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7화 > 2197. 다크 문
고대 유적은 던전이나 다를 바 없다. 다시 말해 그 뜻은 던전의 요소가 고대 유적에 있다는 뜻이다.
게임에서 던전이란 몬스터 소굴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몬스터가 있고, 그 몬스터의 우두머리인 보스 몬스터가 존재한다.
눈앞에 있는 괴물은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 달라도 세빛둥둥섬의 보스 몬스터라 할 수 있는 발리악이 확실했다. 이 정도 힘을 가진 악마가 갑자기 세빛둥둥섬에 나타나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기존에 있었다고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원작 게임에서 인공 악마 발리악은 굳이 조우하지 않아도 되는 몬스터다. 세빛둥둥섬의 마지막은 자폭으로 끝나니까.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
보스를 죽이고 얻는 드랍템은 얻지 못하지만, 발리악의 난이도와 설정을 생각해서 패스했다. 일부러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떤 멍청한 새끼가 발리악의 봉인을 푼 거지? 기업 새끼들이 탐욕이 있긴 해도 그딴 멍청한 짓을 안 할 텐데?'
기업이라면 봉인을 풀지 않고 확보할 것이다. 연구? 안전한 곳에서 진행할 것이다. 기업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의해 봉인 이 풀려났다? 그것도 말이 안 된다. 놈이 봉인된 초능생물 연구소는 다른 곳보다 훨씬 안전한 곳에 있으니까.
'그레이트 코리아에서도 악마와 천사를 연구하는 건 불법이니까. 안전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초능생물 연구소가 있지.'
그곳에서 내가 모르는 변수가 일어났다.
'발리악의 설정과 능력을 떠올려 보면. 누군가의 몸에 빙의했고 여기까지 오며 최소 몇 명 이상의 인간을 잡아먹었다. 또 한 자신은 결국 세빛둥둥섬과 가라앉을 운명이란 걸 알고 있기에 최후의 오락을 위해 폭주하듯 날뛴다.’
나는 천장에 매달린 발리악을 노려본다. 놈은 지금도 인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저것은 아마 원작의 인공 악마보다 더 강하리라.
"망할...."
흑마법사가 절망이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양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파지직.
나는 감각을 펼쳐 인비저블 블레이드의 상태를 확인했다. 숨을 쉬고 있다. 다만 정신을 잃은 상태다.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일어나더라도 당장 싸울 수 있는 상태라고 확신할 수 없다. 리타이어로 봐야겠지.
‘가장 베스트는 저놈을 피해 세빛둥둥섬을 탈출하는 것. 오르시아가 도와준다면 가능할 것 같은데.... 못 해도 인비저블 블레이드는 살려야 한다.'
인비저블 블레이드는 내 여자였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여자를 버리고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이봐. 넌 흑마법사니까 악마에 대해 잘 알겠지. 저 괴물에게서 당장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저놈을 상대한다. 협력해라."
"...흑마법사가 악마 전문가라는 말은 무지렁이들의 헛소리다. 물론 나는 악마의 힘도 어느 정도 연구하긴 했다. 저건 네 말대로 괴물이다. 72 악마는 아니어도 특수한 측에 드는 악마. 강함은 최소 8급 이상이겠지. 저런 놈을 어떻게 상대하겠다 는 거지?"
“그럼 여기서 죽던가.”
“저 악마의 시선은 네게 고정되어 있다. 목표는 너인 듯 같다만?”
“글쎄. 저 악마가 맛있는 흑마법사를 놓아줄 것 같진 않군."
“젠장."
악마에 대해 어느 정도 연구했다면, 자신이 안전하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악마가 상관없는 인간을 그냥 살려준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악마가 괜히 악마겠는가.
인간을 전부 먹은 악마가 내려온다. 나는 인비저블 블레이드를 챙기며 악마와 거리를 벌렸다. 흑마법사 또한 거리를 벌리 며 흑마나로 저주를 준비한다.
“미리 말해두지. 흑마법은 악마에게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흑마나 자체가 악마의 힘을 모방한 힘이라?"
