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0화 > 2200. 다크 문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기업 임시 연맹의 파견 선단의 임시 단장인 루크는 입에 문 담배를 곱씹었다.
일이 틀어졌다.
보고에 없던 존재가 하나도 아닌 둘이나 튀어나왔다.
하나는 악마. 최소 8급 이상의 육체를 가진 괴물. 그나마 다행인 건 악마는 미사일도 아무렇지 않게 견디는 강대한 육체에 비해 지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는 것.
문제는 악마 다음으로 튀어나온 천사였다. 벼락의 날개를 가진 얼굴 없는 천사.
루크는 머리를 굴렸다. 유명한 용병이자 모험가였던 그는 악마와 천사를 상대해 본 적 몇 번 있었다.
'제기랄. 머릿속의 정보를 뒤져도 저 악마와 천사의 출신을 모르겠다.’
일반 악마와 천사는 72악마와 72천사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신적인 존재라 할 수 있는 72악마와 72천사는 특징이 뚜렷하고, 휘하의 악마와 천사는 그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 출신을 확정 짓고 특징만 알아낸다면 약점을 찌를 수 있다.
문제는 저 천사와 악마의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악마는 폭식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은데... 얼굴 없는 천사. 저쪽은 전혀 모르겠군. 천사는 날개의 개수에 따라 강함과 지위를 판별할 수 있다. 근데 저 천사의 날개는 벼락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날개가 몇 쌍인지 파악하기 힘들군.'
두 존재가 날뛰고 있다. 악마는 노골적으로 병사를 잡아먹고, 천사는 악마를 공격하면서 병사를 붙잡더니 생명력을 빨아 들인다.
"저딴 게 천사...?"
“악마나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저 천사에게 생명력이 빨린 사람만 30명입니다!”
“대책이 필요합니다!"
루크의 부하들이 소리쳤다. 루크는 담배를 뱉으며 인상을 썼다.
“대책? 싸우는 거 말고 대책이 있나? 고대 유적을 버리고 도망칠 수는 없다. 기업이 우리에게 징계를 때릴 테지. 모든 역량을 퍼부어서라도 놈들과 싸워야 한다.”
루크가 말했다. 사내 정치에 실패한 그는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여기서 자신의 가치를 기업에 증명하지 못하면 처분당 하게 될 테니까.
“단장님! 천사는 신성 마법을 사용하며 악마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생명력을 빨아들여 에너지로 이용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마구잡이로 날뛰는 악마와 달리 천사의 전투 방식에선 이성이 느껴집니다. 천사가 신성 마법을 사용하는 건 놀랍긴 합니다만, 저 천사 고유의 이능일 테지요.”
“결론만 말해라.”
“신성 마법은 인간의 힘이고, 저 천사는 지성을 갖고 인간의 힘을 사용합니다. 어쩌면 인간에게 호의적일지도 모릅니다.”
“대놓고 인간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는 게 보이지 않나? 저 행동 어디서 호의가 느껴지지?"
뭣 모르는 사람 중에는 천사가 마냥 인간의 편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실제로는 다르다. 천사는 인간에게 관심이 거의 없다. 악마야 원래 제멋대로인 존재고.
“하지만 저 천사가 이성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움직임을 보면 꽤 전술적이다. 어쩌면 협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 얼굴 없는 천사에게 마법 통신 채널을 연결해라.”
“시도해 보겠습니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준비할 때, 다른 부관이 소리쳤다.
“비행선 전원 포격 형태로 전환 완료했습니다! 포탄 장전 완료! 발포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루크는 힐끗 뒤로 돌아봤다. 기업의 최대 자산 중 하나인 비행선들이 거대한 함포를 앞세우며 대기 중이다. 그 모습은 마 치 공중에 뜬 탱크와 같았다. 전장 110m가 넘는 탱크 말이다.
“계속 대기."
“...통신 채널 형성 완료! 천사가 채널을 받아들였습니다!”
우웅.
