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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194화 (1,974/2,000)

< 2194화 > 2194. 다크 문

“용케 여기까지 들어왔군. 길이 복잡해서 십중팔구는 길을 잃을 텐데.”

여긴 세빛둥둥섬의 핵심에 가까운 곳. 아무리 지형지물을 박살 내더라도 바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쪽에 뛰어난 길잡이가 있어서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게 도착했지.”

우희가 대답했다. 나는 똑같은 복장을 한 기업 직원들을 둘러봤다. 길잡이란 길을 찾는 데 특화된 이능을 가진 자를 말하는 것일 터. 그런 고급 인재를 이곳에 데려올 줄 몰랐다.

‘변수다. 일이 더 꼬이기 전에 길잡이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

탕!

우희의 손에 들린 머스킷 총이 불을 뿜었다. 탄환은 천장에 도탄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이건 경고다. 죽기 싫으면 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말해라.”

우희가 뒤편의 문을 가리켰다. 거대한 금속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저 문을 열지 못해 여기에 모여 있는 거다.

“카드 키가 있으면 열 수 있다.”

저들의 시선은 나와 오르시아에게 향했다. 인비저블 블레이드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사이버 슈트의 힘으로 은신 상태에 돌입했다. 나는 그녀의 기척을 어렴풋이 느꼈다. 암살을 위해 천천히 저들의 뒤로 움직이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저기 오른쪽에 있는 문을 열고 직진하면 원형 공간이 나온다. 그곳을 뒤져보면 카드 키를 주울 수 있을 거다.”

“아, 친절한 설명 고맙군. 근데 너희가 이곳에 온 걸 보면 카드 키를 가지고 있는 것 같군. 꺼내 봐.”

일본도를 쥔 타케시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따로 카드 키를 챙겨오지 않았다. 너희에겐 유감스러운 소식이겠군.”

특급 주민증이 있으니 카드키는 필요 없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문은 자동문처럼 열릴 것이다.

내 말이 도발적으로 느껴진 것일까. 머스킷을 든 우희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린다.

“오호라. 비협조적으로 나오시겠따라? 이건 어쩔 수 없군. 강제로 협조를 끌어낼 수밖에. 팔다리를 자른 채로 데려간다. 마나 파동 장치 가동해.”

"해적 주제에 명령하지 마라."

등에 커다란 기계 덩어리를 짊어진 기업 직원이 으르렁거리듯 말하면서도 성실히 기계를 조작했다.

순식간에 놈을 중심으로 마나 파장이 요동쳤다. 불규칙적인 마나 파장을 이용해 마법 캐스팅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선 작은 마법이라도 몇 배 이상의 집중력이 필요해진다.

“준비만 제대로 되어 있으면 마법사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니지.”

타케시가 사나운 짐승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온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보이지 않는 검에게 물었다. 보이지 않는 검은 자기 방식대로 대답했다.

"끄악!"

마나 파동 장치를 짊어진 남자의 등에 칼이 꽂혔다. 여우 가면을 쓴 인비저블 블레이드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는 칼을 아래로 내리그어 남자와 기계를 동시에 박살 냈다. 마나 파장이 순식간에 안정된다.

"유진 씨."

“괜찮습니다, 오르시아 씨. 힘을 아끼십시오. 이놈들은 저희 둘이서 처리하겠습니다.”

[일렉트릭 필드]

지면을 타고 푸른 전류가 질주한다. 적들은 움찔거렸으나 무너지지 않았다. 고작 일렉트릭 필드 한 번에 당할 정도로 수준 낮은 놈들이 아니다.

“젠장! 타케시! 너희는 저 빌어먹을 년을 상대해! 우린 이 마법사를 상대한다! 상대는 전격계 마법사와 공간계 마법사! 뭉쳐 있지 말고 퍼져라! 공간이 일렁거리면 바로 보고해라!”

두 명이 내 앞으로 튀어나온다. 비슷한 얼굴을 한 두 명의 남녀였다. 아마 남매로 보였다. 각각 내 오른쪽과 왼쪽을 노린다. 동시에 그들의 얼굴과 몸이 변한다. 털이 순식간에 자라나고 손톱이 길고 날카로워진다.

‘웨어 울프인가. 찰나.’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1]

그들을 보며 무심코 뇌천류를 떠올렸다. 보법을 밟아 공격을 피하며 단검을 이용한 반격. 그 일련의 과정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대처 방법을 떠올리는 것과 실제로 대처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지. 내 몸이 그 복잡한 동작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뇌천류는 잊는다.'

찰나의 효과만으로 대응하기에 충분했다.

느려진 세계에서 술식을 계산하며 영창한다.

