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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206화 (1,986/2,000)

< 2206화 > 2206. 다크 문

유리아와 리디아를 마중 나온 사람은 중년 메이드와 그녀를 따르는 젊은 메이드 셋이었다.

앞서 걷고 있는 중년 여성은 우아한 동시에 강인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걸음걸이는 강철이 직접 움직이는 것 같은 인상을 줬다. 그 뒤를 따르는 세 명의 메이드에게서도 범상치 않은 품격이 느껴졌다. 입고 있는 메이드복이 최고급이라 더 그런 걸지도 모른다.

“......읏."

리디아는 위축되었고, 유리아는 조용히 그녀들을 평가했다.

'가장 앞에 선 분은 학장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최소 슈페리어급 메이드. 그 뒤를 따르는 셋은 플라워급이라 봐야겠죠.'

대문이 저절로 열리고 안경을 낀 중년 여인이 말했다.

“벤네비스 공작가에는 어떤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메이드 아카데미가 벤네비스 공작가에 협조를 구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다 알면서 묻는 거다. 애초에 손님맞이로 하우스 키퍼급 메이드가 마중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텃세인가? 아니, 그보다는 시험에 가깝다.

유리아는 치맛자락을 살짝 들고 인사했다.

“메이드 아카데미에서 온 유리아 그레이스라 합니다. 아카데미의 교육 과정 중 현장 실습을 위해 벤네비스 공작가를 찾아 왔습니다. 여기 메이드 아카데미의 학장이신 마리아 힐턴 님의 서한과 추천장입니다.”

“리, 리디아 멧커프입니다. 마찬가지로 메이드 아카데미에서 왔습니다. 저 또한 마리아 힐턴 님의 서한과 추천장을 갖고 있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저는 벤네비스 공작가의 메이드장인 아그네스 네발입니다. 두 분은 면접을 통과해야만 벤네비스 공작 가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유리아와 리디아는 아그네스를 따라갔다. 메이드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대로 걸음에 신경 썼다. 머리에 물을 뜬 컵을 올리고 걸어도 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걸었다.

면접은 저택 내부 접견실에서 이루어졌다. 아그네스와 세 명의 메이드의 맞은편에 유리아와 리디아가 앉았다. 압박감이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 아그네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서한은 제가 공주 전하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우선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아그네스로부터 질문이 쏟아졌다.

“메이드로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계십니까?"

“메이드의 업무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자신 있는 업무는 무엇입니까?"

“공주 전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십니까?"

대기업 면접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리아는 적당히 대답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할법한 대답. 리디아는 자신의 성격답게 자신감의 찬 말투로 대답했다.

“두 분의 대답은 잘 들었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여기 있는 실장들이 면접을 이어갈 것입니다.”

아그네스가 떠났다. 침묵은 계속 이어졌다. 이윽고 아그네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하아.”

세 명 중 한 사람, 붉은 숏컷에 얼굴을 비롯한 몸 곳곳에 흉터가 있는 메이드의 자세가 풀어진다. 그녀는 꼿꼿이 세운 허리에서 힘을 풀며 등받이에 녹아내리듯 기댔다.

“아그네스 메이드장은 다 좋은데 너무 딱딱하단 말이야. 아, 신입들. 나는 경호실 실장 리타야. 아, 정식으로 채용된 건 아니니 신입은 아닌가. 실습생들이라 불러야 하나?"

눈매가 차가운 검은 단발머리의 여성은 리타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짧게 혀를 찼다.

“이쪽은 무시하시죠. 엘자 공주 전하는 관대하시니 어느 정도의 풀어짐은 용서하십니다. 경고하건대 공주 전하의 관대함에 기대어 멋대로 행동하시지는 마십시오. 특히 리타 경호실장의 불량한 태도는 무시하십시오. 저는 비서실장 신시아입니 다.”

“안녕하세요. 관리실의 린다예요.”

가장 왼쪽에 앉은 여인이 인사했다. 연갈색의 긴 웨이브펌을 하고 실눈을 뜬 여인이다. 보통 실눈은 수상쩍은 인상을 풍기는데 그녀는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몸매는 셋 중에 가장 좋았다. 특히 가슴이 풍만했다.

