가 감각에 걸린다.

빠르지는 않으나, 조용하면서 은밀한 무언가가 나를 노리고 있다.

'……저주?'

파직.

손끝에서 일으킨 전류를 허공에 휘둘렀다. 전류가 치솟으며 은밀히 날아오던 저주를 태운다.

‘흑마법 저주군. 흑마법을 꾸준히 연구해오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어.'

어떤 저주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내게 저주를 날린 범인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주변이 너무 혼란해서 파악할 수 없었다.

"전장에 검은 쥐새끼가 있는 모양이군요. 추적이 쉽지 않겠습니다.”

오르시아가 말했다. 6급 마법사인 내가 알아차린 저주를 7급 마법사인 그녀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공격을 받은 건 마음에 안 들지만… 당장 우리가 이 전장에 참전해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우리는 핵심 지역으로 내려갈 겁니다. 너무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닌 것 같군요.”

“그렇긴 해. 최소 6개 이상의 기업이 이 일에 끼어든 것 같아. 아주 작정하고 날뛰고 있네. 몸이 많이 달았나 봐.”

우리는 아래로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조용해졌다. 세빛둥둥섬의 핵심은 중앙에 있다. 전체 면적으로 따지면 1%도 되지않는 공간.

내려가서 화려한 문을 열고 광장 같은 곳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먼저 도착한 선객들이 우리에게 총과 칼을 겨누었다. 그 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마법사님들. 우리 구면이지?"

“여기서 만나다니… 우리에게 행운이 따르는 것 같군. 그쪽들은 이곳의 정보를 알고 있겠지?”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남자 타케시와 안대를 낀 각진 얼굴의 여자 우희였다. 그들의 뒤로 기업 소속의 직원들이 도열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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