“...그래. 악마에게 상극이라 할 수 있는 힘은 신성 마나로 사용하는 신성 마법이다. 혹시나 싶으니 묻지.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나?"
“전지전능한 신은 없다. 설령 있더라도 병신이겠지.”
“좆됐군.”
벨리악이 무릎을 굽히더니 점프한다.
[배리어]
허공에 투명한 막이 나타나 벨리악의 앞을 막았다. 허나 벨리악이 주먹을 휘두르니 3초도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났다.
‘5급 수준의 배리어가 이리 쉽게... 아니, 3초나 버텼다고 해야 하나?'
흑마법사가 저주를 날렸다. 벨리악은 피하지 않고 저주를 받았다.
펑!
벨리악의 내부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허나 벨리악은 멀쩡히 몸을 일으켰다.
“무슨 저주지?”
흑마법사에게 물었다.
“피폭의 저주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대로 온몸이 폭발했을 텐데... 악마라 그런지 내장도 안 상한 것 같군.”
“써도 그따위 저주를 써야 했나?”
“저놈의 저주 내성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파악한 바는?"
“저주로는 놈을 죽일 수 없다. 기껏해야 발을 묶는 것 정도가 전부지. 그보다 넌 안 싸우는 거냐? 벼락이라도 떨어뜨리시지?"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설마 내가 지금까지 가만히 보고만 있었겠는가. 당연히 영창은 준비하고 있었다.
[썬더 볼트]
부서진 천장, 그 틈으로 보이는 하늘이 빛나더니 뇌광이 사방을 밝혔다. 허공에 난선의 열기를 그리며 벨리악에게 내려꽂 히는 수천 줄기가 압축된 한 줄기의 벼락.
악마는 뇌전을 맞으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 몸에서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른다. 허나 쓰러지지 않았다. 팔은 멀쩡히 움직인다.
"하, 한남...!"
벨리악이 어눌하게 말하며 내게 달려든다.
[페이즈 시프트]
부담이 쌓여 있는 현 아스트랄과 마나 로드를 위상 아스트랄과 마나 로드로 변경한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1]
느려진 세상에서 썬더 볼트의 술식을 짜내려다가 멈칫한다. 벨리악은 느려진 세계에서도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썬더 볼트로는 시간을 못 맞춘다.’
필요한 건 공격이 아니라 견제.
[에어 붐]
콰아아아아아앙!
나와 벨리악 사이에 공기 폭발이 일어났다. 벨리악과 내 몸이 뒤로 밀려난다. 염력을 이용해 인비저블 블레이드와 스스로를 챙겼다.
"한남!!!"
튕겨난 벨리악이 울부짖는다. 바닥을 몇 번 구른 놈은 다시 벌떡 일어나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이성이 거의 없나? 그나마 다행이군. 저 빌어먹을 육체에 냉철한 이성까지 갖췄으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할만 하다.
그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오판이었다.
이후의 전투는 일방적으로 흘려 갔다.
놈의 지성은 짐승과 같다. 그 판단부터가 잘못됐다. 놈은 짐승 이하였다. 짐승은 적어도 감정을 느낀다. 또한 자기 몸이 가 장 귀한 걸 안다. 위협하다가 안될 것 같으면 내빼는게 짐승이다. 근데 벨리악은? 뒤가 없었다. 물러서지 않는다. 그저 탐욕을 위해 전진한다.
우리는 있는 대로 마법을 퍼부었다. 피하지 않는 과녁을 마법으로 두들겼다. 그럼에도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 없었다. 썬더 볼트를 5번이나 내려 꽂아도 놈의 팔다리를 멈추지 못한다. 그 외의 마법? 썬더 볼트가 안 통하는데 통하겠나.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중 순수 위력만 따지면 최고라 할 수 있는 썬더 브레이크? 사용할 수 있으면 사용할 수 있다.