“사실 이 면접에는 큰 의미가 없어요. 메이드 아카데미의 재학생인 것만으도 어지간한 귀족가는 프리패스로 취업할 수 있으니까요. 아, 두 분의 경우엔 실습이라 이미 아카데미 측과 이야기가 끝났고요."

"린다. 실습생들에게 말이 많습니다.”

“이미 알고 있을 텐데요. 뭘."

“맞아. 알고 있을 거 아니야. 이 형식적인 면접도 메이드장이 아니었으면 안 했을 거 아니야."

“...두 사람은 여유로우신 모양이군요. 저는 이후에도 일이 꽉 차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두 실습생 분들은 앞으로 일주일 동안 벤네비스 공작가의 메이드가 되어 일하게 됩니다. 두 분은 각각 비서실, 관리실, 경호실을 번갈아가며 저희와 일하게 될 겁니다. 저희는 여러분의 업무 수행력을 확인하여 메이드 아카데미에 보고서와 평가서를 제출합니다.”

실장들은 감독관이기도 하다는 뜻이었다.

“저희 비서실은 공주 전하를 보좌하고 공주 전하의 명령을 수행하는 곳입니다. 공주 전하께선 기업체 몇 개를 운영하고 계시고, 그 관리를 저희가 맡고 있습니다. 또한 기밀 자료를 다루기도 합니다. 뭐, 그건 다른 부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은 비서실은 특히 심하지요. 그러니 두 분은 계약서 한 장을 작성해 주셔야겠습니다.”

신시아가 비밀 유지 계약서를 내밀었다.

유리아는 빠르게 계약서를 읽어 내려갔다. 함정 조항은 없었다. 표준 계약서에 가깝다.

"잠시만요. 여기 7항이 조금 이상한데요?"

리디아가 눈을 치켜뜨며 항의했다. 유리아가 빠르게 7항을 훑었다. 비밀 유지 기간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상할 건 없었다.

“아, 그렇군요. 여기 수정 계약서가 있습니다. 유리아 씨는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미리 수정된 계약서를 준비해 뒀다? 일부러 계약서에 장난질을 치며 반응을 봤다는 뜻이었다. 유리아와 리디아의 계약서 는 처음부터 서로 달랐던 것이다. 리디아는 어이없다는 듯 눈가를 파르르 떨었으나, 신시아는 아무렇지 않게 서명한 계약서 를 받아 갔다.

“경호실은 말 그대로 공주 전하의 경호와 벤네비스 공작가의 보안이 업무야. 가끔 특수 임무가 떨어지기도 해.”

"…리타."

신시아가 리타를 노려보았다.

“뭐, 어때. 어차피 조금만 지나도 알게 될 사실인데. 비밀 유지 계약서에 사인도 했잖아. 아무튼, 경호의 경우 평상시에는 한가하니까 긴장하지 말라고. 위험할 때는 존나 위험 하긴 해도 평상시에는 다른 부서보다 개꿀이야.”

유리아와 리디아는 입을 다물었다. 딱히 경호실에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이어 린다가 조곤조곤한 어조로 말했다.

“아, 관리실은 다른 두 부서보다 전문성은 떨어져요. 주로 하는 일은 저택 관리와 손님 응접이네요. 저택의 허드렛일에서 부터 경호실의 보급, 비서실의 지원 등 하는 일은 많아요. 특히 공주 전하께서 연회라도 여시면 무척 바빠지죠. 다행히 공주 전하는 연회를 좋아하시지는 않은데... 이거 어쩌죠. 내일 저녁에 연회가 열리네요?"

린다가 생글생글 웃는다. 반대로 다른 두 사람의 안색은 급격히 안 좋아졌다. 왕위 계승자의 연회다. 왕족은 물론이고 고위 귀족을 비롯한 네오 런던의 권력자들이 몰려들 것이다. 아랫것들의 고생은 확정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리디아는 안색이 창백해졌고, 유리아는 평소와 같았다.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연회 준비는 이미 순조롭게 끝났으니까요.”

공주가 주최하는 연회를 벼락치기로 준비할 리 없으니 당연했다.

신시아가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끌었다.

“크흠, 일단 여러분의 일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정오까지는 숙소에서 짐 정리를 하시고, 점심 식사 후에 리디아 양은 리타 경호실장과 업무를. 유리아 양은 린다 관리실장과 업무를 보시면 됩니다. 업무는 연회가 끝날 때까지 변경되지 않습니다. 숙소는 린다 관리실장이 안내해 드릴 것입니다.”

