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5화 > 2205. 다크 문
현장 실습의 당일.
아카데미의 재학생 메이드들은 숙소로 들이닥친 교관 메이드들의 검사를 받아야 했다.
오늘까지 퇴학당하지 않은 메이드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방 청소는 매일 2번. 아침과 밤에 성실히 청소했다. 그게 아니어도 시간이 날 때마다 청결을 유지하려 애썼다. 기껏 메이드 아카데미에 입학했는데 고작 청소 때문에 퇴학당한다? 그녀들에겐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청소는 잘 되어 있군요. 먼지가 끼기 쉬운 곳도 깨끗합니다. 하지만 공기가 조금 탁한 느낌이 있습니다. 환기는 자주 하도록 하세요. 방은 깨끗하니 별점은 부과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관님.”
메이드들은 자신 있으면서도 교관이 숙소에 들이닥칠 때마다 긴장했다. 청결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들이 밖에서 몰래 가져온 물건들은 방에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친구 혹은 연인과 찍은 사진, 소중한 추억이 담긴 악세서리, 정말 어렵게 구한 고급 간식거리 등등.
교관에게 걸리면 바로 벌점을 부과받는다. 그런데 절대로 걸려선 안 되는 물건도 존재한다.
성인용품.
메이드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20대 이상의 젊은 여자들이다. 한창때의 여자들이 성욕이 없을 리가 없다. 성욕의 충동을 견디다 못해 성인용품을 숙소 안으로 가져오는 메이드들이 몇몇 있었다.
메이드 아카데미 성인용품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다른 물건과 달리 가진 것을 들키면 바로 퇴학이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이건 뭐죠?"
“어, 그, 그 곰돌이 장식물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것으로... 우연히 구한 것으로....”
메이드가 횡설수설했다. 단순히 곰돌이 장식품이 들켜서라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작은 장식물은 이중 서랍까지 만들어서 숨겨 놓나요?”
“아, 아주 귀환 물건이라 보안에 신경 썼습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별점을 부과하도록 하죠. 교칙대로 이 장식품은 압수하겠습니다. 줄리엣 양이 아카데미를 떠날 때 돌려드리죠."
"...네.”
유리아는 옆방에서 들려온 소리를 차분히 들었다.
줄리엣의 곰돌이. 그건 아마 성인용품일 것이다. 겉으로는 평범한 곰돌이인데 분해해서 재조립하면 훌륭한 딜도가 되는 종류의 용품.
유리아가 생각하기에 교관이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성인용품이 적발되어 퇴학당한다? 아카데미 입장에서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지. 게다가 지금은 현장 실습을 앞두고 있었다.
“자, 캐리어를 열어보세요. 짐을 확인하겠습니다.”
교관이 기숙사를 기습한 진짜 목적. 메이드들의 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줄리엣 양. 옷의 상태는 양호합니다만, 정리는 조금 더 신경 써서 해야 할 것 같군요. 옷을 말아서 넣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메이드복까지 말아 넣는 건 좋지 않군요. 메이드복은 여러분의 정장입니다.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서 관리해야 합니다. 따로 작은 상자를 줄 테니 그곳에 메이드복을 보관하세요.”
검사는 무난하게 넘어갔다. 감점 처리는 하지 않았다.
교관은 유리아의 방으로도 돌아왔다. 방안을 한차례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침대 아래, 옷장, 책상 서랍도 샅샅이 확인했다. 유리아는 다른 메이드들보다 가진 물건이 없었다. 아니, 보급 외의 물건은 없었다. 아카데미에서 허락하는 화장품이나 필기구도 없다.
“…유리아 양의 방은 왠지 군인의 방 같군요. 아니, 군인도 이 정도로 보급품만 있는 방은 아니겠지요.”
“제가 실수라도 했나요?"
“아닙니다. 너무 완벽해서 놀랐을 뿐입니다. 유리아 양. 후원자가 제대로 후원하지 않나요?"
“후원은 제가 송구할 정도로 받고 있습니다. 매일 제 계좌로 3,000만 크레딧이 입금되고 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많은 돈입니다만, 쓸 곳이 딱히 없어 주식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유리아도 애착 품이 없는 건 아니다. 그녀도 사람인 이상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물건이 있다. 다만 여기에 없을 뿐이다. 그녀의 물건들은 모두 유진의 저택에 있다.
"화장품도 없군요. 메이드의 외모 관리는 권장됩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메이드의 가치에는 외모도 포함되니까요. 외모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보급받은 샴푸와 비누로 하고 있습니다. 화장품은 따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향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리아 양의 이런 단점이 있을 줄 몰랐군요."
“단점인가요?"
"……."
교관은 자괴감을 느꼈다.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는 그녀와 온갖 비싼 화장품을 사용하는 자신. 객관적으로 비교해도 유리아의 미모가 압도적이었다.
“유리아 양에게는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래도 향수 하나나, 둘 정도는 구비하는 쪽이 좋을 것입니다. 제가 나중에 향수 몇 개를 추천해 드리지요.”
“네. 감사합니다, 교관님.”
유리아는 대답하면서도 향수에 전혀 관심 없었다. 유진이 대다수의 향수를 안 좋아했다. 인공적인 향수보다 여자의 살냄새를 더 좋아했다.
"짐을 검사하겠습니다. ...역시 지적할 거리가 없군요. 종이를 활용해 메이드복을 정리하는 방식도 인상 깊었습니다. 저희는 이번 현장 실습에서도 유리아 양의 활약할 것이리라 믿고 있습니다.”