그의 앞에 마법으로 이루어진 창이 떠오른다. 창 안에는 얼굴 없는 천사가 있었다. 후드 아래는 텅 비어있다. 다만 그 안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입고 있는 코트가 인간과 비슷한 형태인 걸 보면 단순히 육체가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말하라."
천사의 말은 짧았다. 또라이의 기질이 느껴졌다.
“...얼굴 없는 천사여. 우리는 그대를 적대할 이유가 없다. 보아하니 저 멧돼지 같은 악마를 죽이고 싶은 모양인데. 우리가 도와주겠다."
“너희 따위가 어떻게 나를 돕겠다는 거냐.”
“우리 뒤에 있는 비행선이 보이나? 이미 포격의 준비는 끝났다. 내가 명령을 내리는 순간, 이 섬의 땅은 평평하게 다져질 것이다. 아무리 악마라도 버틸 수 없을 거다."
이 제안을 거부하면 같이 지워버리겠다. 루크는 굳이 뒷말을 내뱉지 않았다.
“너희가 원하는 건 뭐지?"
천사의 말에 몇몇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천사는 상상 이상으로 말이 잘 통했다.
“우선 그대의 이름은 뭐지? 설마 이름조차 알려줄 수 없다는 건 아닐 테지."
“유지니우스다. 친분을 쌓고 싶다는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지금 이 순간에도 악마가 너희를 잡아먹고 있음을 잊지 말도록.”
“......유지니우스. 얼굴 없는 천사여. 우리는 이 섬의 권리와 정보를 원한다. 악마를 죽인 뒤에 우리에게 어느 정도 협력 해줬으면 한다.”
“어느 정도라면?"
“이 섬에 관한 것.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좋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악마를 죽여라.”
악마를 뒤쫓던 천사가 번개 날개를 활짝 펼치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루크는 천사에게 느낀 위압감을 애써 떨쳐내며 명령했다.
“전 비행선, 악마를 조준.”
“조준 완료했습니다.”
“쏴라."
5개의 비행성의 거대 함포가 불을 뿜었다. 폭음이 진동한다. 함포는 한 번만 쏘지 않고 연발로 포탄을 쏟아냈다. 포탄은 지면과 닿는 순간 강력한 폭발과 함께 특수한 진동을 일으켰다.
공진현상을 이용해 대상을 파괴하는 특수 포탄. 폭발력에 비해 공진 범위가 약하긴 해도 명중만 하면 대상을 가루로 만들 수 있다.
포격은 곧 멈추었다. 비행선의 함포는 빨갛게 달아올라 연기를 내뿜었다. 포격 장소에는 시커먼 연기가 하늘 위로 올라간 다. 병력이 다소 휘말리긴 했으나 악마는 확실하게 끝장냈을 것이다.
“유지니우스. 봐라. 악마는."
루크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검은 연기 속에서 시커먼 악마가 튀어나왔다. 액체 괴물 같은 형체의 악마는 주변에 있는 병사들을 있는 대로 덮치며 씹어 먹는다. 마치 살아 있는 블랙홀처럼.
“단장님! 천사가 비행선을 공격했습니다!”
"뭐?!"
하늘에 떠 있던 천사가 비행선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끄아아아아악!
비행선과 연결된 무전기에서 비명 소리가 울린다.
-천사가 비행선의 동력을 강탈했습…콰앙!
비행선 한 척이 지상으로 낙하해 부서진다. 천사는 다른 비행선으로 날아가 마찬가지로 동력을 강탈했다.
“유지니우스!!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너희는 벨리악을 죽이지 못했다. 너희와 협력할 이유는 없다. 에너지가 되어라.”
악마와 천사가 동시에 날뛴다. 악마는 인간을 닥치는 대로 빨아먹으며 덩치를 키우고, 천사는 비행선의 동력을 비롯해 인간의 에너지를 산채로 빼앗는다.
“이런 씨발...."
인간은 무력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파지직, 파지직, 파직.