"네~ 따라오세요."

숙소는 호텔처럼 깨끗하고

넓었다. 가구도 고급스러웠다.

“테이블 위에 놓인 메이드 복으로 갈아입어 주세요. 벤네비스 공작가에 왔으니 벤네비스의 제복을 입어야죠. 아, 짐 정리 까지 시간은 10분 드릴게요. 연회를 앞두고 있어서 여유 시간이 없거든요.”

사용인들을 위한 식당도 뛰어났다. 뷔페식으로 원하는 음식을 덜어 먹을 수 있었다. 유리아는 식사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 퀄리티가 높네요. 식재료부터 엄선하는 티가 납니다.'

약간 부족한 점이 느껴졌으나, 무시했다. 앞으로 계속 공작가에서 일할 것도 아니었고, 갑자기 찾아온 실습생이 요리를 지적해봤자 요리사들의 자존심만 상할 뿐이다. 그녀는 스스로가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물론 주인님에게 올라갈 요리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요.'

이딴 수준의 요리를 주인님에게 올리는 건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공작가 정도는 얼마든지 뒤집어 엎을 수 있다.

식사 후, 리디아는 경호실로 향했고, 유리아는 린다를 따라갔다.

“우선 저택을 안내해 드릴게요.”

“제가 출입할 수 없는 곳이 있습니까?”

“으음. 3층 이상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올라가지 마세요. 공주 전하께서 4층에 머무시거든요. 경호실 메이드들이 지키고 있으니 올라가고 싶어도 못 가겠지만요.”

이어서 연회가 예정된 별관으로 이동했다. 별관은 연회를 위해 꾸며진 상태로 메이드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린다는 연회장을 둘러보며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유리아 씨는 아까부터 조용하시네요. 미리 전해 듣기로는 아카데미의 수석이라시던데... 의외로 수동적이시네요.”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나있군요. 제가 참견할 부분은 없는 걸로 보입니다만.”

“베이지 꽃을 테마로 연회장을 꾸몄는데... 유리아 씨가 보기에 부족함은 없나요?”

"화사하면서도 우아함이 느껴집니다. 딱히 제가 지적할 곳은 없군요. 지적할 자격도 없고요.”

“으음. 이러면 평가할 수 없는데.... 원래는 고의 실수라도 저지를까 했어요. 하지만 공주 전하께서 주최하는 연회를 일부러 망칠 수는 없죠. 설령 그게 준비하는 기간이라 하더라도.”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평가는 해야겠죠. 유리아 씨는 요리 실력도 뛰어나다 들었어요. 연회를 찾아주신 손님들과 공주 전하를 위해 요리를 준비해 주실 수 있나요? 연회 때는 저와 함께 공주 전하를 모셔야 하니 가벼운 음식이면 괜찮아요.”

“연회 당일에 나오는 요리 목록을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린다가 건넨 종이를 확인했다. 요리 대부분은 유럽식이었다. 식사 쪽은 완벽에 가까웠기에 건들기에 애매했다. 지금 와서 메뉴 변경을 요청하는 건 민폐일 뿐이다.

“디저트를 추가하겠습니다. 과일을 추가로 주문할 수 있나요?"

“과일이라면 당일 배송이 가능하죠. 그게 아니어도 준비된 과일은 충분해요. 공주 전하께서 과일을 좋아하시거든요.”

유리아도 그걸 알기에 과일 디저트를 준비하려는 것이다. 엘자 공주가 과일을 좋아하는 건 조금만 조사해 봐도 알 수 있으니까.

“어떤 디저트를 준비하시려고요?"

유리아가 생각한 건 최근 [백환] 세계의 메이드 사이에 유행하는 디저트였다.

“고대 국가 트루 차이나의 탕후루입니다. 혹시 아시나요?"

“아뇨. 그게 뭐죠?”

“과일을 설탕으로 코팅한 디저트입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설탕과 과일. 맛없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어쩐지 몸에 안 좋을 것 같은 음식이네요."

“그래도 맛있습니다."

유리아는 공주와 귀족들이 탕후루에 빠져 당뇨에 걸리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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