[리버스 그래비티]

중력 반전. 날 덮치던 웨어 울프 남매의 몸이 균형을 잃고 위로 떠 오른다. 그들 또한 마나를 이용해 균형을 되찾으려 하지만, 나의 마법 캐스팅이 더 빠르다.

[체인 라이트닝]

내 오른손을 타고 발현된 번개 줄기가 움직여 남매들을 번갈아 감전시켰다. 서로를 매개체로 삼아 수십 번 감전당한 웨어울프 남매는 사이좋게 탄내를 풍기며 사망했다.

이어서 사방에서 총탄이 쏟아진다. 미리 준비해 뒀던 배리어가 총탄을 막아선다.

“무슨 놈의 캐스팅 속도가….”

“평범한 마법사는 절대 아니군. 저 새끼에 대한 정보는 없나?”

“닥치고 방아쇠나 당겨라. 5급 이상의 배리어라 해도 최신 대마탄으로 두들기면 뚫리게 되어 있으니까."

어쩐지 배리어가 조금씩 깎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배리어 하나만 믿고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아이스 포그]

냉기를 사방에 퍼뜨린다. 주변의 온도가 빠른 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빙결계 마법에도 조예가 있군. 조심해라. 빙결계는 전격계와 상성이 좋다. 극저온 상태가 되면 무슨 상태가 일어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우희가 냉기를 피하며 말했다.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 몸이 얼어 죽을 거다. 그리고 넌 우리의 팀원도 아니고, 리더도 아니다. 현장 협력자일 뿐이라는 걸 잊지 마라."

“너희가 오죽 답답하게 싸우니 이러는 거 아니냐. 정예면 정예다운 모습을 보여라.”

“말하지 않아도 그럴 셈이다."

우희의 도발에 흥분한 기업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달려든다. 동시가 아니라 일정한 차이를 둔 움직임. 각각의 역할이 있는 고도의 훈련을 통해 완성된 연계다.

‘내 눈에 전부 보이고, 내 감각에 전부 걸리는군.’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0]

찰나의 시간을 이용해 캐스팅.

[체인 라이트닝]

번개 줄기가 뻗어간다. 적 중 한 명이 앞으로 툭 튀어나오더니 체인 라이트닝을 몸으로 받아냈다. 번개가 전이하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써서 자신의 몸에 붙잡아 둔다.

"지금이다!"

키이이잉.

저들의 손에 쥔 나이프가 배리어를 베어 가른다. 마나 마찰에 반응이 일어나며 푸른 불꽃이 튀었다.

'배리어 커터 장비인가. 준비한 배리어 3개가 한 번에 잘렸군.'

그 대가로 나이프는 박살 나고 남자의 손은 격렬한 마나 마찰 반응에 의해 화상을 입었다.

한순간 무방비해진 나를 노리고 주먹과 칼, 총알이 쇄도한다.

[염력]

염력을 이용해 주머니에 있던 [플라즈마 배터리]를 꺼내 한순간에 방전시킨다. 시퍼런 뇌전이 폭발하여 주변을 한순간에 집어삼켰다. 전자기력에 의해 칼은 떨어지고 탄환은 튕겨 나가며 생물은 감전당했다.

당연히 내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이 뇌전들은 전부 내 제어하에 있다.

쾅!

폭발이 일어나 뭉쳐서 들끓는 뇌전이 흩어졌다. 그 틈새로 우희가 달려왔다.

“신종 자살법인가? 내 주위에 남아 있는 뇌전이 안 보이나?"

“너 같은 괴물을 죽이려면 이쪽도 위기를 감수해야지. 그리고 딱히 맨몸으로 온 것도 아니야."

허공에 흩어진 뇌전이 그녀의 몸에 파고 드려다가 코트에 닿자마자 아래로 미끄러져 사라진다.

'방전 효과를 가진 슈트인가? 아무리 그래도 한계가 있을 텐데?'

쾅!

그녀가 머스킷의 방아쇠를 당기자 다시 폭발이 일어나 전류를 흩으렷다.

‘특수한 기술이나 마법이 아니군. 일종의 사격술로 폭발을 일으키는 건가.'

손을 움직인다. 내 손짓에 따라 허공에 남아 있는 전류가 뭉쳐지며 우희를 덮친다. 우휘는 춤을 추듯 몸과 머스킷을 회전시켜 장전하며 전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쾅!

겉모습만 머스킷이지 실제로는 샷건에 가까운 총이다.

'이 여자, 날 죽일 생각이 만만이군.'

우희도 멀쩡하지 않았다. 허공에 남은 전류를 완벽히 처리하지 못한 탓에 감전당해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실실 웃으며 기어코 내 앞으로 다가왔다. 미친년이었다.