'사용할 틈이 없다. 시간을 벌어줄 전위가 없어. 그나마 흑마법사가 저주로 시간을 벌어주긴 하는데... 썬더 볼트를 사용하는 게 고작. 심지어 그 기회도 얼마 안 돼서 다른 마법으로 견제해야 한다.'
“삐빅. 자폭까지 50분 남았습니다.”
세빛둥둥섬 인공지능이 고한다. 그래. 자폭 시스템이 발동하고 이제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간 당하는 미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밑천을 까야 한다.
흑마법사도 나와 같은 결론을 내렸는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30초. 내가 저놈을 30초간 묶겠다. 너라면 그사이에 놈을 끝장낼 강력한 한 방을 준비할 수 있겠지?”
“일단 해라. 못하면 우리 둘 다 죽는다.”
“빌어먹을. 내가 왜 이딴 고생을...!”
흑마법사의 몸이 위로 떠오른다. 그의 입과 코에서 흑마나가 넘실거리며 흘러나왔다.
바람 마법에 의해 벽에 처박혀 있던 벨리악이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놈의 시선이 처음으로 내가 아닌 흑마법사에게 향했다.
"지옥이여, 왼손 중지, 약지, 소지를 그대에게 바치겠다. 그대의 손길로 나의 적을 아루만져다오!"
뿌드득!
흑마법사의 왼손가락 3개가 일시에 부러지고 한순간에 썩더니 사라졌다. 저건 아마 치료가 불가능할 것이다.
'일종의 인신공양이군. 흑마법의 비전 마법인가.'
6급 흑마법사가 자신의 손가락을 바쳤다. 수백 명의 인간을 바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제물.
쯔즈즉.
흑마법사의 주위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수백 개의 손이 촉수처럼 튀어나왔다. 아니, 손의 형태를 한 농도 짙은 저주들이다.
지옥의 손길은 쭉 뻗어나가더니 벨리악을 붙잡았다.
“한남! 한남...! 나는 한남이 될 거다!”
벨리악이 버둥거린다. 저대로 저주에 파묻혀 죽어버렸으면 좋겠지만... 저것도 한순간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움직이겠지.
“지금이다!"
흑마법사가 나를 재촉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플라즈마 배터리]를 꺼내 허공에 던졌다. 쇠구슬이 푸른 빛 덩어리로 빛나더니 허공에 떠올랐다. 총 7개의 플라즈마 배터리가 허공에서 서로 공명하며 전류를 교환한다.
나는 준비한 전력을 모아 천장에 마법진을 그린다. [플라즈마 배터리]가 마법진의 주요 위치로 이동한다.
“...세빛둥둥섬 AI. 세빛둥둥섬의 전력을 내가 사용할 수 있나?”
“삐빅. 특급 주민증을 가진 자는 관리자에게 요청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세빛둥둥섬의 관리자는 부재중. 특수 상황에 따라 유진의 요청은 승인되었습니다.”
“세빛둥둥섬의 모든 전력을 끌어모아라.”
“삐빅. 세빛둥둥섬의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전력을 제외한 전력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져올 수 있는 전력은 다 가져와라.”
파지직.
사방에서 전력이 몰려든다. 인공지능에도 눈치가 있는지 모여드는 전력은 천장의 마법진으로 모여든다.
나는 마법진과 전류를 동시에 회전시켰다. 만뢰(卍雷)의 방식으로 전류가 증폭되기 시작한다.
“이봐, 아직이냐!”
“15초도 안 지났다.”
“상황이 좋지 않다. 이놈, 벌써부터 움직이려 한다!”
“30초는 버티겠다고 한 건 네놈이다. 그 이상을 버티면 더 확실하게 놈을 공격할 수 있을 거다."
“제기랄. 내 왼손 검지와 엄지를 바치겠다, 지옥이여!”
벨리악을 붙잡은 저주가 더 거세진다.
나는 마법진에 정신을 집중했다. 이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넘어섰다.
브레이크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액셀을 밟고 방향을 조정하는 것뿐. 조금만 방심해도 대참사가 일어날 테지.
“아직이냐?!"
"...…5초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