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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209화 (1,989/2,000)

< 2209화 > 2209. 다크 문

유진은 준비한 선물을 꺼내면서 찰나를 사용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1]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 이 연회는 엘자 공주의 초대를 받아 참석했다. 초청받았을 때는 우려보다는 기쁨이 더 앞섰다. 왕위 계승 서열 1위, 왕세녀라 할 수 있는 엘자 공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네오 런던의 핵심 권력자니까.

'설마 여기서 유리아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메이드 아카데미는 군대보다 더 엄격한 곳이다. 아카데미 내의 학생과는 전화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나마 규칙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데 그 주기가 꽤 길었다. 편지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일엔 한계가 있었다.

'저번에 말한 현장 실습인가. 현장 실습을 설마 엘자 공주의 밑에서 할 줄이야. 역시 왕실이 유리아를 주목하고 있나.'

유진은 오랜만에 만나 유리아와 인사를 나누고 싶은 기분을 꾹 눌렀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엘자 공주가 백작위를 언급했다. 내 작위 상승은 정해진 일이긴 해도 아직 왕실이 공표하지 않은 사실을 여기서 밝히다니....'

정치적 의미가 없다. 라고 하기엔 상대는 엘자 공주였다. 무엇을 해도 정치적으로 연관될 수밖에 없는 위치의 사람.

왕실과 협의된 건가? 그게 아니면 개인적인 판단으로 승작 소식을 알린 건가.

'...모르겠군. 왕실의 대표라 할 수 있는데 왕실을 적대할 리는 없고, 그저 호의인가?'

사실 승작 자체는 누구나가 예상한 일이었다. 초전도체는 그만한 파급력이 있으니까.

눈앞의 엘자 공주는 부드럽게 웃고 있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일단은 넘어가기로 한다.

찰나가 해제되었다. 유진은 품에서 꺼낸 고급스러우면서 화려한 금속 상자를 내보였다. 유진은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경쾌한 멜로디 소리와 함께 상자 내부의 금속 발레리나 인형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춤추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살짝 실망했다.

“공중 부양 오르골? 조금 실망이군. 그런 장난감 따위야 비싸기만 할 뿐이지 않나.”

“...저건 더 비쌀걸세. 아직 모르겠나? 저기엔 마법이 일절 들어가지 않았네. 순수한 과학 기술만으로 만들어 낸 자기부상 오르골."

“마법 없는 기술만으로 자기부상? ...초전도체인가. 현재 초전도체가 1kg에 1,000만 크레딧이 넘는다고 했으니....”

"중요한 건 금전적 가치만이 아닙니다. 지급 기업들은 초전도체를 연구하느라 바쁩니다. 초전도체로 오르골 같은 장난감 을 만들 여유는 없습니다. 즉, 저건 최초로 만들어진 초전도체 오르골입니다. 고대 국가 시절을 제외하고 말이죠. 역사적인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대화를 들은 유진은 내심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귀족들답게 가치를 알아본다.

오르골이 끝났다. 엘자 공주를 입을 살짝 벌리며 놀란 표정을 짓다가 조심히 내 선물을 받아들였다.

“정말 고마워요, 마이어 준남작. 아마 오늘 선물은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이 오르골은 준남작이 집적 만드셨나요?”

“아닙니다. 저는 기술자가 아니라 마법사인지라 기술에는 문외한입니다. 오르골을 만든 회사는 아크로텍스사입니다.”

“과연, 아크로텍스사의 기술력이 들어간 오르골답게 굉장히 정밀하군요. 육안으로 봤을 땐 하나의 조각품같은데... 이 안에는 수백 개의 기계 부품들이 들어가 있는 거겠죠. 마이어 준남작. 연회를 즐겨주세요. 오늘 연회는 네오 런던의 발전을 축하하는 연회이니… 어떻게 보면 준남작이 주인공이 할 수 있겠네요.”

“제가 주인공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너무 겸손할 필요는 없어요.”

유진은 인사를 끝내고 엘자 공주와 거리를 벌렸다. 그의 뒤를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뒤쫓는다. 유진은 유리아와 대화를 하고 싶으나... 타이밍이 나지 않았다. 다른 기회를 엿봐야 한다.

“마이어 준남작. 아니지. 승작이 약속되었으니 백작이라 불러야겠군요.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개인적으로 LK 사에 흥미가 있습니다. 투자를 약속해 드리지요.”

“준남작은 아직 미혼이라 들었습니다. 혹시 결혼에 관심 있으십니까? 마침 제 사촌이 결혼 상대를 알아보고 있습니다만...."

유진은 차분히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오후 10시. 연회는 아직도 시끌벅적했다. 유리아는 엘자 공주의 뒤에 서서 조용히 연회를 지켜봤다. 그녀의 시선은 유진에게 향해 있었다.

그때였다. 메이드 한 명이 굳은 표정으로 다가와 엘자 공주에게 귓속말로 무언가를 보고했다. 엘자 공주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차갑게 빛나는 듯했으나 이내 부채로 입을 가리며 눈웃음을 짓는다.

'메이드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네요.'

엘자 공주의 옆에 시립해 있는 아그네스가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 소리를 차단했다. 유리아가 있는 곳에선 저들의 입 모양도 볼 수 없었기에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긴급한 일은 아닌 듯하군요.'

메이드는 곧 떠났다.

그리고 약 3분 뒤, 연회장 입구에 있던 집사가 쩌렁쩌렁 외치기 시작했다.

“윌리엄 스노든 왕자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연회장 문이 열리고 제복을 입은 금발 머리의 남성을 필두로 한 무리가 안으로 들어온다. 3명의 집사와 2명의 메이드를 이끌고 들어온 그는 자신감이 가득 찬 눈으로 연회장을 스윽 둘러봤다.