“......기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교관이 방을 떠났다. 곧 소등 시간이 도래했고, 그녀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이불 속의 그녀의 손이 허리에서 허벅지로 움직이더니 팬티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아, 주인님...!”
다른 메이드처럼 그녀 또한 성욕을 느끼고 있었다. 그저 내색하지 않을 뿐이지. 그녀는 언제나처럼 유진을 떠올리며 자위를 한 뒤 잠들었다.
교관들이 메이드들에게 서류와 편지를 건네줬다.
“서류에는 여러분이 직접 이동해야 할 귀족가의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 귀족가에 오전 10시까지 도착해야 합니다. 도착한 뒤 면접이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러분이라 해도 면접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면접에 떨어진다고 해도 퇴학은 아니니 아카데미로 곧장 돌아오십시오.”
교관이 말을 이었다.
“편지는 마리아 힐턴 학장님의 서명이 적혀 있는 추천서입니다. 아카데미가 공식으로 여러분의 신분을 보증한다는 뜻이 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절차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자 메일을 보내면 되는데 굳이 편지를 직접 써야 하냐는 의문이 있을 테죠. 이것은 전통입니다. 전통은 무겁게 존중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네오 런던의 메이드로서 전통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자, 서류를 확인하시고 장비를 받은 뒤 떠나십시오."
유리아가 서류를 확인했다.
벤네비스 공작가.
그 이름을 보자마자 유리아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벤네비스 여공작은 네오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귀족이다. 정치에 관심 없는 일반인도 벤네비스 여공작은 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벤네비스 여공작은 왕위 계승 서열 1위의 공주님이니까.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녀는 네오 런던의 국왕이 될 것이다.
'저의 우수한 성적을 생각하면 유명한 귀족가로 가리라는 건 예측했습니다만, 벤네비스 공작가는 예상 밖이군요.'
유리아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네오 런던의 차기 왕위을 손에 넣을 공주에게 잘 보일 기회? 그녀의 주인은 오직 한 사람뿐 이었다. 그 외의 다른 사람에겐 관심 없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유리아! 어디로 가는 거야?"
줄리엣이 다가와 물었다. 유리아는 그녀에게 서류를 보여줬다. 숨길 이유가 딱히 없었다.
"허업! 벤네비스 공작가?!!"
"뭐?! 벤네비스?!”
"진짜야?! 거기 엘자 공주님이 머무시는 곳이잖아!”
“역시 유리아 양이네요. 성적이 우수하니 당연한 거겠죠."
또각또각.
유리아에게 다가가는 인물이 있었다. 살짝 어두운 회색빛의 은발에 붉은 눈을 가진 메이드, 리디아 멧커프였다. 아카데미의 성적 2위인 그녀는 오만하게까지 느껴지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유리아 양이군요. 저도 벤네비스 공작가에서 일하게 되었답니다. 목적지가 같으니 함께 움직이시죠. 어떠신가요?”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후후. 벤네비스 공작가는 제가 잘 알고 있지요. 어렸을 적에 벤네비스 공작가로 몇 번 가본 적 있거든요. 공주 전하도 몇 번 뵈었지요. 온화하면서도 강인한 분이시랍니다.”
“그 유명한 벤네비스 공작가에 갈 수 있다니... 많이 기대되네요."
유리아가 입바른 소리를 했다. 전혀 기개 되지 않았다.
“유리아라면 벤네비스 공작가에서 잘할 수 있을 거야."
"줄리엣 양은 어디로 가시나요."
“플로다 자작가. 플로다 자작가의 이상한 소문 같은 건 없지?"
“제가 알기로 플로다 자작가는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귀족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조장 3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네오 런던의 주유럽을 꽉 쥐고 있습니다. 나쁜 소문은... 딱히 들어본 적 없군요.”
“유리아가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되네. 서로 힘내자! 아, 리디아 씨도요!”
"후후. 저와 유리아 양의 실력이라면 공주 전하도 놀라게 할 수 있겠지요. 공주 전하의 시녀가 될수 있는 기회... 절대로 놓칠 수 없지요. 줄리엣 양은 저의 동기이니 잘하실 거라 믿습니다. 다만 신중히 행동하세요. 가서 덜렁거리지 마시고요."
“아하하...."
줄리엣이 쓴웃음을 지었다. 덜렁거리는 건 사실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유리아와 리디아는 다른 메이드들과 인사를 나눈 뒤 마차를 타고 벤네비스 공작가로 향했다.
A 구역에 위치한 벤네비스 공작가의 저택은 그 명성에 걸맞게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다.
입구에서부터 사자 조각상이 장식된 대문이 사람을 압도했고, 그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이 선망과 기대감을 품게 했다.
“...리디아 양. 긴장하고 계시는군요. 몇 번 와본 적 있다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그, 그건 10년도 더 지난 어렸을 적의 일이에요. 그때의 벤네비스 공작가의 주인은 공주 전하가 아니셨기도 했고.... 후, 공주 전하를 뵙는다 생각하니 긴장되네요. 긴장하지 않는 유리아 양이 이상한 거예요. 아니, 왜 긴장하지 않는 거죠?”
[백환] 세계의 저택이 더 크고 웅장하며 화려하다고 말해봐야 믿지 않을 테니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앞에 마중이 나오는군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