비행선의 동력을 빼앗아 전력을 흡수하고, 기업 병사 수십 명의 정기를 흡수하니 에너지가 넘쳐났다. 그 증거로 번개 날개가 원래보다 3배 이상 커졌다.
[홀리 썬더]
손에 쥔 번개의 창을 잡고 횡으로 휘두른다. 발산된 황금빛 번개가 슬라임처럼 덩치를 키운 벨리악의 몸을 지졌다. 벨리악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나를 향해 점프했다.
나는 손에 쥔 번개 창을 달려드는 놈에게 던졌다.
[홀리 썬더 브레이크]
황금 번개창이 명중하는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놈을 집어삼킨다. 방전 현상이 일어나는 건 덤이었다. 놈이 힘을 잃고 지상으로 추락한다.
끝인가 싶을 때, 놈의 몸에서 촉수 수십 다발이 치솟아 내 몸을 노린다.
나는 날개를 펼쳤다. 푸른 번개 날개는 수십 개의 황금빛 벼락이 되어 촉수를 태우며 벨리악의 몸을 지졌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벨리악이 비명과 함께 바스러졌다. 놈은 바닥에 무언가를 남겼다. 나는 손을 뻗어 염력을 발동해 그것을 손에 넣었다.
'벨리악을 해치우면 나오는 아이템인 벨리악의 정수군.'
검은색 물방울처럼 생겼는데 장갑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만지고 있자니 점점 기분이 나빠진다. 대충 코트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벨리악의 정수. 원작 게임에서도 사용하기 나름인 아이템이다. 나중에 천천히 연구해 보기로 하고....'
나는 다시 하늘 위로 솟구쳤다.
정리해야 할 것이 남았다.
기업 병력.
이놈들을 살려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를 죽이기 위해 온 놈들. 내 것을 노린 적들.
날개를 펼친다. 내게 남은 에너지를 모조리 끌어내며 마법을 사용한다.
[홀리 썬더]
황금빛 벼락이 인간들에게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기업 병력을 모조리 죽이는 건 실패했다. 몇몇 잽싼 놈들이 공간 이동 아티펙트로 도망친 것이다. 추적하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나는 아직 공간계 마법을 사용하지도 못하니까.
‘나에 대한 소문이 퍼지겠군.'
얼굴 없는 천사 유지니우스.
진짜 신분이 밝혀지는 건 아니니 딱히 상관없었다.
적당한 곳에서 앱솔루트 폴리모프를 해제하고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와 인비저블 블레이드의 신분이 노출됐을 가능성은 없지는 않군. 특히 오르시아의 신분은 알려졌을 가능성이 커. 7급 공간계 마법사가 흔한 건 아니니까.'
걱정은 되지 않는다.
기업 놈들도 떳떳하진 않으니 이 일을 공론화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놈들은 태왕국의 기업일 가능성이 크다. 네오 런던에 간섭하기엔 너무 멀리 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대기업도 하이텔 학파를 쉽게 여길 순 없다.
오르시아와 인비저블 블레이드는 역시 무사했다. 오르시아는 복잡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다.
“오르시아 씨. 세빛둥둥섬은 곧 자폭합니다. 우선 여기서 벗어납시다. 매스 텔레포트. 가능하십니까?”
“제 상태가 좋지 않군요. 공간 이동은 힘듭니다.”
“마법으로 날아가야겠군요. 제게 어느 정도 여력이 있습니다.”
나는 쓰러져 있는 인비저블 블레이드를 품에 안고 오르시아와 함께 강릉 군도 홍천섬으로 걸어갔다. 섬의 정상에서 폭발과 함께 무너지는 세빛둥둥섬을 감상했다.
“자폭이라 하기에 요란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용하군요. 잔해는 바다에 떨어지기 전에 소멸하는군요. 빛으로 변해서 사라지다니…. 상당히 볼만하군요.”
“아마 세빛둥둥섬의 신령술의 신비가 잔해를 남기지 않고 없애는 것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