그리고는 천천히 연회의 주인인 엘자 공주에게 다가간다.

“엘자 누님. 오랜만입니다.”

“... 윌리엄 왕자. 초대도 하지 않은 자리에 잘도 오셨군요. 공적인 자리이니 예의는 갖춰주시죠.”

“하하. 알겠습니다. 공주 전하.”

윌리엄 스노든 공작. 엘자 공주의 남동생이다. 왕위 계승 서열은 2위의 왕자.

엘자 공주가 있는 한 국왕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 반대로 엘자가 공주가 없으면 왕위를 이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떠들썩하던 연회는 어느새 조용해졌다. 손님들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공주와 왕자를 지켜봤다.

“왕자.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지나가던 길에 예쁜 꽃을 발견했습니다. 공주 전하께서 이곳에 있기에 선물하러 왔습니다.”

윌리엄의 집사가 아그네스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꽃은 어떻습니까?"

“아름답군요.”

“마침 연회를 진행하시는 듯하니. 저도 연회에 참석해도 되겠습니까?”

윌리엄이 웃으며 물었다. 엘자 공주로서는 거절할 수 없었다. 윌리엄은 정적이지만, 그녀의 친남동생이었다. 같은 왕실에 속하는 가족이다.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매몰차게 대할 수는 없었다.

“꽃을 선물하러 온 동생을 어떻게 박대할 수 있나요. 윌리엄. 연회를 즐기세요.”

“역시 공주 전하이십니다. 이 동생을 챙겨주시는군요. 그런데... 뒤에 있는 메이드가 유리아 그레이스입니까?"

유리아를 바라보는 윌리엄의 두 눈이 뱀처럼 빛난다. 인재 욕심은 윌리엄 왕자도 만만치 않았다. 엘자 공주보다 입지가 떨어지기에 더욱더 그에겐 인재가 필요했다.

유리아가 인사하려는 찰나, 엘자가 앞으로 나섰다.

“윌리엄 왕자. 사용인을 핍박하지 마세요.”

“핍박이라뇨. 그냥 인사만 나누려는 겁니다. 메이드 아카데미의 천재를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메이드 아카데미의 천재. 주변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손님들이 웅성거린다. 윌리엄은 사람 좋게 웃으며 유리아에게 말했다.

“그레이스 양. 나중에 따로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대에게 해가 될 이야기는 아닙니다. 약속드리지요.”

“왕자 전하. 저는 현재 엘자 공주 전하의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공주 전하의 허락 없이 개인행동은 할 수 없습니다.”

윌리엄이 시선이 엘자에게 향했다.

“공주 전하. 허락해 주시죠.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10분이면 됩니다.”

엘자는 생각했다. 윌리엄이 어떤 달콤한 미끼를 흔들어도 유리아가 넘어갈 것 같진 않다.

“10분이라면... 지금 바로 옆방에서 대화하면 되겠네요. 유리아 양. 어떤가요?”

“...네. 왕자 전하와 대화하겠습니다.”

“윌리엄 왕자. 딱 10분이에요. 그 이상은 허락할 수 없어요."

“감사합니다. 공주 전하.”

유리아는 윌리엄 일행과 함께 옆방으로 이동했다.

윌리엄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의 옆에는 날카로운 인상의 붉은 머리 집사가, 윌리엄의 뒤로는 사용인들이 조용히 시립 했다.

유리아는 담담히 그들이 풍기는 압박감을 받아냈다.

“유리아 그레이스 양.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메이드 아카데미를 졸업 후 내 아래에서 일하지 않겠습니까? 업계 최고의 대우를 약속드리죠."

“죄송합니다. 왕자 전하. 지금은 학업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이미 공주 전하의 밑에서 일하기로 했습니까? 그게 아니면 왕실 직속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이미 주인님이 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윌리엄의 평판은 엘자에 비해 수상쩍은 부분이 있었다. 유진의 이름을 거론 했다가 유진이 피해를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집사와 메이드로부터 꺼림칙함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내 첫인상이 별로였나 보군요. 초대 없이 연회를 찾은 불청객이니 당연하겠죠.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와 공주 전하는 사이가 썩 좋은 편이 아니라서 말이죠.”

“빠르게 강해지고 싶지 않습니까? 제 옆에 있는 집사장 아이작은 저와 계약하며 초인의 벽을 넘었지요. 제 뒤에 있는 이들도 저와 계약하여 힘을 얻었습니다.”

“수련이 아닌 다른 인위적인 방식으로 등급을 높였다는 뜻이군요.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가능합니다. 빠르게 강해지고 싶지 않습니까? 그레이스 양의 재능이라면 1년 내로 7급으로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약속 드립니다."

“저는 계약을 신중히 하는 편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힘을 얻기 위해 계약을 하는 건 위험 부담이 너무 크군요.”

“힘을 얻기 위해선 대가가 필요한 법입니다. 10년을 제 밑에서 일하는 대가로 힘을 드리겠습니다. 탐나지 않습니까?”

힘이 있으면 좋다. 대부분의 힘이 편해지니까. 하지만 유리아는 주인님을 배신하고 힘을 얻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사양하겠습니다.”

“단호하시군요. 이해합니다. 서로를 신뢰하기엔 만남을 짧았죠. 아이작. 그레이스 양에게 네 힘의 일부를 보여드려.”

“예, 주인님."

적발금안의 집사, 아이작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유리아는 조용히 긴장했다. 바로 옆이 연회장이다. 전투가 일어날 가능성은 한없이 작으나 0%가 아니었다.

“잘 보십시오. 제가 얻은 힘의 일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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