“미친년이군.”

“나보다 강한 적을 죽이려면 미치는 수밖에 없다. 잘 가라, 마법사.”

머스킷의 총구가 나를 겨누고 그녀가 방아쇠를 당겼다.

[염력]

염력으로 머스킷의 총구를 막았다. 쾅! 폭발은 머스킷 안에서 터졌고 우희는 오른팔을 잃었다. 쓰러지듯 무너지던 우회는 한순간 균형을 잡고 왼손으로 보조 무기인 나이프를 잡았다.

[라이트닝 스트라이크]

천장에서 벼락이 떨어져 우희의 정수리를 꿰뚫었다. 우희는 쓰러져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일렉트릭 필드의 전류는 바닥에서 벽을 타고 천장까지 흘렀지. 여긴 이미 내 영역이다.'

나는 정면을 바라봤다. 아직 살아 있는 기업 직원들이 눈에 들어온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그들에게 벼락이 떨어졌다.

콰콰콰콰콰!

천장과 바닥을 잇는 벼락 기둥들이 나타났다. 그 기둥 속에는 인간이 불타다 쓰러졌다. 쓰러진 인간은 두 번 다시 움직이지 못했다.

“…대단하시군요. 번개를 완벽히 통제하시는군요. 레이썬 학파장이 봤다면 감격했을 겁니다.”

“아닙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덕분에 멀쩡합니다.”

“뭐야. 활약한 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내가 이놈들 뒤에서 휘저어 준 덕분에 쉽게 상대할 수 있었잖아."

인비저블 블레이드가 다가왔다. 그녀의 뒤로 썰린 시체 7구가 눈에 들어온다. 그중에는 동해섬의 섬주인 타케시도 있었다.

“기왕이면 내 앞에서 휘저워주면 안 되나? 네 역할은 전위라고 말했을 텐데.”

“솔직히 이깟 놈들은 위험하지도 않았잖아. 필요할 땐 할 테니까 잔소리는 됐어. 내가 딱히 일인분을 하지 못한 것도 아니잖아."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가 없었다면 전투는 더 고생스러웠을 것이다. 특히 그녀가 마나 파동 장치를 먼저 박살 내준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다.

나는 죽은 척하는 놈이 없는지 확인한 뒤 문을 향해 걸어갔다.

“삐빅! 특급 주민증을 확인했습니다! 유진 님!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안으로 들어가고 15분 뒤, 넓은 공동이 나왔다. 세빛둥둥섬의 핵심 지역이 나왔다.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까지 모두 초전도체로 이루어진 공간. 그 중심에는 제단이 있었다.

“제단? 설마 의식 같은 걸 해야 합니까? 근데 제단이라고 하기엔 묘하게 위치가 낮군요.”

“갑자기 마법적 의식이라니…. 좀 깨는걸?”

나는 손을 들어 그녀들을 진정시켰다.

“여기선 엄숙해야 합니다. 제가 말하기 전까지 입을 열지 마십시오. 그리고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

조심히 제단을 향해 걸어갔다. 여기서부터 분위기가 중요했기에 행동거지 하나, 하나를 신경 써야 한다.

나는 제단 아래에 떨어져 있는 납작한 직사각형 금속 상자를 들어 올렸다. 이건 고성능 태블릿이었다. 태블릿이 있어야 할 장소, 제단의 모서리 중심에 꽂아 넣는다. 또한 미리 준비해 둔 양초를 꺼내 모서리 끝 양쪽에 세우고 마법으로 불을 붙였다.

“그레이트 코리아의 후손, 유진이 제사를 올립니다.”

지이이이잉.

태블릿이 켜지고 제단 위에 홀로그램 상차림이 펼쳐졌다. 제단 뒤쪽에는 홀로그램 한시 병풍이 펼쳐졌다.

켜진 태블릿에는 노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과거 이 세빛둥둥섬의 지도자였던 자.

사이버 고대 조상이 나를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오랜 후손을 보는군. 한국인의 정신과 문화는 끊어지지 않았구나. 암. 나는 강릉 신씨의 122대손 신장구다. 너는 누구인가?"

“저는 한우 유씨 999대손 유진입니다.”

대충 있는 대로 말했다. 조금 쫄렸다. 거짓이 들통나지 않을까 싶어서.

“한우 유씨라…. 처음 들어보는 가문이다만…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 새로운 가문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지. 중요한 건 네가 한국의 DNA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후손아. 술은 가져왔느냐?”

“예. 조상님. 청주를 가져왔습니다.”

“좋구나! 어디 한 번 술 한 잔 올려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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